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 사진가, 영화 기자가 모여 북클럽을 연다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영화 감독, 사진가, 영화 기자가 모여 북클럽을 연다면?

당신의 하루는 어떠한가? 아마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바자>는 일선에서 분투하는 이들을 응원하며 늘어난 시간을 차분히 보내는 방법의 하나로 북클럽을 열었다.

BAZAAR BY BAZAAR 2020.04.29

BOOKCLUB

김보라

영화 〈벌새〉 감독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 세 명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수전 팔루디, 김초엽.
최근 읽은 가장 흥미로운 책과 구절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그렇게나 자주 그랬던 것처럼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대교도인가 기독교도인가? 헝가리인인가 미국인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너무 많은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누워 있는 몸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이 있구나. 삶과 죽음.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수전 팔루디 〈다크룸〉 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개인 시간이 늘어난 시기에 다시금 읽을 만한 대작 강경옥의 〈별빛 속에〉를 다시 읽고 싶다. 다시 읽어도 예전의 그 요동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린 시절에 너무 소름 끼치게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읽는 것이 오히려 망설여지는 만화다. 그리고 박경리의 〈토지〉를 한 번도 안 읽어봤는데, 언젠가 꼭 읽고 싶다.
북클럽을 연다면 선정할 책 브레네 브라운 〈수치심 권하는 사회〉, 존 브래드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M. 스캇 펙의  〈마음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 책 모임을 했을 때 가장 좋았던 순간은 책을 통해 모임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만날 때였다. 이 책들은 모두 자신, 그리고 공동체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책들이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기다리듯 신작이 나올 때마다 챙겨 보는 작가 출판사 판미동에서 나오는 명상 책들을 좋아한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 기억이 잘 안 난다. 끝까지 못 읽어서 기억에도 안 남는 것 같다! 불쌍한 책….
취향을 과시하는 이른바 ‘커피 테이블 북’ 카를 구스타프 융의 〈레드북〉. 엄청 거대한 책인데, 책 안의 삽화만 봤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숨겨둔 책 숨겨둔 건 아니지만 오쇼 라즈니쉬의 책들이 굉장히 많다. 오쇼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시점으로 만들어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인해 오해도 받지만 다채로운 면을 가진 명상가라 생각한다. 그는 경계를 넘는 명상가였고 자유롭고 풍자적인 행동들로 인해 오해를 많이 받았다. 오쇼 생전의 제자였던 분들로부터 오리건 공동체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는데, 다큐멘터리에서 궁지에 몰린 운영진 몇몇의 기행을 커뮤니티 전체로 몰아간 것이 아쉽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며 무엇이 ‘컬트’로 규정되고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가 ‘컬트’로 몰리는지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기획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척했던 오리건의 마을 노인들과 오쇼를 사랑했던 제자들의 현재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후자의 노인들의 얼굴에서는 빛과 환희, 그리고 표정의 자연스러움이 느껴졌기에. 아무튼 거의 책장 한 칸이 오쇼 책들인데 왠지 이런 긴 해명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꽂아두기가 애매해졌다.
앞뒤 보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책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오르한 파묵  〈이스탄불〉, 스시마 유코 〈나〉, 오정희 〈새〉, 카를 구스타프 융 〈기억, 꿈, 사상〉,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무엇이든 가능하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한다솜

