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출구 없는 네 배우의 치열한 배틀, 노 웨이 아웃
달아나려 할수록 옭아매는.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밤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의 네 배우 유재명, 염정아, 김무열,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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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Exit


조진웅
하퍼스 바자 사전 시사로 초반부를 보고 왔는데 ‘공개살인청부’라는 강렬한 설정, 배우들의 연기 때문인지 멈추지 않고 보게 되더라고요. 흉악범 김국호를 비호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형사 백중식 역을 맡았어요. 주기적으로 형사 역을 맡아올 만큼 이 직업과 각별한 인연이 있네요.
조진웅 좀 다르지 않던가요?(웃음) 예전에는 정의감 넘치는 형사를 주로 맡았다면 이번엔 사람 같은 느낌의 형사라서 재밌게 연기했어요.
하퍼스 바자 농담을 일삼으며 건들거리는 모습이 <살인의 추억> 형사들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조진웅 확실히 그런 면이 있죠. 보통 영화에서 형사들은 “야, 몇 번 출구에서 잡아!” 이러는데, 이번 작품에선 도망가는 범인에게 “좀만 기다려봐.” 이런 식으로 달래니까. 저는 형사님들을 잘 아는데, 사실 다들 그렇게 살거든요. 영화 <강적>을 찍을 때 서대문경찰서에서 한 달 반 합숙을 한 적 있어요. 당시 이대우 반장님 주도 아래 동대문파, 남대문파 56명 검거 작전을 하던 시기여서 형사님들과 같이 잠복도 하고, 출동도 하고 그랬죠. 그때 기억에 남는 게 어느 날 강력반 형사님 집에 도둑이 든 거예요. 강도가 든 상황인데 그들끼리 대화는 “방범창을 비싼 걸로 해야 한다” 같은 주제인 게 되게 웃겼죠. 실제 직업인의 생활은 가까이서 보면 그런 거잖아요.
하퍼스 바자 백중식의 모습을 20여 년 전의 기억에서 포착한 거군요.
조진웅 수사반장 바로 아래 소위 ‘테이블’이라는 직급이 있어요. 말하자면 조감독 정도의 위치죠. 형사 생활 한 지 10년에서 15년 차 사이. 그때 본 테이블 형의 모습과 비슷할 것 같아요. 한번은 강도가 칼을 들고 인질을 협박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순경들은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에 테이블 형은 거침없이 들어가서 “나와 봐” “칼 안 내려?” 하면서 기세로 제압하더라고요. 나중에 담배 피우면서 “겁나지 않으셨어요?” 물어보니 죽일 생각 있는 범인이면 벌써 죽이고 갔을 거라고 하는 거예요.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베테랑인 거죠. 범인과 현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틀이 딱 짜여져 있는 사람들. 백중식도 그런 틀이 있는 인물인 것 같았어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니 중식이라는 캐릭터에 접근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또 현장에서 스태프들과의 소통이 너무 좋았어요. 그냥 다 내 손발, 내 식구 같았죠. 그게 너무 행복했어요.
하퍼스 바자 그런 현장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그 만족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나요?
조진웅 모든 스태프들이 한 장면을 잘 만들고 싶어서 애쓰는 마음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옛날에 영화 <끝까지 간다>를 찍을 때 김성훈 감독이 이런 말을 했거든요. “진웅아, 난 오늘도 한 알의 맛있는 알사탕을 까 먹은 기분이야. 이제 내 서랍 안에는 다섯 개의 알사탕밖에 안 남았어.” 한 회차를 찍는 마음이 너무 소중했던 거예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이지 했는데, 이번에 처음 느꼈어요. 그만큼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에요.
하퍼스 바자 “룰렛 돌림판을 돌려서 행위와 보상을 정한다.” 익명의 존재가 내건 현상금 때문에, 대대적으로 악인의 청부살인이 이루어진다는 특수한 설정이 한편으론 자극적이고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조진웅 그런 세계관이 통용될 정도로 이 시대, 우리 사회에 신박한 상황이 많다는 걸 실감한 점에서, 좀 개운치 않았어요. 우려도 되었고요. 문화예술 콘텐츠라는 게 사실 현실에 제일 예민하게 반응하는 매체인데 이런 화두를 던진다는 게 유쾌하진 않았죠. 다만 이런 군상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펼쳐서 보여줄 가치는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하퍼스 바자 “혼돈과 딜레마로 가득한 세계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개인의 욕망이 강한 다른 캐릭터와 달리 중식은 좀 더 복합적인 인물처럼 보입니다. 직업에 대한 책임감으로 흉악범을 보호해야 하지만, 중식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들이 뒤섞여 갈등을 겪게 되죠. 중식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요?
