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리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4천여 개의 오간자로 한국관을 둘러싼 작품 ‘베어링’이 있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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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리 : 정확한 애매함으로
사물, 몸의 움직임, 말을 연계한 작업을 하는 노혜리에게 삶과 죽음, 생명에 대한 사유로부터 시작한 신작 <베어링(Bearing)>은 새로운 시도다. 4천여 개의 오간자 서클로 한국관 전체를 품는 이 조각은 몸을 쓰는 퍼포먼스도, 독백도 없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관람객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뉴욕 작업실에서의 노혜리.
내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것. 노혜리가 작업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위한 작업을 할 때도 그랬다. 임시적인 해방공간 기념비가 된 한국관에서 둥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작업 자체에 대한 고민에 반 발 앞서 지금 나를 둘러싼 가장 강력한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떠올려본 것이다. 답은 가족 계획에 있었다. “최근 1~2년 사이 남편과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해 자주 얘기했거든요. 더 거슬러 오르면 아버지의 죽음이 있겠고요. 2023년부터 그 사실을 소화해 나가는 과정을 시리즈 작업으로 이어왔는데, 문득 돌아보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곧 삶을 생각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은 뒤 어떻게 기억될까?’와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같은 고민을 하게 만드니까요. 새 생명, 임신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진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죠.”
시작은 ‘bear’였다. 사실 이건 노혜리가 전작인 <캐리(Carry)>를 작업할 때부터 품고 있었던 단어다. ‘Carry a child, Bear a child’처럼, 두 단어 모두 임신, 출산과 관련된 표현에 쓰인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의 사전적 정의와 어원을 찾아 파헤치는 건 노혜리의 취미이자 특기. 작품의 제목이 된 ‘bearing’을 만난 건 ‘bear’에서 시작해 ‘ball bearing’까지 뻗어나간 뒤였다. 큰 원과 작은 원이 결합된 구조의 볼 베어링은 내부에 있는 작은 원이 다른 것과 결합되어서 바깥의 더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베니스에서의 전시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더 큰 움직임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되길 바라는 목표를 담은 해방공간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어쩌면 <베어링>이 <캐리>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한 건 <베어링>의 주재료인 오간자 서클을 보고서였다. 노혜리는 이 재료를 <캐리>에서 먼저 사용했다. 1인용 텐트의 크기와 모양을 한 <캐리>는 왁스를 입힌 오간자 서클을 손수 바느질로 이어붙여 만든 작품이다. “실제로 <캐리>와 같은 사이즈의 1인용 텐트가 있어요. 아버지와 캠핑을
할 때 그곳에 나란히 누워 있던 적이 있는데, 머리와 발이 모두 텐트에 닿아 마치 몸에 딱 맞는 관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죠. 바깥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지만 얇은 텐트 한 장 쳤다고 내부는 아주 아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자궁 속에 있는 아기는 이런 느낌일까?’ 상상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니까 저는 이미 <캐리>에서부터 둥지, 움 같은 개념을 내재화하고 있었던 거예요.” 왁스를 입힌 오간자 서클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언뜻 막을 씌운 세포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오간자 서클을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성하는 생명체로서의 물성을 가진 재료로 본다면, 둥지의 역할을 하는 <베어링>과 또 한 번 연결된다.
노혜리, <베어링(work in progress)>, 2026. © 2026 Korea Pavilion. 사진: Orlando Thompson
작품의 구체적인 형상을 떠올린 건 작년 6월이었다. 한국관 첫 답사이자 생애 첫 방문이었던 그때, 노혜리에게는 ‘해방공간, 둥지, 베어링’ 같은 어렴풋한 단어들뿐이었다. “마침내 마주한 한국관은 생각보다도 훨씬 오픈되어 있었어요. 매일 아침 광이 나게 청소를 해도 반나절 만에 낙엽과 살아 있는 생물들의 흔적으로 가득해져요. 시야가 트여 있어 눈 닿는 곳마다 초록이 있지만, 작품이 놓였을 때는 에너지가 분산될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모든 개념을 ‘안아서’ 정리해야겠다 생각했죠.”
