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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기대작 '머티리얼리스트' 감독 셀린 송과 나눈 이야기

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한 감독 셀린 송이 또 한번 삼각관계를 다루며 두 번째 장편 <머티리얼리스트>로 돌아온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5.07.28

어느 물질주의자의 사랑


<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한 감독 셀린 송이 또 한번 삼각관계를 다루며 두 번째 장편 <머티리얼리스트>로 돌아온다.

전작에서 전생과 인연의 의미를 묻던 그는 이제 물질만능주의자의 시선에서 사랑을 들여다본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감독과 나눈 인터뷰.



키는 8피트, 연봉은 8만 달러. 체질량 지수는 20 이하. <머티리얼리스트>에는 여느 로맨스 영화와 달리 숫자가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뉴요커를 위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는 매치메이커 루시(다코타 존슨)는 조건이 완벽한 ‘유니콘’ 같은 남자 해리(페드로 파스칼)와 37살 배우 지망생인 전 남자친구 존(크리스 에반스) 사이에서 진실한 상대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 전형적인 러브스토리의 외피 안에는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사랑에 관한 고찰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 시대에 멸종해가는 사랑지상주의 DNA를, 데이트 매칭이라는 역설적인 수단을 통해 되살려낸다.


이번 영화에는 실제 데이트 매칭 회사에서 일한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되었다고 들었다. “Dating is very difficult and Love is easy.” 이야기를 관통하는 이 대사는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걸까? 20대에 뉴욕에서 극작가로 지내며, 생활비에 보태고자 매칭 회사에서 6개월 정도 일한 적이 있다. 그때 데이트와 사랑, 둘 사이 간극에 관해 거의 매일 생각했다. 외모와 스펙같이 종이 한 장에 적을 수 있는 숫자 이야기만 내내 하는데 당시 나는 결혼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런 계산이 사랑과 너무도 무관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내가 만난 여성들은 6피트(약 180cm) 남성을 원했는데, 그 얘길 듣다 보면 “나이가 들면 결국 키가 저절로 줄어드는데 나중에 이 조건이 무슨 소용이지?” 하는 의문이 남더라. 또 1년에 약 10만 달러 정도의 소득을 버는 상대를 바라는데, 사실 미국 어른들의 평균 수익은 3분의 1인 약 3만5천 달러 정도다. 그마저도 이민자들이 버는 돈은 포함되지 않은,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 이 얘기를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패스트 라이브즈>의 제작을 마친 이후 곧장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 루시는 <패스트 라이브즈> 속 노라와 매우 다른 캐릭터지만,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한다는 점이 꼭 닮아 있다. 노라가 해성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더 깊게 이해하는 똑똑한 캐릭터인 반면 루시는 조금 더 무너져 있는 인물이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자주 흔들리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대상화하는 매치메이커 일을 하며 상대를 보이는 가치에 따라 평가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보게 된 사람이고, 그렇기에 더 방어적인 행동을 취한다. 결국 루시의 방어적인 성향을 무너뜨리는 게 이 영화의 주요한 스토리이기도 하다. 아마 영화 후반부의 루시는 첫 장면에서 연애와 사랑에 회의적인 루시를 볼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여길 거다.

영화에서 루시는 수차례 스스로 “물질주의자”라고 말하지만, 관객으로서는 루시가 여전히 정체성에 관해 고민하기 때문에 그 점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다코타 존슨의 화법과 발성이 루시라는 인물의 특성을 잘 살린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루시는 사실 냉혈한과 거리가 멀지만, 냉정해져야 하는 인물이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니컬하고 좀 더 세속적이어야 하는. 뉴욕이나 서울처럼 큰 도시에 살면서 일하는 여성이라면 모두 느낄 수 있는 딜레마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낭만적인 요소를 잃지 않는다. 더 나은 일, 더 좋은 상황을 찾겠다는 바람이 없으면 이 복잡한 도시에서 비싼 렌트비를 지불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여성들은 스스로 똑똑해야 한다는 압박 아래 살아간다. 나 역시 그렇고. 하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그 전제가 불가능하다. 그냥 항복하게 되는 거다. 삶이 AI나 알고리즘처럼 모든 걸 통제하며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사랑엔 내려놔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에 우리는 꽤 동의했다.

이번 영화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관해서도 다양한 논의점을 시사한다. 루시가 클라이언트에게 결혼을 ‘너싱 홈 파트너(가정 요양 파트너)’를 찾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대화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특히 결혼 제도에 관해 열린 대화를 나누는 문화이기 때문에,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무척 궁금하다! 결혼은 루시의 말처럼 일종의 비즈니스이기도, 파트너십일 수도 있다. 국가가 지대한 관심을 두는 시스템이자 경제적인 결합일 수 있지만, 이 모든 건 보여지는 것일 뿐이고 두 명의 인간이 서로에 관해 느낀 감정은 결코 누구도 알 수 없는, 둘만이 알 수 있는 관계라는 점에서 결혼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자들은 과거에 큰 돌멩이에 혼인을 맺은 사람들이 이름을 써왔기에 그 기록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알겠나? 끝없이 써내려진 이름 중에 어떤 결혼은 완벽했을 거고, 어떤 결혼은 절망적이었을지. 또 퀴어의 사랑은 기록이 아예 없을 수도 있고. 영화에서도 두 사람 사이의 기록은 드러날 수 있지만 감정은 오직 서로만이 안다는 걸 암시한 장면이 있다.

“True love is more real than any material thing.” 한 인터뷰에서 사랑에 관해 당신은 이런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모습인가? 사랑에 관해서 나는 항상 산타클로스에 관해 얘기하는 것과 같은 입장이다. 물질적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그냥 그 사람이 존재하는 것으로 좋은 것, 행복한 것. 같이 늙어가고, 서로 방귀를 뀌고 낄낄대도 다 대수롭지 않고 괜찮은 그런 관계. 그런 건 아무리 스펙이나 외부적인 요소를 뒤져본다고 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는 8월 8일 개봉 예정이다.

Credit

  • 사진/ 소니 픽처스 코리아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이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