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위고비와 블루프린트를 갈망하는 이유는 뭘까?

일론 머스크의 다이어트 주사, 백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이 만든 젊어지는 약을 구매하는 현상에 대하여.

프로필 by 안서경 2025.04.11

위고비와 블루프린트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을 만큼 인기인 비만치료제와 노화를 막기 위해 혈장 수혈을 받는 현상. 우리는 신약을 통해 무엇을 갈망하는 걸까?


제각기 다른 알약에서 수많은 인간 군상을 은유한 작가 김승환의 <Pills> 연작. <네모심장 T>, 2023, Pigment-based Inkjet on Glossy Paper, 120x85cm.

제각기 다른 알약에서 수많은 인간 군상을 은유한 작가 김승환의 <Pills> 연작. <네모심장 T>, 2023, Pigment-based Inkjet on Glossy Paper, 120x85cm.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베트남의 한 호텔. 친구 A와 머물게 된 호텔 방 냉장고를 열었다가 흠칫했다. 그 안에서 기다란 펜처럼 생긴 약을 보고, 별안간 온갖 생각이 스쳤다. 딸깍, 가볍게 뚜껑을 열더니 A는 배에 주사를 놓으며 ‘삭센다’라 했다. 평소 새로운 시술에 발 빠른 A답게 삭센다가 국내 출시되자 휴가에도 약을 챙겨 왔고, 높은 동남아 기온 탓에 의약품 변질을 막기 위해 냉장 보관한 것이다. 그 여행에서 대식가 A는 내가 먹는 음식의 딱 반절만 먹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위고비’가 등장했다. 삭센다보다 2배가량*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위고비는 해외에서 먼저 입소문을 타다가 지난 10월 국내에도 정식 발매되었다.(그사이 위고비와 동일한 효과를 지녔지만 당뇨병 치료제로 분류되는 오젬픽도 화제를 끌었으나 아직 국내 출시는 미정이다.) 늘어난 감량 효과만큼 가격 역시 삭센다에 비해 약 3배 이상 비싸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시장 점유율 1위가 머지않았다 말한다. (*노보 노디스크의 임상 결과에 따르면, 삭센다를 투여한 후 56주 만에 실험의 참여자는 체중의 7.4~9.2%를 감량했고, 위고비를 투여한 참가자들은 또 다른 임상 실험에서 68주 만에 14.9%를 감량했다.) 뉴비도 추격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 국내 법인은 신약 ‘마운자로’를 먼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건보 급여 등재를 신청했고 올해 안에 출시 예정이다.

다이어트는 현대인의 마르지 않는 스몰토크 주제다. 요즘 직장에서든 사석에서든 삭센다, 위고비, 오젬픽, 이 다이어트 주사제 3종의 이름이 일상적인 대화에서 오간다. 유명 기업의 오너, 셀럽들이 단기간에 핼쑥하고 날렵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그 효능을 실시간 성형외과의 비포, 애프터 광고인 양 보는 것만 같다. 투자에 눈 밝은 선배 B가 일찍이 신약 3종을 개발한 덴마크 회사 노보 노디스크 미국 주식을 사서 꽤 이윤을 남겼다는 소식을 들으니 배가 아팠다.(노보 노디스크는 재작년 LVMH를 제치고 유럽에서 주가 총액이 가장 큰 회사가 됐다.) 신종 다이어트 주사제는 과연 기존 다이어트 약과 달라 보였다. 각종 병원에서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던 식욕억제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도파민·세로토닌 같은 뇌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신약은 이런 걱정을 지우는 듯하다. 나는 ‘나비약’이라 불리는 펜터민계 식욕억제제를 심심찮게 복용해온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음식 앞에서 너무 심각하고 슬픈 얼굴을 하거나, 갑작스레 기분이 좋지 않다며 밥 대신 차를 마시자고 하는 이들이.

낯선 용어로 위고비 원리를 설명해보자면, 신약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유사체인 ‘세마글루타이드’를 주요 성분으로 한다. 이 호르몬은 뇌가 아닌 췌장에서 분비되며, 음식을 먹으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자연스레 혈당을 낮춘다. 뇌에서 먹지 말라고 종용하는 대신, 포만감을 혈당을 통해 장에서 느끼게 만든다. 한마디로 밥 한 숟갈을 먹어도 몇 숟갈을 먹은 듯한 포만감이 든다는 거다.

