STUDIO VISIT 1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STUDIO VISIT 1

세상 밖의 소란스러운 상황과는 의식적으로 분리된 채 자신만의 성소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작가들을 만났다.

BAZAAR BY BAZAAR 2022.10.09
 
송은에서 9월 24일까지 열리는 그룹전 «Summer Love 2022»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평면작업 시리즈의 에스키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우한나 작가.

송은에서 9월 24일까지 열리는 그룹전 «Summer Love 2022»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평면작업 시리즈의 에스키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우한나 작가.

우한나
Hannah Woo
차고를 개조한 우한나 작가의 작업실엔 최근 발전한 평면작업의 거대한 에스키스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소프트 조각의 주재료인 패브릭이 유휴 공간을 차지하며 컬러풀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신체 장기를 염두에 두고 만든 패브릭 조각 시리즈 〈Bag with You_Take Your Shape〉는 실제 경험에서 출발한 작업이라고.
2019년 생애 첫 건강검진을 통해 오른쪽 신장은 쪼그라들고 왼쪽은 비대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능상으로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태어날 때부터 기형이었는지 자라면서 변화가 생긴 건지 몇 달간의 추적 검사로도 알 길이 없었다. 화성 이주를 현실적으로 고려하는 시대에 내 몸 안의 장기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몰랐다는 사실이 멜랑콜리할 정도로 황망했다. 이후 신체의 장기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갖는지 어떤 양상으로 쇠하는지 열심히 찾아보게 됐는데, 그때부터 패브릭을 주재료로 진행하던 입체 작업의 결과물이 의도하지 않게 인체의 장기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느슨하게 바느질해 주름을 표현하기도 하고 선홍빛 천을 선택하거나 절개하듯이 가위로 가른 다음 수술하는 것처럼 바느질로 꿰매기도 하고…. 그렇게 만든 입체 조각에 끈을 달아 매니까 복부에 위치하는 게 그야말로 장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상이 떠올랐는데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폐를 한두 개 더 휴대하면 좋겠다 싶고, 악몽을 먹어주는 장기랄지, 암을 위한 ‘캔서 서커’가 나오기도 하는 등 점점 토템적인 의미도 가미되었다. 최근에는 퇴화한 꼬리도 나오고(〈오렌지본(Orange Bone)〉), 물고기에만 있는 기능인 아가미를 탑재하기도 한다(〈아가미(Gill)〉).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전시 «조각충동»에서 방금 말한 〈오렌지본〉과 〈아가미〉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모델들과 화보를 촬영하여 작품들을 이미지화하고 관람객이 착용할 수 있게 했다. 마침 전시 공간도 부티크처럼 꾸며놓았는데.
점점 제스처가 확장되고 있는데 결국에는 상실과 결핍에 관한 얘기이다 보니 자칫하면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 신체 기관을 경험하게 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패션 화보를 스크린을 통해 선보이고 소프트 조각을 직접 걸쳐볼 수 있게 했다.  
 
