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디노가 영화 '퀴어'를 만들기까지, 감독과의 인터뷰
열일곱 무렵, 처음 접한 작가 윌리엄 버로스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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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SENSIBLE
루카 구아다니노가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가히 본인의 그림자를 능가할 지경이다. 그런 그의 전공(戰功)을 살린 최신작은? <정키> <네이키드 런치>를 쓴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의 자전적 작품이다. 신작 <퀴어>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버로스의 머릿속과 불에 탄 심장 속으로 뛰어들게 만든 소설을 각색한, 우아하고 섬세한 영화이다.

피에몬테의 안식처에 머물며 줌 화면에 나타난 루카 구아다니노는 어딘가 벌거벗은 듯 보였다. 타원형 얼굴을 뒤덮고 있던,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마찬가지인 덥수룩한 수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콧수염을 조금 손질하려다 면도기 날을 잘못 조정하는 바람에 다 밀어버릴 수밖에 없었어요”라며 고백하는 그의 볼에 별안간 떠오른 홍조가 수줍은 햇살을 받아 드러난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생기 가득한 호박색 눈동자로 화면과 주변을 동시에 살피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돌풍의 장본인. 드디어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벌써 몇 달째 그의 행적을 쫓아다닌 경험을 이 자리를 빌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당대 가장 생산적인 영화감독에게 생긴 찰나를 틈타 인터뷰 자리에 그를 앉힌 건 대단한 성공임에 틀림없다.) 미국 비평가들이 ‘영화계의 관능주의자’라 칭하는 구아다니노 감독은 그 불꽃 튀는 재능으로 또 하나의 작품을 마무리지었다. 제목은 <애프터 더 헌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요 어데버리, 클로이 세비니, 앤드류 가필드 등 출연진만 봐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하지만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서스페리아> <챌린저스>와 같은 작품에서 틸다 스윈튼, 레이프 파인즈, 다코타 존슨, 티모시 샬라메, 젠데이아와 같은 배우들을 카메라에 담아 이미 가장 격조 높은 감독의 신전에 안착한 그에게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트세대의 대부가 된 작가 윌리엄 버로스로 분하여 거침없을 만큼 기적적인 연기를 펼치는 다니엘 크레이그도 빼놓을 수 없다.
개봉을 앞둔 구아다니노 감독의 최신작은 출간되기 전 무려 33년이라는 세월 동안 감춰져 있던 버로스의 미완성 소설 <퀴어>를 원작으로 한다. 윌리엄 버로스는 극단이란 극단에는 모두 빠져들었던 미국인 작가이다. 그의 자전적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어지러운 세상을 방황하며 끊임없이 테킬라를 들이켜고 돈을 주고 섹스를 산다. 그러다 악몽의 색채가 진하게 밴 멕시코에서 갑옷으로 무장한 듯 차가운 매력의 청년을 만나 뼛속까지 사랑에 빠진다. 둘은 결국 텔레파시의 효험이 있다는 풀을 찾아 남미를 가로지르는 로드 트립을 떠난다. 달아오른 신체들의 부딪힘, 정교하게 활용된 중독의 공식, 천연 진통제로서의 사랑, 환각 효과를 일으키는 공들인 영상들…. 루카 구아다니노는 이 내면 세계를 탐험하는 천재의 숨겨진 면모를 만천하에 드러낼 뿐 아니라, 엄청난 깊이와 복잡함이 어우러진 버로스의 공식을 따라 하나의 돌연변이 같은 최면 영화 한 편을 선사한다.

<퀴어>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는 비트 세대를 상징하는 작가 윌리엄 버로스로 분한다.
윌리엄 버로스는 수줍음이 많고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중은 모르고 있던 그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조명하고 싶었어요.
하퍼스 바자 윌리엄 버로스는 매우 낭만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냈으며 무법자의 세계에서 기이한 일들을 겪었어요. 그의 인생의 다양한 순간 중에서도 특히 멕시코에서 보낸 시기를 다룬 <퀴어>를 각색하기로 한 이유가 있나요?
