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소르시움이 50주년을 기념하며 서울에 상륙했다
프랑스 디종의 콩소르시움과 서울 더페이지 갤러리의 예술적 동행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가장 동시대적인 ‘함께’의 예술
프랑스 디종의 콩소르시움이 서울의 더페이지 갤러리와 협업 전시를 선보인다. 벽을 점유한 아홉 작가의 낯선 작업들이 경계를 넘나들면서 역동적인 ‘추억의 궤도’를 만들어낸다.
나탈리 뒤 파스키에, Installation view of «Up Against the Walls!», The Page Gallery, Seoul, 2026. Photo: Jeon Byung Cheol.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and the artist.
더페이지 갤러리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낯선 영상이 올라왔다. 프랑스 디종에 위치한 콩소르시움 미술관(Consortium Museum)의 지난 50년간의 전시 장면들, 기나긴 역사가 30초 만에 휙 지나갔다. 일반의 잣대로는 꽤 허술하거나 불경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과거는 언제나 한 문장 혹은 훨씬 더 짧게 축약되어왔다. 누군가에게는 기억 혹은 경험하지 못했을 부재의 시간, 또 누군가에게는 삶이었을 선명한 시간은 교차하며 현재에서 만난다. 그 간극을 메울 도리는 없다. 50년 전에 존재했던 무언가가, 누군가가 여전히 생동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1977년 디종의 어느 작은 서점에서, 두 패기만만한 청년의 손에 탄생한 콩소르시움이 어느덧 50년이 됐다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건, 이들이 역사적 실체로서 건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살아남은 콩소르시움의 창립자 프랑크 고트로(Franck Gautherot)와 공동 디렉터 김승덕이 50주년 전시 «Up Against the Walls!»를 위해 더페이지 갤러리를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지금의 모습 그 자체다.
인상적인 사건 이면에는 누군가의 용기가 필연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콩소르시움 50주년의 한 순간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게 된 데에는 더페이지 갤러리 성지은 대표의 결단이 큰 몫을 했다. 매년 프리즈 서울을 전후한 이맘때는 한국 미술계의 모두가 작정한 듯 화려하게 차려입은 채 전력질주를 한다. 이 상징적이고도 결정적인 시기에, 성지은 대표는 한 발 물러서서 공간과 시간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는 단순히 ‘협업’이라기보다는 신뢰와 존중, 마음을 나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더페이지의 이번 시도는 미술계의 각 주체들이 어떻게 손을 맞잡고 공고한 편견과 경계를 함께 넘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계기로 기억될 것이다. 스스로를 ‘은둔자’라 부르는 성지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고 거의 처음으로 <바자 아트>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인터뷰에 응했으나, 실은 이조차 콩소르시움과 두 사람의 존재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다.
김승덕과 고트로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 번도 대면하지 못한 관람객들을 만나길 기대하고 있었다. 과연, 오프닝 날, 그리고 <바자 아트>와의 토크에는 미술계 종사자, 작가, 평론가, 관람객, 독자 등등 좀체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콩소르시움의 손님과 갤러리의 고객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세대도, 성별도, 활동 반경도, 콩소르시움과 인연을 맺은 시기 및 밀도마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 안에서. 김승덕과 고트로는 작가들과의 관계를 두고 “가족도 공동체도 아닌, 자유로운 정신들의 자유로운 결합”이라 했는데, 나는 이 문장이 비단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조짐은 <바자 아트> 촬영 때부터 있었다.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공동체를 욕심 내지 않으며, 서로 알아볼 수 있는 가치를 말없이 공유하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말한 바, “분자들이 서로 이끌리며 새로운 분자와 물체를 만들듯, 공기 중 어디에나 존재하는 예술의 방식”이라 할 만한 순간. 작품이 고체적 상태에서 벗어나 세상의 미학적 경험 속으로 퍼져간다는 의미의 ‘기체 상태의 예술’을 고안한 이브 미쇼도 무릎을 치며 동의할 장면이 포착됐다.
