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잔디밭에서 진행된 류호정의 타투 퍼포먼스
아이디어는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나왔다. 법안을 성안한 뒤 이어진 여러 차례의 의원실 전체회의에서 ‘타투 문양을 한 국회의원이 타투업법을 제정할 권한이 있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입법의 필요성을 알린다’는 기획이 완성된 것이다. 퍼포먼스를 본 많은 사람들이 ‘파격’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낯섦’이라 표현하고 싶다. 소위 ‘격에 맞는 방식'을 격식이라 하고, 파격은 그것을 깨뜨린다는 의미잖나. 국회는 다양한 시민을 대변하는 곳이며, 나는 그날 등에 멋진 타투를 한 평범한 시민의 모습을 연출했을 뿐이다.

‘타투업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드레스와 타투스티커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마련했나?
현직 국회의원이고 헌법기관으로서 아직 불법인 타투 시술을 받는 것은 부담이었다. 그래서 헤나를 염두했었다. 한데 ‘도이’(타투이스트 김도윤, 타투이스트노동조합 ‘타투유니온’ 지회장)가 타투스티커를 제안하더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되어 이를 받아들였다. 타투와 의상 컨셉은 디자이너 출신인 이지은 비서와 ‘언더’ 문화에 대한 식견이 높은 손예지 비서가 맡았다. 논의 끝에 신체부위 중 가장 넓은 등을 노출할 것과 타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백리스 드레스를 입는 것으로 결정됐다. 참고로 드레스는 ‘ZARA’(자라)에서 구매한 두 벌을 직접 입어본 다음 최종의 한 벌이 낙점됐다. 스티커는 타투유니온에서 전달한 것으로, 타투이스트 ‘Baam’의 작품이다.

퍼포먼스 전날 미리 류호정의 등에 붙였던 타투스티커
퍼포먼스를 앞두고 조력자 역할을 해준 이는 누구였나?
도이와 타투유니온. 그분들은 내게 응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나 역시 그들의 도움을 배경삼아 용기를 얻었다. 그런가하면 의원실과 당 안팎에서는 우려와 걱정이 있었다. 한데 법 제정의 필요성이 크고 현안 해결이 긴급하기 때문에, 또 다소 부끄러운 얘기지만 의원실에서 만든 법안과 메시지가 명확했기 때문에 실행을 주저하지 않았다.
퍼포먼스 기획은 물론 법안을 만들면서 타투유니온과 길고 긴밀한 소통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합과의 교류는 언제 시작됐나?
나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의 선전홍보부장이었다. 그래서 타투유니온 설립 때부터 그들의 절실함을 잘 알았다.
타투업법 발의는 언제부터 생각했나?
법안 발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작년 5월 말 임기를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 타투가 불법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타투이스트들은 늘 신고의 위험 안에서 살거든. 그것을 빌미로 협박을 받거나 금전 갈취, 성폭행 등의 범죄 피해를 입어도, 그들은 수사기관을 찾지 못한다. 나와 정의당의 ‘제1’ 책무는 노동자의 안전과 노동권이므로, 법안 발의를 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의 서명 참여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홍준표 의원 등 눈썹 문신을 한 국회의원들이 많다. 괜스레 나 때문에 눈썹 문신을 한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져서 곤란해진 건 아닌지 송구하다. 다만 그분들이 법안 제정에 힘이 되어주실 거라 믿겠다. 지난 주 ‘대한문신사중앙회’와 ‘반영구화장문신사중앙회’의 지지 의사도 확인했다. 앞으로 더 많은 업계 관계자를 만날 예정이다. 패션타투 뿐만 아니라, 반영구 화장과 정통 문신, 커버업 타투, 메디컬 타투 등 업계인들과 1천만 타투인들의 힘을 모으고 싶다.
타투업법이 제정된다면 타투이스트들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먼저, ‘타투업’ 그 자체를 봐야 한다. ‘한국타투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타투 시장 규모는 약 1조 2천억원(반영구 화장 약 1조 원, 타투 약 2천억 원)이다. ‘K-타투’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며, 국내 아티스트들은 세계 대회를 석권하고 있고.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은 국가적 차원의 보호와 육성을 통해 유의미한 세원이 될 것이며,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도 있다. 타투하는 시민의 ‘노동권’도 확보된다. 이들이 각종 범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그들이 세금도 내고, 금융기관의 대출도 받고, 국가의 복지혜택도 받게 된다.
