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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가장 낯선 작품을 골랐다

사전 정보 없이 프랑스 무용극 ‘소아페라, 인스톨레이션’과 국내 초연작 ‘건져올렸지만 가라앉으려는 경향’을 마주했을 때.

프로필 by 고영진 2026.10.26

SCENES


카메라를 들고서 세 개의 도시, 세 개의 축제를 떠돌기. 불현듯 포착한 장면이 된 풍경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선보인 프랑스 무용극 <소아페라, 인스톨레이션>. 거품이 사라진 무대 위로 무용수들의 군무가 이어진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선보인 프랑스 무용극 <소아페라, 인스톨레이션>. 거품이 사라진 무대 위로 무용수들의 군무가 이어진다.


무대를 가득 채운 거품 속 무용수의 움직임은 춤과 몸짓의 경계에 있다.

무대를 가득 채운 거품 속 무용수의 움직임은 춤과 몸짓의 경계에 있다.


<소아페라, 인스톨레이션> 중 가장 회화적인 장면. 거품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하얀 비눗물의 흔적이 물감처럼 보인다.

<소아페라, 인스톨레이션> 중 가장 회화적인 장면. 거품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하얀 비눗물의 흔적이 물감처럼 보인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초연작 <건져올렸지만 가라앉으려는 경향>의 후반부. 한 시간 넘게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무용수들이 처음으로 하나가 된 순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초연작 <건져올렸지만 가라앉으려는 경향>의 후반부. 한 시간 넘게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무용수들이 처음으로 하나가 된 순간.

어떤 예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눈으로 담을까, 사진을 남겨야 하나 고민할 것 없이 그저 눈앞의 움직임을 바삐 따라다니는 일이 해야 하는 일의 전부인 시간. 지금이 아니면 이 순간을 다시는 볼 수 없다. 공연예술의 묘미는 그런 데 있다. 모두가 공평하게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칙 안에서, 캄캄한 객석의 지정된 자리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행위는 언제나 안정감을 준다. 무의식은 스크린이 아닌 감각할 수 있는 실체가 놓인 무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영화를 볼 때보다 공상에 빠질 확률이 적다는 얘기다. 러닝타임이 긴 공연을 보고 나왔을 땐 명상이라도 한 듯 개운해진다.

매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며 가장 살 만한 날씨가 이어질 때, 서울에서는 연극과 무용, 음악 등 여러 공연예술 장르를 한데 모은 축제가 열린다.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이어지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다. 이맘때면 평소엔 거의 갈 일이 없는 대학로와 장충동 일대를 자주 찾게 된다. 매일 많게는 6개의 작품씩 촘촘히 짜인 일정표를 수시로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공연은 대체로 낯설다. 해외, 국내 작품이 뒤섞여 있는 데다 초연인 작품의 수도 많아서다. 그래도 괜찮다. 해외 현지 공연단의 무대를 서울에서, 10만원 이하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축제는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올해만 봐도 그렇다. 프랑스 연출가이자 파리 라 콜린 국립극장 예술감독 줄리 델리케(Julie Deliquet)의 연출 아래 지난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을 선보인 낭독극 <새>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하고, 이자벨 위페르와 이혜영이 낭독해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일찍이 전석 매진이었다. 예매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사실 매년 구미가 당기는 건 조금 다른 쪽이다. 사전 정보가 전무해 개요를 읽어도 감이 잡히지 않는, 이왕이면 초연인 작품들. 올해는 두 가지를 골랐다.

