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URNITURE

가구 디자이너 김비는 흔히 말하는 ‘클라이언트 일’을 몸서리치게 싫어하지 않는다. “전 좋아해요. 저 혼자 작업실에 있다 보면 제 자신에게 취할 수 있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잖아요. 제가 가구 디자이너가 된 것도, 똑같은 건 안 만드는 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가 클라이언트 일을 싫어하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올드페리 도넛, 오리앙테, 포제, 슬록, 바우리, 수르기 등 요즘 힙한 공간의 재밌는 가구를 눈여겨볼 수 있게 됐다. 클라이언트들이 들으면 실망하겠지만, 그가 가장 힘들었던 일은 자신을 위한 가구 만들기였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 “정말 어렵더라고요. 저의 집만 해도 이케아 가구랑 전 주인이 버리고 간 테이블밖에 없거든요.” 별도의 이름도 없이 ‘스피커장’으로 부르는 이 가구는, 그가 마포구 중동에 차린 카페 ‘카펜터스 커피’를 위해 만든 거다. 일단 재즈를 틀고 싶어서 가장 어울리는 스피커 AR를 샀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긴 이야기를 축약하자면, 소리의 확장, 턴테이블의 편리한 교체, 바이닐 수납 등등을 고려해 안정감 있는 사이즈와 비율을 결정하고, 흔한 참나무에 묵직한 호두나무를 섞어 자연스러운 멋을 냈다. “그래도 사람들이 저 스피커장 사진을 많이 찍더라고요. 그래서 좋아요.” 그는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 디깅 공부, 무작정 경험을 통해 어떤 스타일의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될지 오랫동안 생각을 다듬어왔다. “처음엔 남들처럼 바우하우스 가구를 좋아했는데 저랑 좀 안 맞더라고요. 한때 포스트 모더니즘에도 빠졌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저랑 안 맞더라고요. 트럭 퍼니처도 좋아했고 일본 가구 디자이너 가타이 이쇼도 좋아해서 교토에 무작정 찾아가서 만나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카를로 부가티 같은 장식적인 스타일이 좋아요.” 그는 이제 자신 안의 ‘관종’ 욕구를 인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