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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쉐론의 소리가 담긴 주얼리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Claire Choisne)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혁신’이다.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의 행보를 보여준 그녀가 이번에는 소리를 담은 주얼리, ‘콰트로 5D 메모리’ 링을 선보였다. 선뜻 연결시키기 어려운 이 조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를 가지고 클레어 슈완과 심층적인 대화를 나눴다.

프로필 by 윤혜영 2024.10.29
하퍼스 바자 지난 6월 이노베이티브 컬렉션을 통해 새롭게 선보인 ‘콰트로 5D 메모리(Quatre 5D Memory)’ 링은 오디오를 담은 주얼리다.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
클레어 슈완 20주년을 맞은 ‘콰트로’ 링을 또 한 번 진화시켰다. 케어링 이노베이션 랩(Kering Innovation Lab)으로부터 디지털 데이터 광학 저장 프로세스인 ‘5D 메모리’를 소개받은 것이 그 시작이다. 이 기술은 대지진, 소행성 충돌 같은 재앙에서 인류가 멸종하지 않도록 도와줄 ‘불멸의 저장 장치’라고 불린다. 나노 구조를 가진 유리에 펨토초 레이저(femtosecond laser)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하는데, 방대한 양의 정보를 수십억 년 동안 인코딩할 수 있다. 우리는 반지에 오디오를 담기로 결정했고,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 창작 및 과학 연구를 위한 공공 연구 센터인 IRCAM-퐁피두센터(French Institute for Acoustic/Music Research and Coordination-Centre Pompidou)와 협업해 특별한 사운드를 개발했다.
하퍼스 바자 주얼리와 5D 메모리 기술이 결합한 최초의 프로젝트다.
클레어 슈완 5D 메모리는 사우스햄프턴대학교 교수 겸 S포토닉스(SPhotonix) 최고 과학 책임자인 피터 카잔스키(Peter Kazansky)가 발명한 초고속 나노 구조화 기술이다. 우리의 협업은 케어링 이노베이션 랩 덕분에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하이테크 기업과 손잡고 독창적인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은 부쉐론의 전문 분야다.
하퍼스 바자 이 기술은 텍스트, 이미지, 영상, 소리까지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소리를 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클레어 슈완 대서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나에게 자장가와도 같은 끝없는 파도 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한마디로 물의 기억을 담은 주얼리다. 앞서 언급했듯 사운드는 IRCAM과 협업한 것으로 5분 길이다.(콰트로 링 크기에는 최대 100메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작과 끝이 잘려서 루프처럼 이어지기 때문에 영원히 들을 수 있다. 평온하고 고요한 겨울 바다를 떠올리며 아이슬란드의 바다에서 채취한 소리 샘플을 분석하고 재편집했다. 사실 실제 바다 소리는 아니고, 과학적으로 만들어낸 소리다.
하퍼스 바자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직접 소리를 들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소파에 편히 앉아 반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굉장히 감동적이더라. 자체에서 소리가 나는 것인가?
클레어 슈완 반지 자체에서 소리가 나진 않는다. 소리는 클루 드 파리 모티프 중 한 조각에 새겨져 있다. 고대 언어를 돌에 새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소리를 듣기 위해선 코드를 읽고 오디오 파일로 다시 생성해 컴퓨터에서 재생해야 한다. 반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 보관하고 보호하는 게 목표다. 안전한 금고랄까? 몇 천 년 후에 이 반지를 발견해 사회를 재건할 수도 있다. 마치 고대 이집트 반지를 해독한 것처럼.
하퍼스 바자 나노 구조를 가진 유리라니 주얼리에는 잘 사용하지 않은 소재일 듯하다.
클레어 슈완 5D 메모리를 담기 위해 물처럼 투명한 소재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여러 번의 테스트와 인그레이빙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강해야 했고. 이번 협업을 함께한 글라소머 기업의 글라소머®(Glassomer®) 소재를 선택한 이유다. 독특한 광학적 특성을 지닌 실리카 글라스 소재가 다이아몬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모두 사용되었다. 특히 14g인 콰트로 링에 비해 콰트로 5D 메모리 링의 무게는 4.9g에 불과하다.
하퍼스 바자 콰트로가 20주년을 맞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콰트로 링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
클레어 슈완 기둥의 세로 홈 장식이 연상되는 ‘더블 고드롱(Double Godron)’부터 방돔 광장의 자갈길을 표현한 ‘클루 드 파리(Clou de Paris)’, 1892년부터 부쉐론이 사용해온 클래식한 코드 ‘다이아몬드 밴드(The Ligne Diamants)’, 실크 패브릭을 의미하는 ‘그로그랭(Grosgrain)’까지. 네 가지 패턴과 세 가지 컬러의 골드가 결합된 링으로 2004년 출시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재창조되며 늘 현대적이라는 점이 매력이다. ‘콰트로 5D 메모리’ 링이 출시되기 전 목걸이, 팔찌, 벨트, 헤어 주얼리 등 다양하게 변형 가능한 리본 형태의 유연한 주얼리를 선보였다. 우리는 확실히 이런 흥미로운 시도를 좋아한다. 실제로 이노베이티브 캡슐 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콰트로를 선보여왔다. ‘콰트로 블루 진 에디션(Quatre Blue Jean Edition, 2020)’을 시작으로 홀로그래픽 코팅 기술을 적용한 ‘올로그라피크(Holographique, 2021)’, 산업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하여 만든 ‘얼팀 코팔리트(Ultime Cofalit, 2022)’, 알루미늄(Aluminium, 2023)까지. 콰트로 5D 메모리는 콰트로를 주인공으로 한 메종의 5번째 캡슐 컬렉션이다.


‘콰트로 5D 메모리’ 링은 미래 세대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들이 물의 소리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도록 해줄 것이다. 기억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


하퍼스 바자 부쉐론이 선택하는 혁신적인 기술은 늘 놀라움을 준다. 이노베이티브 컬렉션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클레어 슈완 혁신을 향한 열정은 메종을 돋보이게 만들어왔다. 우리는 매년 프레데릭 부쉐론(Frederic Boucheron)의 발자취를 따라 혁신적인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시작은 ‘꿈’이다. 혁신은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기술과 소재는 그저 수단일 뿐, 목표는 아니다. 각 작품의 목표는 물질성을 넘어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오어 블루(Or Bleu)’ 컬렉션을 선보인 후 소중한 자원인 물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싶었다. 또 기억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콰트로 링 안에 파도 소리를 새기기로 결정했다.
하퍼스 바자 파도 소리 같은 개인적인 기억을 작품으로 표현할 때 주얼리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가 ?
클레어 슈완 나는 종종 부쉐론의 하이주얼리를 예술작품과 비교한다. 예술작품처럼 물질성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고유의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 ‘오어 블루’ 하이주얼리 컬렉션의 경우 아이슬란드 물의 다양한 형태를 그대로 표현했다. 액체 형태의 물뿐만 아니라 얼음 동굴, 폭포까지. 이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고, 그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하퍼스 바자 ‘콰트로 5D 메모리’ 링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
클레어 슈완 이 작품은 미래 세대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들이 물의 소리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도록 해줄 것이다. 기억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
하퍼스 바자 마지막으로 어디서 만나볼 수 있는가?
클레어 슈완 아쉽게도, 판매용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일종의 콘셉트 카라고 할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

Credit

  • 사진/ © Boucheron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