루카 구아다니노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17~18살 즈음이었죠. 당시 저는 예술적 충격에 목말라 있던 몽상가였어요. 무언가가 저의 근간을 흔들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죠. 그때 팔레르모의 한 서점에서 <퀴어>를 발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탈리아어 제목은 ‘Diverso’였어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그림을 배경으로 윌리엄 버로스라는 작가 이름이 유난히 튀었어요. ‘퀴어’라는 말의 의미도 몰랐고, 버로스나 바젤리츠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그 책은 말 그대로 저를 자석처럼 끌어당겼어요. 그러고 책을 읽자마자 평생토록 기억될 예술적 경험이라는 걸 직감했어요. <퀴어>는 감정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감정에 그리고 타인에게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일을 찬사하는 게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을 만난 후에는 제 인생이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 강렬한 충격을 받았죠. 버로스의 필체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어요. ‘컷업(cut-up)’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언어를 하나의 바이러스로 여기며 버로스가 행했던 기이한 실험들이 있기 이전에 <퀴어>라는 작품이 존재했어요. 아직 책 속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그 멜로디는 이미 귀에 아른거립니다. 앞으로 다가올 작품의 맛보기라고 할까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퀴어>는 제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윌리엄 버로스의 아픔과 쾌락에 대해 더 크게 공감해요. 저는 이 책과 끝없는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하퍼스 바자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작품 상당수가 문학작품을 각색하거나 원작을 리메이크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떠오르는 대로 예시를 찾아보자면 <서스페리아>는 다리오 아르젠토(Dario Argento)의 동명작을, <비거 스플래쉬>는 자크 드레이(Jacques Deray)의 <더 스위밍 풀>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안드레 애치먼(Andre Aciman)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기반으로 만들었고 최신작인 <퀴어>도 마찬가지죠. 혹시 자신을 숨긴다는 생각이 들진 않나요?
루카 구아다니노 좋은 질문이네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어요. 제가 각색한 작품들은 대부분 10대 시절에 가졌던 환상들입니다. 그 내용을 영화로 구현한 건 그 꼬마에 대한 일종의 경의의 표현이라고 해두죠. 좀 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스탠리 큐브릭도 말했듯이,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소재보다 기존 예술을 다룰 때 통제 범위가 더 큰 것 같아요. 숨는 기분이 들지는 않나 물어보셨죠? 저는 부끄러움이 많고 성정이 겸손한 사람이니, 네,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언급하신 모든 작품을 통해서 제가 말하는 내용은 ‘나’입니다. 질문을 들으니 헨리 제임스의 카펫 무늬가 생각나는군요. 모두의 눈에 드러나는 무늬 속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죠. 주의 깊게 보는 사람만이 그걸 알아낼 수 있잖아요. 결론적으로 저는 숨어 있는 듯하면서도 숨어 있지 않습니다. 결론은 여러분의 몫이에요.
하퍼스 바자 다시 윌리엄 버로스로 돌아가면, <퀴어>를 만들면서 그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나요?
루카 구아다니노 처음 책을 읽고 나서 2년 동안 저는 윌리엄 버로스에 대한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제가 그에 대해 가졌던 관점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같았어요. 시니컬하고, 소외되고, 의문투성이이며, 편집증에다 건조하고, 통제광인 문학계의 아이콘, 아니 그 이상이었죠. 그가 항상 걸치고 다니던 베스트와 모자, 헤로인, 그 특이한 문장들이 이루던 인물의 특징까지. 영화 작업을 시작했을 때 저는 올리버 해리스(Oliver Harris)에게 자문을 구했어요. 미국 문학 교수로서 버로스의 세계와 작품에 대해서는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죠. 각본가 저스틴 쿠리츠케스(Justin Kuritzkes)와 저는 해리스 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어요. “버로스가 <퀴어>라는 작품을 거의 35년 동안 서랍 안에 묻어둔 건 자신이 실은 얼마나 감상적이고 유약한 존재인지 세상에 소리칠 용기가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요?” 하고. 그랬더니 해리스 교수는 저희가 바로 맞혔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버로스는 수줍음이 많고 다정한 사람이었어요. 이런 알려지지 않은 면이 바로 제가 영화를 통해 조명하려고 한 것이고요. 촬영을 끝낸 뒤 마지막 장면에 삽입할 노래를 찾고자 했어요. 작곡가인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와 아티커스 로스(Atticus Ross)에게 사랑 노래가 필요하다고 말했죠. 버로스의 작품에서 그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구절을 찾던 중, 그가 죽기 사흘 전 마지막으로 쓴 일기가 하나의 시구와도 같은 사랑 노래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수십억 개의 단어와 평생 씨름했던 그가 종이에 써내려간 마지막 단어는 ‘love’였습니다. 제 직감이 맞았던 거죠.
하퍼스 바자 마약, 사랑, 섹스, 강렬한 감각 등 <퀴어>는 중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루카 구아다니노 맞아요. 사람들은 중독을 제약, 혹은 탈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마약은 버로스의 글 쓰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요. 버로스가 헤로인을 주사한 건 원초적인 쾌락 추구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 자신의 감각, 자신의 감성의 불씨를 잠재우기 위해서였어요. 말하자면 통제가 목적이었죠. 저는 개인적으로 중독을 겪고 있지 않지만 타인이 겪는 중독은 매우 잘 이해합니다.
