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지하철 정거장으로 향한 샤넬
샤넬 2026 공방 컬렉션을 목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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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2026 공방 컬렉션은 뉴욕의 오래된 지하철역을 잠시 다른 시간대로 바꾸어 놓았다. 일상의 가장 거친 표면을 품은 그 공간 위에서 마티유 블라지는 쿠튀르의 섬세함과 도시의 생동감을 한 장면처럼 겹쳐 보여주었다. 플랫폼을 스쳐 지나가는 실루엣들은 마치 뉴욕이 품은 수많은 얼굴을 다시 조명하듯 우리가 잊고 있던 스타일의 기쁨과 관찰의 감각을 되살려냈다.
2025년 12월 2일 밤, 뉴욕 캐널 스트리트 인근 보워리(Bowery)역. 폐쇄된 지하철 플랫폼에 목재 벤치가 놓였고 그 위에 틸다 스윈튼과 에이셉 라키, 크리스틴 바란스키가 앉았다. “문이 닫힙니다. 뒤로 물러나 주세요.” 익숙한 뉴욕 지하철 안내 방송이 울렸다. 마티유 블라지의 첫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컬렉션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열차에서 모델들이 내리기 시작했고 순간 플랫폼은 마법처럼 런웨이로 변했다. 이번 공방 컬렉션은 장소 선택부터 의미심장했다. 샤넬은 파리 그랑 팔레나 유럽의 화려한 리조트에서 쇼를 열어왔다. 심지어 칼 라거펠트의 마지막 메티에 다르는 201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렸다. 그러나 블라지는 2.9달러만 내면 누구나 탈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공간을 택했다. 학생과 혁신가가, 10대와 노인이, 정치인과 버스커가 같은 플랫폼에서 교차하는 곳. 블라지는 이렇게 말했다. “뉴욕 지하철은 모두의 것입니다. 신비롭고도 멋진 만남이 가득하고, 팝 문화의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충돌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갈 길로 향하는 곳이죠. 영화 속 이야기처럼,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 속 주인공입니다.” 그의 말대로, 이 지하철 플랫폼은 뉴욕의 축소판이자 동시에 패션 자체의 은유였다. 끝없이 움직이고, 늘 무언가 되어가는 중이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 곳. 매 모퉁이마다 펼쳐지는 드라마가 있고, 다음 순간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매력을 품은 그런 곳!
뉴욕과 샤넬의 인연은 1931년으로 거슬러 간다. 가브리엘 샤넬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경영자 새뮤얼 골드윈의 제안으로 영화 의상을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그러나 정작 샤넬에게 영감을 준 건 할리우드가 아니었다. 파리로 돌아가기 전 뉴욕 다운타운에서였다. 거기서 샤넬은 자신의 디자인을 복제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봤다. 상류층이 아닌, 평범한 여성들이 샤넬 스타일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오리지널이 아닌, 저렴한 복제품. 어떤 디자이너에게는 모욕으로 여겨질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샤넬은 웃었다. 1931년 저널리스트 재닛 플래너가 <뉴요커> 기사에 기록했듯, 샤넬은 그 ‘카피스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일종의 무료 광고(publicity)라고 여겼다. 프랑스식 정제된 취향, 오트 쿠튀르의 배타적 고급함과는 정반대의 태도였다. 그러나 바로 그 투지, 그 비즈니스 감각, 그 민주적 감수성이 오베르뉴 시골 소녀를 세계적인 쿠튀리에로 만들었다. 