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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 이언주가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만들며 작가 이언주가 깨달은 진실은 언뜻 평범해 보일지 모른다. 모두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라는 것. 그러나 삶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때, 그 이야기는 유일무이한 드라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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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는 Arket. 팬츠는 Cos. 슈즈는 Sappun.
이언주 모두 만나고 싶어 공들여 섭외 드린 분들이기에 50명을 추리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돌아보니 지극히 내 기준에서 당시 내 고민과 맞닿았던 분들 위주로 고르게 되었다. 특별한 고민이라기보다 다들 이미 알고 있는데 잊고 지내던 것들, 그런 게 의외의 대화에서 나올 때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더라.
하퍼스 바자 인터뷰집을 출간한 많은 이들이 인터뷰 당시 자신의 고민을 인터뷰이에게 묻곤 했다는 말을 한다. 방송작가의 일 역시 늘 사람에게 묻고 듣는 일이기에 꽤 비슷하겠다.
이언주 누군가 자신의 언어로 경험을 신중하게 말하는 걸 듣는 순간, 내가 처한 현실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다들 한번쯤 해봤을 거다. 그게 직업이기에 매번 그 순간을 목격하면서도, 번번이 그 힘을 실감한다. 고민은 언뜻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을 때가 많지 않나. 고단하고 지겨운 밥벌이를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는 힘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 예를 들면 어느 백화점의 브랜드 비주얼 담당자가 크리스마스에 백화점 건물 외벽에 상영되는 영상을 기획하기 위해 1년 가까운 시간을 꼬박 쏟았지만 정작 자신의 집 거실엔 트리 하나 만들지 못했다는 말이 기억난다. 그런 순간에 공감하고 새삼 내 자리에서 나는 어떤지 돌아보고, 그러면서 글을 썼다.
하퍼스 바자 기획 회의, 대본 회의, 섭외, 녹화, 시사까지 매주 숨 가쁘게 스케줄이 돌아간다. 전문가나 유명인부터 종이비행기 국가대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인들, 최근 화제가 된 인물까지. 한 회에 출연하는 인물들의 베리에이션이 인상적이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특히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
이언주 100분 방송을 하면 100분 내내 좋은 얘기를 한다고 모두 듣지 않는다. 매번 진지하고 깊은 주제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부대낄 수 있고, 교훈만 남기는 것도 방송의 목적이 아니다. 묵직한 사연은 하나 정도만 배치하기,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참여자들의 연령대에 밸런스를 맞출 것. 더운 여름에는 진지한 얘기가 잘 안 들리니 가을이나 겨울에 좀 더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봄에는 새로운 기운을 주는 이야기가 잘 들리니 그런 걸 다루는 것. 이런 나름의 구성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가장 추구하는 건 MC와 참여자가 토크를 하다가 툭 나오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그게 제일 힘이 세기 때문이다.
하퍼스 바자 2018년 <유퀴즈>가 첫 방영할 즈음에는 일반인이나 연예인이 자연스러운 자기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 드문 편이었다. 요즘은 날것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영상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어떤 위기감을 느끼진 않나?
이언주 그즈음은 방송가에서 토크는 안 먹힌다고 하던 시기다. 관찰 프로가 압도적인 대세였다. 우리는 기존 4~5명 MC가 있는 토크 프로그램 말고 단출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당시만 해도 정적인 프로그램은 안 먹힌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방송을 소비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렇기에 섭외 기준을 더 고심한다.
하퍼스 바자 제작 노트에 ‘요즘 가장 궁금한 사람’을 섭외한다고 밝혔다. <유퀴즈> 정도면 먼저 들어오는 제보로 충분하지 않나?
이언주 프로그램이 큰 사랑을 받으니 섭외 요청 자체가 엄청 어렵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게 늘 큰 숙제다. SNS, 유튜브, 책, 잡지. 회의를 시작하면 각자 “내가 최근에 알게 된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운을 띄우면서 좁혀간다. 약속 자리에서 지인과 대화하다가도 “그분 누구신데? 뭐 하는 분인데?” 바로 반응하곤 한다. 경우에 따라 길게는 3년 정도 섭외에 공을 들여 나오신 분도 있고, 지금도 꾸준히 몇 년째 연락을 드리는 분도 있다. 한번씩 마음이 바뀌셨는지 체크하면서.(웃음)

셔츠는 Lehho. 베스트는 Cos.