하퍼스 바자 어떻게 다니엘 크레이그가 윌리엄 버로스 역할을 맡게 되었나요?
루카 구아다니노 제 에이전트인 브라이언 로드(Bryan Lourd)가 다니엘을 추천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다니엘은 눈부신 배우예요. 현대 영화계의 톱스타 중 한 명이죠. <사랑의 악마>에서의 조지 다이어(George Dyer)부터 제임스 본드까지 전설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만, 질리지가 않아요. 다니엘의 눈을 많이들 언급하는데 연극 무대에서 그를 본 적 있나요? 폭탄이 터지는 걸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죠. 아무튼,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욕망이라는 것은 현실의 틀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다 환멸에 빠져버리거든요.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한번 해봤습니다. 다니엘에게 대본을 보냈더니, 예상과 달리 바로 나타나 열정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둘 다 윌리엄 버로스를 ‘사랑을 하는 기계’로 묘사하자는 데에 즉시 의견이 맞아떨어졌어요. 다니엘이 흔쾌히 합류하기로 하면서 열흘 만에 결론이 났습니다.
하퍼스 바자 언젠가 특강 중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요. “영화란 배우에 관한 다큐멘터리이기 마련이다.” <퀴어>는 다니엘 크레이그에 관해 어떤 정보를 담고 있나요?
루카 구아다니노 자신의 가장 내밀한 연약함을 드러내 보이는 능력, 그리고 배우로서의 변신입니다. 다니엘은 다양한 영역을, 심지어는 차원을 넘나드는 아이콘이죠. <퀴어>는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의 크나큰 자유를 기록한다고 생각합니다.

버로스(다니엘 크레이그)는 유진 앨러튼(드류 스타키)이라는 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텔레파시 효험을 가졌다고 알려진 식물을 찾아 남미 여행을 떠난다.
하퍼스 바자 배우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나요?
루카 구아다니노 저는 직감이 좋은 편이라 배우가 나와 내 카메라 앞에서 벌거벗을 수 있는지, 신체가 아니라 감정의 영역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으면 영화가 잘될 것이라는 걸 알아요. 한 배우가 나를 믿고 과정에 온전히 자기 자신을 맡길 수 있다는 걸 제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감독으로서 제 역할은 멀리서 배우들을 사랑하는 것, 그 어떠한 속박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저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을 보호하는 겁니다. 이런 일은 그저 업무로 여길 수가 없어요. 그런 식의 교류에는 반드시 열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하퍼스 바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작품을 통해 티모시 샬라메를 세상에 알렸죠. 덕분에 그는 순식간에 메가 스타덤과 섹스 심벌의 자리에 올랐고요. 그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기억나나요?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루카 구아다니노 티모시를 처음 만났던 건 뉴욕의 한 그리스 레스토랑이었어요. 원래 저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프로듀서였고 감독은 제임스 아이보리(James Ivory)가 맡을 예정이었죠. 티모시의 에이전트와 제 친구 브라이언 스워드스트롬(Brian Swardstrom)이 만남을 주선했는데, 브라이언은 그가 현실판 엘리오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를 보자마자 ‘이 아이는 스타다!’라고 생각했어요. 어찌나 빛이 나던지. 티모시로부터 강렬한 동시대성의 전율이 느껴졌고, 그의 호기심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세상에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꼼짝 못하게 매혹시키는 사람들이 있죠. 우리도 그렇지만 그들도 영문을 몰라요.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몇 없죠. 티모시는 그런 면, 한마디로 오라를 가지고 있어요. 제 눈에는 그게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났어요. 촬영 첫 주도 지나지 않아 그에게 말했죠. “티모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 넌 머지않아 전용기를 타고 다니게 될 테니까.”
하퍼스 바자 ‘스튜디오 루카 구아다니노’라는 건축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주거 및 상업 프로젝트를 맡을 정도로 당신의 건축과 인테리어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죠. 그 열정은 세트에 들이는 정성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영화 세트는 어떤 식으로 작업하시나요?
루카 구아다니노 아주 오래전 <퀴어>의 각본을 쓸 때, 첫 장에 이런 구절을 적었어요. “스크린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윌리엄 버로스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사실주의나 문자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버로스의 상상력을 투영한 것이었죠. 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하며 수년간 알고 지낸 스테파노 바이시(Stefano Baisi)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에게 책을 주며 읽어보라고 했더니 대단히 좋아하더군요. 영화 작업을 해보는 게 스테파노의 꿈이었기 때문에 제가 영화 세트 작업을 같이 해보겠냐고 물어봤을 때 감격해했어요. 논의 끝에 저희는 마이클 파월(Michael Powell)이나 에머릭 프레스버거(Emeric Pressburger)의 세트 작업을 할 때처럼 수공업 방식을 쓰기로 했어요. 제가 상상한 <퀴어>에서 각 공간은 인물들끼리의 관계의 역학이나 버로스의 심리를 나타내야 하는데, 아무래도 영화 전문가와는 작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영화를 만들 때 저는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세트에 대한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통제하는데, 이 일이 직업인 사람은 거기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거든요. 전문 영화 세트 디자이너가 아닌 스테파노와 작업을 할 때에는 적어도 협력의 즐거움과 교류로부터 얻는 에너지 외에도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하퍼스 바자 같은 방식으로 의상은 조너선 앤더슨에게 맡겠죠.
