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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 교수 이수정이 하고 싶은 말

금요일 저녁, 하루를 삼등분으로 나눠 꽉 채운 일주일을 보낸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가 <바자>와의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두통약과 커피를 부탁하고 지체 없이 카메라 앞에 선 그녀를 보고 사진가는 잘 나와야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는 유일한 촬영 대상이라고 했다. 파운드 케이크 한 조각으로 신속하게 저녁을 대신한 이수정 교수는 말했다. “인터뷰 시작하시지요.”

BYBAZAAR2019.12.06
 
영국 국영방송 BBC가 선정하고 발표한 2019년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되셨습니다. 그에 관해 팟캐스트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프로파일>에서 증서 한 장 받은 일 없고 업무만 마비되었다며 농담 섞인 소감을 전하셨는데요.(웃음)
‘100인의 여성’에 선정된 것이 저에게는 지난 20년 동안 해온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준 일이긴 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10년도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살라는 시사점을 던져주었지요. 두 가지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여성이 피해자인 살인사건 중 30%가 스토킹을 당하다 살해되기 때문에 ‘스토킹 방지법’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동 유인 방지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여성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온상이 된 ‘랜덤채팅 앱’을 손보지 않으면 아동 및 청소년 성폭력에서 안전한 나라가 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심각한가요? 
랜덤채팅 앱에선 성기를 찍어 보내주면 커피 전문점 쿠폰을 쏘겠다, 집으로 오면 얼마를 주겠다 하는 남자들이 대낮부터 진을 치고 있는데 이렇게 아이들을 유인하는 과정이 범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이미지들을 모아서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접속할 수 있는 웹으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접속자나 서버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사이버상에서 범죄에 활용된다)으로 회원들한테 돈 받고 팔아 금전적 이익을 본 자가 천안에 사는 23세의 청년이고, 첨단 IT 인공지능 사업을 한다던 사람이 알고 보니 불법 촬영물을 유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은 양진호 회장입니다. ‘아동 음란물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사실의 배후에는 이러한 사태를 방관하고 과도한 규제가 산업의 축소를 가져온다고 우려하기 바쁜 IT 첨단 기업들과 정보통신부가 있습니다. 때문에 제가 아동 유인 방지법을 만들겠다는 데에는 의제강간 연령을 높이고(OECD 국가 중 의제강간 최저 연령 기준이 만 13세인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며 다수 국가가 만 16세), 온라인 함정수사를 허용하게 하는 일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목표만 달성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가치롭겠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부터 방송이나 언론 매체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앞서 말씀하신 스토킹 방지법 등에 대해서 목소리를 드높이고 계신데요, 개인적으로는 업무가 더해지고 일상생활에서의 불편을 초래하기도 할 듯합니다.(이수정 교수에게 사인을 받으러 온 스튜디오의 다른 촬영 팀 스태프에게 그는 담담하게 ‘건승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수업, 방송, 교무 회의, 포럼 등 해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이렇게 논현동까지 찾아오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피해를 당하기 전에, 목숨을 잃기 전에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입법이 되려면 국민의 관심과 공감대, 언론의 분석적인 보도가 있어야 해요. ‘조두순 사건’을 떠올려보세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수년 전부터 아동 성폭력 범죄가 심각하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잠깐 이슈가 되고는 금세 잠잠해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에서 생존한 피해자가 전해주는 생생한 고통의 경험이 온 국민을 일깨워줬습니다. 친고죄부터 폐지되었죠. 그 전에도 수많은 여성 단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왔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는데 말이죠.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사회 분위기를 숙성시키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언론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국가 차원에서 어떤 관리가 필요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전문가로서 지적하고 고발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요. 그래야 선출직 정치가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캐치하고 입법을 위해 민감하게 움직일 테니까요.