조진웅 중식은 극 중 유일하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인간다운 고민을 하는 인물이에요. 갈등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상황이 많으니까 감정의 정도를 잡는 게 쉽진 않았어요.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라는 질문을 스태프들에게 자주 던지며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려고 했어요. 무조건 내가 하는 게 맞다고 정해두지 않았죠. 사실 원래의 저는 좀 확고한 편인데 이번 작품은 예외였어요. 정형화되지 않으니까 생동감이 있어서 연기하면서 재밌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더 놀지?” 하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하퍼스 바자 유재명 배우와는 10여 년 전 <범죄와의 전쟁>에서 형사와 조폭으로 만났는데, 이번 작품에서 바뀐 직업으로 만난 점이 흥미롭더라고요. 다른 여러 배우와도 전작들에서 만난 적이 있고요. 배우들과 현장에서의 합은 어땠어요?
조진웅 재명이 형은 부산에 있을 때부터 알았으니 오랜 사이예요. 재야의 고수였죠. 이번에 악역으로 연기하며 순간 순간 디테일을 살리는 걸 보고 되게 놀라웠어요. 유명한 맛집의 시그너처 메뉴 같달까. 형은 “이 집에 오면 이건 꼭 먹어야 해” 같은 연기를 보여줘요. “진웅아 나는 오늘 이렇게 하고 싶어.” “와 진짜 죽이겠는데요? 한번 해봅시다.” 이런 식으로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고 툭 치면 서로 뭔지 알죠. 이번에 광수가 연기를 정말 잘했어요. 드라마 <안투라지>를 같이 할 때 연기에 대한 고민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번에 연기하는 걸 보고 스스로 답을 찾은 것 같더라고요. 본인의 색을 정확히 내뿜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하퍼스 바자 <독전 2> <데드맨> 등 최근 작품들에서는 힘이 들어간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 무척 편안해 보이네요.
조진웅 지금 OTT 시리즈 하나를 제작하고 있는데, 그걸 한다고 근 2년 동안 연기를 안 했어요. 코로나 기간도 겹쳤고, 제작 준비가 영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1년 정도 시장조사를 하고 1년 정도는 극본도 같이 쓰고 작가님도 섭외하고, 관련 책도 보고 업계 선배들도 만나고.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해서 어떻게든 만들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며 돌아다녔거든요. 눈 감았다 뜨면 직원들 월급날이 되고.(웃음)
하퍼스 바자 과거 인터뷰에서 “은퇴하겠다”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본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번아웃 같은 게 왔던 걸까요?
조진웅 쉴 줄 모르고 너무 달려왔던 것 같아요. 어떨 땐 힘든 장면 촬영을 앞두고 부담감에 잠이 안 온 적도 있고 부정적인 생각도 자주 들기도 했고요. 멈추고 재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었죠. 그렇게 제작을 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아봐주니 그 일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어요. 그러다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이라는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난 현장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또 무언가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배우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근데 이걸 하면서 여전히 이렇게 신명나게 놀아볼 수가 있구나, 느꼈죠. 제작 작업에 있어서도 훨씬 많은 에너지를 얻게 되었고요.
하퍼스 바자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속 인물들은 결국 삶에서 욕망에, 혹은 자신이 맡은 책임에 가장 충실한 사람들이죠.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조진웅이 지금 가장 바라는 것 혹은 성실히 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조진웅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랄까. 그런 게 좀 생겼어요. 이걸 오래 잘 유지하고 싶고요. 배우로 살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순간도 자주 겪곤 했거든요. 부담감도 컸고요. 더 유명하고 싶지도 않고, 빌 게이츠처럼 돈을 벌고 싶은 것도 아니고. 결국 제가 진정 바라는 건 현장에서 사람들과 계속 같이 호흡하며 사는 거니까. 이게 본연의 제 모습이라는 걸 받아들이니 삶이 편해지더라고요. “지금 굉장히 좋아. 나쁘지 않아.” 요즘 그러고 살아요.


