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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본고장, 솔로메오로 가는 길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솔로메오에 다녀왔다.

프로필 by 이진선 2025.03.27

THE WAY TO SOLOMEO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나의 지역을 재건하고 이를 하우스의 근간으로 삼은 브루넬로 쿠치넬리.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곳, 솔로메오에 다녀왔다.


솔로메오 내 극장 건물과 그 맞은편에 자리한 앰퍼시어터. 인간 존엄성을 기리는 기념비가 시선을 사로잡는 아그래리언 파크.

페루자(Perugia)에서 솔로메오(Solomeo)로, 또 밀라노로. 2박 3일이라는 짧은 여정 속에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트립이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초대로 성사된 이번 트립은 하우스의 근간이자 원동력인 솔로메오 지역을 탐방하는 것이 목적. 쿠치넬리가 태어난 고향인 페루자에서 차로 30분 거리, 뉴트럴 컬러의 건물과 초록빛 자연이 조화를 이룬 고즈넉한 이곳, 솔로메오에 대한 첫인상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는 듯한 이 작은 마을과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1978년 25살의 젊은 나이에 50만 리라(당시 약 37만원)를 대출받아 작은 캐시미어 회사를 설립한 쿠치넬리는 컬러풀한 캐시미어 스웨터로 시장을 사로잡게 된다. 그로부터 4년 뒤, 아내의 고향인 솔로메오로 이주한 그는 14세기에 지어진 마을의 성곽을 매입해 브랜드 본사로 만들었고, 직원이자 직원들의 가족인 마을 사람들을 위해 솔로메오의 오래된 건물을 재건하기로 마음먹었다. 운동 시설부터 극장까지 주요 건물을 새로 짓는 한편 기술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도 힘을 보탰다. 그 덕에 젊은 세대들이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이탈리아 장인의 명맥도 이어나갈 수 있었으니, 이야말로 패션 기업의 선순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쿠치넬리는 더 나아가 2010년부터 ‘아름다움을 위한 프로젝트(Project for Beauty)’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쾌적한 주변 환경을 제공하기로 결심했다. 장장 8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약 1백 헥타르에 달하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월드가 완성되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더 놀랍고 아름다웠다. ‘솔로메오 햄릿’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2013년에 설립된 현대 고급 공예 및 예술 학교를 비롯해 연극·콘서트·발레 공연이 열리는 극장, 그 맞은편에 자리한 앰퍼시어터(amphitheater, 원형 극장), 경기장 등이 자리해 있다. 또한 2018년 여름에 완공된 아그래리언 공원(Agrarian Park)에는 농장, 올리브 과수원, 포도원, 자체 제작 와인인 ‘카스텔로 디 솔로메오(Castello di Solomeo)’를 만들고 저장할 수 있는 와이너리도 갖추고 있다. 아울러 2021년부터 새로운 유니버설 도서관(Universal Library of Solomeo)을 건립하는 공사를 시작해 완공을 앞두고 있다고.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색이 스며든 극장 내부 모습.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2025 F/W 컬렉션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2025 F/W 컬렉션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2025 F/W 컬렉션 스쿨 오브 크래프트(School of Cratfs)를 통해 젊은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누군가의 존엄성을 파괴하지 않고 인간의 명예를 지키는 일을 하겠습니다. - 브루넬로 쿠치넬리


뒤이어 방문한 본사 역시 일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큼직한 통창 너머로 보이는 초록빛 자연과 따스한 햇살을 이따금씩 바라보며 저마다의 자리에서 여유롭게 일하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솔로메오를 향한 쿠치넬리의 애정은 하우스의 로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단에 적힌 ‘Solomei ad MCCCXCI’를 통해 하우스의 모든 제품이 솔로메오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랑스럽게 밝힌 것. 물론 주재료인 캐시미어는 보온성이 탁월한 몽골 캐시미어를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히르쿠스 염소의 목과 배 아랫부분 미세섬유를 오로지 빗질로만 수확(1마리의 히르쿠스 염소에서 한 해에 수확할 수 있는 양은 150~250g에 불과하다)한 뒤 최고의 이탈리아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완성하기에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솔로메오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밀라노에 도착하니 2025 F/W 밀라노 패션위크가 막 시작된 참. 셋째 날 열린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새로운 컬렉션도 미리 만나볼 수 있었다. 주제는 ‘본능과 이성’. 그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조화를 탐구하며 그 이중성을 장인정신과 테일러링을 통해 한층 편안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컬렉션이었다. 그중 승마에서 영감받아 여성성을 적절히 녹여낸 룩들이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브랜드가 하나의 지역(local)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그, 그곳에서 마주한 브루넬로 쿠치넬리와 인사를 나누며 짧고도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Credit

  • 사진/ © Brunello Cucinelli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