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영화

가까워지려 할수록 그 대상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에서 진실은 그런 것이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4.12.29
차 한 대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도로를 내달린다. 엘리자베스(레나테 레인스베)가 아들 아르망이 다니는 학교로 향하는 길이다. 조금 전 그는 아르망과 친구들 사이에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말과 이모티콘까지 덧붙인 담임 교사의 문자에도 불안한 마음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자꾸만 손톱을 물어뜯는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불안은 현실이 된다. 아르망이 친구 욘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르망은 고작 여섯 살이다.
영화 안에서 누구도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다. 학생들의 공간에서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일은 어른들의 시각에서 이리저리 규정된다. 적당한 선에서 깔끔하게 상황을 종결하려는 듯한 교장과 교사들은 둘을 분리하고 각각에게 보조 교사를 배치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엘리자베스는 별안간 폭소를 터뜨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엔 새어나오는 웃음을 꾸역꾸역 밀어넣다가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 기침이 튀어나오도록 웃고 만다. 아들이 학교 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의심받아 학교 측의 조치를 전해 듣는, 그러니까 전혀 웃을 일이 아닌 상황에서 터진 때아닌 폭소는 순식간에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만든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레나테 레인스베는 미친 듯이 발산했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는 엘리자베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 이 기분 나쁜 충격을 배가시켰다.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입에서는 침이 흐르다 끝내 가쁜 호흡을 내쉬며 우는 울음이 되기까지 7분 남짓한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영화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된다. 욘의 부모와 엘리자베스 사이에 얽힌 또 다른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고 온갖 의문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모든 인물은 진실과 거짓, 의심과 오해 사이를 휘저으며 2시간 내내 관객을 설득했다 배신하기를 반복한다. 그 중심에 선 엘리자베스는 묘연한 한마디를 남긴 채 홀연히 학교를 빠져나간다. “있죠, 우리를 표면에서 보면 참 혼란스러워 보일 거예요. 더 깊이 들여다봐도 여전히 좋을 게 없죠. 하지만 딱 적당한 거리에서 보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우리가 괜찮아 보일 거예요.” 하프단 울만 톤델 감독은 이 영화로 최고의 첫 장편영화에 주어지는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는 12월 25일 개봉한다.

Credit

  • 사진/ 영화사 진진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