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안경수는 도시 곳곳의 폐허를 그린다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개인전 《겹겹》을 열기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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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s of Gaze
사람의 온기가 떠난 지 오래된 폐허를 화가 안경수보다 더 사랑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없을 것이다. 도시의 변두리와 버려진 풍경에서 출발한 그의 회화는 현실과 은폐된 이면 사이를 흔들며 겹겹의 레이어를 드러낸다.
<겹겹(Layered)>, 2025, Acrylic on canvas, 120x120cm. ⓒ AN Gyunsgu, ARARIO GALLERY
당신의 회화에는 늘 도시의 변두리, 공사장, 빈터 같은 ‘경계의 풍경’ 혹은 ‘버려진 풍경’이 등장한다. 이런 장소들이 작업의 핵심 소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당시 서대문우체국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길 건너편 공사 현장 앞에는 육중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었고, 그 위에는 그다지 뛰어나진 않았지만 나무와 산, 호수 등이 그려진 풍경화가 덧씌워져 있었다. 그림과 철제 바리케이드, 그리고 그 뒤편을 덮은 푸른 천막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앞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낯설고도 일상적인 풍경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내게 그 바리케이드의 그림은 현실과,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또 다른 현실 사이의 모순처럼 느껴졌다. 나는 폐허를 은폐하기 위해 덧입혀진 그림을 오히려 사실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 무렵부터 허약하고 주변화된 풍경, 버려진 것들, 경계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장소, 시간이 멈춘 채 폐허가 된 풍경과 더미들에 담긴 감수성을 있는 그대로 작업에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바리케이드와 실제 풍경이 중첩된 장면에서 작업의 중요한 요소인 ‘레이어’에 대한 단초를 얻었을 수도 있겠다. 맞다. 바리케이드에 그려진 풍경화와 그 뒤편의 재개발 현장이 겹쳐진 장면은 일종의 레이어처럼 다가왔다. 도시와 변두리, 폐허와 공터, 그리고 그곳에 버려진 쓰레기와 죽은 식물들까지, 모두가 레이어로 구성된 장소이자 익명성을 띠는 공간의 ‘경계적 오브제’다. 즉, 서로 다른 맥락에 놓인 풍경과 사물들이 각자 고유한 시간성을 가지며, 경계 안과 밖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요소들을 화면 위에 중첩된 레이어로 쌓아 올리며 풍경화를 완성한다.
당신이 지칭하는 ‘폐허’는 보편적 의미와 조금 다른 듯하다. 어떤 모습인가? 일반적으로 폐허는 버려진 장소를 가리키지만, 내 작업에서는 익명성을 지닌 징후적 풍경까지 포함한다. 한마디로 ‘사건화된 장면’이다. 때로는 서울 같은 거대한 도시에서 탈락하고 밀려난 ‘더미’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내가 그리는 폐허는 단순히 장소성만 지닌 곳이 아니다. 사건으로 기록되지 못한 일상의 장면과 그 감각 또한 나에게는 폐허이자 풍경화가 된다.
<비치(Beach)>, 2025, Acrylic on canvas, 260x400cm. ⓒ AN Gyunsgu, ARARIO GALLERY
<거멍엉(Black Pool)>, 2025, Acrylic on canvas, 260x400cm. ⓒ AN Gyunsgu, ARARIO GALLERY
자신이 직접 본 것을 그려온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풍경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나는 풍경화를 단순히 바라보며 사색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으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편집이나 각색은 물론, 개인의 의견과 의도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직접 본 것만을 그려왔다. 내가 머무는 도시의 골목을 구석구석 걸으며 관찰하고, 이해한 장면들을 화면에 끌어온 것이다. 최근에는 과거와 현재를 넘어 해외에서 발생한 폐허의 풍경까지도 작업의 소재로 삼고 있다. 앞서 말한 폐허에 담긴 시간성과 분출하지 못한 에너지, 그 흔적의 스펙트럼을 수용하고자 한다. 앞으로 리서치와 공부를 더 해서 풍경화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확장해 보고자 한다.
한편, 최근 작품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던 인물도 출현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장면에는 늘 사람들이 있다. 도심 속 폐허 주변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작업을 진행하면서 의도적으로 인물은 배제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인물을 레이어와 레이어 사이에 위치한 일종의 ‘사물’로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행한 풍경화 속 이 ‘사물’은 얼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의 뒷모습, 하반신, 그리고 어떤 몸짓을 ‘풍경’으로 귀속시키고 있는 셈이다.