(위부터) 콩소르시움 공동 디렉터 김승덕, 창립자이자 공동 디렉터 프랑크 고트로, 더페이지 갤러리 대표 성지은.
미술관의 50주년이라 하면 방대한 역사와 아카이브를 동원한 대규모 회고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콩소르시움은 한 장소에 과거를 모으기보다 세계 여러 지역의 파트너들과 현재를 기념하는 방식을 택했고,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그 서막을 연다. 물론 시게루 반이 건축한 미술관 건물이 곧 장기간 보수에 돌입한다는 현실적인 제약도 있지만, 이들은 이런 난점마저 새롭게 해석해낸다. 관습과 관행에 얽매이는 건 콩소르시움의 방식이 아니다. 예컨대 예산이 부족했던 이들이 각지의 작가들에게 파일을 받아 드로잉 전시를 꾸린 적이 있는데, 그해 내가 본 가장 재미있는 전시로 기억된다. 파리 같은 대도시가 아닌 디종에 둥지를 틀고 하나둘 전시를 만들어왔듯, 그렇게 곳곳에서 전시 및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런 움직임은 공공미술 커미션 작업이라 불리기도, 도시 예술재생 프로그램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무대가 되기도, 로마네 콩티를 전시장으로 삼기도 했다. 2000년 콩소르시움에서 시작된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는 이후 수년간 세계를 순회했다. 전시 준비가 한창일 때 쿠사마의 별세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옛 사진과 함께 추모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예측 불가함이 우리가 전시를 하는 이유다.” 2017년엔가 <뉴욕 타임스>는 콩소르시움을 ‘예술계의 다음 큰일을 조용히 예견하는 레이더 아래의 미술관’이라는 명쾌한 제목으로 다룬 적 있다. 콩소르시움을 ‘위대한 미술관’ 리스트에서 찾을 수는 없을지언정, 세계 미술계는 문화예술의 주체로서 이들을 신뢰하고, 그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늘 예의 주시한다. 특히 콩소르시움은 당대 혁신적인 작가들을 ‘발굴’하는 안목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작가들은 작금에 가장 중요한 정치·경제·문화 이슈를 시각언어로 만들어내는 이들이고, 우리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어내는 작가를 찾아냅니다.” 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신디 셔먼, 리처드 프린스, 마우리치오 카텔란, 온 카와라 등의 (지금은) 거장들이 초기 역사를 장식하고 있지만, 작가 리스트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중이다. “예측 불가한 존재가 되는 게 우리의 모토입니다. 하지만 모토를 유효하게 유지하는 건 꽤 어렵죠. 이것은 입으로만 되뇌는 만트라가 아니라, 움직이는 것들을 의식하고 바람 속에서 모호한 생각을 나누는 하나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콩소르시움의 궤적은 서울의 관람객을 환대하는 낯선 작품들로 한결 선명해진다.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1990년생의 여성 작가 앙헬라 페라리의 활기찬 작업과 또 다른 의미의 ‘젊은’ 작가인 1931년생 이사벨라 두크로트의 담백한 종이 작업이 마주 보고 서 있다. 비비안 장의 사유적인 작업과 장-마리 아프리우의 공예적 조각이 추상과 비추상, 벽과 공간 사이에서 생생한 파장을 만들어낸다. 디자인 언어를 예술적 삶에 적용해온 듀오 M/M(파리)의 타로 포스터 작업이 공간으로 전환되는 통로를 지나면 더 매력적인 혼종의 공간이 펼쳐진다. 팝 문화와 미니멀리즘, 아방가르드와 일상의 요소를 병치하는 존 암리더의 작업과 입체와 평면, 회화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벽화, 미술 안팎의 위계와 명성을 유희적으로 비트는 실비 플뢰리의 방과 고인이 된 파트너이자 예술가 존 조르노의 퍼포먼스를 담은 우고 론디노네의 영상 작업까지, 저마다 존재감을 발산하며 추억뿐만 아니라 현재를 증거한다. 특히 내내 들려오는 조르노의 목소리, 70세 생일을 맞아 과거의 모두에게 감사를 건네는 노장의 인사가 작품들 사이, 시공간의 간극을 채우면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환기시켰다.
