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향기의 언어,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가 말하는 창조의 비밀
샤넬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가 말하는 향의 철학과 예술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MASTERING THE HARMONY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창작의 여정. 그 하모니의 중심에는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가 있다.
샤넬은 오래전부터 그라스에서 향수의 원료가 되는 꽃을 직접 재배해왔습니다. 오늘날까지 이를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은 단순한 전통이 아닙니다. 샤넬 ‘N°5’가 탄생하던 그 시절의 오리지널 향과 본질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죠. 그라스에서 자란 꽃으로 ‘N°5’를 만들었으니, 오늘날에도 같은 방식을 이어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샤넬 하우스에서 특히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 장인정신입니다. 이는 샤넬의 거의 모든 창작 활동의 근간이 되며,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창의력과 자유를 발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유산을 이어간다는 것은 단지 전통을 지킨다는 의미만은 아닐 겁니다. 샤넬 향수 100년의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과 진화를 거듭해온 것을 하나씩 꼽는다면요? 저는 ‘전통’ ‘유산’이라는 단어보다는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을 선호합니다. 스타일을 지킨다는 것은 앞서 말한 장인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장인정신이란 살아 숨 쉬는 존재예요. 우리는 언제나 전통적인 기술과 혁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라스에서 이 질문을 받게 되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지네요. 이곳은 우리가 재스민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하니까요. 우리 팀은 새로운 추출법을 개발하고, 기존 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라스에서 자란 꽃의 향을 샤넬만의 언어로 번역할 때, 조향사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향수를 창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향이 기존 향수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공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창조 정신과 마인드셋이에요. 우리는 재스민, 로즈, 튜베로즈, 아이리스 등 특정 원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제가 끊임없이 찾고 있는 건 향의 구성을 단순한 조합 이상으로 확장하는 일입니다. 즉, 원료를 넘어 스타일과 개성을 표현하는 향수, 그리고 그 향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구축하는 것이죠.
그런 향수를 만들기 위해 접목하고 싶은 그라스 원료나 현재 연구 중인 새로운 식물이 있을까요? 미지의 원료를 발견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향수의 세계에는 수백 년 동안 전 세계를 여행하며 낯선 식물을 찾아온 전문가들이 있으니까요.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더라도 향수로 구현하기 위해선 대규모 재배가 필요합니다. 작은 농장 하나로는 향수를 생산하지 못하죠. 그만큼 향 원료를 도입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특히 흥미롭게 느끼는 부분은 이미 알려진 원료를 새로운 방법으로 추출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원료의 숨은 면을 발견하면 전혀 다른 창작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농장 옆에 추출 공장이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익숙한 원료들의 잠재된 특성을 더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좋은 제품을 위해서는 좋은 원료가 필수’임은 당연한 전제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값싼 대량 생산품에 밀려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에요. 조향사의 입장에서 좋은 향수를 만들기 위해 왜 원료부터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하는지 들려주세요. 음악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음악을 만들려면 좋은 악기가 필요합니다. 아마도 훌륭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제 목소리를 가진 가수보다는 훨씬 낫겠죠.(웃음) 향수 원료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향수의 품질은 보다 긴 시간 속에서 자리 잡는 것이고, 한 시즌의 트렌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련의 기후위기가 고품질 원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샤넬과 그라스 농장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우리가 기후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전 세계가 모두 같은 상황은 아닙니다. 그라스는 다행히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죠. 하지만 겨울에는 예전만큼 기온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아요. 장미나무는 자연의 명확한 신호를 필요로 합니다. 다시 말해 추운 겨울과 따뜻한 여름이 뚜렷해야 하죠. 기온의 변화에 따라 식물은 휴면기를 갖고, 다시 생장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충분히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꽃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농장을 조금씩 확장하고, 재식림(replanting)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후변화가 불러온 새로운 국면이라 할 수 있죠. 동시에 전 세계 농장주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살충제 없이 재배하고, 기계 사용을 최소화하는 지속 가능한 영농법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확산을 막으려 합니다. 의미 있는 점은,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더 많은 연구와 실험의 기회를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수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얻은 좋은 결과와 경험은 앞으로 전 세계 어느 농장에게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준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번 트립에서는 원료가 샤넬 향수로 탄생하기까지 그 여정에 함께하는 55인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조향사는 이들을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웃음) 저는 그라스를 정말 좋아합니다. 향수의 장인적 기술(craft)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이에요.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공기 속에 무언가가 흐르고, 이는 주의를 끌며 상상력을 자극하죠. 그 모든 것은 결국 흙 속에서 자라나는 원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샤넬 향수를 위해 꽃을 수확하는 사람, 원료를 재배하는 사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품질을 관리하는 사람까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수많은 이들이 하나의 긴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어요. 몇 주 전에는 태국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샤넬 향수를 고객에게 소개하는 현지 직원들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이 또한 중요한 사슬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예상하지 못한 직업들까지 향수를 만드는 전 과정에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실례였어요.
샤넬 향수는 단순히 향을 내는 제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담론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향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향수는 단어가 아니니까요. 향의 메시지를 말로 옮기기란 쉽지 않죠. 제가 향수에서 좋아하는 점은, 말보다 훨씬 더 본능적인 메시지라는 사실입니다. 그 메시지는 우리의 개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요. 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향이 우리의 감각과 감정 전반을 일깨우는 존재라는 점이에요.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향수는 자기 표현의 형태, 즉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Credit
- 사진/ ⓒ Chanel Beauty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2025 가을 패션 트렌드
가장 빠르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셀럽들의 가을 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