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을 탈출하고 싶다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당신도 나도 혼자만 고민했던, 이제 조금은 용기를 내보고 싶은 작은 도전에 대하여. | 더라이트폰,탈디지털,아날로그,디지털디톡스,카페인중독

비행기를 타지도 않는데 종종 비행기 모드를 누른다. 여러가지 고민들로 번잡해진 머리, 디지털 세상의 속도와 잡음에 울렁거리는 마음을 달랠길 없어 저지르는 최소한의 발악이다.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돌려놓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조급하게 떠다니던 마음은 조금씩 휴식을 찾고 차분히 가라앉는다. 비행기 모드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어찌하지 못하고 디지털 리더들에 빌붙어 더부살이하고 있는 소극적인 내게 최소한의 은신처이고 도피처인 셈이다. 최근 ‘카페인 중독’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말을 알게 됐다. 커피의 해악에 대한 말이 아니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약자로, SNS에 대한 해악을 이야기하는 말이다. 우리는 어느새 0과 1들의 모임, 디지털 세계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운동장에 모여 복잡한 관계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소통과 교류라는 좋은 말로 관계를 시작했지만 그것이 축적되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 가면서 부작용을 겪게 됐다. 작은 일상의 순간들을 놓치게 되었고 진짜 나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게 되었다. 자기와의 관계는 엉켜버린 전깃줄처럼 얽히고설켜져 버렸다. 나는 여러 가지 채널에 만들어 놓은 아이디와 아이덴티티로 대변되었다. 약간은 가식적이고 거짓된 SNS 속 모습에 집착하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파편으로 남아 디지털 세상에 부유하게 됐다. 온전한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언젠가부터는 나의 생각, 나의 색깔, 나의 의견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 다른 사람의 시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려다 보니 현기증이 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늘 작은 멀미증을 앓고 살아가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SNS 속 수많은 관계 속에서 위로를 받으려는 나를 찾곤 한다. 미련한 건지, 어쩔 수 없는 건지 나도 모르게 휴대폰으로 향하는 손이 야속하기만 하다. 새로운 휴대폰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름은 ‘더 라이트 폰’. 관계의 복잡성을 끊고 기본에 충실한 미니멀리즘적 휴대폰이라고 할까. 전화 기능에만 충실한 휴대폰이라고 한다. 전화번호는 단 9개만 저장할 수 있고, 문자도 이메일도 인터넷도 할 수 없다. 크기는 신용카드만 하고 무게는 38.5g 정도. 과연 이름대로 가볍다. 기능도 디자인도 최소한의 것만 담았다. 이런 휴대폰이라면 디지털 세상에 대한 의존도가 좀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걸어 본다. 최소한의 역할만 하는 휴대폰이라면 ‘페이스북’이 아닌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의 아날로그적 관계를 되살려 낼 수 있지 않을까. 가상 세계의 다른 사람들이 아닌 진짜 세상의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의지박약인 데다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졸졸 따라만 다니는 별 볼일 없는 내가 디지털 세상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어지러워했던, 고질병 같았던 멀미증을 해소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어림도 없다며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 최소한 디지털 세상의 속도에 끌려 다니지 않고 SNS 속 복잡한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호연한 나를 위해서 작은 노력을 기울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