유재명
하퍼스 바자 희대의 흉악범 김국호는 정말 무시무시하더군요. 오랜 연기 인생에서 이토록 악한 역할은 몇 번 만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배우님은 캐릭터의 근원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역할을 구축하는데요. 김국호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유재명 연극을 좀 오래 했어요. ‘세다’라는 표현보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실험극도 있었고 제가 연출한 예술성 강한 작품까지, 많이 했죠. 공개되지 않은 독립영화 작품 중에도 더러 있었어요. 현대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수위도 그렇고 흔히 말하는 센 캐릭터가 외국 영화든 한국 영화든 존재하잖아요. 그 안에서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건 결국 ‘사람’입니다. 더욱 복잡해진 사회 속에서 단순히 범죄자만이 아닌,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 사이에 공존하고 있는 범죄자를 연기자로서 탐구하고 싶었어요. ‘악마’라는 말로 납작해지거나 미화되지 않은 한 인물을요.
하퍼스 바자 목숨 값을 두고 쫓고 쫓기는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김국호라는 인물을 맡기에 앞서 유재명으로서 돌을 던지는 입장에 설 것이냐, 돌을 맞는 입장에 설 것이냐 윤리적 고민을 해보셨을 텐데요.
유재명 개연성을 따져보자면 실제로 있긴 어려운 드라마적 허구죠. 그렇지만 시청자들이 극화된 상황을 따라가면서 사회적인 이슈를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범죄 앞에서 어떤 유튜버들은 생중계를 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건이 생기면 발 빠르게 공유되고 소문으로 뻗어나갑니다. 진실 아닌 것들이 진실인 것처럼 과장되는 것 또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들이죠. 과감한 역할을 맡았지만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라고 느꼈어요. 너무 거창한가요?(웃음)
하퍼스 바자 맡은 인물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를 꼽아본다면요.
유재명 “이 사회에는 법이라는 게 있잖아요. 법원에서 법에 따라 판결을 했고. 판결에 따라 나는 13년 동안 뺑이치고 나왔고.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내가 뭘 잘못한 겁니까?” 김국호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들의 집요한 태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김국호도 처음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당황스럽다가 쫓기는 동안 살고자 하는 본성이 드러나요. 사회적 의미로 보면 누구나 다 자신의 생존에 대한 권리가 있잖아요. 김국호의 대사는 사법 체계 안에서 이뤄진 일을 누가 다시 판단할 것이냐 질문을 던지는 거죠.
하퍼스 바자 촬영하면서 완성본을 상상했을 때 가장 기대된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유재명 액션이나 감정적으로 들끓는 장면도 많지만 여덟 명의 인물이 어떤 계기로 한 공간에서 교차되는 장면이 기대됩니다. 2백억원을 얻기 위해 갑자기 모여든 인물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이 지나친 우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는 한 공간에 같이 존재하고 살고 있죠. 잠시 어디론가 이동했을 뿐인데 갑자기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고요. 사람들에게 언제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를 잘 표현한 장면이에요.
하퍼스 바자 이번 작품을 통과하며 배우로서 세운 목표가 있었을까요? 혹은 자신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면모가 있을지.
유재명 넘치는 의욕을 갖고 모든 작품을 시작하지만 끝나기까지 난관을 극복하고 숙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해요.(웃음) 날씨, 자본, 기술까지. 그 과정에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교감하고 서로 의지하고 의기투합해서 끝까지 같이 가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나이 들어가는 유재명, 또 점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유재명이라는 배우가 선배로서 혹은 동료로서 최선을 다해 가고 있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였던 것 같습니다.
하퍼스 바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수록 들춰보면 여덟 명의 인물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이 인물들의 고군분투가 시청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로 남길 바라나요?