최근 국내 출간된 <매직필>을 단숨에 읽게 된 건, 저자 요한 하리가 직접 오젬픽을 복용한 뒤 100여 명의 전문가 및 유경험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서였다. 피부 축소 세포가 감량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생기는 ‘오젬픽 페이스’, 갑상선 LLP-1 수용체를 건드려서 갑상선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유럽 연합의 경고, 소화효소를 생산하는 췌장 세포에 영향을 주거나 위가 소장으로 음식을 못 보내 마비될 수 있는 위험성 등등. 저자는 요목 조목 부작용에 관한 잠재적 위험 요소를 제시한다. 제약회사의 답은 한결같다. “신약이 광범위한 임상을 거쳐 15년 이상 당뇨병 치료에, 8년간 비만 치료에 사용되었고, 누적 사용 기간을 합치면 2백만 년 이상”이라는 것. 흥미로운 대목은 약을 샅샅이 해부한 정보라기보다, 그동안 사람들이 저마다 음식을 먹는 의미를 짚어보는 문장이다. “과식은 내가 쉽사리 무너질 수 있는 순간에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해주었다.” 아름다운 몸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 아니라, 먹는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요한 하리는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완충제로서 음식을 먹어왔다고 고백한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 삶의 각종 불안과 스트레스를 벗어나 하루하루 나아가기 위해 과식했고, 그 결과 그는 체지방 지수 30이 넘는 비만이 되었다. 신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고 신약의 부작용을 알게 되면서도 나아진 외모에 초연할 수 없는, 자가당착에 빠진 본인의 상태를 시인한다.

섭식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추구하며 이상적인 인간상을 꿈꾸는 이의 사례는 또 있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실사판으로 주목받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브라이언 존슨: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가 그 예다. 젊고 아름다운 도플갱어를 만들어낸 데미 무어와 달리, IT 기업을 매각한 백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은 노화 속도를 막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프로젝트 블루프린트’에 착수한다. “오전 5시 25분: 블루프린트 장수 믹스 1스쿱, 블루프린트 콜라겐 단백질 11g 블루프린트 크레아틴 2.5g (장수 믹스는 총 5g에 2.5g 포함), 프리바이오틱 갈락토올리고당 ½ t, 이눌린 1작은술.” 그는 매일 이렇게 여러 번 식사를 하고 수십 개의 영양제를 먹으며 주 3회 고강도 운동을 하는 등 1백 가지 루틴을 통해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든다. 현재는 효과가 미미해 중단했지만, 18살 아들의 혈액을 1리터 수혈받아 혈장만을 채취해 노화 속도를 늦추는 시도도 했다. 온갖 바이오해킹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몸을 매일 측정하고 이를 쇼츠로 만들어 틱톡에 업로드한다. 차고 넘치는 콘텐츠를 보다가 느낀 건 책과 다큐멘터리에서 다루는 담론이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라는 거였다. 마치 신자본주의가 남긴 폐해를 고발하던 마이클 무어의 영화 같았달까. 여전히 신약과 새로운 바이오 기술은 무엇이 옳고 그르냐, 해답이 없는 치열한 공방에 놓여 있다는 것. 하지만 이를 대하는 우리의 화법이 달라졌다. 영상과 책 속 인터뷰이들은 더 이상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갖기보다 개인의 선택처럼 신약을 대한다. “저는 지금 어느 때보다 행복해요. 지금의 저로 오래도록 살고 싶어요.” 존슨은 기왕 100세 이상 나이 드는 시대에 유일한 관계인 아들과 더 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늙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분명 그 믿음은 진심인 것 같다.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흐린 눈으로 볼 권리는 내게 없어 보인다. 극단에 놓인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우리는 인생을 몇 회 차 산 것처럼 지혜롭고 경제적 안정성을 이루길 원하면서도 외양은 한 살도 늙지 않길 갈망한다. 가공 식품이 널린 환경에서 자연 식품을 찾아내어 음식이 주는 의미를 곱씹으면서 날씬한 몸을 갖길 바란다. 요한 하리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2032년이면 신종 비만치료제의 특허가 만료된다고 강조한다. 모든 제약회사가 복제약으로 저렴하게 비만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때가 돼도 신약을, 바이오해킹을 트렌디한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요한 하리도, 브라이언 존슨도 답을 내려주지는 못한다.

Credit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