인물 역시 사물로, 풍경으로 상정하는지 몰랐다. 풍경화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체로 많은 풍경화 작가가 ‘풍경을 가져온다’ 혹은 ‘채집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는 이 방법론에 의문이 생겼다. 보이는 그대로 화면에 가져오는 것은 결국 ‘이미지화’하는 것인데, 회화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풍경화 역시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을 수 없다.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태도로 풍경화를 대할 때 분명 괴리감이 발생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그 장소를 ‘흔든다’고 표현한다. 풍경에 내재한 불안한 상태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대상을 명료하게 재현하면서도 동시에 그림 속에서 그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이지 않게 만든다. 재현의 대상으로 상정된 곳의 조건, 환경, 그곳이 놓인 문맥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흔들어 놓은 장면을 통해 드러난 풍경 속에서 관람자가 실제로 ‘무엇’이 아닌 ‘어떻게’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수영장(Swimming Pool)>, 2025, Acrylic on canvas, 38x46cm. ⓒ AN Gyunsgu, ARARIO GALLERY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겹겹»에서는 제주 함덕의 공사 현장, 말레이시아 해변, 다하우 수영장 등 서로 다른 시공간의 폐허 장면 레이어가 각각의 캔버스 위에 겹쳐진다. 이를 전시에 어떠한 방식으로 펼쳐 보였나? 매 전시마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이 많다. 일전에 프라이머리 프랙티스에서 개최한 «부력표본»전에서는 작품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레이어를 만들었다. 그 벽에 걸린 작품 너머로 다른 풍경 작품이 겹쳐 보이는 형식을 가져간 것이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전시는 ‘시간의 폐허’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작품은 사건이 발생한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결국 화가로서의 시선과 태도다. 이전 전시처럼 역동적인 시도는 없지만, 관람객이 그 전시 풍경 속 한 장면으로 남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택했다. 전시는 결국 일종의 정치적 태도를 보여주는 자리이니까.
관람객마저도 레이어로 상정한 것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시간의 폐허’라는 주제를 다루는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폐허에는 시간이 지나며 스며든 레이어가 있다. 시간, 기억, 역사, 권력 등이 겹겹이 쌓이면서 생긴 균열을 드러내고, 관람객이 이러한 상태를 감각하고 경험하면서 또 다른 시간의 레이어를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특히 시간의 폐허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거멍 엉>과 <강의동>을 꼽을 수 있다. 각 작품이 담고 있는 공간과 시간의 풍경에 대해 설명해달라. 먼저 <거멍 엉>은 제주도 함덕의 한 호텔 방에서 발견한 장면이다. 작품의 시점은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데, 만약 걸어가다 그 장소를 지나쳤다면 검은 웅덩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나와 같은 장소에 머물며 이 풍경을 똑같이 봤지만, 너무 무서워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풍경은 보는 이마다 다르게 다가오며, 이를 관찰하는 태도와 과정 자체가 풍경화에 담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같은 장소, 다른 시간, 시선자의 태도와 파산으로 인해 검은 구덩이가 파헤쳐진 채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이 공간의 레이어로 담겼다. <강의동>은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내 일부 건물로, 옛 안기부에서 사용한 곳이었다. 우연히 지나가다 과거의 상흔이 남아 있으나 동시에 그 흔적으로부터 벗어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 공간보다는 그곳에 남아 있는 감각을 화폭에 담았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시간과 그에 따른 태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폐허에 집중한 작품을 선정했다.
풍경을 대하는 태도에서 ‘거리 두기’와 ‘개입하기’ 사이를 오가고 있는 듯하다. 스스로를 관찰자 혹은 개입자 중 무엇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나? 앞서 말했듯 꽤 오랫동안 나는 직접 본 것을 화폭에 옮겨왔다.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풍경 위에 덧입혀진 겹겹의 레이어를 벗겨왔으니, 관찰자에 가깝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그 장면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므로, 대상이 되는 장소를 ‘흔들면서’ 개입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안경수의 «겹겹»은 2026년 1월 18일까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정송은 미술사를 전공하고 예술을 둘러싼 다채로운 장면을 탐구해온 프리랜스 에디터다. 안경수 작가의 회화 앞에서 도시의 흔적이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지는 풍경을 목도했다.
Credit
- 글/ 정송
- 사진/ 박규태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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