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예술감독 호추니엔이 말하는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주목할 작품

호추니엔(Ho Tzu Nyen)은 2026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변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6.10.22

What Passes Through


“오늘, 어떤 변화가 내 안을 지나고 있는가?”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You Must Change Your Life)»의 예술감독 호추니엔(Ho Tzu Nyen)은 변화를 급진적이고 추상적이며 거대한 무언가로 보지 않는다. 때로는 조용히, 긴 시간 저마다의 실천이 모여 이루어지는 일. 그가 보는 예술 역시 그 실천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닿아 있다.


GB 커미션 선정 작가 권병준과 박찬경은 한국 무속 의례 ‘쇠걸립’에서 착안한 신작 <불림>을 선보인다. 권병준, <중심에서 피어나는; 잠재태의 황금꽃>, 2025,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품. 작가 소장. 사진: 홍철기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박찬경, <만신: 만개의 영혼>, 2013, 영화 스틸. 작가 소장.

GB 커미션 선정 작가 권병준과 박찬경은 한국 무속 의례 ‘쇠걸립’에서 착안한 신작 <불림>을 선보인다. 권병준, <중심에서 피어나는; 잠재태의 황금꽃>, 2025,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품. 작가 소장. 사진: 홍철기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박찬경, <만신: 만개의 영혼>, 2013, 영화 스틸. 작가 소장.


전시 제목으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의 마지막 문장을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직접적이고 심지어 강압적으로 들리지만, 동시에 완전히 열려 있는 문장이다. 어떻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명령처럼 들리지만 방향은 제시하지 않는 명령인 것이다. 릴케의 시에서 이 명령은 하나의 파편에서 비롯된다. 머리도 팔다리도 없는 토르소. 시 안에서 이 부서진 오브제는 오히려 우리를 바라본다. 보통 우리가 예술을 바라본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작품이 시선을 역전시킨다. 이번 비엔날레는 예술을 ‘우리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만남’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변화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변화 자체를 추상적으로 찬양해서도 안 된다. 전쟁, 파시즘, 기술적 통제, 생태계 파괴 역시 모두 변화의 형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어떤 변화가 우리가 살아가고, 기억하고, 감각하고, 관계 맺고, 상상하고, 행동하는 역량을 확장하는가?’ 반대로 또 ‘어떤 변화가 우리를 소진과 고립, 침묵으로 몰아가는가?’ 나에게 변화는 목적지가 아니다. 변화는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복과 돌봄, 규율, 주의 깊은 관찰, 관계를 통해서다. 따라서 이 문장을 2026년 광주에서 다시 울려 퍼지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 문장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이제 시의 미학적 틀을 벗어나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온 역사적 경험의 강렬함 속으로 들어간다. 공교롭게도 2026년은 릴케 서거 100주년이기도 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기묘하게 느껴지는 우연이다.


GB 커미션 선정 작가 권병준과 박찬경은 한국 무속 의례 ‘쇠걸립’에서 착안한 신작 <불림>을 선보인다. 권병준, <중심에서 피어나는; 잠재태의 황금꽃>, 2025,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품. 작가 소장. 사진: 홍철기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박찬경, <만신: 만개의 영혼>, 2013, 영화 스틸. 작가 소장.

GB 커미션 선정 작가 권병준과 박찬경은 한국 무속 의례 ‘쇠걸립’에서 착안한 신작 <불림>을 선보인다. 권병준, <중심에서 피어나는; 잠재태의 황금꽃>, 2025,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품. 작가 소장. 사진: 홍철기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박찬경, <만신: 만개의 영혼>, 2013, 영화 스틸. 작가 소장.


이번 비엔날레는 역대 가장 적은 수의 참여 작가(43팀)를 선정하고, 한 작가의 여러 작업과 시간의 축적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규모를 키우기보다 밀도를 높이는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각각의 작가가 대표작 하나를 통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점’들로 이루어진 전시의 대안을 찾고 싶었다. ‘선’이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관람객이 여러 해에 걸친 작가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들의 도전과 단절, 확신과 회귀를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의 작품도 매우 강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종종 긴 선이 압축된 것이기도 하다. 더 큰 실천 속에서 응축된 하나의 순간인 셈이다. 참여 작가와 그룹의 수를 줄이면서 서로 다른 시기와 형식, 규모를 넘나들며 각자의 실천을 더욱 깊이 따라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루양(Lu Yang)의 <Doku> 작업은 여러 해에 걸쳐 이어졌다. 서로 다른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의 인물이 변화하고 증식하며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하나의 작업만 떼어 보여준다면 그 세계가 지닌 복잡성을 놓치게 된다. 단순히 규모를 줄이기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밀도와 강도를 높이기 위한 방식이었다. 더 적은 수의 실천에 집중해 속도를 늦추고 오래 머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묻고 싶었다.


