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러닝 말고, 취미를 공유하는 소셜 모임

취미를 매개로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는 사이,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프로필 by 고영진 2024.12.10
마작
토요일 오전 11시, 마작을 즐기려는 24명의 구성원이 용산에 모였다. 오늘의 장소는 홍콩 영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중식당 ‘웨이 티하우스 앤 레스토랑’. 모임의 장인 문화비평가 이명석은 다양한 형태의 마작 모임을 주최한다. 3주 코스의 마작 수업부터 숙련자들과 정기적으로 행하는 마작 소셜 모임까지. 사실상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마작 모임에 관여하고 있다. 정동 마작 교실 인스타그램(@mahjong_seoul)을 통해 모집 내용을 업데이트한다.

참가한 구성원 대부분이 여성이다. 어떻게 만들어진 모임인가? 영화 <색, 계> <화양연화> <조이 럭 클럽>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그리고 있듯 마작은 여자들의 소셜 게임이다. 이런 영화에 매료되었거나 홍콩이나 대만 등 중화권 문화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이 주로 찾는다. 보다시피 24명의 참가자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일 정도로 비율이 압도적이다.(웃음)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마작의 역사를 공부하고, 게임을 한 뒤 차 한 잔으로 마무리한다.
마작의 매력은 무엇인가? 일단 패 자체가 아름답다. 여행지에서 그저 예쁘다는 이유로 마작 패를 사버린 김에 배워보겠다는 사람도 많이 봤다. 신체 조건의 제약 없이 누구나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만난 수강생 한 명은 “마작에 빠진 뒤 친구 네 명이 평생 헤어지지 못할 이유가 생겼다”고 하더라. 져도 재미있고, 이기면 더 재미있는 매력적인 게임이다.
어떤 성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마작 모임을 권하고 싶나? 요즘엔 소수의 사람들끼리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소셜 모임의 수요가 많은 것 같다. 그중에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 우선인 사람도 있지만, 오직 마작을 하고 싶어서 통성명도 필요 없이 게임만 즐기다 가는 쿨한 관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통상적으로 4명씩 모여 하는 마작은 어느 쪽이든 가능하다. 자기 스타일에 맞는 테이블을 골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취미를 여럿이 함께 즐겨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신호다. 무언가에 빠진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데, 모임 안에서라면 그 세계는 더 확장될 수밖에 없다. 소셜 모임을 제외했을 때 취미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돈을 내고 참가하는 클래스나 학원 수업 정도 아니겠나. 최근에야 유튜브나 원데이 워크숍 등으로 가볍게 발을 들일 수 있는 방법도 생겼지만 사람과 만나 소통하면서 익히고 즐길 때 얻는 것이 훨씬 많다.

킨츠기
일본어로 ‘킨’은 ‘순금’을, ‘츠기’는 ‘잇다’는 뜻을 갖고 있다. 합하면 금으로 잇는 작업. 이가 나가거나 깨져 수선이 필요한 도자기를 옻칠로 접합한 뒤 금이나 은을 뿌려 장식하는 기법을 말한다. 일본 요리를 하는 셰프 6명이 킨츠기 모임을 만든 것은 버려지는 식기를 줄이려는, 아주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였다. 옻칠공예가 유지윤은 이 모임에서 킨츠기를 가르치는 강사이자 리더 역할을 겸한다. 모임이나 클래스 문의가 가능한 계정 옻칠리어(@ottchilior_)에서 옻칠과 킨츠기 작업물도 확인할 수 있다.

