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입문자를 위한 베니스 비엔날레 안내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아트 입문자를 위한 베니스 비엔날레 안내서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꿈의 우유>라는 주제로 문을 열었다. 여성주의와 초현실주의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이번 비엔날레는 마녀의 주술로 가득한 환상의 세계이자 낙관론자가 건설한 대안적 우주이다.

BAZAAR BY BAZAAR 2022.06.14
 

감각의 축제

베니스 비엔날레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한 여성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이다. 막스 에른스트의 연인이었으나 뮤즈의 삶에 만족하지 않았던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자신만의 예술혼을 불태웠다. 캐링턴은 1970년대 초 멕시코 여성해방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으며 그가 쓴 기묘한 단편소설들은 안젤라 카터 같은 페미니즘 작가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생전 캐링턴이 남긴 “나는 누군가의 뮤즈가 될 시간이 없어요(I didn’t have time to be anyone’s muse)”라는 말은 그의 예술 인생을 축약한 한마디일 것이다.
3년 만에 열린 59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뉴욕 하이라인 아트 디렉터 겸 수석 큐레이터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가 캐링턴을 끌어온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꿈의 우유(Milk of Dreams〉는 캐링턴이 자신의 두 아들을 위해 썼던 동화책의 제목이다. 이쯤이면 당신도 여성주의와 초현실주의가 이번 비엔날레를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곳은 마녀적인 주술로 가득 찬 환상의 세계이며 낙관론자가 건설한 대안적 우주이다. 이를테면 최근 현대미술의 단골 소재인 기후위기에 관한 메시지가 희미하다. 막판에 합류한 우크라이나 작가 마리아 프리마첸코(Maria Prymachenko)를 제외하면 현실 세계에 대응하는 정치적 함의도 찾아보기 힘들다. 당연하지만 이번 비엔날레의 미덕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닌 미적 풍요로움에 있다. 개념적인 작업보다 감각적인 작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현대미술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입문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번 예술 축제를 향유할 수 있다.
 
Simone Leigh, 〈Brick House〉, 2019, Bronze, 487.7x279.4x279.4cm. Photo by: Roberto Marossi

Simone Leigh, 〈Brick House〉, 2019, Bronze, 487.7x279.4x279.4cm. Photo by: Roberto Marossi

Solange Pessoa, 〈Sonhíferas〉, 2020–2021, Oil on canvas, 14 elements. 158x150x5cm each,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Mendes Wood DM. Photo by: Roberto Marossi

Solange Pessoa, 〈Sonhíferas〉, 2020–2021, Oil on canvas, 14 elements. 158x150x5cm each,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Mendes Wood DM. Photo by: Roberto Marossi

Katharina Fritsch, 〈Elefant / Elephant〉, 1987, Polyester, wood, paint420x160x380cm,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Institut fur Auslandsbeziehungen – ifa. Photo by: Marco Cappelletti

Katharina Fritsch, 〈Elefant / Elephant〉, 1987, Polyester, wood, paint420x160x380cm,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Institut fur Auslandsbeziehungen – ifa. Photo by: Marco Cappelletti

소환된 여성들

본전시에 참가한 58개국 2백13명의 작가 중에 여성이 1백88명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1백27년 역사상 여성 작가가 남성 작가보다 많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서야 말이다. 이 같은 현실에 반응하듯 세실리아 알레마니는 비엔날레 개막에 앞서 “역사의 변두리에 남겨진 여성 예술가 및 운동가를 등장시켜 비판적 반성의 출발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잊혀져간 여성 예술가들을 복원하고 그들의 위대한 유산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이번 비엔날레의 중요한 과업이다. 역대 비엔날레가 대부분 동시대 작가들을 소개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번엔 17세기 곤충 삽화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까지 소환했다. 남편 로베르 들로네와 함께 오르피즘을 주창한 화가이자 의류 디자이너였던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 영화 형식과 무용 형식을 결합한 ‘댄스 필름’의 창시자 마야 데렌(Maya Deren)도 있다. 동시대 여성 예술가들과 그들에게 영향을 준 이전 세대의 여성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 이번 비엔날레가 끝내 좋은 시절을 보지 못하고 눈 감은 여성들을 기리는 제의로 느껴지는 이유다.
 