유재명 다양한 영상을 만날 수 있는 풍족한 시대에 작품의 변별력이 생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이지만 어떤 코드가 들어맞지 않아서 아쉬운 스코어를 낼 수도 있고 큰 호감이 생길 작품이 아닌데 신드롬이 생기기도 하죠.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의미 있게, 그러면서도 아주 재미있게 그렸습니다. 작품이 잘되길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노력이 조금이나마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하퍼스 바자 다작을 하지만 항상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한 역할에 그토록 몰입하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유재명 대학로 근처에 살아서 연기하는 후배들을 자주 봐요. 참 다 잘생겼어요. 겸손이 아니라 저는 저를 연예인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연기를 만나서 업이 된 사람인데 현장에서 생존할 뿐인 거죠.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냥 할 수밖에 없어요. 다행히 플랫한 얼굴이라 옷을 바꾸고 문장을 바꾸고 설정을 바꾸면 그게 잘 스며드나 봅니다. 명확한 선이 없다는 것은 동시에 최선을 다해 캐릭터를 입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해요. 그래서 계속 다른 걸 찾아서 만들어내는 것이 본능이 아닐까.
하퍼스 바자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결국 삶에서 욕망에, 혹은 자신이 맡은 책임에 가장 충실하고 숨김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가장 충실히 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유재명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기억이 잘 안 나요. 선생님이 어떤 분이었고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엄청난 양의 작품을 하면서 그저 현재를 살았어요. 작품에 푹 빠졌다 다시 수면 위에 올라오는 일의 반복이었어요. 주변을 못 살피고 연기의 디테일을 명확히 담아두지 못하는 게 후회되다가도 작품이 주어지면 또 그렇게.(웃음) 그래서 밸런스가 많이 무너졌어요. 가정에도 충실하지 못했고. 일과 가족, 나라는 개인의 세 가지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50대를 맞은 지금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하퍼스 바자 2017년 <바자>와의 작업이 인생 첫 화보였어요. 지금 다시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입니다.
유재명 물고기 비늘 모양 재킷이랑 통이 엄청 넓은 바지 같은 걸 처음 입어봐서 참 난감했어요. 근데 사진을 보니까 엄청 멋있게 나오더라고요.(웃음) 그 이후로 새 작품을 할 때 몇 번 화보도 찍어보고 오늘 다시 만났네요. 그래서 인생은 참 재밌어요.


김무열
하퍼스 바자 요즘 어딘가 여유 있어 보여요. 연기도 모든 것이 가능한 지점에 와 있는 것 같고요.
김무열 그래 보이나요? 제가 느낄 때는 매번 벽에 부딪히는 것 같아요. 지나간 작품이 갑자기 떠올라 곱씹어볼 때도 있어요. 제 연기를 직시하고 복기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편이거든요. 여유가 있어 보인다면 정말 단순하게 연기하는 걸 즐거워하기 때문일 거예요. 결국 고민과 후회를 반복해나가면서 조금씩 다듬어지는 거겠죠.
하퍼스 바자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은 여덟 명의 ‘캐릭터 전쟁’에 가까워요. 변호사 이상봉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비교적 ‘준수’한데요. 이 역할의 쓰임을 어떻게 바라보았나요?
김무열 다른 캐릭터 사이에서 내 역할의 매력을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어요. 완전하게 이상봉이라는 인물만 생각했어요.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어떤 사람의 인생이 매우 드라마틱하다 혹은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실제 그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는 또 다르잖아요. 직업이나 살아온 역사를 배경으로 내적 갈등이나 순간적인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중요하게 생각했죠. 제가 공감할 수 있는 곳부터 출발하려고 했어요.
하퍼스 바자 배역과 나 사이의 공통적인 조각들을 발견하려는 편이시군요. 이상봉과 김무열 사이의 공감대는 무엇이었나요?
김무열 아무래도 주변에서 봐온 것들이나 직접 체험한 것들,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것들부터 공감대를 형성해가려고 해요. 이상봉을 포괄적으로 얘기하자면 생계가 가장 대의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현상금 싸움의 한복판에 뛰어들죠. 저와 비슷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그 출발점을 이해하다 보면 인물과 동화되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이번 작품을 통과하며 배우로서 세운 목표가 있었을까요?
김무열 비열한 인물을 전형적으로 연기하고 싶지 않은 바람이 있었어요. 유재명 선배님이 맡은 살인자 김국호를 변호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선배님과 호흡할 일이 많았어요. 이전에도 현장에서 감독님과 상대 배우와 상의하며 유동적으로 연기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경험이 더 확장되고 깊었어요. 서로 아이디어를 가감 없이 나눌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각자의 역할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하퍼스 바자 유재명 배우를 비롯한 연기파 배우들이 넘치는 최상의 근무 환경이었죠.(웃음) 현장에서 얻은 것이 많을 것 같은데요.