타투 시술자와 타투업법을 반대하는 의료인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국민건강’을 바라보아야 한다. 인체에 바늘을 삽입해 시술하는 타투 행위가 정부나 지자체의 관리를 받게 되면 국민이 더 안전하게 타투 시술을 받을 수 있다. 의료인들의 ‘자부심’에 대해서도 말해보자. 의료인들은 여전히 타투 행위를 의료 행위로 분류하면서 타투 합법화를 반대하는데, 나는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다. 기자회견에 동참했던 한 타투이스트는 이렇게 말하더라. “의술과 인술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이국종 교수님(아주대학교병원 소속)를 보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타투행위는 그 어떠한 것을 더해도 감히 의술이 될 수 없습니다. 의료인 여러분이 스스로 하는 의료행위를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대 변화에 맞춘 ‘상식의 회복’도 기대한다. 30년 전 타투를 의료 행위로 해석한 대법원의 판결은 너무 낡지 않았나. 세계 유일의 타투 불법 국가인 대한민국의 거리 어느 곳에서든 아름다운 그림과 멋진 글귀를 쉽게 볼 수 있음에도 말이다.
회견을 일주일가량 앞둔 6월 8일, 페이스북 계정에 “BTS의 몸에서 반창고를 떼라!”라는 슬로건과 함께 그룹의 멤버인 ‘정국’의 타투 사진을 업로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화제성을 기대하며 특정 연예인을 지목한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
BTS의 팬 입장에서 아티스트 정국의 멋진 타투가 반창고에 가려지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방송사에 그 이유를 묻자, ‘타투가 불법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항의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그 부당함을 메시지에 담았고, 결론적으로 항의와 응원을 동시에 받았다. “BTS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라는 비판은 이해가 됐으므로 다음 날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과했다. 다만 그 비판이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한 타투마저 불편하기 때문’이라면, 생각을 고쳐보길 바란다. 나는 방송국이 아티스트의 예술적 표현의 욕구가 고스란히 담긴 타투를 제재할 어떠한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므로. 이는 페이스북에서 사진을 삭제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타투업법 관련 행보로 인해 류호정 의원에게 따라 붙는 ‘돌직구, 솔직, 돌발행동’ 등의 키워드가 이전보다 더 가시화됐다. 이로 인한 당과 개인의 득과 실은 무엇일까?
법안을 알리는 과정에서 내놓은 메시지와 퍼포먼스에 대한 평가는 ‘시민을 설득할 수 있느냐’, ‘실제 입법의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성과를 내면 어려운 의제를 기꺼이 다뤄 사회의 변화를 이뤄내는 유능한 당과 의원으로 평가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시끄러운 소란에만 능한 당과 의원으로 평가될 것이다. 다만 어려운 길이라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문화적 편견에 억눌린 시민을 위해서라면 끝내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정의당과 나의 숙명이다.
그 외 기억에 남는 키워드나 별명을 더 꼽을 수 있나?
‘원피스’와 ‘국감스타’다. 이는 국회 본회의장에 도트 무늬의 평범한 원피스를 입고 출석한 일로 여론의 집중을 받았을 때,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국회의 무단 출입을 지적하며 감동 없이 끝날 뻔했던 2020년 국정감사 시즌 때 차례로 얻은 키워드와 별병이다. 국회에서 20대 여성이라는 낯선 존재가 받는 차별적 시선과 그 시선을 뛰어넘어 국민의 대표로서 제대로 일했을 때의 정당한 평가가 뒤엉켜 ‘정치인 류호정’을 설명한다.
관심을 호소하고 싶은 사안을 하나 더 꼽자면?
‘손실보상법’ 통과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영업제한 조치는 방역 성공의 일등공신이다. 그 뒤에는 정부 지침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손실이 있다. 연초부터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입법을 약속했고, 보궐선거 때 집권당과 제1야당은 한 목소리로 빠른 통과를 자신했다. 그럼에도 손실보상법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나는 통과를 촉구하며 50여일째 농성 중이며, 국회 본청 계단 아래에서 일하고 잠을 잔다. 손실보상법을 반드시 통과시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살려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