“존 암리더는 콩소르시움 안팎에서 20회 이상 작업했고, 실비 플뢰리와 M/M(파리)와는 안양 공공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우고 론디노네는 20주년 기념전을 함께했고, 앙헬라 페라리는 이 순간에도 우리 전시에 참여하고 있죠. 초창기에는 나이 많은 작가들, 즉 우리의 영웅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나이를 먹었고, 동시대 작가를 거쳐 이젠 훨씬 젊은 작가들과 일하고 있어요. 이들은 삶과 사랑, 죽음이 얽힌 이야기와 사적 역사를 공유하며 함께 싸워온 ‘형제 자매’ 같은 존재입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작가들과 함께 이동하고, 전시하고, 그 생각을 벽 전체로 확장하며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방식이죠. 그래서 이번 전시는 오늘날 미술의 풍요로움 혹은 관대함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갤러리 공간이 평소보다 커 보인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각자의 방식으로 벽을 점유한 작품들은 공간의 규모와 나아가 벽의 존재 자체를 달리 감각하도록 이끈다. 이 전시를 미술관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도 있었지만, 오히려 갤러리이기 때문에 벽이 배경을 넘어 공간을 변화시키는 촉매가 되는 풍경의 감흥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업 갤러리에서 벽화를 만나는 것이 시장 논리상 흔한 일은 아닌 데다, 이것이야말로 예컨대 스위스 콘크리트 아트와 공예를 구분 짓지 않으며 다학제적 시도를 해온 그들다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미술관과 갤러리의 경계, 예술과 제도의 경계, 현대미술과 장식의 경계, 시대의 경계…. “모든 예술은 그 자신의 시대에는 동시대 미술”이었고, 그리하여 이번 전시는 동시대 미술계에 팽배한 무수한 경계를 돌아보는 질문이 된다. 그저 벽 가까이에 눈과 귀를 대고 (정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답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경계는 반드시 열어젖혀야 하는 울타리”라는 이들의 말이 유용한 단서가 되어줄 것이다.
전시 제목 ‘Up Against the Walls!’는 실험적 의도를 시사하는 중의적 단서 혹은 선언의 역할을 한다. “경찰관이 피의자를 거칠게 체포하면서 겁을 주려고 소리치는 명령어인 한편 이 문장을 차용했던 1960년대 아나키스트 활동가인 벤 모리아를 기리는 제목이에요. 언제나 그랬듯, 벽은 우리에게 적인 동시에 협업자인 셈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벽이 일종의 도전이자 제약, 가능성으로 변모할 수 있는 건 바로 그곳에 벽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옛날 대표적인 커미션 작업이었던 벽화도 자율적이진 못했지만 분명한 가치가 있었어요. 시장은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흡수합니다. 물론 솔 르윗이나 릴리 반 데어 스토커도 벽 작업을 시장에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죠. 하지만 더페이지는 두려움이 없었고, 우리의 아이디어를 그들의 훌륭한 공간에서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뛰어들었습니다. 이번 협업은 직관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까지 꽤 잘 작동하는 것 같아요.” 이것이 김승덕과 고트로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다.