2020년 조두순이 만기 출소한 뒤 6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하게 됩니다. 2008년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되는 데 있어 교수님께서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권침해 논란도 겪었지만 제도가 시행된 뒤 성범죄 재범률이 크게 줄었고요. 앞서 말한 스토킹 방지법, 함정수사 허용 등도 인권과 관련해 충돌이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 
한국은 매우 빠르게 변화했고 지금도 그 변화가 진행 중인 사회이기 때문에 가치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인권 침해가 심각했고 이후 인권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다 보니 모든 게 개인 프라이버시 권이 되어서 불법을 저지르는데도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랜덤채팅 앱의 경우 온라인 특성상 함정수사가 매우 중요한데 그게 불가능한 것이지요. 좋은 취지로 선택한 가치들이 오늘날에는 위험을 조장하고 있는 꼴입니다. 30년간 미제로 남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를 특정할 수 있었던 일명 ‘DNA법’이 내년부터는 유명무실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DNA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해당 법조항에 여러 조건이 달리게 됐거든요. 재소자들의 인권에 대한 가치를 얘기하는데 그들은 이미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자들입니다. 타인의 인권을 침해한 사람들에게까지 일반 시민과 똑같이 인권을 보장하는 게 합리적인 일인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자백한 이유가 경찰 면담 과정에서 여성 프로파일러와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셨어요.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이춘재는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자백을 할 이유도, 프로파일러들과의 면담에도 안 나오면 그만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도착증으로 연쇄 성폭행 살인을 저지를 만큼 성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25년째 일절 접촉 없이 교도소에 있었으니 여성 프로파일러와의 면담에 개인적인 관심이 생겼으리라는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이고, 9명의 프로파일러가 투입된 것으로 아는데 그들이 사전에 면담 계획을 잘 세우고 그를 공략한 것이 주효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연구 초기, 범죄자 분류심사 도구를 만드는 작업 중에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 중 몇 사람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겠다고 법무부에 요청했고 거절 이유 중에 ‘여성이기 때문에 사고가 날지 몰라’도 있었다고요. 그 시절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여성 연구자인 것이 핸디캡이었지만 지금은 다르죠. 
연구자로서 나의 역량을 발휘하는 데 여성이라는 게 의미 있는 통찰을 많이 줬습니다. 위험을 인지하는 데, 범죄 피해자의 심정을 공감하는 데,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틀 밖의 해결책을 강구하는 데, 나의 젠더가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제가 범죄심리학자이자면 동시에 형사 사법 절차, 경찰 정책에 관여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가 관심을 갖는 게 특정 범죄자들의 심리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얼마나 안전하게 살아가느냐에 더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강력 성범죄는 단지 흥밋거리로 소비되어서도 안 되고 검거하고 유죄 판결 받으면 끝나는 일도 아니며 형사 사법 절차의 성과물로 인식되어서도 안 됩니다. 강력 범죄 피해자의 89%가 여성이고, 성폭력 범죄에서 여성 피해자 비율은 94%에 이릅니다. 많은 이들은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면 그것으로 정의가 실현됐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각입니다. 한국에서는 누구도 영원히 교도소에 있지 않아요. 결국엔 다 돌아오는데 그들이 돌아올 때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도록 교화된 상태로 돌아오느냐, 선량한 이웃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예방적인 법률도 반드시 필요하고요.
마지막으로 오늘날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바자>를 읽는 독자들께 특정 범죄의 위험은 특정한 계층, 특정한 연령대만 노출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장 집안에서 내 아이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나도 모르는 새 온라인상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모두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함께 바꿔나가기 위해 연대해주세요.  
 
연구자로서 나의 역량을 발휘하는 데 여성이라는 게 의미 있는 통찰을 많이 줬습니다. 위험을 인지하는 데, 범죄 피해자의 심정을 공감하는 데,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틀 밖의 해결책을 강구하는 데, 나의 젠더가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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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안동선(컨트리뷰팅 에디터)
  • 에디터/ 박의령
  • 사진/ 최영모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