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에서 밤새 테크노와 앰비언트 뮤직을
올해 1회를 맞은 '선 페스티벌'에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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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S (3)
카메라를 들고서 세 개의 도시, 세 개의 축제를 떠돌기. 불현듯 포착한 장면이 된 풍경들.
스테이지 앞에 마련된 매트리스에서 저마다의 자세로 앰비언트 음악을 듣는 사람들.
이곳은 하이브리드 체제다.
뮤직 페스티벌에 마지막으로 간 게 햇수로 몇 년이 흘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매달 수십 명의 낯선 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며, 자발적으로 북적이는 공간으로 향하는 건 상상만 해도 에너지를 빼앗기는 일이 됐다. 새벽부터 모닝레이브라는 것도 열리는 시대라지만, 음악은 집과 차 안,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같은 안전지대 안에서 즐기는 취미였다.
페스티벌 냉소론자처럼 굴었다만, 한 가지 모순이 있다. 어쩐지 처음 열리는 페스티벌은 궁금해지고 가고 싶어진다는 것.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 힙합 페스티벌에도, 제주에서 열린 인디뮤직페스티벌에도 1회 때 참가한 이력이 있다. 사전 정보에 전무한 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처음 온 축제를 게임 몹을 찾아 헤메듯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올해 첫 회를 맞은 선(SUNN) 페스티벌은 물음표를 자아내는 이벤트였다. 시원하게 시야를 틔우는 하늘과 코 밑이 차가워지는 바람. 선 페스티벌은 대관령 언덕을 넘어 고성에서 열렸다. 이전까지 고성이 대한민국의 최북단에 위치한 기초자치단체라는 사실을 몰랐다. 심지어 금강산의 남쪽 자락과 맞닿아 있다. 첫 축제가 열린 10월 3일은 독일 통일의 날이자 한국의 개천절이고, 분단선이 가로지르는 이곳에서 무형문화유산인 베를린 테크노가 울린다. 이 축제는 맥락이 꽤 확실하다.
동해 바다를 뒤로하고, 도시에서 숲길에 진입하자 들판이 펼쳐진다. 세계잼버리수련장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꼬박 하루가 넘게, 28시간 동안 계속된다. 수련회장 같은 숙소는 물론 텐트를 펼칠 수 있는 야영장을 마련했고, 전망대 앞 계단식 논 같은 언덕에는 100여 개의 매트리스가 늘어서 있다. 성수동과 한강, 과천과학관에서 매트리스에 누워 리스닝 경험 이벤트 ‘실링서비스’를 열었던 기획사 퍼밋이 주관했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로컬에서 문화 이벤트를 만드는 기획사 ‘파르티잔’이 함께하며 지역 이방인이 뜬금포로 연 축제의 인상을 지우고, 지역민에게는 무료로 축제를 즐기게 만들었다. 강아지와 함께 온 가족부터 베를린에서 온 DJ들까지 서로 다른 세대, 다른 복장과 인종의 사람들과 함께 몇 해 전 세계산림엑스포가 열리며 생긴 솔방울 모양의 전망대를 올랐다. 45m의 전망대 위에서 각기 다르게 늘어진 사람들을 보고 사진가와 나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이런 기분일까” 농담도 주고받았다. 혼자서 처음 텐트를 치는 소녀, 꽤 쌀쌀한 날씨에도 꼭 붙어 매트리스에서 야영을 할 예정인 커플, 밤새 음악을 듣고 일출을 볼 거라는 친구들, 평생 강원도에 살아온 아버지뻘의 중년 동창들도 보인다. 해가 지고, 출출해진 사람들은 긴 테이블에 앉는다. 셰프 장진우가 준비한 메뉴로는 고성 우거지국밥과 먹태구이를 고른다. 백야였다면 이곳은 영화 <미드소마>를 연상시키는 장면이겠지, 상상한다.
이곳은 하이브리드 체제다. 전망대 앞 스테이지에는 낮에는 앰비언트 뮤직이, 밤에는 테크노 DJ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거대하게 울리는 싱잉볼과 자연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때, 진공관처럼 온몸이 울리는 기분을 느끼다가 분홍색 노을이 진 하늘을 봤다. 어쩐지 신성한 기분도 느껴졌는데, 그렇게 황홀한 하늘을 멍하니 누워서 보는 사람들이 나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았다. 해가 지자 캄캄한 숲에 간접 등이 피어오른다. 자정에 베를린 클럽 트레조어(Tresor)의 DJ 마리나가 메인 공연을 했고, 최근 앰비언트 앨범을 낸 던의 공연에선 무아지경으로 소리에 집중한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찌든 냄새가 배인 갑갑한 클럽에서 테크노 사운드를 듣던 때와 완전히 다른, 산뜻하기까지 한 경험이었다.
스트리밍 시대에 누군가와 같이 음악을 듣는 리스닝 경험이 꼭 필요할까? 같이 음악을 듣는 건 영화관에서 같은 이야기를 보는 것과 유사한 효능을 줄까? 사실 회의적이었다. 음악이야말로 예술의 갈래 중 가장 내밀한 영역이고, 혼자만의 주관적인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야말로 참맛이라는 편견이 차츰 흐릿해졌다. 페스티벌은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온도의 행위라 여겼는데, 느슨히 연결된 채 사람들 속에 뒤섞이는 일이 낯설지만 유쾌하다. 이토록 무방비 상태에서 누군가의 표정을 관찰한 적 있었나? 퍼블릭한 공간에서, 술이나 환각 약물에 취하지 않은 얼굴을. 불특정한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에 거리를 둔 사이, 내 일상도 딱 그만큼 건조하고 예민해졌던 것 같긴 하다. 사람들이 웃는 소리를 소음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는 장소에, 나를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긴 노을을 보내면서, 아주 편안해서 곧 잠에 빠지기 직전 혹은 바람을 그대로 맞거나 음악에 몰입하는 평화로운 표정들을,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바라보았다.
Credit
- 사진/ 정진우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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