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100주년을 맞이한 펜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와 이야기를 나누다.

프로필 by 이진선 2025.10.01

FENDI ART 100


100년, 다섯 세대를 아우르는 시간. 펜디는 지난 한 세기를 유산과 혁신으로 채워왔다. 1925년 에도아르도와 아델레 펜디(Edoardo and Adele Fendi)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작한 작은 가죽 공방은 오늘날 럭셔리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지난 2월에 열린 2025 F/W 런웨이 쇼. 가문의 일곱 살 쌍둥이 증손주 타르치오(Tarzio)와 다르도(Dardo)가 쇼의 포문을 열었다. 이는 펜디가 이어온 유산과 새로운 미래를 함축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하퍼스 바자> 독일판 케르슈틴 슈나이더 편집장이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에게 100주년의 의미와 그녀가 바라보는 내일에 대해 물었다.


로마의 호텔 빌라 라에티티아(Villa Laetitia)에서 만난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로마의 호텔 빌라 라에티티아(Villa Laetitia)에서 만난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하퍼스 바자 펜디 100주년을 기념하는 컬렉션을 어떻게 접근했나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이하 실비아) 100주년은 평생에 단 한 번뿐이죠.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펜디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에게 펜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는 펜디 가문에 태어나 값진 경험을 얻었기에 아카이브를 살피기보단 저의 기억을 깊게 되짚었죠. 그 출발점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습니다. 여섯 살의 제가 펜디를 처음으로 이해한 순간이죠. 1966년, 칼 라거펠트가 펜디의 첫 컬렉션을 디자인했을 때였어요. 그는 부모님께 제가 쇼에 설 수 있도록 부탁했어요. 제 두 손주가 이번 쇼의 포문을 연 것처럼 말이에요. 이번 쇼의 베뉴는 펜디의 옛 아틀리에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어린 저에게 거대했던 그 문이 이제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으로 자리한 셈이에요.

하퍼스 바자 쇼가 끝나고 그 문을 통해 걸어 나온 순간 느꼈을 감정이 궁금합니다.

실비아 어떤 감정이 들 것인지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피날레가 끝나고 런웨이로 나서며 떠오른 것은 펜디의 역사와 유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제가 이뤄온 일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고도 강렬한 감정이었어요. 1966년 제가 펜디 쇼에 섰을 때 느꼈던 아드레날린과 행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죠. 저는 꼭 ‘펜디’라는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었어요.

하퍼스 바자 펜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실비아 놀라움! 우리의 창의성은 언제나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데 목적을 둡니다.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펜디의 아트죠.

하퍼스 바자 지난 100년간 수많은 혁신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혁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실비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너무나 많은 혁신이 있었거든요. 저는 창작을 언제나 도전으로 여겨요. 이번 컬렉션에서는 모피를 다시 다루고 싶었지만, 오직 시어링(양털)만 사용했죠. 시어링 소재로만 완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하퍼스 바자 모두 시어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실비아 굉장히 심혈을 기울인 멋진 결과물이에요. 세이블이나 밍크처럼 보이지만, 모두 가공되고 염색된 시어링입니다. 믿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담았어요. 매우 현대적인 모피 제작 방식이기도 하고요. 양가죽은 식품 산업에서 나온 부산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탄생했어요. 그 결과물은 저를 자랑스럽게 아니, 행복하게 만들었답니다. 그것이 바로 펜디의 본질이죠. 펜디 가문, 칼 라거펠트 그리고 함께 일한 모든 이들은 변형의 예술가로서 패션의 본질과 현재를 변화시켜왔어요. ‘FF’는 펜디 그 자체입니다. 단순히 ‘Fun Fur’의 뜻이 아니에요. FF는 창조의 방식이도 해요. 한계도, 경계도, 규칙도 없는 디자인 방식이며 지위의 상징을 깨트리는 기쁨이죠.

하퍼스 바자 모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실비아 저희는 항상 새로운 기술과 가능성을 연구해요. 지금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생물학적 모피, 즉 실험실에서 배양한 모피를 개발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당신의 할머니이자 창립자인 아델레 펜디에게서 선구적인 개척 정신과 함께 또 무엇을 물려받았나요?

