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 컬렉티브 야광이 코엑스에 펼친 작업은?
2026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 야광의 작업실에서 나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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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 컬렉티브 야광(Yagwang)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며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는 일이다. 야광의 작업에서 선명하게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라져가는 시간 안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구멍 뚫린 합판 위로 라텍스 조각이 이불처럼 덮여 있다. 금속 체인이 엉겨 붙어 부식된 조각 사이, 샛노란 빛이 투과한다. 여기저기 빛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고, 두 명의 퍼포머는 분주히 몸을 움직인다. 조각 안으로 숨었다가 서로의 몸을 잇는 노끈을 팽팽히 당긴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다. 올해 프리즈 서울 페어장에 설치된 야광의 커미션 신작 <파사드 존> 앞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 광경이다. 불가리코리아가 후원하는 ‘2026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 호명된 야광은 김태리와 전인, 1990년대생 두 예술가로 이루어진 컬렉티브다. 2021년 결성한 뒤 퍼포먼스, 설치 작업과 조각, 영상을 아우르는 이들의 작업은 주로 대안예술공간에서 공개됐다. 무엇이든 라벨링하려는 예술계가 퀴어와 섹슈얼리티, 신체와 노동 같은 키워드로 실험의 궤를 잇고자 하지만, 야광의 작업은 계속해서 양태를 변모하고 있다.
2026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를 수상하여 완성한 커미션 신작 <파사드 존(Facade Zone)> 설치 전경.
작년 이맘때 도산공원에서 ‘프리즈 라이브’를 통해 야광의 퍼포먼스 <날 것의 증거>를 마주했다. 캄캄한 공원에서 탈을 쓴 여러 명의 퍼포머들이 장례 의식처럼 열을 지어 걷기도 하고, 레슬링 링 위를 올라 뒤엉키는 광경이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통상적인 현대미술 퍼포먼스보다 쇼적인 연출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두 사람이 영화의 무대미술이나 촬영 현장에서 실제 일했다는 이력을 알게 됐다.
김태리 정말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거의 땅만 보며 걸었지만.(웃음) 둘 다 미술을 전공한 뒤 이십 대 때부터 영화나 아이돌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일해왔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업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고. 전인 작가는 프로덕션 미술팀 안에서 특수 분장이나 가구 디자인처럼 미술이라 불려지는 모든 걸 다 해본 만능 엔터테이너다. 전인 바텐더로 3년 정도 일하기도 했다. 처음엔 영화 미술 전체를 맡다가 소품으로 범위를 줄여갔다. 감사하게도 작업 초반부터 친한 친구들이 계속 퍼포먼스 작업에 참여해주고 있다. 일하면서 만난 촬영 크루와 “우리 꺼 한 번 해주면 너희도 도와줄게” 하는 식으로 품앗이를 한다.(웃음) 그 관계를 유지하며 현장을 단발적으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
전업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언제였나?
김태리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5»전에 참여하기 위해 영상 작업 <다크 라이드>를 만들 때쯤이었던 것 같다. 첫 메이저 전시였다. 결심은 했는데, 사실 작업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다. 일을 해야 한다.(웃음)
작업에 전념할 시간도 부족하지 않나?
전인 작업 안에 늘 노동 현장을 다루기 때문에, 그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는 마치 툭 잘라낸 듯 매끈한 장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지저분함, 노동, 실수와 그걸 메우려는 시간이 늘 있다. 그게 야광 작업 전반에 깔린 감각이기에, 그 감각이 되게 중요하다. 그곳에 없으면서 그곳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2025년 아트선재센터가 기획하고 국제갤러리 K2에서 열린 그룹전 «오프사이트 2: 열한 가지 에피소드»에 설치된 야광의 작업(<Burned Hatch>, <Intruder>, <Piss Piece Ring>). 사진: 남서원, 이미지 제공: 아트선재센터
2021년 처음 팀을 결성한 뒤로, 레즈비언 클럽 문화(<LATE(X)>, 2022), 손톱을 파먹은 쥐 설화(<침입자>, 2024), 월미도 테마파크 귀신의 집의 아르바이트생(<다크 라이드>, 2025) 같은 다양한 모티프의 작업을 해왔다. 설치나 영상 작업을 선보일 때마다 퍼포먼스를 동반했는데 주로 ‘동시 송출 방식’을 따른다. 구체적으로 어떤 발상에서 비롯되었나?