이언주 작가가 총 9명 있는데 연령대가 다 다르다. 제가 마흔여섯인데 막내 작가와 20살 이상 차이가 난다. 확실히 관심 가는 대상이 다를 때도 있지만 세대를 관통하는 정서를 찾으려 한다. 최근에 태안여중 밴드부가 SNS에서 화제여서 섭외했는데 그 친구들을 보면서 유재석·조세호 씨, 제가 느끼는 에너지와 막내 작가가 느끼는 에너지가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저 “어른이 안 되고 싶다” 말하는 청춘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거다.
하퍼스 바자 책을 읽으며 구글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 씨 부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섭외할 때는 글로벌한 경험을 얘기해주길 기대했는데, 방송에서는 높은 자기 기준에 대한 강박을 다스린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 사례 말이다. 나 역시 섭외할 때 예상했던 방향으로 인터뷰가 흘러가지 않을 때면 머릿속에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세다가 그저 경청한 경험이 있다.
이언주 일종의 ‘노림수’라고 해야 하나. 특정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방향을 가지고 섭외하지만, 현장에서 다르게 흘러갈 때가 꽤 자주 있다. 그게 <유퀴즈>를 인터뷰 프로그램이 아니라 ‘토크’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큐카드에 MC들이 꼭 물었으면 좋겠는 질문을 써놓지만, 다른 프로그램들처럼 도중에 스케치북을 들거나 원하는 질문을 종용하지 않는다. MC가 던지는 의외의 질문에서 다른 곳에서 안 했던 답을 말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걸 더 강점으로 만들고 싶어서 스태프 50명이 모두 집중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다 보면 정말 그 이야기에 푹 빠져 경청하게 된다. 한번은 장례지도사 분이 남편을 자기 손으로 염을 했다는 경험을 털어놓으셨는데, 그분 앞에서 우는 게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숨어서 눈물을 참는데 MC와 주위 스태프를 돌아보니 모두 눈물을 그렁그렁 참고 있었다.
하퍼스 바자 그런 현장 분위기가 <유퀴즈>를 스테디셀러 같은 방송으로 만든 힘일 듯하다. 제작자가 보는 <유퀴즈>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이언주 MC 둘 사이의 자리를 ‘누구든 앉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드는 것. “나도 가서 내 얘기를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프로그램 초기부터 우리가 변치 않고 지향하는 점이다. 사실 처음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땐 이렇게 반응이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초반에 시청률이 아쉬울 때도 방향을 틀지 않고, 이 방식을 차곡차곡 쌓은 게 오히려 사람들의 인식 속에 <유퀴즈>를 ‘누구든 나와도 되는 자리’로 만들었지 않나 싶다.
하퍼스 바자 책에는 일반인의 사연들이 담겨 있지만 <유퀴즈>의 또 다른 묘미는 셀럽들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지 않던 진솔한 이야기를 할 때이기도 하다. 유독 기억에 남는 이를 꼽아본다면?
이언주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신세 한탄이나 그저 삶의 기록이라면 <유퀴즈> 시청자들에겐 별 감흥이 없을 거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얘기보다 나에게 대입했을 때 비슷한 감정이 들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도록 질문하려 한다. 무명 시절 고생하다가 빛을 보게 된 경우는 많은데, 배우 류승룡 씨는 좀 달랐다. 전성기를 누려도 보았다가 흥행부진을 겪으며 다시 힘든 시간을 겪은 경험을 말했는데, 크게 공감했다. 아내가 “깜깜하지만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생각해”라는 말도 인상 깊었고. 그 이야기는 직장인 A씨가 듣든, 은퇴한 아버지가 듣든 대입할 수 있는 얘기니까.
하퍼스 바자 세상을 떠난 인물이나 허구의 인물 중에서 <유퀴즈>에 섭외하고 싶은 출연자가 있다면?