실비아 강인함. 저의 할머니는 전형적인 ‘할머니’가 아닌 매우 강인한 여성이었습니다. 저는 때때로 그녀의 권위와 에너지가 두렵기도 했어요. 전 오히려 어머니를 더 닮았는데, 어머니는 부드럽고 온화하거든요. 아버지께는 유머 감각을 물려받았죠. 이러한 성격은 팀으로 일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하퍼스 바자 어떤 이에게 가장 많은 것을 배웠나요?

실비아 가족에게도 배웠지만 특히 칼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는 ‘안 된다’는 말을 용납하지 않았죠. 쇼 전날 밤이라도 수정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해내야 했으니까요. 지금도 그가 너무 그립습니다. 특히 유머스러했던 모습이 그립네요.

하퍼스 바자 칼 라거펠트와의 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실비아 1992년 칼이 저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했어요. 회사의 새로운 소유주가 메인 브랜드에 집중하려 했기에, 제 여동생과 사촌이 함께 설립한 레이블 ‘펜디시메(Fendissime)’의 전개가 마무리됐었죠. 그 후 저는 여동생들과 함께 어머니의 일을 도왔어요. 전 어머니의 어시스턴트로서 핸드백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칼은 저의 백 디자인을 보고 참신하다며 무척 좋아했어요. 제가 디자인한 백이 런웨이에 올라 매우 행복했고요. 칼은 줄곧 저를 마담 실베트(Madame Silvette)라고 불렀죠. 그때를 떠올리니 또 한번 그가 너무나도 그립군요.


하퍼스 바자 요즘은 딸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Delfina Delettrez Fendi)와 함께 일하고 있죠. 그녀는 주얼리 부문을 담당하는데, 어떤가요?

실비아 델피나의 뛰어난 감각에 매번 감탄하곤 해요. 디자인에 대해 서로 자문하고 깊은 신뢰를 나누고 있죠. 저희는 함께 여행하며 연구해요. 가장 중요한 조수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패션 주얼리뿐만 아니라 하이주얼리 디자인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주얼리 라인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실비아 그렇습니다. 지금 주목하고 있는 사업이며, 델피나는 주얼리 시장에 대해 해박해요. 또 저는 친환경 디자인에 관심을 쏟고 있는데 둘째 딸 레오네타가 깊게 관여하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영화 제작자로서도 열정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실비아 음, 그건 조금 지난 이야기예요. 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와의 협업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죠. 남성복 컬렉션을 위한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싶었을 때 루카를 만났어요. 전 당시 신인 감독이던 그의 연출력과 미장센, 비전에 감명을 받았죠. 친한 친구가 된 그는 틸다 스윈튼과 오래도록 구상한 프로젝트를 꺼냈는데, 그것이 영화 <아이 엠 러브(I Am Love)>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영화 의상 제작을 부탁했고, 그때 그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저는 그의 또 다른 영화 <서스페리아(Suspiria)>에도 참여했고, 다리오 아르젠토(Dario Argento) 감독의 영화 리메이크 판권을 샀던 날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좌)와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 세계적인 주얼리 디자이너인 델피나는 실비아의 오른팔로 4세대 펜디 가문의 주요한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좌)와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 세계적인 주얼리 디자이너인 델피나는 실비아의 오른팔로 4세대 펜디 가문의 주요한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와 나눈 일문일답.

Q. 괴물을 좋아하나요? A. 물론입니다. 작은 털복숭이 괴물이 나오는 컬렉션을 만든 적도 있어요.

Q.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A. 춤추는 것을 좋아합니다. 더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 마이클 잭슨, 프린스의 음악을 특히 사랑해요.

Q. 완벽함 VS. 불완전함? A. 불완전함.

Q. 여성 디자이너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A. 물론입니다. 잘한다면 당연히 환영이죠.

Q. FF는 펜디 패밀리(Fendi Family)를 의미하나요? A. Fendi Family, Fun Fur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닙니다. ‘Foolish Fendi’나 ‘Fendi Follies’일 수도 있고요.

Q. 다음 펜디 컬렉션도 남녀 통합으로 할 예정인가요? A. 아마도 그럴 거예요. 저는 다시 증명해내고 싶습니다.

Credit

  • 사진/ Sofia Sanchez & Mauro Mongiello
  • 인터뷰/ Kerstin Schneider
  • 번역/ 채원식
  • 헤어/ Roberto Pagnini(Production Link)
  • 메이크업/ Topolino(Production Link)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