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싯다르타와 세네카, 오디세이아가 다시 베스트셀러가 된 지금, 사람들이 고전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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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세네카, 싯다르타 등 고전이 등장하고 있다.
- 2030은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따라 고전을 보고, 4050은 옛사람의 지혜를 엿보려 고전을 본다.
- 정답이 아닌 질문을 주는 고전! 각자의 고민에 따라 골라보는 고전 도서 목록 8.
사진/ 민음사 제공
10월 9~15일 교보문고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트렌드 코리아 2027』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보던 풍경이다. 그런데 그 아래 순위가 어딘가 낯설다. 2위는 2,000년 전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이야기가 담긴 책, 4위는 100여 년 전 헤르만 헤세가 쓴 『싯다르타』, 8위는 19세기 철학자 쇼펜하우어, 9위는 1998년에 나온 양귀자의 『모순』이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상위 10권 가운데 4권이 오래된 ‘고전’이다. 물론 책 내용은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 달라진 건 사람들이 고전을 찾는 방식이다.
민음사tv 유튜브 채널
예전엔 입시를 위해 억지로 읽던 필독서 목록에서 고전을 만났다면, 지금은 누군가의 추천을 통해 고전을 만난다. 『싯다르타』는 출판사 유튜브의 꾸준한 추천으로, 세네카는 구독자 100만 유튜버 ‘하와이 대저택’이 엮은 편역서로, 『오디세이아』는 8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 덕분에 다시 주목받았다. 1998년에 나온 『모순』은 유튜버들이 ‘인생책’으로 꼽으며 2024년 5월 교보문고 국내소설 1위에 올랐고, 지금도 종합 10위권에 있다. 바뀐 건 고전을 만나는 길만이 아니다. 고전을 읽는 방식도, 고전에 기대하는 것도 달라졌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일까.
숏폼처럼 고전 읽기
흔히 나오는 설명은 숏폼과 도파민, 하루에도 끊이지 않는 강렬한 자극에 대한 피로감이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지친 사람들이 호흡이 길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깊이 있는 책을 다시 찾는다는 것. 그런데 지금 잘 팔리는 고전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르다. 숏폼에서 벗어나려고 고전을 찾지만, 그 고전을 숏폼처럼 읽는다. 한 장씩 끊어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은 캡처해 SNS에 올린다.
사진/ 유노북스 제공
사진/ 유튜브 채널 장도연의 살롱드립2
특히 편역본은 고전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확 낮췄다. 『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는 세네카의 ‘대화편’ 다섯 편에서 핵심만 골라 55편의 짧은 글로 다시 묶은 책이다. 8월 둘째 주 교보문고와 예스24에서 나란히 종합 1위에 올랐다. 이런 양상은 쇼펜하우어 열풍이 일던 2023년에도 찾아볼 수 있었다. 배우 하석진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쇼펜하우어를 인용하고 아이브의 장원영이 추천하면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2024년 교보문고 상반기 종합 1위에 올랐다. 철학자의 생각을 한 꼭지씩 쉽게 풀어준 책이었다. 다만 편역본과 해설서는 문턱일 뿐이다. 잘라낸 문장에는 결론만 있고,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빠져 있다.
‘힙’한 취향이 된 고전
사진/ 민음사 제공
『싯다르타』가 다시 떠오른 이유는 또 다르다. 역주행을 이끈 건 20대 여성 독자들이다. 요즘 20대가 즐기는 두 가지 ‘힙’이 이 책 한 권에 겹쳐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힙불교’다. 절과 명상, 불교를 어렵고 엄숙한 종교가 아니라 가볍고 세련된 취향으로 즐기는 흐름이다. 올해 4월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개막 이틀 만에 약 12만 명이 몰렸고, 평일 오전에도 관람객 절반 이상이 20·30대였다. 승복을 데님과 섞은 ‘승복바지’는 하루 50장이 10분 만에 동났고, 머리를 살짝 깎고 법명을 받는 출가 체험에는 두 시간 만에 40명 넘게 신청했다.
