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ST
IS THE BEST

베스트, 쉽게 말하면 조끼. 사전에 따르면 이 제품은 소매가 없고, 앞쪽에 단추가 달려 있으며, 깊은 V넥을 갖춘 짧은 의복을 일컫는다. 시작은 17세기 말 바로크시대로, 남성의 드레스 코트 즉 연미복을 허리 높이에서 커팅해 완성한 것을 일러 웨이스트코트(waistcoat)라 불렀다. 20세기 초부터 여성복에도 다양한 디자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현재에는 소매가 없고 V넥이 특징인 모든 옷에 통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때문에 우린 매 시즌 어렵지 않게 다채로운 베스트 아이템을 접할 수 있다.(3월 둘째 주 기준, 네타포르테에서 쇼핑할 수 있는 베스트 제품이 무려 1백 피스나 된다.) 그러나 올 시즌 과거로의 회귀를 꿈꾼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손에서 탄생한 2020년의 베스트는 기본을 갖추되, 보다 견고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거듭났다. 어쩌면 베스트라는 명칭보다 과거의 웨이스트코트라는 이름이 더 걸맞을지도 모르겠다.

웨이스트코트에 스카프, 뱅글, 장갑 등으로 세련된 스타일링을 완성한 1950년대 여인.
그렇다면 완벽한 베스트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내가 베스트에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1960년대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을 접하고 난 뒤였다. “남성들이 훨씬 더 옷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들의 아이템을 통해 여성들에게도 같은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무슈 생 로랑의 바람대로, 남성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웨이스트코트의 변신은 여성의 옷장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의 빈틈없는 테일러링이 매니시한 스리피스 수트 룩에 우아함, 더 나아가 섹시함을 깃들게 했으니 말이다. 2020년 S/S 시즌의 베스트들은 자유로움을 갈망하되 소재부터 안감, 포켓에 이르기까지 군더더기 없는 섬세한 디테일이 특징. 잘 만든 베스트를 찬찬히 살펴보면 네크라인의 실루엣마저 우아하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주얼리의 매치. 이는 목걸이와 브로치만 잘 활용해도 스타일링 지수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셀린과 생 로랑에 등장한 목걸이 레이어드는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칼라가 없는 이너웨어 혹은 이너웨어를 생략했을 때 주효하다. 반면 베스트 위에 재킷 혹은 코트를 더했다면 루이 비통 쇼에서처럼 브로치를 활용해 생동감을 더해볼 것. 키 액세서리로 떠오른 플라워 모티프의 코르사주나 빈티지한 디자인의 브로치를 추천한다. 결국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되 현실 감각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시즌만큼은 할머니 옷장에서 꺼낸 듯 편안한 베스트가 아닌, 견고하고 완벽한 웨이스트코트가 정답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