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디 엘-사예가 차학경, 두 예술가가 겹쳐지는 전시가 열린다.
스페이스K에서 작가 맨디 엘-사예와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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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목소리
2026년 서울의 한 전시장에서,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와 차학경이 겹쳐질 때. 쪼개지고, 가려지고, 흩어졌던 목소리가 드러나고 엮인다. 점차 또렷해진다.
붉은색 라텍스를 덧입힌 전시장 바닥 위에서, 맨디 엘-사예.
이번 개인전 «테레사, 이후(For Theresa)»에서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 ‘테레사 학경 차’를 전면에 드러냈죠. 처음 그를 알게 된 건 언제였나요?
6년 전쯤 코맥 매카시의 처절하고 어두운 소설을 읽고 있을 때였어요. 함께 있던 필리핀 태생 큐레이터 르난 라루안이 차학경의 글을 읽어보라고 권하더군요. 그 무렵 저는 ‘신체화된 글쓰기’, 즉 신체의 감각을 글쓰기에 담아내는 방식에 빠져 있었기에, <딕테>를 읽자마자 강렬하게 매혹되었죠. 파편화되고 단절된, 언어와 정체성에 관한 글과 제 삶이 공명하는 지점이 많았어요.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어머니와 팔레스타인계 아버지 사이에서 자랐지만,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아랍어, 말레이시아어, 중국어 세 가지 언어를 모두 잊어버린 상태였거든요. 충분히 서양화되지도, 그렇다고 아랍과 중국에 가깝지도 않은 존재로 살아온 제게 차학경이 제시한 신체가 스스로 말하기를 거부한다는 개념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죠. 역사적인 동시에 개인적이며, 시적이면서도 신체적으로 와닿았기에, 작업에 그 방식을 차용하고 싶었습니다.<span style="font-size: inherit;">
당신의 다문화적인 배경을 떠올려보면 자연스럽게 <딕테>에 이끌렸으리라 짐작해요. 차학경은 문학과 영화, 행위예술과 설치 작업을 넘나든 디아스포라 작가였고, <딕테>는 1982년 그가 살해당하기 몇 달 전 남긴 유작이죠. 여담이지만 한국에서도 재작년 이 책이 20년 만에 재출간돼 화제를 모았습니다. 한 작가의 작업에 이렇게까지 영향받은 적이 이전에도 있었나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방식은 제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방법론이에요. 몇 해 전부터 라텍스를 활용한 작업에 팔레스타인 출신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를 반영하고 있죠. 그는 다중 언어를 쓰고 아랍의 전통적 시인들과 다른 방식으로 시를 쓰는 작가예요. 차학경이 <딕테>에서 그랬듯이 일반적인 문장 구조를 파괴하고 해체하죠. 이들의 글을 읽다 보면 시공간이 오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제 작업은 줄곧 ‘혼종성’과 연관되어 왔는데,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 역시 중동과 미국의 전쟁이나 시위와 관련된 뉴스 이미지는 물론, 앞서 언급한 이들이 쓴 텍스트의 파편을 결합하기도 해요. 책 속 “서구화를 통해 걸러지고 편집된 냄새가 난다.”라는 표현을 특히 좋아해요. 예술 역시 그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항상 이런 방식으로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구조가 됩니다.
그 점이 스스로를 ‘콜라주 아티스트’라고 칭하는 이유일 테고요. 이번 전시 공간이 공연 무대처럼 각각의 챕터로 나뉜 것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초입에 들어서면, 흰 바탕 벽에 대표작 <넷 그리드> 연작이 걸려 있죠. 벽을 지나면 한편에 서재와 책장을 연출한 공간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영상이 투사되며 <딕테>의 구절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쓰여 있습니다. 이어서 전시장 맨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치 제단 같은 공간에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세계의 명화>가 있죠. 어떤 흐름을 의도했나요?
처음부터 이 전시는 제 방식대로 차학경의 작업을 풀어낸, 또 다른 형태의 회고전에 가까울 거란 걸 직감했어요. 실은 러브레터가 되길 바랐죠. 전시의 흐름을 하나의 시퀀스처럼 여기진 않아요. 의도적으로 서사를 부여한 구조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 오히려 작업 과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방식에 가깝죠. 차학경의 글이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처럼, 전시의 다양한 맥락도 그렇게 다가서길 바라요. 모든 작업이 개인의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universal) 이야기가 되었으면 해요. 저는 종종 책을 뒤에서부터 앞으로 읽는데, 그 방식도 괜찮을 것 같네요.