동시에 노혜리는 이 공간이 하나의 작품이 되길 바랐다. 오랜 외교적 설득과 협의를 거쳐, 그야말로 안간힘을 써서 자르디니 내 좁은 부지에 세워진, 독특한 서사와 지리적 위치를 가진 한국관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공간을 어떤 물질로 빙 두른다는 가장 처음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나왔다. “한국관이 그렇게 넓은 곳은 아니라서 모든 공간을 두르면 내부가 너무 좁아진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충분히 비슷한 개념적 효과를 낼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지금과 같은 기역(ㄱ)자로 안는 형태의 조각이 됐고요. 저는 이런 식으로 관객의 동선을 가이드하는 설치에 관심이 많아요. 여기엔 공간 안에 있는 또 다른 작품으로 도달하는 시간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있어요. 관람객이 공간을 온전히 몸으로 감각하는 경험을 하길 원했거든요.” 결과적으로 우리가 보게 될 <베어링>의 모습은 건물 안에 폭이 150cm 정도 되는 통로의 모양을 하고 있다. 한국관에 입장한 관람객은 이 작품을 지나야만 또 다른 작품인 ‘스테이션(Station)’을 만날 수 있다.
노혜리, <Carry>, 2025, Metal, organza, paraffin, beeswax, 169x96x108cm. 사진: 김상태
둥지가 알을 품듯 <베어링>은 스테이션을 품고 있다. “둥지라는 메타포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 그 안에 있는 대상은 둥지에서의 독립을 위해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나아가 새로운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노혜리가 실제로 작업할 때 떠올린 건 사찰과 전각의 관계다. 모든 전각이 각각의 목적을 지닌 독립된 건축물이듯, 스테이션도 애도, 기억, 나눔, 수선 등 저마다의 역할이 있는 개별적인 작품이다. 모든 전각이 사찰 안에서 수행과 의식을 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면, 스테이션은 작가 자신이 살아내고 싶고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삶의 모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관을 방문한 관람객은 전각과 전각 사이를 산책하듯 스테이션 사이 사이를 거닐게 될 것이다.
<베어링>에는 몸을 쓰며 독백하는 노혜리는 없다. 그의 작업이 대체로 만질 수 있는 사물과, 자신 혹은 다른 퍼포머를 동반한 신체의 움직임, 독백이 함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뭇 다른 행보다. “전면에 나서 퍼포먼스를 하는 나는 없지만 이번 작업 역시 신체적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은 동일해요. 예를 들어 <베어링(애도하는 스테이션)>은 테이블처럼 생긴 나무 구조물인데 관람객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어요. 작업실에 온 사람들에게 테스트해본 결과, 앉았을 때 자연스럽게 취하게 되는 자세가 있더라고요. 조각이 관람객을 꽤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다는 거예요.” 사실 이 전시에는 노혜리가 아닌, 제3자의 퍼포머가 있다. ‘베어러(bearer)’라는 이름을 붙인, 일종의 수행자에 가까운 이들은 전시가 오픈되어 있는 동안 정해진 시간에 필요한 일을 한다. <베어링(기억하는 스테이션)>에서 크리스티앙 니암페타 작가의 판화 이미지를 매일 한 장씩 교체하는 것처럼, 각 스테이션에 주어진 매일의 루틴을 수행하는 것이다.
노혜리, <베어링(기다리는 스테이션)>, Paper clay, wood, fired clay, 25x50x45cm(variable). 사진: 노혜리
종합해보면 <베어링>은 분명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다르다. 노혜리는 자신의 기어가듯 작업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념적으로 연결, 발전되는 방향성은 생각하지만 그것을 큰 틀 삼아 작업하진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때그때 절실한 것에 매달리는 쪽이랄까요. 제 조각을 봐도 그래요. 재료와 형태에는 의미가 있지만, 구체적인 대상을 상징하거나 포괄적 개념을 대표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정확하게 애매하게’, 혹은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관통한다고 언급한 표현이다. 구체적이지만 무엇인지는 모를 형상을 띤 사물, 말과 몸의 움직임. 노혜리는 자신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길 바란다. 고정된 의미 대신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같은 사물이지만 어떤 말과 행동이 붙느냐에 따라 전화기가 되었다가, 봉투가 되었다가, 상자도 되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 그러니 우리는 노혜리의 다음 작업이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결코 알 수 없다. 그의 앞에 놓인 어떤 일이든 작업의 재료가 될 수 있으리라 짐작할 뿐.
고영진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초록이 무성한 여름, <베어링>을 지나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스테이션 사이사이를 거닐 때 마주하게 될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Credit
- 사진/ 이현정(인물)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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