전인 촬영장이나 클럽처럼 많은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였다가 흩어지는 그런 풍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우리의 퍼포먼스는 보통 두세 개 정도의 촬영 현장을 소환한다. 연출자 한 명과 카메라맨들이 상주하고, 각각의 카메라 시선이 모니터나 프로젝터를 통해 다른 공간에 설치된다. 관객들은 여러 공간에서 각기 다른 시점으로 실시간 퍼포먼스 영상을 접하게 된다. 김태리 현장은 계속 고정되어 있지만, 한눈에 뭐가 일어나는지 안 보이는 것이다. <날 것의 증거>라는 퍼포먼스는 <침입자>라는 영상 작업을 먼저 만들고, 그 촬영 현장을 퍼포먼스로 가져온 작업이다. 찍는 것처럼 액팅을 한 것이다. 전인 우리의 퍼포먼스를 보고 한 관객이 “굿 같다”고 표현했는데, 아마 굿이 사라진 사람을 불러오는 것처럼, 퍼포먼스가 이미 촬영이 이루어지고 삭제된 시간을 다시 가져온다는 점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레즈비언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낸 첫 번째 개인전 «윤활유: Lubricant»부터 묻고 싶다. 러시아 여성 뮤지션 듀오 t.A.T.u.에 영향 받았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나 역시 2000년대 초·중학생 시절 그들의 음악을 들었던 추억이 있다.
전인 당시 남성 중심의 퀴어 전시가 대부분이었기에, 여성과 레즈비어니즘을 대놓고 다루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 주위 여성들에게 아이콘이나 키워드는 t.A.T.u. 아니면 미국 드라마 <엘 워드(The L Word)> 일 거다. <엘 워드>의 모든 에피소드 타이틀이 ‘L’로 시작하는 것에서 착안해, 전시명은 물론 선보인 모든 작업(<Lantern>, <LATE(X)>, <Lick My Heart>)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김태리 <랜턴(Lantern)>이라는 작업은 t.A.T.u.에 관해 우리가 가진 기억을 공통 질문으로 하여 친구들에게 답변을 받은 다음 인터뷰를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구성한 것이다. 전시를 통해 여성 퀴어라는 정체성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일한 것이 아니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퀴어성이란 게 모두 저마다 다르단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야광의 또 다른 상징인 외계 생명체 같은 크리처 가면을 착용하기 시작한 건, <방문자>라는 영상 작업 이후부터다. 집에 침범한 쥐, 몸을 침범한 종양과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을 다룬 영상이다. 어떤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
김태리 2023년쯤 잠시 학업을 위해 런던에 머물렀다. 졸업 작품 준비를 전인 작가와 함께 했는데, 당시 이방인으로서 다양한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 살던 집에 쥐가 나와서 과자와 쌀을 다 갉아먹어 노이로제가 심할 때였다. 공간에 방문하고 침입하는 이미지에 관해 생각해보게 됐다. 스스로 머물고 싶어하는 공간을 계속 찾아다니는 어떤 존재에 관해서 다루고 싶었다. 전인 둘이서 촬영을 하고 영상을 만들며, 가면 안에 있는 사람의 성별을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가면은 쓰레기 봉투나 구겨진 캔처럼 주변에 있는 사물을 캐스팅해 붙여서 만든다. 광견병에 걸린 개 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양념치킨이나 용 같다는 반응도 들어봤다.(웃음)
가면을 쓴 이후 영상의 내러티브나 퍼포먼스 액팅도 과감해진 것 같은 인상이다. 본격적으로 라텍스라는 소재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였나?
김태리 그룹전 «모텔전: 눈 뜨고 꾸는 꿈»에 참여하며, 모든 작가들이 실제 모텔에 있는 방 하나씩을 배정받은 적 있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의 침대가 무척 컸는데, 더럽고 사용한 흔적이 많아서 그걸 모티프로 라텍스 조각으로 만들어본 게 시작이었다. 이후 우리 몸이 하나의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나아가, <방문자를 위한 시리즈>라는 작업을 통해 신체가 밀접하게 맞닿는 공간인 침대라는 대상을 조각으로 만들게 됐다. 전인 특수분장 일을 하며 라텍스를 접하게 됐지만, 사실 ‘페미니즘 여성 작가’로 여겨지는 계보를 보면 루이스 부르주아나 하이디 부허, 에바 헤세처럼 거장 작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재료였지 않나. 그들이 라텍스의 성질 자체를 고유하게 활용했다면, 우리는 라텍스를 어떤 상황에 놓이게 한 다음 그 풍경을 보기 위해 활용한다. 금속과 라텍스는 서로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사실 상성이 좋지 않은 관계인데, 그런 식의 작용에 관심이 있다.
Yagwang, <Raw Proof>, 2024, Performance, ring, vinyl, scissors, camera, wireless transmitter and receiver, PVC, costume, microphone, live sound performance, sound, 30’00”. Photo: Hong Jiyoung
함께 작업을 이어오며 전환점 같은 시기가 있었다면, 언제였나?
전인 두 번째 개인전을 선보일 때였다. 앞서 말한 <방문자>처럼, 어떤 공간에 누군가 들어갔을 때 침입자가 될 수도, 방문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관해 고심하던 때였다. 전시 구성을 위해 처음 조립식 링을 끌어들였다. 우리가 공간에 관한 불안을 주제로 다루다 보니, 실제 연희동이나 을지로 재개발단지에 계속해서 링 블록을 설치하고 해체하며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말 그대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웃음)
프리즈 서울 2026에서 공개한 커미션 신작 <파사드 존> 역시 라텍스와 체인, 합판 가벽으로 이루어진 조각이다.
