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일본 배우인 줄"…'100일의 거짓말' 진선규의 일본어
'미스터 션샤인' 김남희·'박열' 최희서 잇는 일본어 연기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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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에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사토 신이치로 분한 진선규의 일본어가 방영 직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일본 누리꾼 일부도 진짜 일본 배우인 줄 알았다는 반응을 남겼다.
사토 신이치 역 진선규 /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일제강점기를 다룬 시대극에서 일본어는 단순한 외국어 대사에 머물지 않는다. 식민 지배의 잔혹한 위압감을 드러내는 권력의 언어이자, 인물의 정체성과 위계를 가르는 척도다. 소매치기가 통역생으로 위장해 총독부 밀정으로 잠입하는 <100일의 거짓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 자체를 서스펜스의 중심에 놓는다. <미스터 션샤인>과 <박열>을 거쳐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시대극 속 일본어 연기가 인물과 이야기를 완성해 온 궤적을 짚었다.
<미스터 션샤인>, 어눌한 한국어에 숨긴 살의
모리 타카시 역 김남희 /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스틸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은 구한말 조선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과 일제의 침탈을 그린 대표작이다.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가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이 작품에서 일본어 연기로 가장 강렬한 잔상을 남긴 이는 일본 육군 대좌 모리 타카시 역의 김남희였다. 어눌한 한국어와 영어, 매끄러운 일본어를 오가는 특유의 어조에 방영 당시 온라인에서는 실제 일본인 배우인지를 둘러싼 설전까지 벌어졌다. 정작 김남희는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캐스팅 직후 도쿄에서 한 달간 머물며 대본을 통째로 외우고 말투와 억양을 체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화제를 모았다. 같은 작품에서 일본군 하사관 츠다로 분한 이정현 역시 생생한 딕션으로 일본인이라는 오해를 샀다. 서툰 한국어 속에 침략의 야욕을 숨긴 모리 타카시와, 비열한 억양으로 식민 폭력을 드러낸 츠다. 두 배우의 정교한 언어는 단순한 발음을 넘어 악역의 핍진성을 완성한 강력한 무기였다. 이정현은 한 해 앞서 개봉한 영화 <박열>에서도 조선인을 학살하는 자경단원으로 등장한 바 있다.
<박열>, 언어 위에 인물의 결기를 얹은 최희서
가네코 후미코 역 최희서 / 영화 <박열> 스틸
영화 <박열>(2017)에서 일본어 연기의 또 다른 결을 보여준 배우는 최희서였다. 이준익 감독의 이 영화에서 그는 일본인 아나키스트이자 박열(이제훈)의 동지이며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했다. 첫 주연작이던 이 작품에서 그의 가장 돋보인 무기는 이미 갖추고 있던 뛰어난 일본어 실력이었다. 이준익 감독은 가네코 후미코를 맡을 수 있는 배우는 최희서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남희가 일본어를 바닥부터 벼려낸 배우였다면, 최희서는 이미 체화된 언어 위에 제국주의에 맞서는 인물의 단단한 신념을 얹었다. 일본인이 구사하는 미묘하게 어색한 한국어 악센트까지 완벽히 소화한 그는 그해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과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연기상 등 각종 신인상을 휩쓸었다. 같은 외국어 연기라도 출발선과 결이 다른 두 갈래가 이 지점에서 나뉜다.
<100일의 거짓말>, 두 달의 몰입이 빚어낸 총독부의 위압감
사토 신이치 역 진선규 /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사토 신이치 역 진선규 /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100일의 거짓말>(2026)의 진선규는 이 계보에서 김남희의 길과 맞닿아 있다. 그가 연기하는 사토 신이치는 총독부의 2인자인 정무총감이다. 히라가나조차 몰랐던 진선규는 올해 1월부터 두 달간 일본에 머물며 하루 7시간씩 대본을 외웠고, 촬영 중에도 일본어 선생님과의 수업을 이어 갔다. 김남희가 도쿄에서 보낸 한 달의 두 배에 달하는 시간을 쏟아부은 셈이다. 치열하게 공들인 시간은 1회부터 화면을 장악했다. 경성역에서 자신을 반기는 인사들과 일본어를 유려하게 주고받고, 식사 자리에서 절제된 말투로 상대의 정체를 의심하는 장면은 인물의 권력욕을 군더더기 없이 실어 날랐다. 절제된 말투와 냉정한 표정 그 자체가 곧 사토 신이치라는 지배자의 위압감이 됐다.
김유정·박진영, 말이 곧 가면이자 무기가 되는 순간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이 작품에서 일본어는 권력자의 전유물에 그치지 않는다. 사토 신이치에게 언어가 권력의 증명이라면, 밀정으로 잠입한 이가경(김유정)과 통역관 김태웅(박진영)에게 언어는 속내를 숨기고 시험하는 가면이다. 가경은 구국단의 제안을 받아 영어 통역생 '금서희'라는 가짜 신분으로 총독부에 들어간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다. 어린 시절 선교사 집에서 익힌 일본어와 영어는 신분을 갈아입는 도구이자 위기에서 꺼내 드는 칼이 된다. 1회 엔딩에서 떨리는 목소리의 영어로 도움을 청하는 순간, 언어는 서스펜스의 엔진으로 직결된다. 그 맞은편의 통역관은 조선 이름 김태웅과 일본 이름 사토 히데오를 동시에 지닌 정무총감의 양자다. 영어와 일본어, 조선어를 넘나들며 말의 속도와 반응을 조율하는 그는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김유정과 박진영은 언어 자문을 거치며 3개 국어를 오가는 고난도 연기를 소화했다. 한쪽에서는 일본어가 지배의 공기를 뿜어내고, 다른 쪽에서는 다국어가 목숨을 건 위장의 도구가 되는 구조다.
사토 신이치 역 진선규 /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위성락 역 진선규 / 영화 <범죄도시> 스틸
시대극 속 일본어 연기는 악역의 위압감을 증명하는 기술에서 정체를 숨기고 시험하는 서스펜스의 장치로까지 쓰임이 넓어졌다. 낯선 언어를 피나는 훈련으로 벼려낸 배우와 능숙한 언어 위에 인물의 결을 얹은 배우, 그리고 말로 신분을 갈아타는 인물들까지. <100일의 거짓말>은 그 흐름의 가장 최근 사례다. 진선규는 이 작품을 영화 <범죄도시>의 위성락을 지워 보고 싶은 마음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특유의 어투 하나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던 배우가, 이번에는 식민 권력의 서늘한 외국어로 제 얼굴에 또 하나의 강렬한 이름을 새겨 넣는 중이다.
Credit
- 사진 / tvN·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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