루카 구아다니노 조너선과 작업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예요. 그 전에는 <챌린저>에서 의상을 담당했죠. 15년 전이었을 거예요. 런던에서 조너선의 첫 런웨이에 참석했는데, 그의 작업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 기억나네요. 실제로 그를 만난 건 8년 전인데, 단숨에 친해졌어요. 매일 전화 통화를 했어요. 조너선에게 이 일을 맡긴다면 단순히 패션이라는 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물들이 처한 환경,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신체, 행동, 상징 등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것을 알았죠. 조너선은 진정한 지식인이에요. 그가 보여준 시각적 레퍼런스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것이었고, 엄청난 영감을 주었어요. 방금 말씀드린 요소 외에도 <퀴어>에서는 인물들의 연약함에도 경의를 표해야 했죠. 영화에 사용된 의상들은 1940년대 오리지널 피스들입니다. 모델은 의상별로 한 벌밖에 없고 촬영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더럽히고 훼손해 낡은 것들입니다. 당대 가장 위대한 크리에이터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조너선은 자신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인물들 뒤로 사라졌어요. 경이롭죠. 존경스럽습니다. 조너선은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퍼스 바자 당신은 다른 영화감독과만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가 있어요.
루카 구아다니노 지난 53년 동안 삶이 제게 집요하게 해온 이야기가 그것인 것 같아요. 이때까지 제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모두 영화 제작자였어요. 배우는 한 명도 없습니다. 제 눈에 가장 섹시하고 저항하기 힘든 것은 창의성입니다.
하퍼스 바자 영화를 제작 및 감독하고, 마고 로비와 함께 샤넬 ‘N.5’의 최신 광고를 기획하기도 하고,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기도 하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루카 구아다니노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을 때요. 저는 집에서 요리할 때, 되도록이면 혼자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요리라는 행위는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제 정신이 마음대로 방황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죠.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제가 하고 있는 요리는 통제할 수 있어요. 일종의 티베트 만트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바로 그런 순간에 저는 영화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합니다.
하퍼스 바자 요리를 정말 잘하나 봐요?
루카 구아다니노 밀라노나 피에몬테의 저희 집에 한 번 초대할 테니 직접 드시고 말씀해주세요.
하퍼스 바자 빈도로 보면 감독님께서는 가장 다작을 하는 분 중 한 명이 아닐까 싶어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매우 유사한 것 같습니다.
루카 구아다니노 참 기분 좋은 비유네요. 파스빈더 감독은 제 영웅이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리듬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영화를 만듭니다. 영화 제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 조달이지만, 그 부분만 해결하고 나면 모든 것이 매우 쉬워집니다. 저는 실용적인 사람이라 어떤 프로젝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아요. 뭔가를 개념화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질색입니다. 작업을 시작하면 평균적인 촬영 기간은 20일에서 50일 정도 걸립니다. 한 해의 1/6밖에 안 되죠. 남는 시간이 얼마나 많아요! 앞으로 7년 동안 매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게 희망사항입니다. 그 이후에는 속도를 대폭 줄이거나 그냥 막을 내릴 생각입니다.
하퍼스 바자 제이콥 엘로디와 <아메리칸 사이코> 리메이크를 만드신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루카 구아다니노 각색할 계획은 있지만 제이콥 엘로디와 관련된 소문은 사실무근입니다. 각본 작업도 시작 안 한 막연한 상태입니다.
하퍼스 바자 팔레르모에서 <대부 III>를 촬영하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세트장에 잠입한 어린 루카 구아다니노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루카 구아다니노 어떻게 하면 영화산업에 발을 들일지, 또 머릿속으로 구상한 그대로 정확하게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인내심과 끈기를 발휘한 그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브라보!”라고 말해줄 거예요.
※ 영화 <퀴어>는 6월 20일 국내 개봉 예정이다.
Credit
- 사진/ 누리픽쳐스, 야니스 드라쿨리디스(Yannis Drakoulidis)
- 글/ Olivier Lalanne
- 번역/ 이진명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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