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김기창 심너울 작가의 미니픽션 '호텔 이야기'

호텔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있다. 호텔에서 쉰다는 것은 그런 틈새를 모호하게 유영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네 명의 소설가가 각자의 뇌리에 깊이 박힌 호텔을 배경으로 낯선 텍스트를 보내왔다. 이 이야기가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태여 구분할 필요는 없으리라. 호텔이란 공간이 애초에 그런 것처럼.

BYBAZAAR2021.08.09

AT

THE 

HOTEL 

 
자본주의의 성역에서
 
3개월 전, 2024년 11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일 년 가까이 진행된 외주 하나를 끝마쳤습니다. 매일매일 집에서 일했으니 호캉스나 떠날까 했죠. 호텔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4인이 묵을 수 있는 커다란 방 가격이 2인실 수준인 겁니다. 전산 오류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 가격이었습니다.
 
몇 년 만에 호텔로 가니까 좋더군요. 실로 자본주의의 성역에 도달한 느낌이었습니다. 하긴 자본주의의 신전이 맞지요.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공간. 내가 어지럽힌 다음에도 뒷정리 없이 훌쩍 떠나도 되는 공간. 프런트의 직원이 제 호실을 듣더니 대단히 미심쩍은 미소를 짓더군요. 저는 제 호실로 들어가 방문을 열었어요. 저는 퀸 사이즈 베드에 가로로 드러누워 잠들었습니다.
 
새벽녘, 전 한기를 느끼고 깼습니다. 싸구려 공포영화 클리셰 같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방 중앙에서 푸른빛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연기는 스멀스멀 뭉쳐서 한 사람이 되더군요. 저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여긴 자본주의의 성역이야! 이곳에선 돈만 지불하면 모든 책임에서 면역이야.”
그러자 유령이 말했습니다.
“너도 프리랜서지?”
그제야 유령을 알아보았습니다. 2022년에 트위터에서 종적을 감춘 심너울이라는 작가였습니다. 퇴물이 되어 사라졌나 했더니, 호텔에서 유령 노릇을 하고 있더군요. 심너울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노트북 하나만 갖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망칠 수 없어. 나도 마감을 끝내고 호텔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호텔에서 통조림처럼 일해야 했지. 조식 뷔페도 못 먹은 원한이 나를 유령으로 만들었다고.”
베개맡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울렸습니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습니다.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새벽 두시 사십분인데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더군요. 끝마쳤다고 생각했던 외주의 클라이언트였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집어던지고 부랴부랴 방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심너울의 불쾌한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호텔을 뛰쳐나온 저는 숨을 몰아쉬면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성역에는 귀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심지어 호텔에서조차 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글/ 심너울(정통 SF와 블랙 코미디를 넘나드는 소설을 쓴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로 주목받았으며 지난 해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를 출간했다.) 




사보이호텔 야외주차장에서는
 
과거에는 롯데 자이언츠, 현재는 NC 다이노스의 홈그라운드인 마산에서 지난 20년간 KIA 타이거즈 팬으로 살아온 상구 씨는, KIA 타이거즈가 6-1로 앞서가다 9회 말에만 6점을 내주며 역전패를 당한(9회 말에 가장 큰 점수 차를 뒤집은 역대 KBO 리그 공동 2위의 기록이다) 2020년 7월 5일 밤 9시 무렵, KIA 타이거즈 선수들이 묵고 있는 사보이호텔을 찾아갔다. 선수들이 호텔 내 사우나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보이호텔은 야구장에서 지척이었고, 상구 씨 집에서도 2분 거리였다.
 
상구 씨는 끈적한 여름 바람 같은 표정을 지으며 호텔 사우나로 들어섰다. 선수들 서너 명이 온탕에서 피로를 녹이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기 안타를 맞은 마무리 투수는 보이지 않았다. 상구 씨는 냉탕으로 들어가 눈과 코만 물 밖으로 내놓은 채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상구 씨 집 옥상에 서면 사보이호텔 뒤편 야외주차장이 내려다보였다. 오래전 늦은 밤, 호텔 야외주차장에서는 한국 대표 마무리 투수들이 다음 날 등판을 대비해 캐치볼을 하곤 했다. 구대성, 진필중, 정대현, 그리고 임창용과 윤석민. 가슴 벅찬 풍경이었다.
 
상구 씨에게 사보이호텔은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었고, 자신이 기억하는 마무리 투수들은 저런 열정과 긴박한 상황에서도 ‘몸쪽 승부’를 하는 배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깥쪽 변화구’에 집착했다. 어젯밤 호텔 야외주차장에서 캐치볼도 하지 않았고!
 
그때, 냉탕 뒤편에서 누군가 물에 몸 담그는 소리가 들렸다. 한증막에서 막 나온 참인 듯했다. 상구 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몸을 반쯤 물에 담그고, 끔찍한 순간이 떠오른 듯 눈을 질끈 감은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가 상구 씨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구 씨는 그의 오른쪽 어깨에 먹구름처럼 짙게 깔린 멍 자국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상구 씨는 손사래 쳤다. “아니에요!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탕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땀을 씻었어야 했는데….” 그는 냉탕 밖으로 나갔고, 상구 씨는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다가 이내 호텔을 빠져나왔다. 호텔 야외주차장 위로 전설처럼 아련한 바람이 불어왔다.
글/ 김기창(실존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입체적인 캐릭터와 특유의 문체로 표현한다. 대표작으로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과 공간 시리즈 〈모나코〉 〈방콕〉이 있다.)


※호텔 사보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 악화로 객실 영업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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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손안나
  • 일러스트/ 손은경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