김무열 염정아 선배님이 고생이 많으셨어요.(웃음) 유재명 선배님과 제가 애드리브를 엄청 날렸거든요. 불편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더 좋은 표정 연기로 그 애드리브를 다 받아주셨어요.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캐릭터의 모든 것을 전달하는 연기력에 또 한 번 놀라고 많이 배웠죠. 허광한 배우와 연기한 경험도 소중해요.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 경력을 쌓다 보니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흥미로웠어요. 허광한 배우에게도 영어 대사를 만들어 애드리브를 했더니 무슨 말이냐고 확인하고.(웃음) 전반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현장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김무열 포스터에 ‘대국민 살인청부’라고 엄청 크게 써 있어요. 자극만을 좇는 작품이었다면 저도 그 문구가 부끄러웠을 거예요.(웃음) 사건의 줄기를 명확히 설명하고 인물 하나하나를 조명하는 전개 방식에서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할 거란 믿음이 있어요.
하퍼스 바자 배우에게 ‘변신’은 희망과 부담, 양쪽의 무게를 담은 단어가 아닐까 해요. <대외비>에서 증량을 하고 <범죄도시 4>에서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보여줬어요. 배우 김무열은 어디까지 갈 수 있나요?
김무열 점점 할 수 없는 것에 제약을 두지 않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가고 있어요.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대본을 받자마자 어색한 부분을 찾아냈어요. 그런 부분을 바꾸면 캐릭터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수정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최근에는 창작자의 의중을 조금 더 확실하게 파악해보려고 노력해요. 혹은 그 의중과 제 생각이 어긋나더라도 잘 받아들여 나름의 방식대로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에요.
하퍼스 바자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김무열 언젠가부터 가능성의 여지를 조금씩 닫아놓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연기는 상대방과 현장의 변수에 맞춰 계속 바뀌어나가야 하는 건데 열어두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용기를 낸 거죠.
하퍼스 바자 그만큼 자기 관리에 혹독했던 때가 있었군요.
김무열 라면을 10년 동안 안 먹었어요. 지금도 국을 거의 안 먹는데 돼지국밥은 너무 좋아해서 가끔씩 먹어요. 20대 때는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서 불같이 치열한 마음으로 자제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먹는 것만이 아니라 배우 일지도 매일 쓰고 대본에 깜지처럼 아이디어를 적어놓곤 했어요. 살아보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모습과 얼굴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걸 깨달았어요. 많은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들의 평소 습관과 일상이 연기에 어떻게 녹아드는지 몸소 느끼게 되었고요.
하퍼스 바자 어느덧 25년 차 배우네요. 인생에서 연기가 어떤 의미인지 정의 내린 적이 있나요?
김무열 평소에도 제3자의 눈을 뜨고 살아요. 옵저버 같은 거죠.(웃음) 언젠가 연기에 대입하기 위해 내가 어떨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시선이 있어요. 낯설고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이게 저의 일상이라고 받아들였어요.

염정아
하퍼스 바자 호산시의 시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 안명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티저 영상 속 짙은 아이 메이크업을 한 배우 염정아의 얼굴이 그 자체로 극적이더라고요.
염정아 색다른 안광을 보여주기 위해 컬러 렌즈를 끼고 주근깨도 찍고 언더라인도 그렸어요. 헤어도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스타일이고요. <외계+인> 때 같이 하던 분장팀이어서 믿고 맡겼어요.
하퍼스 바자 비교적 최근작인 <밀수>에서 순박한 해녀 해원, <외계+인 2>의 사랑스러운 신선 흑설 등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역할과 대조적인 인상입니다. “명자라는 캐릭터를 하지 않았다면 안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 때문이었나요?
염정아 문득 안명자를 두고 나를 제일 먼저 떠올리진 않았을 것 같은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도전 의식이 생겼죠. 센 역할을 한번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참 목말라 있을 때 이 역할이 들어왔어요. 처음으로 극에서 욕도 정말 많이 해봤어요. 그동안 본 한국 누아르 영화들을 떠올리면서 맛을 살리려 했고요.(웃음)
하퍼스 바자 정치인 역할은 처음이죠. 특별히 준비한 것들이 있나요?