전인 처음 6×4m 가벽이 주어진다는 조건을 듣고, “공간이 주어진다면 부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페어장 안에 가벽들이 순식간에 세워졌다가 모두 빠져나가는 광경이, 페어장의 생태와 시간이라는 것이 촬영장과 꼭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세트의 앞면을 뜻하는 ‘파사드’라는 촬영장 용어에서 이름을 따오기도 했고, 촬영용 디퓨저나 바운스 같은 조명을 활용해 임시적인 성질을 작업에 활용하고 싶었다. 제작비를 지원받았기에 재료 실험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체인 다발을 이렇게 주문한 건 처음이다.(웃음) 김태리 이전에 만든 조각들이 만들어진 공간에 침투하거나 공명하는 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공간 자체를 만들어 가져다놓아서 ‘존’의 의미를 확장하고 싶었다.
실제 두 사람이 삶에서 겪은 경험이 반영되었다는 특징 이외에 작업 주제의 스펙트럼이 넓다. 주제는 어떻게 취사선택하나?
김태리 공통된 키워드는 있지만, 우리가 그때그때 실제 몰두한 문제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공간에 관해 계속 다룬 것도 머물 집이나 전시 공간을 구하기가 힘들었던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 특수분장을 <다크 라이드>에 끌어들이게 된 건, 당시 계엄 시기였는데 “귀신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더 무서운데”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옛날에는 귀신을 아르바이트생들이 직접 연기했는데, 요즘은 기계로 다 대체됐다. 작업을 만들며, 서울랜드 귀신동굴 직원들의 과거 인터뷰 영상을 참고했다. 전인 작업 초반에는 여성 퀴어의 삶을 재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다양한 정체성의 실제 경험이나 현실을 다루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기 위해, 상상이나 비유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게 됐다. 요즘은 그 중간점을 찾아보려 한다.
‘아름다움’에 관한 야광의 정의도 궁금하다.
김태리 시각적 결과물의 선장은 전인 작가다.(웃음) 처음에는 나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도시 구석에 있는 것 같은 부분을 엄청 보여줘서. 전인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선장은 태리 작가다. 어릴 적 안산에 오래 살았는데, 내가 사는 동네의 외국인 비율이 한때 국내에서 1등일 정도로 다문화 도시였다. 길을 걸으면 파키스탄 노래가 흘러나오고, 부모님이 일하던 건물은 한때 태권도장이었다가 결혼식장이 되기도 한, 누덕누덕한 곳이었다. 어릴 땐 지저분하고 복잡한 게 너무 싫었다. 성인이 되고 다시 안산을 찾았을 때 이상한 것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게 마치 내 상태 같았다. 라텍스도 가만 두질 않고, 파이프도 터뜨리고. 무언가를 그대로 두지 않고 어떤 사건이나 문제를 만나 계속 물성이 변화해가는 지점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같다.
작업실에서 신작을 완성 중인 야광의 두 작가, 김태리(왼쪽), 전인.
야광의 정체성을 퀴어나 하위 문화로 갈음하는 시선은 어떻게 생각하나?
전인 이전에는 ‘퀴어함’이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개념으로 여겼다면, 최근에는 고민이 많은 상태다. 과연 수많은 존재들을 우리 작업이 품을 수 있을까? 모두에게 공감받고 이해받길 바라는 작업을 하고 싶은 건 아니라는 결론이다. 지금은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야광’ 그 자체를 보려고 한다. 퀴어함이 뭔지 더 알고 싶어서. 퀴어성은 정체성으로 드러내기보다 방법론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섞이는 방식이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렇게 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더 디테일해지고 싶다. 촬영장의 일을 퍼포먼스로 가져올 때, 반복되면 공회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야광’이 만들어진 지 이제 5~6년이 됐다. 긴 시간을 작업하려면, 계속 변화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야광은 어디까지 가게 될까?
김태리 작업의 레이어가 많지만, 결국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든다는 게 우리 작업의 핵심이다. 둘이 충돌하거나 회전하면서 노동과 퀴어, 정체성 같은 주제를 계속 다양한 방향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우리 작업에 대해 ‘초가시성을 통해 비가시성’을 구현한다는 평도 있다. 엄청 많은 것을 보여주다 보니 덜 보여지는 사각지대 같은 상태도 생기기 때문이다. 간단히 야광이 무슨 작업을 하냐고 질문받는다면, 인력과 척력을 원동력 삼아 계속 작업한다고 말할 것 같다. 전인 우선 10월에 경기도 미술관에서의 그룹전이 남아 있고 있고, 내년 3월에는 뉴욕에 있는 퀸스 미술관 그룹전을 앞두고 있다. 미국에 처음 가본다! 김태리 생활비가 너무 비싸서 약간 걱정이긴 한데. 또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불상과 피카츄 인형이 함께 놓인 야광의 작업실에서 그간의 궁금증을 해소하며 환대의 시간을 보냈다. 작업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아티스트의 홈페이지(ya-gwang.com)를 추천한다.
Credit
- 글/ 안서경
- 사진/ 이소정(인물)
- Wecap Studio(설치 전경)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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