함께한 구성원 중 유일하게 셰프가 아니다. 모임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 목공 일을 하는 지인이 일본 요리를 취미로 배우다 알게 된 모임을 소개해줬다. 일본 요리를 하는 셰프들이 도자기를 수리해 사용하려고 만든 모임인데, 독학으로 배우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리더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고 하더라. 킨츠기는 넓게 봤을 때 옻칠 안에 포함된 기법이다. 자연스레 취미 삼아 하고 있던 일을 함께할 사람들이 생겨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킨츠기의 매력은 무엇인가? 일본에 ‘와비사비’라는 용어가 있다. 불완전한, 미완성의 것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모자라고 흠집이 있는 것들을 더 아름답게 바라보는 미학이다. 킨츠기가 딱 그렇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에 예술을 접목하는, 미적, 실용적 가치를 지닌 작업이라는 점이 좋다.
어떤 성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킨츠기 모임을 권하고 싶나? 킨츠기를 하며 회사원부터 개발자까지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스트레스를 주체할 수 없어 두통을 달고 산다는 어느 변호사도 기억에 남는다. 머리는 비우고 싶지만 격한 신체 활동은 꺼려하는 사람들이라면 좋아할 만하다.
킨츠기를 취미 삼은 뒤 일상에 생긴 변화가 있다면. 다도 문화에서 기본적으로 자기로 만든 잔이나 주전자를 쓴다. 향을 태우는 도구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차나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킨츠기를 취미 삼기도 하는데, 나는 반대로 킨츠기를 하며 그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도 차 공부를 틈틈이 하고 있다. 작년에는 문래동의 ‘아도’라는 찻집을 운영하는 지인과 함께 추석을 맞아 티 파티도 열었다.
취미를 여럿이 함께 즐겨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주변의 취미 부자들을 보면, 모임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개와 추천으로 또 다른 취미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 취향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과 교류하는 것 자체로 환기가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취미는 곧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라, 약속된 모임이 없으면 지속하기 힘들다.

뜨개
서교동에 위치한 뜨개 편집숍 ‘솜솜뜨개’를 운영하는 성지현 대표는 한두 달에 한 번씩, 함께 뜨는 모임을 갖는다. 일명 함뜨(함께 뜨기) 모임. 물리치료사부터 교사까지, 직업군도 나이도 다양한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오직 뜨개다. 바늘과 실을 갖고 뜨개 이야기로 시작한 모임은 언제나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로 끝을 맺고 다음 달을 기약한다. ‘지인의 지인의 지인’ 같은 관계가 확장되어 생긴 모임은 현재 비정규적으로 운영된다.

화요일 오후 3시. 평일 낮 모임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어떻게 만들어진 모임인가? 일 외의 시간에도 뜨개를 함께할 수 있는 친구들을 모으다 여기까지 왔다. 각자 좋아하는 실을 선택해 같은 도안으로 서로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작품이 완성되면 맛있는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두고 사진을 남기는 일도 잊지 않는다. 뜨개 말고는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두세 번 정도만 모여도 친해진다.
뜨개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반복적인 데다 처음일수록 눈에 보이는 성과도 더디기 때문에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그만큼 완성된 결과물에 큰 성취를 느낄 수 있다. 실을 한 코씩 떠가며 집중하다 보면 마치 명상하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실제로 명상이 어렵다는 사람에게 추천하기도 한다.
뜨개를 취미 삼은 뒤 일상에 생긴 변화가 있다면. 완벽히 집중하는 시간이 생기면서 삶의 여유가 생겼다. 작은 실수에도 너그러워지고, 스스로에게 만족감도 느낀다. 최근에는 완성된 뜨개 작품을 촬영하는 일에도 흥미가 생겼다. 내가 만든 물건의 디테일과 색감을 잘 담아내고 싶은 욕심에 사진을 더 배워보고 싶어진 것이다. 어느 한 분야에 빠지면 자연스레 다른 취미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서울에서 뜨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추천해달라. 서교동의 솜솜뜨개를 비롯해 방학동의 니팅카페 토요, 신원동의 누뗀, 연희동의 바늘이야기, 봉천동의 옐로우헤이트 등. 서울 안에서 뜨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정말 다양하다. 공간마다 분위기도 특색도 다르기 때문에 모임 곳곳을 투어하듯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취미를 여럿이 함께 즐겨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같은 취미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정기적으로 만남을 약속하고,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 배우고 즐기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 내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취미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건 궁극적으로 이런 삶을 위한 것이다. 에디터/ 고영진

Credit

  • 사진/ 하태민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