 Cecilia Vicuña.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Lehmann Maupin. Photo by: Marco Cappelletti

Cecilia Vicuña.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Lehmann Maupin. Photo by: Marco Cappelletti

Belkis Ayón, 〈Resurrección〉, 1998, Collography on paper, 9 sheets, 263 x 212cm.Courtesy Watch Hill Foundation and von Christierson Family Photo by: Roberto Marossi

Belkis Ayón, 〈Resurrección〉, 1998, Collography on paper, 9 sheets, 263 x 212cm.Courtesy Watch Hill Foundation and von Christierson Family Photo by: Roberto Marossi

Barbara Kruger, 〈Untitled (Beginning/Middle/End)〉, 2022, Site-specific installation, print on vinyl Three-channel video installation (on 3 flatscreen monitors), sound Dimensions variable, 5 mins. 35 sec.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Spruth Magers; Maharam Photo by: Roberto Marossi

Barbara Kruger, 〈Untitled (Beginning/Middle/End)〉, 2022, Site-specific installation, print on vinyl Three-channel video installation (on 3 flatscreen monitors), sound Dimensions variable, 5 mins. 35 sec.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Spruth Magers; Maharam Photo by: Roberto Marossi

Emma Talbot,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2021, Acrylic on silk, 310x1400cm.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Max Mara; British Council; the Henry Moore Foundation Photo by: Roberto Marossi

Emma Talbot,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2021, Acrylic on silk, 310x1400cm.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Max Mara; British Council; the Henry Moore Foundation Photo by: Roberto Marossi

일단 베니스 비엔날레의 두 축인 자르디니공원과 국영 조선소와 무기고가 있던 아르세날레에 각각 설치되어 있는 대형 조각부터 짚어보자. 자르디니 전시장 입구에는 카타리나 프리치(Katharina Fritsch)의 〈Elefant〉가 위용을 자랑한다. 프리치의 〈수탉〉 〈쥐 왕〉이 그렇듯 압도적인 크기의 녹색 코끼리 상이다. 참고로 코끼리는 나이가 많은 암컷이 무리를 이끄는 대표적인 모계사회 동물이다. 아르세날레 전시장 초입에는 시몬 리(Simone Leigh)의 〈Brick House〉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흑인 원주민 여성의 반신상인데 두 눈이 지워져 있다. 같은 공간에 놓인 벨키스 아욘(Belkis Ayon)의 〈Resurreccion〉과 비교하면 더 흥미롭다. 아욘의 판화 속 주인공은 아바쿠아 전설 속 유일한 여성인 시칸 공주인데 그녀의 얼굴은 오직 눈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한편 자르디니 본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na)의 〈Leoparda de Ojitos〉에는 눈알 무늬로 뒤덮인 흰색 표범이 등장한다. 분홍색 나무와 푸른색 나무를 양팔에 한 그루씩 끼고 생식기를 드러낸 표범은 토착 원주민 여성들의 현현이자 식민주의와 가부장제 문화에 대한 반기다.
에마 탤벗(Emma Talbot)은 폴 고갱의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에서 제목을 가져와 대형 실크 천에 한 여자의 생애를 작업했다. 마치 만화처럼 텍스트와 이미지로 그려진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대서사가 넌지시 질문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한편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는 정지된 텍스트 이미지와 움직이는 3채널 영상을 혼합한 최신작 〈Untitled (Beginning/Middle/End)〉에서 아예 간청한다. 제발 신경 써달라고(Please Care), 제발 애도해달라고(Please Mourn).
 
Mire Lee, 〈Endless House: Holes and Drips〉, 2022, Multiple ceramic sculptures on a scaffold, lithium carbonate and iron oxide glaze liquid, pump, motor and other mixed media, 1.8x2x4m.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Sundaymorning@ekwc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Tina Kim Gallery; Mondriaan Fund, Korean Arts Management Service (KAMS); Ammodo

Mire Lee, 〈Endless House: Holes and Drips〉, 2022, Multiple ceramic sculptures on a scaffold, lithium carbonate and iron oxide glaze liquid, pump, motor and other mixed media, 1.8x2x4m.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Sundaymorning@ekwc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Tina Kim Gallery; Mondriaan Fund, Korean Arts Management Service (KAMS); Ammodo

Rosemarie Trockel.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Spruth Magers; Institut fur Auslandsbeziehungen – ifa Photo by: Marco Cappelletti

Rosemarie Trockel.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Spruth Magers; Institut fur Auslandsbeziehungen – ifa Photo by: Marco Cappelletti

Hannah Levy, 〈Untitled〉, 2022, Silicone, nickel plated steel, 183x195x320cm.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Casey Kaplan, New York; Mother’s Tankstation Limited, Dublin Photo by: Marco Cappelletti

Hannah Levy, 〈Untitled〉, 2022, Silicone, nickel plated steel, 183x195x320cm. All works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Casey Kaplan, New York; Mother’s Tankstation Limited, Dublin Photo by: Marco Cappelletti

Geumhyung Jeong, 〈Toy Prototype〉, 2021, Sculptures and video installation. Various materials including aluminium profiles, medical simulators, DC motors, Arduino boards, joysticks, Dimensions variable. Commissioned and produced b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Arts Council Korea; Korea Foundation Photo by: Roberto Marossi