Mandy El-Sayegh, <세계의 명화(발화)>, 2026, Oil and acrylic on canvas and linen with collaged and silkscreened elements, 210x150x4.5cm.
Mandy El-Sayegh, <세계의 명화(정본)>, 2026, Oil and acrylic on canvas with collaged and silkscreened elements, 212x164x4.5cm.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서재 공간에 오래 머물렀어요. 전쟁이나 종교, 고지도 같은 상징을 통해 거시적인 맥락으로 와닿던 당신의 작업이 좀 더 친밀하게 느껴졌고요. 수면보조제와 메즈칼같이 실제 런던 작업실에서 가져온 사물이 캐비닛에 <체화작용(Metabolism)>이라는 작업으로 진열되어 있고, 책가도에서 영향받았다는 커다란 책장에는 책과 오브제가 불규칙적으로 놓여 있죠. 그중 일부는 동묘구제시장에서 발견한 것이라고요.
무의식으로 저를 이끌고 환기하는 사물을 가히 광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수집해요. 의도하고 무언가를 고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독일에서도 멕시코에서도, 어느 나라에서든 큐레이터와의 대화가 끝나면 리서치를 위해 항상 그 나라에서만 볼 법한 사물을 구하기 위해 플리마켓에 갑니다. 단, 아랍 문화권 사람들은 새 상품을 좋아해서 주로 지인들의 집을 들러 물건을 모아요. (웃음) 동묘는 이전에도 몇 차례 가본 적 있는데, 이번 리서치를 통해 초입에 자리한 서점에서 흥미로운 서적을 발견했어요. <세계의 명화>라는 책이었는데, 표지에 인쇄된 고전 회화 속 나체로 응시하는 여성의 눈이 한국어 제목과 같이 병치된 모습(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그랑드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이 제겐 또 다른 ‘역사’처럼 느껴졌죠. 그 장면에서 권력의 불균형을 느끼기도 했고, 영국으로 이주한 뒤 혼혈 이주민 친구들 사이에서도, 백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울리지 못했던 제 유년 시절도 떠올랐어요. 그 시절 린제이 로한 같은 여성들이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는데, 표지를 보고 왜 그 기억이 떠올랐는지 몰라요.(웃음) 나아가 백인 중심주의적이라 행복하지 못했던 미술학교 시절의 기억까지 상기시켰죠.
책의 표지가 그토록 수많은 기억을 떠오르게 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좀 더 직접적으로 묻자면, 책과 동명의 신작 <세계의 명화>를 완성하며, 차학경과 표지 속 회화를 어떤 방식으로 결합했나요?
영국 사회에 적응하려던 시간은 제게 ‘시퀀스의 단절’처럼 느껴져요. 라캉의 ‘거울 이론’에 빗대보면, 자라오면서 제가 살아온 문화적 배경 안에서 저는 제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이 없다고 느껴왔죠. 망명과 이주를 경험해온 아버지는 자주 편집증 상태를 겪으셨고, 부모님 두 분 모두 제게 어떤 역사를 깊이 들려준 적이 없었거든요. 때론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가 없었기에, 제 자리를 찾기 위해 항상 해머스미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책에 완전히 몰두해 몇 시간이고 머물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죠. 작업의 기반이 되는 해부학, 지리학, 정신분석, 철학에 관심을 갖게 해준 장소이고요. 훗날 예술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피터 도이그 같은 구상 회화가 하나의 흐름이었지만, 왜 우리가 어떤 기준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왜 그게 가치 있다고 느끼는지 제대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주 추상적인 드로잉을 시작했고, 그 과정은 캔버스라는 공간 안에서 최소한의 자기 흔적과 제가 인식한 시간을 남기는 작업이었죠. 결국 저는 역사라는 게 뭔지 제대로 알고 싶었어요. 단절된 제 시간 속에서, 어떤 언어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예술을 통해 존재를 겨우 표현하는 시간은 ‘의미의 결여’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방식이었죠. 저는 그런 시도가 <딕테>의 방법론과 유사하다고 여겨요.
andy El-Sayegh, <화이트 그라운드 (사랑 안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하다)>, 2023, Oil and acrylic on canvas with collaged and silkscreened elements, 235x225x4.5cm.