〈Bleeding Well〉, 2022. 〈Orange Bone〉, 2022. 〈Engraved Keloid〉, 2022.〈Nidation_ Bag With You Take Your Shape〉, 2022.
그런데 오늘 작업실에 와서 보니 평면작업도 눈에 띈다. 입체에서 평면으로, 큰 변화 아닌가.
변화의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나는 작업을 할 때 굉장히 계획적인 작가에 속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 a, b, c, d를 설계하고 그걸 합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설치작품으로 선보인다. 그렇게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탈락하는 아이디어들이 하나둘 생겨 쌓였다. 그것들을 어떤 기능을 해야 한다는 조건 없이 즉흥적으로 풀어내기에 어떤 매체가 가장 적합할까 고민해봤는데 회화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또한, 조각을 그린 저 회화의 경우에는 ‘내가 만들고 싶은데 못 만드는 조각을 ‘그려서’ 완성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내가 하는 입체 작업의 주재료는 천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직립할 수 없기에 어딘가에 매달리거나 떠 있어야 한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조각을 만들려면 나무, 쇠, 돌 등 단단하고 무거운 재료를 다루어야 하는데 나는 장비가 아닌 내 손으로 직접 재료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기를 원해서 소프트한 천만을 이용한다. 그래서 만들어보고 싶지만 만들 수 없는 직립 조각을 그려본 것이다. 그런 이유로 회화작업을 하게 됐는데 너무 재밌어서 말 그대로 ‘춤추면서’ 그릴 때도 많다. 순간의 붓질에 따라 즉각적으로 결과물이 나타나고 심지어 내 손끝에서 탄생하는 게 너무 신난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거의 트랜스 상태로 작업할 때도 있다. (웃음)
뒤 벽면에 나붙은 그림은 캔버스가 아닌 천에 작업했는데 이유가 있나?
패브릭으로 입체 조각을 만들 때 원하는 모양으로 천을 오리잖나. 그러면 남은 천들이 생기는데 그게 너무 아까워서 이 천들을 재활용해 평면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 벽면에 붙어 있는 건 송은에서 열리고 있는 그룹전 «Summer Love 2022»에서 선보이는 〈Uneasy Days〉(2022) 시리즈의 에스키스다.  
2010년 후반부터 위빙 아트를 비롯해 패브릭을 주재료로 삼는 작가들이 대거 조명됐다. 페미닌하고 노동집약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매체의 특성에 대해 작업자의 관점에서 느끼는 점에 관해 묻고 싶다.
그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지만 여성적 제스처로서 이 매체를 선택한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온갖 종류의 솜 인형을 좋아했고 〈덤보〉〈판타지아〉 같은 1940년대 디즈니 영화의 광팬이었다. 그랬던 내가 형형색색의 천으로 입체 조각을 만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하면 할수록 바늘과 천의 매력을 새삼 발견하는 과정이 즐겁다. 바늘은 앞은 뾰족하고 끝은 뭉뚝한 채로 실을 견인하며 실땀을 증거처럼 남긴다. 바느질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촘촘하거나 느슨한 바늘땀을 보면서 거기에서 속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이런 작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사소한 일상조차도 디지털화되고 삶과 죽음이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삶을 사는 현대인으로서 적어도 나에게는 내 신체가 오롯이 기록된 무언가를 남기는 게 의미를 지닌다.
 
오는 12월 갤러리 기체에서 열리는 제목 미정의 개인전에서 선보일 회화작품을 배경으로 오브제 작품과 포즈를 취한 유예림 작가.

오는 12월 갤러리 기체에서 열리는 제목 미정의 개인전에서 선보일 회화작품을 배경으로 오브제 작품과 포즈를 취한 유예림 작가.

유예림  
Yaerim Ryu    
한국종합예술학교 석관동캠퍼스 미술원별관동. 올겨울 갤러리 기체에서 있을 개인전 준비에 여념 없는 유예림 작가의 작품들은 빈 강의실의 한쪽 벽면에 늘어서 특유의 모호함으로 흡인력 강한 내러티브를 들려주었다.
 
