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의 #갤러리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지난 1월 말,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의 25주년을 맞이해 홍콩에 오픈한 새 공간에서 즈워너가 말했다. “제 커리어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인 25주년에 홍콩 갤러리를 오픈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 자리는 제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는 듯합니다.” ‘도전적인 아트를 선보이고자’ 시작한 갤러리 비즈니스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왔으며 밝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에선 자신감과 겸허함이 동시에 내비쳤다. 25주년을 기념해 갤러리라는 유의미한 역사가 남긴 사랑스러운 장면들을 돌아봤다. | 데이비드 즈위너

#11993년 2월, 데이비드 즈워너는 뉴욕 소호의 그린 스트리트 43번지에 첫 갤러리를 오픈했다. 개관전은 프란츠웨스트의 개인전이었고, 전시 카탈로그에 즈워너의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카탈로그를 프린트할 당시 갤러리의 위치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휴대폰도, 이메일도 없었다. 즈워너는 많은 아티스트들과 팩스를 주고받으며 약속을 잡고 아이디어를 나눴다. 는 당시 갤러리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갤러리의 프로그램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실험적인 아티스트들로 구성되어 철저하게 관리되어지며 유럽과 미서부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즈워너는 갤러리 근처에 살며 가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출근을 한다.”#21998년부터 2002년까지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합류했다. 마이클 보레만스, 라울 드 카이저, 마르셀 드자마, 온 가와라, 고든 마타-클라크, 네오 라우흐, 토마스 루프 등이 그들이다.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갤러리 공간도 자연스럽게 확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2002년 가을, 갤러리는 소호에서 첼시의 웨스트 19번가 525번지로 이전한다. 그리고 2006년까지, 웨스트 19번가 519번지부터 533번지까지 추가적으로 확장하면서 데이비드 즈워너의 새로운 시대를 연다. 2010년, 갤러리는 다른 나라로 무대를 넓힌다. 데이비드 즈워너의 첫 해외 갤러리는 런던 메이페어 디스트릭트의 중심부인 그래프턴 스트리트 24번가에 위치한 18세기 건축물인 조지안 타운하우스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의 웨스트 20번가 537번지에 5층짜리 건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한다. 오래된 차고였던 이 건물은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의 자격조건을 충족시킨 첫 상업 갤러리로서의 새로운 표준을 설정했다.1993년부터 오늘날까지 갤러리는 모두 건축가 애나벨 셀도프(Annabelle Seldorf)가 담당했다. 갤러리스트와 건축가로서 오랜 기간 동안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은 모두 독일 퀼른 출신이며 10대 시절, 아트를 공부하러 온 뉴욕에서 처음 만났다. 홍콩의 갤러리 오프닝에서 “지난 25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데이비드 즈워너라는 갤러리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가 애나벨 셀도프입니다.”라는 즈워너의 말에 셀도프는 이렇게 화답했다. “데이비드가 새 갤러리 공간을 연다고 전화할 때마다 저는 기쁨의 탄성을 지릅니다! 데이비드와 일하는 게 즐거운 이유는 우리가 같은 예술 언어로 소통하기 때문입니다.” #3뉴욕 웨스트 20번가 537번지의 갤러리는 댄 플래빈과 도널드 저드, 그리고 20세기 거장 조셉 앨버스와 조르디 모란디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뮤지엄 퀄리티의 전시에 집중했다.뉴욕 웨스트 19번가 갤러리와 런던의 갤러리에서는 케리 제임스 마샬, 오스카 무릴로, 볼프강 틸만스 같은 벽을 허무는 현대미술가들의 페인팅, 사진, 조각, 비디오, 그 외의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앞서 말한 공간의 역사적인 요소와 균형을 맞추었다.첼시 갤러리의 첫 10년은 갤러리의 중요한 초기 단계를 위해 프란시스 알리스, 마이클 보레만스, 이자 겐즈켄, 앨리스 닐, 크리스 오필리 같은 아티스트들의 개인전을 열었다. #4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는 전통적인 갤러리 전시에 대한 기대를 철저히 배반하기도, 또 포용하기도 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갤러리를 운영해왔다. 2017년에 화제를 모은 를 선보이며 리처드 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단순히 하나의 물체로 보여지길 원하지 않았다. 나는 관객들이 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하길 바랐다.” 전시는 정말로 그랬다. 온 가와라의 장대한 작품인 ‘One Million Years’부터 고든 마타-클라크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기능적 주방 설치 작품까지, 갤러리는 전혀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2017년 열린 야요이 쿠사마의 전시는 일일 관람객 수가 7만5천 명으로 인기 있는 뮤지엄의 관람객 수를 능가했다.그리고 최근 5년 동안 갤러리는 물리적인 무대를 벗어나 디지털에서 아트를 즐길 수 있는 방향을 도모하고 있으며(데이비드 즈워너 홈페이지에는 디지털 뷰잉룸을 만들었다), 단독 출판사를 세워 도록과 모노그래프, 서베이 등을 출간하고 있다. 또한 갤러리는 사회적인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공공의 이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1년 초, 즈워너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자선 전시회를 열었고, 2011년 아이티 지진과 2014 HIV/에이즈 지원과 같이 주기적으로 자선 옥션이나 전시회를 주관했다.지난해, 데이비드 즈워너는 뉴욕에 세 번째 갤러리를 오픈했다. 역사적인 전시와 특별한 프로젝트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그곳에서의 첫 전시는 1940년대 후반, 미술 교육의 실험을 위해 탄생한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영향을 탐구하기 위한, 조셉 앨버스와 애니 앨버스, 레이 존슨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얼마 전 오픈한 홍콩 전시 공간에서는 마이클 보레만스 개인전을 시작으로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볼프강 틸만스의 개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