Geumhyung Jeong, 〈Toy Prototype〉, 2021, Sculptures and video installation. Various materials including aluminium profiles, medical simulators, DC motors, Arduino boards, joysticks, Dimensions variable. Commissioned and produced b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Arts Council Korea; Korea Foundation Photo by: Roberto Marossi

꿈의 해석

다시 캐링턴의 동화책으로 돌아가보자. 〈꿈의 우유〉에는 날개로 쓸 수 있는 커다란 귀를 가진 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무스타슈가 등장한다. 그곳에선 모든 사람이 변화하고, 변형되며, 원하는 다른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될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신체의 변형, 기술의 관계, 신체와 지구의 연결’이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인류와 미래에 대해 질문한다. 한국 작가 정금형의 〈Toy Prototype〉은 의료용 인체 모형과 로봇을 책상 위에 늘어놓은 설치작업으로 기계와 인간의 불안정한 결합을 보여준다. 또 다른 한국 작가 이미래의 〈Endless House: Holes and Drips〉는 해체된 내장 형태의 세라믹 위로 분홍색 유약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이질적인 생명체다. 이미래는 이 작업을 통해 “세계와 자기 사이에 보호막이 없는, 이런 존재가 정반대로 강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프레셔스 오코요몬(Precious Okoyomon)은 관람객에게 〈세상이 끝나기 전 지구를 바라보는 일(To See the Earth before the End of the World)〉을 제안한다. 오코요몬은 살아 있거나 자라고 있거나 썩어가거나 이미 죽은 재료를 활용해 부스 전체를 작은 실내 정원으로 조성했다. 식민지 노예 무역의 산물인 사탕수수와 칡덩굴, 졸졸 흐르는 개울, 듬성듬성 피어난 야생화 사이를 거닐며 미래의 인구 감소 시대를 상상해보았다.
오코요몬의 작업이 숲속을 거니는 일이라면 알렉산드라 피리치(Alexandra Pirici)의 〈Encyclopedia of Relations〉는 누군가의 꿈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껴안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결합한다. 19세기 초현실주의 예술가 만 레이, 앙드레 브르통, 이브 탕기, 막스 모리스는 종이 한 장을 네 번 접은 뒤 한 명씩 돌아가며 사람 몸의 한 부분을 그리는 실험을 한 적 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우아한 시체〉다. 피리치의 작업은 그 ‘우아한 시체’를 꼭 닮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사건의 조각 모음, 이성의 지배를 벗어난 무의식의 시공간. 거기서 마침내 현실과 환상이 하나로 결합하는 찰나의 순간을 목도하고 새삼 깨닫고야 말았다. 예술은 꿈의 다른 이름이라고. 아니, 어쩌면 꿈보다 더 완전한 세계일 것이다.
 
Andra Ursuţa, 〈Predators ’R Us〉, 2019, Lead crystal, 74x132x69cm. Private Collection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MASSIMODECARLO Photo by: Marco Cappelletti

Andra Ursuţa, 〈Predators ’R Us〉, 2019, Lead crystal, 74x132x69cm. Private Collection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MASSIMODECARLO Photo by: Marco Cappelletti

Alexandra Pirici, 〈Encyclopedia of Relations〉, 2022,Ongoing performative action. Performers: Celine Bellut, Matilda Bjarum, Liliana Ferri, Daouda Keita, Raymond Liew Jin Pin, Melanie Lopez, Jared Marks, Emily Ranford, Valentina Restrepo, Robert Schulz, Jennifer Tchiakpe, Xiao Huang, Patrick Ziza Masks design: Andrei Dinu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Audemars Piguet Contemporary; Ammodo; UniCredit Bank; European ArtEast Foundation; The Administration of the National Cultural Fund, Romania; Romanian Cultural Institute; Staatliche Kunsthalle Baden-Baden Photo by: Ela Bialkowska

Alexandra Pirici, 〈Encyclopedia of Relations〉, 2022,Ongoing performative action. Performers: Celine Bellut, Matilda Bjarum, Liliana Ferri, Daouda Keita, Raymond Liew Jin Pin, Melanie Lopez, Jared Marks, Emily Ranford, Valentina Restrepo, Robert Schulz, Jennifer Tchiakpe, Xiao Huang, Patrick Ziza Masks design: Andrei Dinu With the additional support of Audemars Piguet Contemporary; Ammodo; UniCredit Bank; European ArtEast Foundation; The Administration of the National Cultural Fund, Romania; Romanian Cultural Institute; Staatliche Kunsthalle Baden-Baden Photo by: Ela Bialkowska

Precious Okoyomon, 〈To See The Earth Before the End of the World〉, 2022. Photo by: Roberto Marossi

Precious Okoyomon, 〈To See The Earth Before the End of the World〉, 2022. Photo by: Roberto Marossi

※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꿈의 우유〉는 11월 2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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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Getty Images
    사진/ 59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사진/ The Milk of Dreams 제공
    사진/ Images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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