사진/ 민음사tv 유튜브 채널
다른 하나는 ‘텍스트힙’이다. 글(텍스트)을 읽는 게 힙하다는 뜻으로, 책 읽는 모습 자체를 멋으로 여기는 흐름이다. 2025년 성인 독서율은 38.5%로 역대 최저였지만 20대는 75.3%로 평균의 두 배다. 집을 떠나 스스로 깨달음을 찾아가는 젊은 싯다르타의 이야기는 이 두 흐름이 만나는 자리에 정확히 놓인 책이다. 이 책을 20대 앞에 꺼내 놓은 건 출판사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다. 구독자 약 55만 명의 이 채널은 ‘세계문학전집 월드컵’처럼 게임이나 토론 형식에 책 이야기를 얹는다. 민음사 조아란 마케팅부장은 인기 비결로 “책보다 사람을 먼저 보여준 것”을 꼽았다. 그 ‘사람’ 중 하나가 김민경 편집자다. 그는 채널과 SNS에서 『싯다르타』를 꾸준히 추천했고, 지난해 11월 ‘역주행 특집’에서 다시 소개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라디오스타>에도 나오며 ‘출판계 아이돌’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24년 6월 처음 종합 100위 안에 든 『싯다르타』가 올해 6월 1위에 오르기까지, 한 번의 추천보다 꾸준한 노출이 통했다.
사진/ GS25 제공
독자들은 이제 광고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따라 책을 고른다. 그리고 그렇게 고른 책으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다. GS25와 민음사가 함께 낸 ‘민음사 빵’이 9월 초까지 약 49만 개 팔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이 읽는 대상이 아니라 들고 다니는 소품이 됐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가방 속 『싯다르타』가 어느 날 펼쳐질 가능성까지 무시할 필요는 없다. 취향으로 시작한 독서도 의미가 있는 법이니까.
자기계발서 대신, 옛사람의 지혜
사진/ 을유문화사 제공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20대가 취향으로 고전을 집는다면, 40·50대는 인생에 대한 고민을 터놓고 그 답을 찾으러 고전을 펼친다. 세네카 책을 구매한 독자는 50대(39.6%)와 40대(37.4%)가 77%를 차지한다. 『오디세이아』는 영화가 끝난 뒤 원작을 찾은 경우다. 개봉 후 현대지성판은 교보문고에서 30계단 뛰어 8위에 올랐고, 예스24에서 김헌 번역본 판매는 개봉 2주 차에 389.8% 늘었다. 이 책을 산 독자 역시 4050세대가 70%를 넘는다. 교보문고는 2024년 철학책 판매가 1년 전보다 43.1% 늘어난 이유로 물가와 가계 부담 같은 경제 불안을 꼽았다. 당장 성공하는 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에서 스스로를 좀 더 깊이, 차근차근 돌아보게 하는 책으로 관심이 옮겨갔다는 분석이다.
사진/ 논픽션 제공
세네카는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에서 “인생이 짧은 게 아니라 우리가 많은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라고 말한다. 일과 알림에 하루를 빼앗기는 중년에게 이보다 와닿는 조언은 드물 것이다. 이때 고전은 일종의 ‘검증된 자기계발서’로 읽힌다.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가 말한 ‘린디 효과’도 같은 이야기다. 오래 살아남은 것일수록 앞으로도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개념이다. 하루하루 변화가 빠르고 미래가 불확실하기에, 어디서나 통하는 옛사람과 현인들의 지혜에 자연스럽게 기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하지만 고전을 ‘검증된 자기계발서’로만 읽으면 익는 재미과 의미의 절반을 놓친다. 좋은 문장 하나를 건지는 것과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건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건 올해 가장 화제가 된 고전이 『싯다르타』라는 사실이다. 이 소설에서 싯다르타는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도 그를 따르지 않는다. 깨달음은 남에게서 전해 받을 수 없고 스스로 겪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약과 편역의 시대에 ‘지혜는 남이 대신 전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책이 1위에 오른 셈이다. 계속해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을 사람들이 ‘읽고 있다’가 아니라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는 책, 하고 싶은 말을 끝내 다 하지 않는 책이라고 했다.
