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YEMI
유혜미는 시스젠더 여성으로서 드래그 퀸처럼 분장하는 여성 드래그 퀸이다. 그녀의 의상과 메이크업은 통상적인 드래그 퀸이 표현하는 여성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저는 쇼보다는 비주얼 자체에 치중해요. 남자 같지도 여자 같지도 않고, 여자 같기는 한데 괴물 같은, 그 어떤 특정한 생명체로도 정의할 수 없는 존재로 보이고 싶어요. 초기에는 존 워터스의 영화에 나오는 드래그 퀸 디바인(Divine)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요즈음에는 ‘새드 샐비어(Sad Salvia)’라는 드래그 퀸의 인스타그램을 자주 찾아 봐요.” 시골마을에서 자라 자연, 특히 꽃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샐비어의 드래그는 기괴하면서도 요정같이 신비한 생명체의 모습을 구현한다. 1945년생의 디바인(1988년 심장비대증으로 사망)은 미국 출신 ‘톱 드래그 퀸’ 루폴(RuPaul)이 드래그 퀸 콘테스트 TV 프로그램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2009~)로 전 세계에 드래그 신드롬을 전파하기 몇 십 년 전에 이미 드래그 퀸으로서 영화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날카로운 메이크업, 육중한 몸매를 더욱 과시한 의상, 엽기적인 행각 등으로 유명한 디바인과 여러 차례 작업한 영화감독 워터스는 그녀를 “드래그 퀸계의 고질라”라고 칭한 바 있다. “2009년경 워터스의 영화 <핑크 플라밍고>(1972),
<암컷 소동>(1974) 등을 보면서 드래그 문화를 동경하기 시작했어요. 학창 시절에 여성의 화장에 관한 이슈가 크게 불거졌어요. 저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미인상에 반발해 일부러 힙합 바지를 입고 가죽 워커를 신고 남자같이 행동했어요. 눈썹을 완전히 밀어버리고 다닌 적도 있어요. 저는 그 ‘꾸밈 노동’이 죽어도 싫었어요. 결국 사회는 저를 거부했고, 저는 제 자신에 대한 혼란에 빠졌죠. 그러다가 2015년 유튜브에서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를 접하고 친구들과 함께 드래그를 해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보광동 패밀리’가 결성됐습니다.” 이 패밀리가 한 집에 모여 드래그를 하고 밥을 지어 먹는 장면은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했던 가수 이랑의 뮤직비디오 <나는 왜 알아요 / 웃어, 유머에>(2017)에 고스란히 담겼다. “드래그를 통해 여성 혹은 남성으로 보여진다는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게 더 중요해요. 저는 여성으로 학습돼왔지만 유년기 때 흔히 남성의 전유물로 치부되는 활동, 운동 종목, 위험한 일 등을 많이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남자라고 느끼는 것은 아니죠. 이렇게 드래그를 한창 즐기고 있던 중 트위터에서 여성혐오에 관한 논쟁이 터졌어요. 게이 진영에서는 시스젠더 여성이 왜 게이 문화에 끼어드냐, 페미니스트 진영에서는 드래그 퀸이 여성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는 등의 주장도 제기됐죠. 하지만 제 생각에 드래그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여성혐오가 아니라 자신의 억압된 사회적 젠더를 전복시켜 표현하는 데 있다고 봐요. 해방감과 치유의 측면에서도 분명히 드래그 문화에서 영감을 받을 부분이 많고요.” 유혜미가 여성 드래그 퀸 ‘Seesea_the mike litoris’로 분하면 자연스레 주변의 반응도 달라진다. “이태원 거리를 활보할 때가 제일 좋아요. 제 메이크업 자체가 독기를 품은 무서운 캐릭터라서 평소처럼 남성들이 괜한 시비를 걸거나 추파를 던지는 경우가 없죠. 저를 보고 남자들이 약간 경계하는 모습 자체가 신선해요. 그래서 아무래도 저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온 여러 여성 지인들이 드래그를 해보고 싶대요.” 유혜미는 사실 목수로서 2012년 설립한 목공소 ‘소목장세미’의 대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2평방미터 남짓한 작업실을 얻은 작가는 룸메이트의 잠버릇 때문에 2층 침대를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 목공 일에 뛰어들었다. 젊은 세대의 작은 원룸 생활에 주안점을 두고 디자인해 분리조립이 용이하고 운반하기 쉬운 그녀의 가구는 금세 입소문을 탔다. 그런 와중 목공소의 소음을 피하려 클럽 베이스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DJ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녀의 DJ 이름은 ‘시시(Seesea)’. 미국 출신 일렉트로닉 음악 프로듀서 머신드럼의 동명의 음악에 영감을 받아 지었다. “제가 디제잉할 때는 헤비 베이스 애시드, 하드코어 레이브, 트로트 등 일반적으로 한국 클럽에서 듣기 힘든 비주류 음악을 중점적으로 틀어요. 제 안에 있는 여러 특성을 목수, DJ, 여성 드래그 퀸이라는 캐릭터로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누구나 지고지순하다가도 열정적이거나 감성적인 면을 모두 갖고 있잖아요. 저는 이러한 면면을 특히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재밌어요. 그렇지만 제 안팎의 여러 다른 모습이 서로 포개지기도 하고 영향을 주고받기도 해요. 2015년 저와 다른 두 여성 DJ가 여성 언더그라운드 DJ 콜렉티브 ‘비친다 BICHINHA’를 결성해 핼러윈 파티로 ‘저승별곡’을 마련했는데, 저는 드래그를 하고 디제잉도 했어요.” 유혜미의 여성 드래그 퀸 활동은 성이 드러나고, 또 성을 표출하는 방식에 다채로운 색깔을 보탠다. “올해 오사카 다이버시티 퍼레이드, 도쿄 프라이드 퍼레이드, 서울 퀴어 퍼레이드에 DJ로 참가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특히 서울 퀴어 퍼레이드 도중에 반대 집회를 열었던 기독교 단체 옆을 지나가면서 제가 레이디 가가의 ‘주다스’를 틀었는데, 그 상황과 노래가 정말 절묘하게 들어맞아 잊을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