Mandy El-Sayegh, <화이트 그라운드 (배신당한)>, 2023, Acrylic on canvas with collaged studio debris, 235x225x4.5cm.
이번 전시의 소개글에 당신의 작업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제도와 분류 체계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배제해 왔는지를 질문한다”는 문장이 쓰여 있어요.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네요. 개막 직전까지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라텍스를 덧바른 후 색을 입히며, 붉은 라텍스 바닥을 보수하고 있었죠. 작업에 자주 쓰이는 라텍스와 실크 스크린 같은 재료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나요?
넓은 전시 공간을 떠올렸을 때, 층고가 높은 안쪽 공간은 불교의 사원, 아시아 아즈텍 문명의 구조를 참조했어요. 1990년대 RPG 게임 중 댄 플래빈의 소설처럼 피라미드를 세우는 게임이 있거든요. 바닥을 붉은색 라텍스로 칠하는 작업은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시기에 시작했어요. 당시 전시 제목은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 ‘A rose is a rose is a rose’에서 차용했죠. 피를 시적으로 우회해 사용한 표현이었어요. 저의 중국계 배경을 살펴보면, 붉은색은 부와 길운을 의미하기도 하죠. 끔찍한 상황에서도 축복을 빌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으려는 시도이기도 해요. 라텍스라는 재료는 쉽게 변형되기에, 바닥에 피부처럼 사용하기 적합하죠. 벽면에는 일제시대 한국의 고지도와 호랑이가 그려진 민화 같은 원천 자료를 일종의 평면화처럼 맥락에 맞춰 조합했어요. 그 사이 202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의 벽을 기반으로 제작했던 회화 시리즈에서 따온 이미지가 패치워크처럼 결합되기도 했죠. 아트 바젤 파쿠르에서 선보인 작업과 7년 전 작업, 이번 한국에서 새롭게 엮은 이미지를 재봉틀로 결합하기도 했어요. 다른 시간대가 캔버스 위에서 포개져 서로 말을 걸길 바랐죠.
색채를 고를 때는요? 패치워크처럼 이미지를 조합할 때 각각의 다른 구획처럼 색이 나뉘기도 하죠.
처음엔 색 조합을 직관적으로 정하다가, 사람들이 계속 물어봐서 컬러 휠을 사서 공부하게 됐어요. 보통 보색을 25%, 강조할 색은 5% 정도만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걸 완전히 뒤집어요. 강조할 색을 70% 정도 쓰고, 보색을 25%, 그리고 나머지만큼만 무채색을 사용해요. 그래서 작업이 굉장히 밝고 밀도 있게 보이죠. 동남아 국가에서 자주 보이는, 특유의 풍부한 색감에서 오는 감각과 유사하고요. 영국에선 그걸 ‘이국적’이라 여기죠. <버닝 페이퍼> 연작에 쓰인 금박 장식은 중국 도교 사원에서 제의를 지낼 때, 지폐 형태의 금색 종이를 쓰는 걸 보고 활용했어요. 문화 간의 미묘한 색 차이를 관찰하는 걸 즐기죠.
‘신문’과 ‘그리드’라는 재료와 상징 역시 작업에 줄곧 등장해왔죠. ‘신문’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 아랍어 서예 연습을 할 때 쓰던 재료이고, ‘그리드’는 조산사인 어머니가 자주 쓰던 붕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인상 깊어요. 두 요소를 꾸준히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버지는 신문 위에 캘리그래피를 정성 들여 쓰고 그걸 미련 없이 버리셨어요. 그건 ‘가치’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죠. 흔히 “오늘의 뉴스는 내일의 휴지다”라고 하잖아요. 신문은 시간의 기록, 어떤 순간성을 드러내는, 덧없음을 끌어올리는 재료라는 게 매력적이에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지역적 집단성을 반영한다는 점도요. 각 나라의 신문을 꼭 작품에 활용하려 하죠. 사람들이 작업을 읽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반면 그리드는 언어가 달라도 보편적인 연결성을 부여해요. 어떤 그리드든 미적이고 중립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죠. 그래서 그 안에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요소를 넣기에 적합하죠. 공간, 시간, 나라가 달라져도 쉽게 수용되는 다재다능함이 있어요. ‘이동’과 ‘번역’에 용이하달까요? 자세히 보면 어떤 그리드 속에는 팔레스타인 전통 문양인 케피예 패턴이 추상화된 형태로 녹아져 있어요. 그 옆에는 아까 말한 중국의 금박이 덧입혀져 있죠. 한때 팔레스타인 이슈를 자주 다루니, 아버지께서 어머니 쪽의 기호를 사용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지난 로테르담 전시에서도 ‘엘-사예’라는 제 아랍권 성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선입견을 가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피드백도 있었고, 이따금 아랍 문화에 관해 더 영리하게 말해야 한다는 외부 조언을 받기도 하죠.