오는 12월 개인전에서 선보일 작품들의 작업 과정을 볼 수 있어 행운으로 느껴진다. 2021년 쇼앤텔 개인전 «나는 밤새 푹 자고 종일 일한다네(I Sleep All Night and I Work All Day)»의 타이틀은 영국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의 대표작  〈몬티 파이튼의 비행 서커스〉(1969~1974)의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벌목꾼 노래(Lumberjack Song)’에서 온 걸로 밝혔다. 이번 작품들도 구체적인 영감의 레퍼런스가 있나?
혼자 생각 중인 타이틀이 있긴 한데 그때처럼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게 감상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 중이다. 당시에는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1979)이라고 몬티 파이튼의 멤버 중 한 명이 감독하고 나머지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그들의 천재적인 위트에 반해서 이후 다른 작품을 찾아 보다가 제목으로 삼게 됐다.
몇몇 전시와 페어에서 작품들을 보면서 미학적 출발점이자 아이덴티티가 ‘내러티브’가 아닐까 했다. 내러티브를 이미지로 번역하면서 삽화적인 회화작업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작품에 대해 삽화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고, 이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나는 왜 좀 더 ‘페인터리’하게 그리지 못할까’ 고민하기도 하고, 내 그림에 대한 회화적인 당위성 같은 걸 찾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굳이 그래야 할까’ 싶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도 그림을 그리면 화면 아래 부분에 이야기를 적어 책처럼 만들었는데 나에게 내재한 특성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회화와 삽화를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생겼다. 삽화라는 게 텍스트를 보조하기 위한 이미지인데, 텍스트에 대한 의존도가 50% 이상이면 삽화라고 하고 40%쯤 되면 회화라고 하나? 그런 여러 가지 생각 끝에 회화적인 삽화, 삽화적인 회화, 삽화와 회화 그 사이 애매모호한 지점에 있는 이미지를 만들자, 라고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2022년 1월 12일부터 2월 19일까지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두산아트랩 전시 2022» 전경.

2022년 1월 12일부터 2월 19일까지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두산아트랩 전시 2022» 전경.

그런데 2020년 공간형에서 열린 개인전 제목(≪채프먼 씨 내외는 연말 부부동반 모임 참석을 위해 외출하였고 그들의 어린 아들 행크는 부부의 자동차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부엌으로 향했다≫)이나 〈아이 러브 마이 파트 타임 잡〉이라는 작품 제목처럼 영미 문학의 번역 투가 남아 있는 문장의 제목이 삽화적인 특성에 고의로 혼란을 가져다주는 것 같기도 하다.
타이틀이 작품의 실마리이자 동시에 방해물로 작용했으면 했다. 관람객이 제목을 보고 이 작품에 내러티브가 전제되어 있음을 알게 하되 그 이상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코언 형제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고 특히 〈아리조나 유괴 사건〉(1987)을 사랑하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 것처럼 작품을 통해 얼토당토않는 농담을 엄청 공들여서 하고 싶다. 무척이나 이상한 농담을 엄청 빌드업해서 거창하게 그리는 게 좀 어이없는데 나는 그게 참 좋다.(웃음)
지금 언급한, 좋아하고 레퍼런스로 삼는 작품들이 모두 수십 년 전 작품들이다.
90년대에 태어났는데 70년대 록 밴드 영화를 보면서 저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웃음) 가짜 노스탤지어랄까,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장소나 인물 등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그림에서 보였으면 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그리다 보니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인종, 성별도 애매하고, 때론 SF 영화에서처럼 한 사람의 여러 모습 같기도 하다. 한 명은 진짜 사람이고 나머지는 AI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성별과 인종이 파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린다. 내가 그린 인물이 어떤 대상으로 특정돼 대상화되는 게 무섭기도 하고 피하고 싶어서다. 내가 그리는 인물들은 특정 상황에 맞춰서 그때 그때 다른 이름과 역할을 부여받아서 연기하는, 내가 고용한 배우들이다.
지금 나를 둘러싼 그림들이 따로 또 같이 내러티브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은데 정지된 화면이 그런 느낌을 준다는 게 참 신기하다.
다채로운 시간의 결을 느낄 수 있어 회화를 좋아한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작가가 그 앞에 서서 작업한 시간도 연상이 되고 적갈색 말이 다음 순간 달려나간다든지, 또 다른 일이 발생할 것 같다든지 하는 시간성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안동선은 컨트리뷰팅 에디터이다. 작품이 경쟁적으로 소장되고 메가 갤러리가 속속 서울에 지점을 열고 아트 페어가 북적이는 가운데 고요하고 치열한 혁신과 성장이 일어나는 장소를 방문하는 즐거움으로 흠모하는 작가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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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안동선
    사진/ 이재안(인물), 두산갤러리,갤러리 기체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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