전시 «Up Against the Walls!»에는 장-마리 아프리우(Jean-Marie Appriou), 존 암리더(John Armleder), 이사벨라 두크로트(Isabella Ducrot), 나탈리 뒤 파스키에(Nathalie du Pasquier), 앙헬라 페라리(Ángela Ferrari), 실비 플뢰리(Sylvie Fleury), M/M(파리)(M/M (Paris)),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비비안 장(Vivien Zhang) 등 콩소르시움과 각기 다른 인연을 맺어온 9인의 작가가 함께 했다. 존 암리더, <Untitled (FS 203)>, 1988, Truck spoiler and acrylic on canvas. Canvas: 305x183cm, Spoiler: 112x164x30cm. Courtesy of John Armleder Studio. Photo: Jeon Byung Cheol.
“이번 전시가 더페이지 갤러리를 넘어 어떻게 확장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부르고뉴 지역 미술관들과 협업을 시도할 수도 있고, 어쩌면 10대 작가들만을 위한 비엔날레를 개최할 수도 있어요. 1977-2027-2077, 한 세기를 이렇게 나란히 놓은 건, 과거만큼 미래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콩소르시움 100주년에 지금 20대들은 우리 나이쯤 되어 있겠지요. 우리는 그들을 위해 우리의 노래를 틀었습니다. 예술은 그저 이름과 업적, 그리고 유산을 남기는 걸 넘어서야 합니다. 어떤 분야든 보존할 가치가 있는 실제의 경험과 축적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불멸을 향한 진정한 탐구일 겁니다.” –김승덕 & 프랑크 고트로
나는 두 사람이 보내온 전시 소개 글을 읽다가 마지막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이 전시는 물질성과 기억 사이에서 작동한다. 풍경이 된 벽은 스스로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를 꿈꾼다. 수십 겹의 페인트 아래 지워지고 다시 덮여, 수백 개의 유령 같은 기억을 품은 채.” «Up Against the Walls!»의 평면적이되 입체적인 벽에는 수많은 층위의 역사, 콩소르시움은 물론이고 더페이지 갤러리 역사도 중첩되어 있다. 그 시간은, 다른 말로 더페이지의 성지은 대표가 지난 15년 동안 조용히, 묵묵히 많은 것을 시도한 숱한 날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갤러리 사업을 시작하기 전 노트에 고민을 꾹꾹 눌러쓴 그 마음으로, 이 공간의 페이지를 직접 채워온 시간이라 해도 좋겠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얘기해요. 처음에 내가 연 페이지는 비록 촌스럽고 부족했을지 몰라도, 당신들은 더 멋진 페이지를 열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번 협업 전시의 페이지는 언제라도 기쁘게 다시 들춰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역동적인 에너지를 받아 가시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하는 날, 모든 이들이 작품 설치에 여념이 없었다. 일부 작품이 벽에 걸렸고, 입구에는 큰 크레이트가 놓여 있었다. “2년 동안 전시를 준비했어요. 작가 구성도, 느낌도 많이 바뀌었는데, 실제 보니까 훨씬 좋아요. 그래, 전시가 이래야지, 흰 벽에 작품을 걸기만 할 게 아니라, 싶어요. 과정도 그랬지만, 상상만 하던 작업들의 형태가 나타나니 너무 반가워요. 저는 작품의 실체를 확인하는 이 순간을 가장 좋아해요. 그 흥분과 희열 덕분에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승덕과 고트로가 스스로 첫 번째 관람객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만든다고 했듯, 성지은 대표는 작품이 담긴 크레이트를 두고 “뜯지 않은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 같다고 표현했다. 동의한다. 예술은 근사한 작품인 동시에 의심과 회의의 대상이고, 내가 힘껏 매달리는 이것이 실재하기를 간절히 바라거나 그럼에도 종종 실망하기에, 내 눈앞의 예술은 선물처럼 소중하다.