남화연은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서학(西學, 가톨릭)이 박해받은 역사를 바탕으로, 신앙을 매개로 변화해간 여성의 주체성을 조명하는 커미션 신작을 제작했다. 사진: 남화연

남화연은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서학(西學, 가톨릭)이 박해받은 역사를 바탕으로, 신앙을 매개로 변화해간 여성의 주체성을 조명하는 커미션 신작을 제작했다. 사진: 남화연


오랜 시간 작가로 활동해왔고,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이번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작가로서 전시를 만들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시각이나 태도는 무엇인가?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작가가 아닌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큐레토리얼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로서 이번 비엔날레에 접근하고 싶었다. 하나의 작품을 대하듯 전시에 접근한 것이다. 기존의 전제를 시험하고, 재료와 조건에 귀 기울이며, 구조가 변화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동시에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다. 예술감독으로서 내가 다루는 재료는 동료 큐레이터와 작가들의 실천이다. 하나의 영상이나 오브제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작업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구성하는 일에 가깝다. 그런 다음에는 손을 놓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봐야 한다. 비엔날레는 단일한 진술이 아니다. 예술적·정치적·물리적·감정적·역사적 힘이 서로 작용하는 장(field of forces)이다. 할 일은 그 힘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힘과 함께 전시를 구성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하면서 어떤 형태가 출현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에서, 수많은 실천이 숨 쉬고 번성하고 대화하며 서로를 증폭시키는 세계를 구축하는 일로 옮겨간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 전반에서는 거대한 변화보다 ‘실천’을 더욱 중요한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예술은 이러한 실천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가?

실천이 중요한 이유는 추상적인 변화를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변화를 극적인 사건이나 단절, 혁명, 갑작스러운 변형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가장 깊은 변화의 상당수는 조용히 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매일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조금씩 변해간다. 이처럼 긴 시간에 걸쳐 변화를 지속시키는 것이 바로 실천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실천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일상 자체를 규율과 자기 변화의 과정으로 바꾼 테칭 시에(Tehching Hsieh)의 1년간의 퍼포먼스, 돌봄과 변화해가는 모녀의 관계를 반복적으로 다룬 아만다 헹(Amanda Heng)의 내밀한 작업, 평생 수묵화와 차, 농사, 교육을 이어온 허백련의 삶이 그렇다. 겉으로는 강렬함과 정반대로 보일지 모르지만, 허백련의 삶 역시 그 어떤 것 못지않게 급진적인 헌신이다. 예술이 마법처럼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역량은 키울 수 있다. 더 잘 감각하고 견디고 관계 맺고 상상하고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재클린 키요미 고크는 공기압과 피드백 시스템, 기계 장치를 이용해 미로처럼 펼쳐지는 공기 구조물 설치와 다채널 테크노 사운드 작업을 선보인다. 재클린 키요미 고크, <Variations in Mass Nos. 5, 6, 7>, 2024, 비닐, 블로어, 전자장치, 스피커. 협업: 비올라·바이올린, 다니엘 제이콥스; 첼로, 잭 리브스; 3D 디자인, 렛 라루. 사진: 줄리아 페더링길 이미지 제공: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재클린 키요미 고크는 공기압과 피드백 시스템, 기계 장치를 이용해 미로처럼 펼쳐지는 공기 구조물 설치와 다채널 테크노 사운드 작업을 선보인다. 재클린 키요미 고크, <Variations in Mass Nos. 5, 6, 7>, 2024, 비닐, 블로어, 전자장치, 스피커. 협업: 비올라·바이올린, 다니엘 제이콥스; 첼로, 잭 리브스; 3D 디자인, 렛 라루. 사진: 줄리아 페더링길 이미지 제공: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질문은 광주비엔날레의 중요한 정체성이자 축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광주비엔날레만의 고유함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비엔날레는 자신들이 다룰 정치적 의제를 선택한다. 하지만 광주는 그런 선택에서 출발하지 않고, 하나의 사건에서 탄생했다. 이곳에서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관한 질문은 특정 회차에서 선택했다가 내려놓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이 기관이 존재하게 된 바로 그 조건이다.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1980년 5월의 항쟁뿐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진 시간, 즉 그 사건의 결과를 안고 살아가는 오랜 과정이었다. 1980년 5월의 항쟁이 역사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면, 그 이후의 수십 년은 사건이 지나간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고 기억하고 치유하며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질문은 역사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와 맺는 관계를 어떻게 계속 변화시켜나갈 것인가에 있다. 이번 비엔날레가 역사와 대화를 나누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5·18민주화운동을 저항을 상징하는 이미지나 기호로 다루기보다, 그것을 돌보고 계속 자라게 하며 그로부터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서서히 확장되도록 하고자 했다. 광주는 단지 항쟁의 도시가 아니라 ‘실천의 도시’다. 삶을 어떻게 가꾸고 지키고 기억하고 변화시킬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장소다. 비엔날레가 ‘무엇인가’보다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광주의 역사와 시민들로부터 구체적인 영감을 얻은 순간도 있었나?

