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 콩쿠르 우승, 열여섯의 발레리노 박윤재
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의 기록.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Fly High
20년이 채 되지 않는 인생의 타임라인에서 절반 이상을 발레와, 탁구와, 보드와 함께한 사람들. 박윤재, 박가현, 김건희. 어떤 수식 없이 이름만으로도 충분할 날이 머지않았다.


셔츠는 Bode. 팬츠는 Recto.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윤재
15세에서 18세까지 참여할 수 있는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한국인 남성 최초로 우승했다. 2008년생, 만 16세의 나이로. 5살 때부터 누나를 따라 발레를 시작했다지만 사실 무대 위에서 춤추는 일이 좋았을 뿐이다. 이제는 발레가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 자랑이 되었다.
하퍼스 바자 로잔 콩쿠르 우승 진심으로 축하해요. 시상식에서 ‘214번 박윤재’가 호명되었을 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박윤재 그동안 제가 어떻게 노력해왔는지는 제가 제일 잘 알잖아요. 그 시간에 대한 보답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요. 그 다음엔 ‘부모님이랑 누나,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하다!’ 사실 제 번호와 이름을 듣고 상을 받으러 뛰어가고 있으면서도 머리로는 잘못 들었나? 나가도 되는 게 맞나? 얼떨떨했던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오고 꿈꿔온 무대인 만큼 준비하는 동안에도 불쑥불쑥 눈물이 났다 했죠. 이런 엄청난 성적을 낼 거라고 예상은 했나요?
박윤재 콩쿠르 접수하고 영상을 제출했을 땐 본선 진출만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저는 욕심을 내면 실수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침착하려고 했어요. 선생님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웃음) 지적받은 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순간을 즐기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하퍼스 바자 긴장하지 않고 무대를 즐기기만 하는 게 가능해요?
박윤재 무대에 서서 춤을 출 때 관객들이 환호하고 박수 치는 소리에서 오는 희열이 엄청나요. 그 희열을 느낄 때 상황에 확 몰입이 돼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내 무대를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요. 저는 무대에 서는 것 자체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꼭 하는 일이 있어요?
박윤재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무대 1시간 전쯤에는 무조건 바나나를 먹어요. 제가 평발이라 쥐가 자주 나는데 바나나, 키위 같은 걸 먹으면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공연이 다가올 땐 점점 연습을 덜 하려 해요. 만약 콩쿠르가 임박해 오는데도 유독 안 되는 동작이 있다? 그럼 저는 그냥 손을 떼는 편이에요. 물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해보려고 하지만, 몸을 혹사시켜가면서까지 붙잡고 있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그럼 원래 잘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더 지치기 전에 놓는 것이 제가 저를 지키는 방법인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나를 지켜가면서 발레를 하는 법은 어떻게 터득하게 됐어요?
박윤재 지치면 발레가 싫어질까 봐 그래요. 저는 쉬지 않고 발레만 할 자신은 없거든요. 그래서 선생님 없이 혼자 하는 연습도 많이 안 하는 편이에요. 수업이 워낙 길기 때문에 그 시간에 제대로 집중해서 하려고 해요.
하퍼스 바자 무용수로서 윤재 군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연하면서도 힘이 있다는 점이에요. 일반적인 남자 무용수에 비해 허벅지 근육이 두꺼운 편이기도 하죠.
박윤재 맞아요. 그 덕에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어서 점프도, 회전도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대에서는 키를 작아 보이게 만들어서 조금 아쉽지만 확실히 몸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니까요. 제 다리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발레를 계속 하는 이상 끝까지 가져가야 할 부분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생각을 내려놨어요. ‘이 다리가 있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다’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생각을 내려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죠. 요즘 무용에서는 타고난 신체의 조건이 덜 중요해졌다지만, 일반적으로 무용수에게는 근육 없이 매끈한 몸을 기대하는 시선이 있으니까요.