인터뷰 전에 성지은이라는 사람을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물론 갤러리의 행보를 통해 얻은 단서는 있었다. 종종 외부 큐레이터와의 협업을 진행해왔다는 것, 디자인·공예·고미술에도 두루 열려 있다는 것, 최근 아트페어에서 한국 작가들을 적극 소개하고 있다는 것 등등. 이는 성장일로에 있는 갤러리의 보편적 특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성지은은 그간 만나온 갤러리스트들과는 다른 보폭과 호흡으로 산다. 이렇다 할 매체 인터뷰도 없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거창한 계획 대신 엄마와 자주 찾던 영월에 검박한 미술관을 지어 하경산수와 서예 작품을 현대미술과 함께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아그네스 마틴, 로버트 라이먼, 리처드 세라 같은 아름다운 침묵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지만 개인의 취향을 갤러리의 그것으로 확대하지는 않는다. 시장을 존중하되, 시장이 목적 혹은 전부가 되는 건 경계한다. 갤러리를 ‘판매하는 곳’ 이전에 ‘만드는 곳’으로 이해한다. ‘좋은 작가’가 반드시 상업적 결과로 직결되진 않지만, 존재의 가치는 시간을 통해 결국 증명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갤러리스트가 끝까지 지켜낼 자존심은 좋은 작가, 좋은 전시를 소개하는 것이다.
우고 론디노네, <thanx 4 nothing>, 2013, Black and white film, stereo sound, 19 minutes 20 seconds, loop. Courtesy of Galerie Eva Presenhuber and Studio Rondinone.
“요즘은 갤러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예전의 갤러리는 작가와 작품만으로 훌륭한 문화 플랫폼이었지만, 이젠 그 무게중심이 달라진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다른 갤러리들의 방식을 마냥 좇을 수만도 없고, 가만 앉아서는 답을 찾을 수도 없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15년은 계획이 아니라 그렇게 서서히, 조금씩 형성된 거예요. 하지만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것들, 혹은 경험이 많아질수록 두려움도 커지더군요. 잘못된 정보를 전할까 봐, 허튼 소리를 할까 봐요. 그런 제가 전문가들과 협업할 때, 비로소 용감해지는 것 같아요. 이 분들의 재능과 능력, 경험과 취향을 전적으로 믿어요. 이런 열정을 만나면, 그동안 힘들었던 게 사라지죠. 처음엔 스스로도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이런 시간을 거쳐 많이 배우고 깨달았어요. 과연 어떤 일을 하면서 이렇게 따뜻하게 다듬어지면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지난해 콩소르시움의 두 분을 만나고 더욱 확신할 수 있었어요.”
평소 나는 ‘어떤 전시를 경험한다’는 건 전시를 만든 모두의 마음과 삶을 헤아려보는 일이라 여겨왔다. 그런 내게 이번 전시는 다른 역사,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인연을 이어가며 나름의 답을 찾고자 하는 더페이지와 콩소르시움, 적어도 동시대 예술에 관한 한 비슷한 곳을 바라보는 두 주체가 서로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로 읽힌다. 특히 성지은 대표는 타국에서 예술에 대한 신념을 평생 지켜온, 외로운 길을 꿋꿋하게 걸어왔을 ‘선배’ 김승덕을 향한 깊은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 보이기도 했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책임’을 관계에 응답하는 것, ‘존중’을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거라 하더군요. 맞아요. 그간 일하면서 맺어온 관계에 대한 책임이 저를 성장시켰어요. 이번에도 저에게 와 닿은 이 예술적인 관계에 응답하면서 기꺼이 책임과 존중을 다하고 싶어요.” 좋은 전시가 차곡차곡 쌓여 좋은 얼굴을 갖게 될 이 공간처럼, 성지은 대표가 말갛게 웃는다.
윤혜정은 콩소르시움의 두 공동 디렉터와 지난 10년 넘도록 교류하면서 ‘신나는 예술’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쓸 수 있었다. 최근 자유를 얻은 김에 디종에 다시 가보는 게 올 하반기의 목표다.
Credit
- 글/ 윤혜정(문화예술 기획사 윤원 대표,작가)
- 사진/ 이우정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지금 주목할 트렌드
#자켓, #스타일링, #셔츠, #액세서리, #트렌드, #청바지, #신발,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