사진가, ‘다다이즘 클럽’ 멤버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 세 명 김화영, 정혜윤, 아니 에르노.
최근 읽은 가장 흥미로운 책과 구절 정혜윤 〈아무튼, 메모〉. “사실, 나는 자주 과대평가되었다. 실제의 나보다 더 잘나 보이고 장차 더 잘해낼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아무튼, 기대주’였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은 빈 깡통이고 말은 앵무새처럼 남의 말이나 따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나도 그런 시선을 우월감 속에 은근히 즐겼다. 그런 태도를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 허영심이다.(그렇지만 언젠가 들통이 나서 망신당하지 않을까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상처는 상투적인 것에서 온다고 했던가. 그 말은 나에게 적용시키면 맞다. ‘부끄럽다면 최대한 빨리 그만두는 것이 좋다’지만 이 간단한 문장 하나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못하겠어요! 난 그런 사람 아니에요.’ 솔직하게 인정하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기대받는 것만큼 ‘진짜로’ 잘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또한 내게는 있었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잘하고 싶었다. 어느 날 정말로 ‘갑자기’ 결심했다. 달라지기로. 뭔가를 하기로. 그만 초라하게 살기로. 제일 먼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는 일을 그만뒀다. 누가 나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 관찰하는 일도 그만뒀다. 남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도 그만뒀다. 삶이 간결해서 좋았다. 그 대신 앞으론 뭘 할까만 생각했다. 세상 어디선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거기 가서 그 일을 잘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세상이 필요한데 세상이 과연 나를 필요로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세상에 관심을 가질 마음이 있는데 세상도 나에게 관심을 가질 마음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메모에 관한 책이지만 메모에만 관한 책은 결코 아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뼈가 저린 듯한 공감을 했다. 나 역시 과대평가되었다고 늘 생각해오던 사람이니까. ‘젊은 크리에이터’ 혹은 ‘유명인의 친구’ ‘인플루언서’ ‘힙스터’ 등의 단어로 통하기도 하는 보통의 인간이 느끼는 이 알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완벽하리만큼 잘 늘어놓은 구절을 아주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가면서 맨 끝에는 나에게 ‘허영심’이라는 세 자만이 남았고, 나는 그 세 자 아래 10년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듯한 가벼운 기분을 느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개인 시간이 늘어난 시기에 다시금 읽을 만한 대작 동시대의 대작이라 부를 수 있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The Vegetarian〉. 영어라 읽기 어렵고 귀찮으니 이런 시기에 읽을 만한 대작이 아닐까? 여유가 생길 때면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의 대작 대신, 외국인이 번역한 한국 문학을 찾아 읽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내가 좋은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원서를 바로 읽는 것은 아직 어렵고, 읽어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한국 문학에 한해서 비교하며 읽어보기를 좋아한다.(아니, 아주 정말 가끔 시도한다.) 〈채식주의자〉와 〈The Vegetarian〉을 비교하며 읽어보았는데 꽤나 재미있었다. 맨부커 상의 영예를 안은 이 책의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의 한국 문학과 정서에 대한 뛰어난 이해와 대단한 번역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 있다면 그냥 지나치긴 아쉬울 것 같다. 적어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이미 읽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좋겠다.
북클럽을 연다면 선정할 책 데버라 리비의 〈알고 싶지 않은 것들(Things I Don’t Want to Know)〉을 선정하고 싶다. 나 역시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다. 지금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노트북에 앉기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 책이다. 서점에서 이 책이 내 눈길을 끈 이유는 단지 ‘어떤 누구의 책장에 꽂혀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딱 적당히 예쁜 외모를 하고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파란색의 커버와 파란 글씨로 쓰인 책. 그런데 그 예쁜 책의 뒤 커버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여성으로 태어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운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데버라 리비의 생활 자서전 3부작 중 첫 권”, “여성 작가는 자기 인생을 지나치게 또렷이 느낄 형편이 못 된다. 그리할 경우 그는 차분히 글을 써야 할 때 분노에 차 글을 쓰게 된다. 작가가 되고자 나는 끼어들고, 소리 내어 말하고, 목청을 키워 말하고,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고, 그러다가 종국에는 실은 전혀 크지 않은 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2020년 내 눈앞의 세상에 놓인 나 자신이 그러하다. 뉴스,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다양한 온라인 채널에서 보고 듣고 싶지 않은 것들만을 보고 들어야만 하는 요즘. 그러니까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되는 요즘, 나와 내 주변의 친구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표지에 쓰인 몇 문장의 글만 보고도 이 책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차분히 글을 써야할 때 분노에 차 글을 쓰게 되는 나를, 실은 전혀 크지 않은 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요즘에 말이다.
책장에 꽂힌 전집 부끄러운 답변이 될 수도 있겠으나, 대원출판사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만화책만이 내 책장에 놓인 유일한 시리즈라고 볼 수 있다.
취향을 과시하는 이른바 ‘커피 테이블 북’ 미술가 김환기의 도록, 김환기에 관련된 모든 책들, 환기미술관에서 구입한 모든 책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숨겨둔 책 전 질문에 이어서 이런 대답을 하는 게 참 아이러니일 수 있지만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의 에세이 책 〈월하의 마음〉이다. 지난 일 년을 매일같이 그 책과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나 하루를 맞았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 챙겨 다녔다. 이제는 닳을 만큼 닳았고, 하물며 내가 적어둔 메모들까지 매일 반복해서 읽었다. 마치 내가 쓴 일기장이라도 되는 듯해 집에 놀러 오는 손님들 눈에도 띄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책.
앞뒤 보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책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C. V. 게오르규 〈25시〉, 김규항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김화영 〈행복의 충격〉,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세이쇼나곤 〈마쿠라노소시〉,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장강명 〈표백〉 〈한국이 싫어서〉, 전경린 〈바닷가 마지막 집〉 등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이다혜 

