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열린 메종 마르지엘라 쇼에 관객의 시선을 강탈한 신 스틸러가 등장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터프하게 걸어 나온 피날레 모델 레온 데임이 그 주인공. 괴상한 아름다움, 그 미친 존재감으로 쇼 직후 인스타그램을 도배했다.(표정 없기로 유명한 안나 위투어마저도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의 워킹 뒤에는 FKA 트위그스, 틸다 스윈턴과 작업하며, 2020 S/S 토모 코이즈미의 쇼 퍼포먼스를 담당한 무브먼트 디렉터 팻 보구슬로스키가 있었다. “‘젊음의 자유를 표현하라. 사람들에게 최고의 에너지를 전하면, 네가 되고 싶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고 말했죠.” 그 강렬한 워킹은 블록버스터라 비견되던 젊은 시절 존 갈리아노의 디올 쇼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전 컬렉션마다 모델의 배역을 정합니다. 그것은 창조의 일부죠.” 갈리아노의 말처럼 1990년대에는 퍼포먼스를 내세운 센세이션널한 쇼가 많았다. 거대한 로봇과 함께 팬터마임을 선보인 알렉산더 맥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쇼다운 쇼는 사람들을 열광케 했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슈퍼모델들이 장악했던 90년대의 런웨이는 그야말로 ‘캐릭터 탐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에 반해 밀레니얼 모델들의 워킹은 단조롭죠.” 팻의 말대로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워킹이 대세다. 팔과 골반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톱 모델 최소라의 워킹을 보라.
이번 시즌 리아나의 세비지×펜티 컬렉션은 연극 같던 티에리 뮈글러의 쇼를 연상케 했다. 런웨이와 춤, 공연 그리고 조각품 같은 포즈가 어우러진 연출은 안무가 패리스 고블의 작품. 이는 빅토리아 시크릿과 정반대되는 예술적 매력을 자아냈고, 그래서인지 그녀의 란제리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편 ‘파워 포징’이 다시금 주목받는다는 사실은 1980년대 성 소수자의 드라마틱한 삶을 기록한 TV 시리즈 〈포즈〉와 최고의 드래그 퀸을 뽑는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의 인기도 입증한다. 드래그 퀸들의 다소 과장된 움직임에서 영감받은 듯 손인사를 하거나 맨발로 상상 속 하이힐을 신고 워킹을 하던 마크 제이콥스의 모델들. 또 괴상한 퍼포먼스로 일곱 벌의 거대한 오간자 옷을 입었다 벗었다 반복했던 트랜스젠더 모델 아리엘 니콜슨을 내세운 토모 코이즈미 쇼에서도 파워 포징이 핵심이었다. 패션이 시대를 반영하는 것처럼 패션의 무대인 런웨이 역시 트렌드가 존재한다. 확실한 건 디지털에 둘러싸인 요즘, 패션과 퍼포먼스의 조합은 ‘쇼 타임’을 위해 창의성을 발휘해줄 신선한 방식이다. 토모 코이즈미의 역시 지난 〈바자〉 인터뷰를 통해 “아리엘 니콜슨의 퍼포먼스는 창작에 몰두하는 아트 DNA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법 중 하나”라 언급했다. 런웨이 위 패션 판타지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팻 보구슬로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런웨이는 더욱 파워풀해질 거예요. 1980~90년대에 기반을 둔 형태로 말이죠. 사람들은 판타지를 원하고, 퍼포먼스는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