사진/ 민음사 제공
고전은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읽을 때마다 다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스무 살에 읽은 『싯다르타』와 마흔에 읽은 『싯다르타』는 완전히 다른 책이 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걸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경험, 그건 어떤 요약본도 대신해주지 못한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두고 모두가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라고 비꼰 적이 있다. 지금 서점 풍경은 작가의 말이 틀렸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 나에게 맞는 고전
편역본으로 시작했다면 용기를 가지고 완역본으로 넘어가 보자. 표지나 판권면에 ‘완역’ ‘편역’ ‘엮음’이 적혀 있고, 같은 작품도 출판사마다 번역이 다르니 첫 페이지를 비교해보고 고르면 된다. 무엇을 읽을지는 지금 나의 고민에서 시작하면 쉽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을 좋아했다면 이어 읽을 책도 함께 골랐다.
시간이 늘 부족하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
사진/ 민음사 제공
세네카가 좋았다면 다음은 이 책이다. 로마 황제가 전쟁터를 오가며 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쓴 메모다. 화내지 말 것, 남의 평가에 흔들리지 말 것, 지금 할 일에 집중할 것. 짧은 단상이 이어져 하루 한 쪽씩 읽기 좋다. 읽는 법: 1권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내용이라, 2권부터 펼쳐도 문제 없다.
나답게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면: 헤르만 헤세 『데미안』
」
사진/ 민음사 제공
『싯다르타』보다 3년 앞선 1919년 작품으로, 소년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남이 정해준 세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이야기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문장이 여기서 나왔다. 읽는 법: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라면 『데미안』은 그 전 단계, 나를 처음 의심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불안이 잦다면: 미셸 드 몽테뉴 『에세』
」
사진/ 민음사 제공
16세기 프랑스 귀족이 자기 자신을 관찰하며 쓴 글로, ‘에세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죽음, 우정, 습관, 두려움처럼 지금도 똑같이 하는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읽는 법: 처음부터 읽지 말고 목차에서 끌리는 제목 하나를 고르자. 완역본은 분량이 많아 선집으로 시작해도 좋다.
선택 앞에서 망설인다면: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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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음사 제공
소설 『모순』의 주인공이 서로 다른 두 삶 사이에서 고민하듯, 엘리자베스 베넷도 사랑과 결혼, 돈과 자존심 사이에서 선택한다. 1813년 소설인데 지금 연애 이야기처럼 읽힌다. 재산 많은 독신 남자는 아내가 필요하다는 유명한 첫 문장부터 오스틴 특유의 비꼬는 유머가 가득하다. 읽는 법: 2005년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를 먼저 보면 인물 관계가 쉽게 들어온다.
영화가 끝나고 원작이 궁금하다면: 호메로스 『일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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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현대지성 제공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오디세이아』까지 읽었다면 앞서 펼쳐진 이야기로 가보자. 트로이 전쟁 10년째,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해 50여 일 동안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읽는 법: 등장인물이 아주 많으니 인물 소개나 지도가 앞에 붙은 판본을 고르면 된다.
부담 없이 읽고 싶다면: 『변신』 『노인과 바다』 『이방인』
」
고전이 처음이라면, 얇은 책으로 완독의 기쁨부터 느껴봐도 좋다. 카프카의 『변신』은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회사원 그레고르의 이야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거대한 청새치와 벌이는 사투, 카뮈의 『이방인』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상한 남자 뫼르소의 이야기다. 셋 다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 오래된 책들은 처음부터 서가에 있었다. 이번엔 요약 말고, 첫 장부터 끝까지 한 권을 따라가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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