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부산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예술가, 방정아

지척에 바다가 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짭짤한 내음이 난다. 올해 아트부산에서 만나게 될 세 명의 부산 작가 방정아, 김도플, 김은주의 작업실은 그런 곳이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6.05.22

부산에서 그리다


지척에 바다가 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짭짤한 내음이 난다. 올해 아트부산에서 만나게 될 세 명의 부산 작가 방정아, 김도플, 김은주의 작업실은 그런 곳이다.


방정아

방정아의 회화 속 일렁이는 선의 형상들은 우회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현실을 또렷이 직시한다. 고향 부산의 환경 문제부터 전쟁, 분단 같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가의 시선 속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과 유머가 스며 있다.


하퍼스 바자 작업실이 가파른 언덕에 자리해 있다며 몇 차례 당부하셨죠.

방정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작업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12년 전 좌천동 주택가에 작업실을 마련할 무렵, 불편하다고 말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지금도 이사할 생각이 없어요. 큰 작업을 싣는 운송 차가 못 들어와서 아래에 새 공간을 두었죠. 여기는 사랑방처럼 쓰는 곳이에요. 동료 작가들 전시도 열어주고요. 집에서 이곳까지 버스를 타고 30~40분 걸리는데, 내려서도 야산 같은 길을 좀 걸어야 해요. 매일 달라지는 은행잎도 들여다보고. 전날 오염됐던 마음이 세탁되고 치유되는 느낌이 들죠. 그 여정도 제 작업의 과정이에요. 그리는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이유를 다시 상기시키죠.

하퍼스 바자 작가 방정아를 떠올리면 전시장을 메우는 대형 걸개그림이 대표적이죠. «올해의 작가상 2021»에서 선보인 작업들은 물론, 지난해 아트부산에서도 페어장 한가운데 얇은 천으로 이루어진 걸개 작품을 커넥트 섹션으로 전시한 것처럼요. 최근 서울 뮤지엄 헤드에서 열린 2인전 «파리»에서는 회화를 야외 수조 안에 과감히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방정아 장렬히 전사하는 걸로.(웃음) 수조에 까치, 비둘기 같은 새들이 와서 물장구를 치는 것도 재미있고 가끔씩 고양이가 목욕을 하러 들어가기도 한대요. 그림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상하면 상하는 대로. 모든 걸 과정이라 생각하고 허용하기로 했죠. 처음 작업을 민중미술 양식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걸개그림이 제겐 익숙해요. 요즘에는 스스로를 ‘회화적 설치 작가’ 혹은 ‘설치적 회화 작가’, 이렇게 소개하고 있어요. 행잉이 보기엔 단순해 보일지몰라도, 공간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장소에 따라 적용하는 방법이 굉장히 달라져요. 공간에 따라 작업을 배치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고 있죠.

하퍼스 바자 지금 작업 중인 신작도 마찬가지죠. 바다, 사찰 등 고향 부산에서 영향받은 상징을 자주 선보여 왔는데, 이번엔 물고기 세 마리가 전면에 등장하네요.

방정아 제목은 <고개 바짝 든 도다리>. 아트부산 페어장의 4m 벽 크기에 맞춰 그리고 있어요. 위에는 방어와 도미, 맨 밑에 고개를 딱 꺾은 애가 도다리예요. 원래 바닥에 납작 숨어 있는데, 어느 날 횟집 수조 앞을 지나는데 고개를 들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딴지를 거는 듯한 태도가 통쾌해 보이기도 하고. 엄연한 생명인데 횟감으로 이틀 안에 죽는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죠. 요즘 우리는 지나치게 잘 먹잖아요. 회를 먹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니 스스로 웃기기도 하죠. 그래도 작가는 삶을 이상하게 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정치인처럼 언행일치가 되지 않더라도, 작품으로 떠들고 말할 수 있는 존재랄까.