먼저 <소아페라, 인스톨레이션>. 45분짜리 무용으로 분류된 이 극은 공연예술의 휘발성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극의 중심엔 쉽게 변형되고 사라지는 비누 거품이 있다. 가뜩이나 짧은 러닝타임에서 처음 10분가량을 오로지 거품을 만드는 데 쓴다. 공연 시작과 함께 암흑 속 텅빈 무대 위에 기계음과 더불어 천장에서 거품이 흘러 내린다. 익숙한 비누 냄새다. 어느 브랜드 향이더라? 이만큼의 거품을 만들려면 비누 액체는 얼마나 필요할까? 리허설이 쉽지는 않았겠다, 그보다, 거품은 대체 언제까지 나올 생각인가. 1차원적인 생각을 이어가다 거품이 멈추고, 돌연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언제 거품 속으로 잠입했는지 모를 무용수들이 눈만 빼꼼 내민 채 거품과 한 몸이 되어 느릿한 몸짓을 한다. 하나의 큰 구름 같던 흰 거품은 이들의 움직임에 의해 분해되고, 듬성듬성 여백을 보이며 뽀얀 색을 잃다가 지저분해지고, 마침내 사라진다.

이 공연은 프랑스 출신 안무가 마틸드 모니에르(Mathilde Monnier)와 화가 도미니크 피가렐라(Dominique Figarella)가 함께 만들었다. 2010년 퐁피두 파리에서 처음 선보일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거품이 공간을 점유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무대 정면이 아닌 사방에 자리 잡은 관객들은 인스톨레이션(installation), 즉 설치 작품인줄 알았던 거품이 마구잡이로 변형되다 끝내 소멸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소아페라’는 비누(soap)와 오페라(opéra)의 합성어다. 비누에다 오페라를 갖다 붙인 이유라면 무용과 퍼포먼스, 설치, 조각, 심지어는 회화까지, 여러 장르가 한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예술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무대 위 비누 거품이 완전히 사라지고, 검은 바닥에 남은 새하얀 거품이 무용수의 몸짓에 따라 칠해졌다 지워지는 장면을 보게 되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다음으로 본 <건져올렸지만 가라앉으려는 경향>은 같은 무용으로 분류되지만 전혀 다르다. 일단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서울아트마켓(PAMS)이 협력해 신설한 ‘팸스×스파프 초이스’에 소개된, 국내 초연작이다. 앞선 작품이 비누 거품을 활용한 퍼포먼스라는 명확한 단서가 있었다면, 이 작품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나의 서사로 연결지어 이해하려하기보다 다섯 명의 출연자 각각에게 집중할 것.” 국립극장으로 향할 때까지도 내게 있는 정보라고는 프로듀서 이보라미가 남긴 당부가 전부였다.

무대 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은 다섯 명은 각자 제 할 일을 한다. 누군가는 의자 위에 물건을 쌓았다 무너뜨리고, 누군가는 마이크를 온몸에 부벼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작은 책상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비닐 더미를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사람도 있었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다섯 명의 움직임을 쫓아가지만 어떤 것도 이해를 하진 못한 것 같다. 국내 초연작의 첫 공연. 그 최초의 무대를 함께 목격한 나머지 관객들도 나와 같은 당혹감을 느꼈을까? 다시 이보라미 PD가 했던 말을 곱씹는다. 다섯을 관통하는 서사가 없다면, 나는 무엇을 붙잡고 이 공연을 봐야 한단 말인가. 뒤이어 춤, 연기, 악기 연주, 가창, 텍스트 낭독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터져나오는 무대를 보며 혼란해졌다.

생각이 조금 바뀐 건 100분짜리 공연이 끝을 향해갈 무렵이었다. 제각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 때다.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사람들이 몸을 엉겨 붙이더니 속삭이듯 대화를 하다가, 피식 웃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거기엔 앞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으나, 이 공연이 보여주고자 한 세계는 마지막 몇 분간의 장면에 집약되어 있었을 것이다. 공연이 막을 올린 뒤, 무대 위 잔상만을 붙잡고 부랴부랴 설명을 찾아 읽는다. “어떤 주된 경향도 존재하지 않는 다주체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여정” “극장이라는 시공간의 모든 현상을 살아 있는 주체로 마주하는 과정” “해방된 경험”. 그제서야 눈에 밟히는 말들. 어딘가 찝찝했던 것이 단숨에 정리되는 기분이다. 해가 지고 있다. 휴대폰 비행기 모드는 조금 더 두어도 될 것 같다. 개운해진 마음으로 국립극장 앞 쭉 뻗은 장충단로를 한참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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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정진우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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