계속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했던 어느 오후였다. 오월어머니집은 5·18민주화운동의 비극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온 여성들의 단체다. 그곳에는 격자 형태의 장 안에 수많은 작은 정사각형 그림이 놓여 있었다. 그림들은 하나같이 선명한 색으로 가득했다. 사무총장은 이 작품들이 회원들이 집단 치료 세션에서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그 모습에 압도됐다. 작은 이미지 하나하나에 격렬한 감정과 삶의 경험, 비극, 회복력이 놀라운 밀도로 담겨 있었다. 이러한 경험이 전시에 직접적으로 반영됐다. 주홍 작가와 함께 제작한 322점의 그림을 선보이며 전시 기간 중 작품을 교체할 예정이다. 또한 각각의 그림에 힘을 불어넣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려 한다. 감동을 준 것은 이미지뿐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작품을 탄생시킨 기억과 돌봄, 상호 지지의 집단적 실천이 함께 담겨 있다. 그 만남은 이번 비엔날레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했다. 5·18민주화운동은 일어서서 싸운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통과 부상, 트라우마와 상실을 안고도 계속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변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호추니엔. 사진: 이일천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호추니엔. 사진: 이일천


작가로서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신화, 기억,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탐구해왔다. 이러한 관심은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큐레이팅과 어떻게 맞닿아 있나?

오랫동안 동남아시아를 고정된 지역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다공적이며 끊임없이 형성되어가는 대상으로 사유해왔다. 동남아시아는 파편과 신화, 식민주의의 역사, 유령, 기술, 정치적 투쟁, 번역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감각이 이번 비엔날레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광주에서는 질문이 확장됐다. 동남아시아에만 국한하지 않고 관계와 가능성이 펼쳐지는 장으로서 아시아를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역사와 언어, 이미지, 기억, 실천이 어떻게 만나고 서로를 변화시키는지에 관심이 많다. 아시아를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관계와 상상, 미래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여기려 했다. 작업과 이번 비엔날레가 만나는 또 다른 지점은 ‘스케일’에 대한 관심이다. 하나의 분자가 어떻게 몸과 연결되고, 몸은 가족과, 가족은 공동체와, 공동체는 풍경과 연결되며, 이 모든 것이 다시 더 큰 역사와 우주론으로 이어지는지에 관한 것이다. 허구와 현실 사이의 다공적인 관계 역시 같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전시 자체가 일종의 허구이기도 하다. 세계를 일시적으로 새롭게 배열해 만든 구조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 만남과 관계, 때로는 변화된 삶이라는 지극히 구체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관람객이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어떤 마음으로 경험하고 기억하기를 바라나?

서두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누구도 모든 것을 볼 수 없다. 우리는 애초에 세계를 완전하게 경험하지 못한다. 파편과 연속되는 순간, 놓쳐버린 순간, 반복과 되돌아옴을 통해 세계를 경험할 뿐이다. 오월어머니집의 그림들, 허백련의 차, 김선익의 사운드 작업,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안젤라 고(Angela Goh)의 퍼포먼스, 스즈키 아키오(Akio Suzuki)의 리스닝 포인트 등 오랜 시간 머물 만한 곳이 많다. ‘올바른’ 감상 방식을 정해주고 싶지는 않다. 대신 관람객에게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에 기꺼이 이끌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의 선, 리듬, 소리, 감각, 이미지, 파편을 따라가보라. 그곳에서 다른 무언가가 시작될 수도 있다. 예술과의 만남은 어느 한쪽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천천히, 감각을 열어두고, 영향받을 준비를 한 채 전시를 찾았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이해했느냐가 아니다. 무엇이 자신에게 남는지, 언제 자신을 변화시키는지, 충분한 시간을 내고 그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보낼 마음을 갖기를. 전시장을 나서면서 단 하나의 작은 질문을 가져간다면 이것이었으면 한다. “오늘, 어떤 변화가 내 안을 지나고 있는가?”


정송은 예술을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 이번 광주 비엔날레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 사이에서 사랑에 빠질 단 한 점의 작품을 찾아보려 한다.




관련기사

Credit

  • 글/ 정송
  • 사진/ 광주비엔날레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