하퍼스 바자 올해 다양한 그룹전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에스더쉬퍼 갤러리에서 열렸던 «21세기 정물화»에서 레오퍼드 패턴 가방과 수석을 그린 정물화 <신경 쓰이는 관계>를 보고, 인물이 없는 작가 방정아의 회화가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방정아 가만히 있는 사물들이 마치 서로 견제하는 듯하죠. 지난해 홍콩 아트센트럴에서 맥화랑과 선보인 <서로 신경 쓰이는 관계>라는 작업이 먼저였어요. 두 개의 거대한 한라봉이 마치 중국 대륙과 홍콩의 관계 같았죠. 이 세계의 관계는 항상 균일하지 않고 한쪽으로 쏠려있기 마련이죠. 이해와 몰이해의 연속인 인간관계일 때도 있고, 거대하게 펼쳐보면 전쟁일 수도 있고. 인간은 서로 다르고, 그 안에서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늘 달라질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관계성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올해의 작가상 전시 당시, 부산에 주둔한 미군의 생화학 체계 프로그램 ‘주피터 프로젝트’를 다룬 것처럼 거시적인 관계를 드러낸 작업 위주였다면, 최근 작업들은 보다 일상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방정아 작가로서의 변별성을 위해 특정 부분이 부각된 점이 있죠. 무게감도 느꼈던 것 같고요. 저는 사실 물컹하고 말랑한 사람이거든요. 어떤 특성을 기억해주는 건 감사하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자꾸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야 제 스스로 작업을 이어가며 고꾸라지지 않고,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호기심이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아서 학생 때는 민중미술을 함께하던 동료들에게 정체가 뭐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수모를 당하기도 했어요. 화이트 큐브 전시장에서 전시하는 걸 일종의 배반 행위처럼 여기던 때였는데, 26살에 첫 개인전을 열고 ‘자기연민에 빠진 신파주의’라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여성의 고통을 담은 회화를 그렸거든요. 당시 민중미술은 형식적인 측면에 완고한 부분이 있어서, 민족주의적인 특성을 복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어요. 그 점도 좋았지만, 애니메이션은 물론 다른 현대미술의 사조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나중에 대학원에서 영상 디자인을 배우기도 할 정도로요.

하퍼스 바자 최근에는 정물화와 수영장, 정원 속 인물 등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포착한 회화를 그리고 있죠. 올해 아트부산에서 선보이는 작은 회화들처럼요.

방정아 <그의 마지막 정원>은 작업실 근처에 있는 어느 집 할아버지를 보고 그린 그림이에요. 이 동네는 부산에서 부유하지 않은 동네에 속하는데, 할아버지 집 마당에는 수국도 많고, 바다도 보이고, 그 앞에서 꽃을 보는 사람이 어느 유복한 집보다 훨씬 풍요롭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렁이던 너희>는 호텔에서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풀장에서 한참 즐겁게 셀카를 찍는 20대 여성들을 보다가, 굴절된 물결에서 막막하고 복잡했던 나의 20대가 떠올라 그린 작업이에요. 제 20대에는 아름다운 청춘은 전혀 느낄 새가 없었는데, 제가 본 광경 이면에도 일렁이고 불안정한 마음이 있겠죠.

하퍼스 바자 1980년대 학부 시절 민중 미술을 접했고, 이후 고향 부산에 내려와 긴 시간 지역에서 작업을 이어왔죠. 다시 부산이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방정아 1992년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다시 왔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지역 운동에 헌신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민중운동의 흐름이 바뀌던 즈음이었어요. 통일, 노동을 외치다 점점 세분화되어 지역과 여성 운동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이 스며들 때였죠. 거대한 포부를 안고 부산에 내려왔는데,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갑자기 저항할 거리가 없어진 거예요. 예술을 하기 위해 꼭 이런 방식밖에 없을까. 내 방식대로 ‘내 나름의 리얼리즘’을 구현해야겠다. ‘지금, 여기’는 매일 다르니까 그릴 거리가 무한했어요. 리얼리즘이라 하면, 흔히 재현주의처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곤 하죠. 제 작업은 모두 형상이 있고 우리 삶을 그대로 그리지만, 점점 내용이 모호한 게 많아지고 있어요. 알 것 같다 싶다가도 모르겠는. 형상이 그 자체를 따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퍼스 바자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그리는 행위 자체를 놓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방정아 다른데 관심을 두다가도, 다시 그림으로 돌아오면 또 나아갈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10년 전부터는 지역 작가들과 함께 부산의 여러 가지 현안에 관해 소규모로 예술 행동을 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얼마 전 전쟁으로 인해 이란에서 희생된 초등학생 아이들을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열기도 했죠. 조직은 아니에요. 조직을 만드는 순간 고루해지거든요.

하퍼스 바자 1992년 부산으로 돌아올 무렵 꾸던 꿈이 이루어진 거네요.

방정아 엄청난 시간이 지나, 상당 부분 이루어진 것 같네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방법을 찾다가 매몰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형식 때문에 지쳐 목적에 다다르지 못할 때도 있고요. 지금은 틀 없이, 하고 싶은 이슈에 자유롭게 빠졌다 들어갔다, 하고 있어요.(웃음)

하퍼스 바자 지난해 개인전 «물불 안 가리는 사람»의 전시 서문에 쓰인 작가 노트가 기억나요 “물도 좋고, 불도 좋다.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는 말인가”라는 문장을 첫 줄에 쓰셨죠.

방정아 서로 다른 성질이 충돌하고 섞이는 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같기도 하고. 요즘엔 주역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경계를 절대 하나의 선으로 정할 수 없다는 이치에 관해 공부하는 중이죠. 그림에 관해서도 그런 유연한 태도로 바라보고 싶어요.

Credit

  • 에디터/ 고영진
  • 사진/ 영배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이 기사엔 이런 키워드!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