샤넬은 자신의 옷이 소수의 특권층만이 아니라 거리의 평범한 여성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렇게 그는 유럽으로 돌아왔고, 그 경험은 샤넬이 뉴욕을 사랑하게 된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이번 공방 컬렉션 중 스팽글로 장식된 ‘I ♥ New York’ 티셔츠가 트위드 수트 안에 입혀져 나왔다. 이 장면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한다. 샤넬이 1931년 다운타운에서 보여준 그 태도, 그리고 라거펠트가 2014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바로 그라피티 디테일이다. 고급과 대중, 파리와 뉴욕, 진지함과 장난기! 블라지는 그 모든 이분법을 한 벌의 옷 안에 녹여냈다. 이번 컬렉션에는 곳곳에 샤넬식 유머가 심어져 있다. 마치 칼 라거펠트 시절 샤넬처럼! 그 시절 샤넬은 팝적이고 자기풍자적이면서도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은 좀 더 보수적이고 단정한 방향으로 흘렀다. 블라지는 그 시절 유쾌함을 되살려 냈다. 만화 같은 눈이 그려진 투톤 슈즈, 강아지 프린트 룩, 무당벌레 장식. 굴 모양 클러치 안엔 진주가 숨겨져 있고, 원숭이와 사과 모양 액세서리는 타임스퀘어 기념품 가게에서 팔 법한 것들이었다. 물론 공산품이 아니라 구센 금세공 장인이 공들여 만든 만든 유머와 위트를 덧칠한 작품이다. 여기에 슈퍼맨 코스튬을 연상시키는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니트가 체크 재킷 아래로 살짝 드러났을 땐, 마치 평범한 옷 속에 슈퍼맨 수트를 숨겨둔 클라크 켄트처럼 보였다. 레오퍼드 프린트 역시 도처에 등장했다. 르사주 공방에서 손으로 짠 슬럽 텍스처의 레오퍼드 트위드 수트, 메종 미셸의 모자 장인들이 만든 레오퍼드 머리 장식, 핸드 페인팅된 레오퍼드 튤립 스커트까지. 레오퍼드 시리즈는 하나같이 유쾌하면서도 우아했다.
샤넬 메티에 다르 역사 속에서 가장 충격적인 오프닝 중 하나로 꼽힐 이번 오프닝 룩은 캐멀 컬러 쿼터 집업이었다. 라이트 워싱 데님, 진주 목걸이, 체인 백 그리고 트위드 재킷은 가방 위에 던져져 있었다. 우리가 실제로 옷을 입는 방식 그대로다. 아침에 서둘러 나서며 재킷을 가방에 걸치는, 지하철에서 스웨터를 허리에 묶는, 그런 일상의 제스처들. 이는 새롭게 전개되는 샤넬의 언어였다. 클래식은 여전히 클래식이지만 이제 ‘편안함’과 ‘무심함’ 또한 샤넬의 문법이 되었다는 선언이었다. 데님 역시 압도적으로 자주 등장했다. 물론 단순한 데님은 아니었다. ‘란제리 데님’이라 불리는, 정교한 자수가 놓인 것들부터 웨스턴 웨어를 연상시키는 디테일까지. 또 아카이브 아르데코 드레스는 르마리에의 깃털 프린지 장식이 더해져 르사주에서 자수 장식을 하고 재구성되었다. 럼버잭 플란넬의 느낌은 화려한 울 부클레 트위드로 재해석되었다. 투명 레인코트는 라거펠트 시절의 투명 레인부츠를 떠올리게 했다.
쇼가 막 끝난 순간,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는 특유의 담담한 미소로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을 꽤 자주 타는데, 이 쇼는 제 안의 여러 모습을 한데 모은 판타지 같았어요. 어떤 날은 엄마로, 또 어떤 날은 볼가운을 입은 화려한 여성으로 살아가죠. 그리고 그 모든 제가 지하철 안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져 있었어요.” 모델이자 작가로, 뉴욕의 일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의 말은 이번 쇼의 무드를 정확히 짚어낸다. 깃털 장식 재킷과 레드 시퀸 드레스도, 데님과 쿼터 집업도 이 플랫폼 위에서 어색하지 않았다. 특별한 순간을 위한 옷과 매일의 옷이 공존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점심 시간 산책에서도, 그리고 저녁 갈라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옷 말이다. 블라지는 ‘매일의 샤넬’을 제안하면서도 그것이 특별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게 바로, 평범함과 화려함이 한 플랫폼에서 공존하는 도시 뉴욕이니까.