영화 기자, 작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 세 명 노라 에프론, 메리 셸리, 앤절라 카터.
최근 읽은 가장 흥미로운 책과 구절 문목하의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페이지를 포함한 마무리 대목 전체를 좋아하지만, 윤서리라는 캐릭터가 주는 신뢰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책 속에 등장하는 대화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것. “난 네 옆에 있어도 괜찮아. 너 같은 사람이 돼도 괜찮아.” “애써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 거짓말이야. 앞으로도 계속 거짓말하면서 여기 있을게.” 흔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해석해버리는 희망과 신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개인 시간이 늘어난 시기에 다시금 읽을 만한 대작 나만 해도 그냥 신작들을 읽고 있다. 시간이 많다고 대작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싶고, 시간이 난다면 다시 읽어보고 싶은 대작으로는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20권)과 강경옥의 〈노말 시티〉(10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언제나 좋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북클럽을 연다면 선정할 책 셜록 홈스 시리즈 전권 함께 읽기를 한 뒤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 전권 함께 읽기를 하고 싶다. 처음에는 진지하다가 뒤로 갈수록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다가 또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고 그러면 또 열광하다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는 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전 미스터리의 (적당히 적은) 분량과 마무리도 좋고.
끝까지 읽지 못한 책 〈안나 카레니나〉는 왜인지 잘 읽지 못하는 편. 생각해보니 도스토옙스키는 꽤 읽었는데 톨스토이는 읽지 않은 작품들이 있다.
책장에 꽂힌 전집 전집은 종이책으로도 읽지만 가능하면 종이책은 처분하고 전자책을 다시 구입하는 쪽으로 하고 있다. 셜록 홈스 시리즈,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 매그레 경감 시리즈를 비롯해 펭귄클래식, 열린책들, 을유문화사, 문학동네 등의 세계문학전집과 현대문학의 세계문학단편선 시리즈 중 전자책으로 구입 가능한 것을 구입했다.
취향을 과시하는 이른바 ‘커피 테이블 북’ 집에 외부인을 일절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숨겨둔 책 숨겨둔 책을 여기에 적으면 숨겨둔 책이 아니게 된다는 결정적인 문제를 떠올리며 몇 권만 이야기하면, 레베카 웨스트의 〈Black Lamb and Grey Falcon〉, 한국 로맨스 소설인 조강은의  〈서머〉, 행복한 책읽기 SF총서 중 귀족 탐정 다아시 경 시리즈 〈마술사가 너무 많다〉 〈셰르부르의 저주〉 〈나폴리 특급 살인〉.
앞뒤 보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책 내가 쓴 모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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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박의령
    사진/ 이현석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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