자주 활용하는 신문 이미지 중 하나는 안야 테일러 조이의 티파니앤코 광고와 팔레스타인 전쟁 소식이 보도된 <파이낸셜 타임스>죠. 전시에서도 여러 연작을 볼 수 있고요.
전쟁이 발발하고 이틀쯤 후 발견한 신문이었는데, 가장 고가의 1면 광고와 같이 배치된 게 하나의 완성된 콜라주이자 ‘레디메이드’ 작품 같다고 느꼈어요. 당시 틱톡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멧 갈라에 등장한 그녀와 전쟁 장면을 교차한 밈이 돌아다니고 있었죠.
1970년대 팔레스타인 무예가 공동체와 아버지에게서 영향받은 설치 작업 <심리적 자기 방어> 앞에서, 맨디 엘-사예.
예술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직업을 택했을 것 같아요?
전업 예술가가 되기 전, 저는 언어장애(non-verbal)를 앓는 청년들을 돌보는 돌봄사로 오래 일했어요. 앞서 말했듯 조산사로 일해온 어머니가 몸이 아픈 아버지를 오래 간호하셨기에 ‘몸’에 관심을 두는 게 익숙했죠. 때론 청년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단, 몸과 의사소통과 관련해 다리를 놓는 일이라는 점에서 제 존재가 향하는 방향과 일치했죠. 한때는 정신분석가가 되고 싶어 시도도 해봤지만 중립적으로 분석하기엔 제가 너무 꼬인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웃음) 한 발 물러서서 대상을 바라봐야 하는데, 저는 너무 몰입하는 사람이거든요. 아마 향수 제조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향기는 바로 기억으로 직결되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감각을 깨우니까요. 더 알아보고 싶은 분야예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가자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T.S. 엘리엇을 읽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읽고 위안을 얻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 점이 기억에 남아요. 누군가는 당신의 작업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해독하려 하기도 하죠. 시시각각 역사가 새롭게 쓰이는 소란한 세상 속에서 비워내기 위해 명상을 하기도 하나요?
제가 ‘얼마만큼 정치적인지’ 자주 질문 받곤 해요. 붉은 바닥을 두고 피와 전쟁의 의미에 관해 묻고요. 저는 제 방식대로 처리할 뿐이에요. 언제나 제 상태에 진실하고 싶지만, 감정적이지 않으려 하죠. 명상을 시도해 봤는데 제겐 잘 맞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명상 방식은 너무 극단적이거든요. 특정한 삶의 방향을 강요하며 비판적 시각이 없죠. 만약 비판적 관점과 함께 할 수 있는 명상이 있다면 시도해보고 싶네요.(웃음) 시에 관한 답은 “시를 쓰려면 새 소리를 들어야 한다, 새 소리를 들으려면 전투기 소리가 사라져야 한다”는 문장과 함께 언급했어요. 명상도 마찬가지죠. 명상하려면 충분히 비어 있어야 하고, 모든 걸 진정시킬 만큼 차분해야 하며, 현재에 머물러야 해요. 역사도, 미래도 없어야 하죠.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지금 제 시선에는 9m 높이의 벽 위에 금박으로 감싼 추상화 한 점이 보여요.
2023년 전쟁 소식을 듣자마자 만든 첫 작품이에요. 판매용은 아니고 작업실 가장 높은 곳에 두며 제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는 작품이죠. 왜 내가 작업을 하는지 상기시켜요. 저는 순수 추상 작업을 거의 하지 않는데, 제 작업 중 거의 유일하죠. 80살이 되면 아마 추상 작업을 하고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럴 여유가 생긴다면요.
※ 맨디 엘-사예 개인전 «테레사, 이후(For Theresa)»는 스페이스K 서울에서 6월 21일까지 열린다.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전시장에 놓은 책상에 앉아 <딕테>를 펼쳐두고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작가의 말에서 최근 들은 어떤 팟캐스트보다 흥미로운 지적 자극을 받았다.
Credit
- 사진/ 장정우,스페이스K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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