염정아 제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거친 역할이에요. 그동안 전문직은 거의 안 해봤던 것 같아요. 여성 정치인들의 영상을 찾아 보긴 했는데 별다른 특이점은 못 찾겠더라고요. 직업을 떠나서 안명자라는 인간에 대해서만 몰두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가 빠져나갈 탈출구를 만들고 그것에 정말 능한 여자. 정치 생명이 끝나가는 상황에 김국호라는 흉악범을 만나서 살아남으려는 계략을 꾸미는 인물이에요. 그의 욕망만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하퍼스 바자 안명자라는 인물을 가장 잘 드러내는 키워드를 꼽아본다면?
염정아 티저 속 “저 새끼가 내 구세주가 될 수도 있겠다”라는 대사가 딱 명자를 나타내는 말이에요. 명자의 남편도, 명자도 출세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죠. 그래도 늘 동행하는 보좌관 옆에서는 풀어지기도 하고, 허술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죠. 염정아가 보여주는 명자는 좀 더 재미있는 포인트에 인간적인 면모를 녹여내려고 했어요.
하퍼스 바자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어요?
염정아 유재명, 김무열 씨와 삼자 대면해 협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에너지가 엄청났어요. 둘은 이미 호흡을 많이 맞춘 상태여서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 잘해서 연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도파민이 돌더라고요. 질 수 없지, 하고 열심히 했어요.(웃음)
하퍼스 바자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염정아 허광한이라는 배우에게 감동을 받았어요. 볼 때마다 마음을 써서 작은 선물을 하나씩 준비해 오더라고요. 제가 대문자 T인데도 오랜 선배를 대하듯 친근하게 다가오고 반듯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말도 안 통하는데 서로 참 편하게 연기할 수 있구나, 깨달았죠.
하퍼스 바자 매 작품마다 스스로 한계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한다고 말했어요. <밀수>를 촬영할 땐 물을 무서워하지만 해녀가 되기 위해 수영을 배운 것처럼요. 이번 촬영에선 어떤 도전을 했나요?
염정아 쉬다가 연기를 1년 만에 했어요. 1~2회차 촬영을 하는데 신인처럼 카메라 앞에서 엄청 떨리더라고요. 그만큼 안명자라는 인물 그 자체가 도전이었어요. 저는 원래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편이어서 슛이 돌면 일단 해보는 편이거든요. 캐릭터를 머리로 분석하는 건 안 맞아요. 너무 졸려요.(웃음) 대사를 내내 숙지하면서 인물만 생각한 다음 현장에서 해내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 현장에선 괜히 다 하고 나서도 눈치가 보였어요. 얼른 적응하려고 애썼죠.
하퍼스 바자 촬영 말고 일상에서 염정아가 몰두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염정아 근력운동이요. 하체운동이 너무 힘든데 나이가 들수록 중요하다고 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깡이 좋은 편이지,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웃음)
하퍼스 바자 뮤지컬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땐 <인생은 아름다워>를 맡게 되고, 강한 역할을 기다릴 즈음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을 만났죠. 다음엔 어떤 역할을 맡고 싶나요?
염정아 연기를 더 하고 싶어요. 악역, 코미디, 엄마 역할. 장르랑 배역은 뭐든 상관없어요. 이전에 한창 장르 영화를 하고 나서는 스스로를 가둬두었다는 조바심 때문에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 해보고 싶었거든요. 이제는 그런 생각도 내려두려고요.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이 끝나고 현장에 안 간 지 몇 달 되었더라고요. 저는 배우니까, 각자 준비해서 현장에서 딱 만나서 제 역할을 다할 때가 제일 좋아요.

Credit
- 사진/ 최문혁
- 에디터/ 안서경(조진웅,염정아) 프리랜스 에디터/ 박의령(유재명,김무열)
- 헤어/ 손관석(조진웅),장하준(유재명),임진옥(김무열),이경혜(염정아)
- 메이크업/ 김재희(조진웅),장하준(유재명),이준성(김무열),송유미(염정아)
- 스타일리스트/ 진보람·윤소영(조진웅),신하은(유재명),황선영(김무열,Intrend),조운진(염정아)
- 세트 스타일리스트/ 전예별
- 어시스턴트/ 허지수,임인선·조윤아(Intrend)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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