박윤재 실제로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선생님들로부터 다리를 가늘고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피드백을 들었어요. 안 되면 살이라도 빼라고요. 근데 로잔 콩쿠르를 나가서 보니 제 다리가 개성이 되더라고요.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 싶었어요. 내가 나를 좋아해줘야 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한 기분이었어요. 이제는 지금의 제 몸을 사랑하게 됐어요.
하퍼스 바자 그래서 자신의 발을 보고 치토스를 닮았다는 식의 귀여운 애정 표현을 한 건가요?
박윤재 저 같은 무용수에게는 제일 예쁘고 자랑스러워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뼈가 툭툭 튀어나온 울퉁불퉁한 발이요. 그런 모습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저는 아니까요.
하퍼스 바자 무용을 하다 보면 노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순간도 있을 텐데요. 내 뜻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아 낙담하게 될 때는 어떤 식으로 극복하나요?
박윤재 중3 때였나, 콩쿠르에서 정말 크게 실수를 한 적이 있었어요. 무대에서 땅을 짚고, 피루엣(한 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도는 춤 동작)에서 쿵쿵쿵…. 그냥 발레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실수는 다 했다고 보시면 돼요.(웃음) 그러고 나서 거의 이틀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잠만 잤어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신기하게도 회복이 되더라고요. 그 뒤로 바닥을 쳤다고 생각할 때 올라오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힘을 빼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어디 한번 내려갈 때까지 내려가 봐라. 어디까지 떨어지나 보자, 하고요. 그럼 그쯤에서 멈추고 자연스럽게 회복이 돼요.
하퍼스 바자 지금 윤재 군에게 일주일 동안 완벽한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시간을 쓰고 싶어요? 발레하는 건 빼고요.
박윤재 사실 저는 발레가 아니면 취미라고 할 것도 없는 것 같아요. 몸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운동도 잘 안 하거든요.(웃음) 일주일이 있다면 여행을 갈래요. 아주 가끔 발레랑 거리를 둬야겠다 싶을 때 쓰는 방법이기도 해요. 어디든 가서 발레는 쳐다보지도 않고 잠 많이 자고, 강아지 영상 보고, 여행 유튜브도 보는 거죠. 어쩌다 인스타그램에 발레 관련된 뭔가가 떠도 바로 휙 넘겨버리면서요. 아! 음악도 꼭 듣고요.
하퍼스 바자 지금 생각나는 노래 한 곡을 추천해준다면요?
박윤재 요즘엔 모네스킨(Måneskin)의 ‘Beggin′’을 많이 들어요. 마음에 있던 걱정들이 후련하게 날아가는 것 같거든요. 수업 끝나고 집 가는 차에서 창문 살짝 열어놓고 에어팟으로 이 노래를 들으면 그날 발레가 잘 안 됐든, 이유 없이 힘이 들었든 바로 에너지가 차오르는 게 느껴져요.
하퍼스 바자 앞으로 발레를 하면서 어떤 도전을 더 해보고 싶어요?
박윤재 저는 귀족보다 집시 캐릭터로 춤추는 게 더 재밌더라고요. 특정한 배역에 얽매여 있지 않고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고 싶어요. 다양한 걸 하는데, 매번 자기만의 특별한 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무용수요.
하퍼스 바자 로잔 콩쿠르 우승 후에 남긴 소감도 그런 뜻이었나요? “반짝반짝 빛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말이요.
박윤재 가끔 춤을 추다가 무용실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을 때가 있어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랑 비슷하죠. 그 순간은 별과 가까이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할 정도로 밝고 찬란하거든요. 나중에 지금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어디에선가는 그렇게 빛나고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서 한 말이었어요. 그 순간이 발레를 하면서 가장 좋은 순간 중 하나이기도 한데, 다른 말 말고 ‘찬란하다’는 표현만 생각나요. 아주 짧은 순간인데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차고요.
Credit
- 사진/이용희
- 헤어/ 안민아(박윤재), 이에녹(박가현, 김건희)
- 메이크업/ 하은빈
- 스타일링/ 이종현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Summer fashion trend
셀럽들이 말아주는 쏘-핫 여름 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