블라지는 슈퍼모델 라인업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10월 파리 쇼에서도 비교적 무명의 모델들을 캐스팅했고, 피날레를 장식한 아와르 오디앙의 워킹과 미소는 그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카고의 매니 라판, 조지아주 제섭의 라일리 러셔, 캔자스의 놀리 먼, 그리고 오프닝 문을 연 바비타 만다바 역시 이번이 생애 두 번째 쇼였다. 보스턴에서 온 마야 아난드는 대학 4학년으로, 기말시험을 2주 앞두고 생애 첫 런웨이를 걸었다. “목요일에 첫 시험이 있는데, 그럼 뉴욕에 와서 런웨이를 걷기 딱 좋은 타이밍 아니겠어요?”라는 그녀의 코멘트는 어쩐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모델들은 브라질, 캐나다, 세네갈, 남아프리카에서도 왔다. 쇼 막바지, 가볍고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유라 로마니우크가 이브닝 수트를 입고 등장했다. 미우미우 2023 봄/여름 데뷔 이후, 그는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지워온 모델이다. 그와 동시에 프런트 로에는 에이셉 라키가 앉아 있었다. 최근 샤넬의 새로운 앰배서더로 발탁된 그는 마거릿 퀄리와 함께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단편영화에도 출연했다. 샤넬의 패션 부문 사장인 브루노 파블로브스키는 “우리는 여성 브랜드지만, 남성에게도 제안할 수 있는 제품을 기쁘게 제공한다”고 말했다. 경계를 긋지 않는다는 것, 그 말이 이번 쇼에서 유라와 라키가 보여준 모든 장면을 자연스럽게 설명해주었다. 지하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가장 철저한 무관심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바라본 채 서로를 외면한다. 그럼에도 가끔 누군가의 옷차림이 시선을 붙든다. 기묘하게 아름다운 코트, 유머가 스친 신발, 설명할 수 없이 예쁜 가방. 그 작은 장면 하나가 무관심의 막을 찢는다. “저 사람은 누구일까? 어디로 향하는 걸까?” 우리는 타인의 일상을 상상하고, 패션은 그 상상의 문을 여는 장치가 된다. 타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들고, 조금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레오퍼드 트위드를 입은 저 사람은 캣 레이디일까, 혹은 현대판 캣우먼일까? 황금빛 비늘이 박힌 플랩 백을 든 저 여성은? 기말시험을 앞둔 대학생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들. 블라지가 말했듯, “영화 속 이야기처럼,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요즘 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을 덜 기울인다. 각자도생이 미덕처럼 받아들여지고, 남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예의처럼 느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팬데믹 이후에도 일종의 도시적 태도로 남았다. 하지만 무관심과 존중은 다르다. 누군가를 본다는 것, 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 그가 나름의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임을 인식한다는 것. 그 다정한 시선과 관심 어린 응시. 블라지의 쇼는 그 시선을 되돌려준 초대장이었다. 1920년대에서 2020년대로, 아르데코 장식에서 데님으로, 사교계의 여인에서 슈퍼히어로로, 열아홉의 학생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가볍게 넘나드는 비선형적 이야기 위로 le19M 공방 장인들의 깊고 치밀한 솜씨, 그리고 심장을 두드리는 팝 문화의 명랑한 에너지까지 한데 얹혔다. 유쾌하면서도 세련되고, 실용적이면서도 엉뚱한, 파리와 뉴욕의 러브스토리처럼. 패션이 단순히 옷을 파는 산업이 아니라 타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언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금 더 관심 어린 시선일지도 모른다. 파리 메트로가 뉴욕 MTA를 만난 그날, 지하 플랫폼 위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다시 배웠다. 서로를 바라보는 법을. 그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Credit
- 사진/ © Chanel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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