이언주 최근 학전 소식을 자주 접하다 보니 김광석 씨를 모시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분의 노래가사뿐만 아니라 공연 중간 중간 대화하는 영상들을 보다 보면 남다른 감성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쇼츠를 찾아보며) “사랑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겠지만. 스스로 투자한 시간이나 주었던 정이 아까울 수도, 자기 마음을 전혀 몰라줘서, 그저 자존심이 상해서 아플 수 있습니다. 그치만 안 아프면 사랑이라고 할 수 없겠죠.” 이런 말을 했는데 30대 초반에 인생과 사랑에 대한 그토록 깊은 시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절로 호기심이 든다.

이언주 항상 업앤다운은 있다. 이력서에는 화려한 이력만 올려놓으니 안 보일 뿐. 확신에 찬 기획이라 생각했지만 처참한 결과를 맞이한 경우도 엄청 많다. 잘 알려져 있듯 이쪽 일 하는 사람들이 예민하고 개성도 강하고 남의 말을 참 안 듣는다. 그러다 보니 내 의견을 힘있게 관철시켜야 할 때도 필요하고, 대립할 때도 엄청 많다. 나 역시 메인 작가가 되고 첫 해에는 훨씬 날카롭고 예민하기도 했는데, 점점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다음 주까지 온전하게 방송을 내야 된다는 목표가 같다는 사실만 되뇌면서.(웃음)
하퍼스 바자 앞서 유튜브 얘기도 했지만 미디어 업계에 큰 지각변동이 있다. 우려되는 점들은 어떻게 극복하나?
이언주 나조차 TV를 잘 안 보는 현실에 걱정이 될 때도 있다. TV 대신 ‘인급동’을 훑는 게 일과이니까. 제작 편수도 점점 줄어들고, 시즌 프로그램 아니고서야 새 프로그램이 잘된 경우는 정말 손에 꼽는다. 시청자들의 연령대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걸 맞춘 프로그램만 기획할 수도 없고. 5년 전만 해도 예능에 어떤 추세가 있었는데, 이제는 트렌드를 짐작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환경이 급변한다. 그럴 때일수록 산업에 기대기보다,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업, 그 과정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근 백은하 영화 전문 기자를 <유퀴즈>에 모셨을 때 영화산업이 침체될수록 기대할 수 있는 건 사람밖에 없다는 말을 하는데, 공감했다. 산업의 미래를 알 수 없을 때 결국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내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무대이고 기대라는 생각을 해봤다.
하퍼스 바자 소위 스타 PD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어땠나?
이언주 같은 크리에이터로서 그분들과 일하는 건 너무 재미있는 작업이다. 나 스스로 나름 디테일한 사람이라 자부하는데, 김태호 PD는 아주 사소한 소품까지 신경 쓰는 섬세함이 정말 남다르다. 기본은 다 어느 정도 하지만 얼마나 디테일을 잘 살리느냐가 실력의 차이를 만든다는 건 불변의 진리다.
하퍼스 바자 방송작가 일의 기쁨과 슬픔은 무엇인가?
이언주 예능은 다른 장르와 다르게 정말 팀워크가 중요하다. 농담으로 우리가 하나같이 모자라서 같이 있을 때 1인분 몫을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작가가 대본이 안 써져 평소보다 완성이 덜 된 상태로 촬영에 들어가면 MC가 기가 막히게 진행하기도 하고, MC가 다른 날보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PD가 편집을 ‘기깔나게’ 할 때도 있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한 주를 난다. 고단함은 늘 수치를 받아봐야 한다는 것. 점점 연장자가 되다 보니 ‘판단을 잘했어야 하는데’ 싶은 후회도 남아서 그럴 땐 괴롭기도 하지만, 옆에 팀원들이 있어 금세 털어내는 편이다.
하퍼스 바자 23년 가까이 사람을 대하는 방송작가 일을 했지만 결국 모든 대화가 사람으로 귀결되는 듯하다.(웃음) 막내 작가 시절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깨달은 단 하나의 믿음이 있다면?
이언주 막내 시절엔 아리랑TV에서 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퀴즈 프로그램을 오래 했고, 그 다음 맡은 프로그램은 입양인 자녀와 엄마들의 만남을 연결해주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는데, 그들을 설득해 TV에 나오도록 하는 역할이 너무 막중하고 쉽지 않았다. 섭외를 할 때 누군가를 잠깐의 말로 구워 삶아서 되는 게 아니란 걸 꽤 일찍 배우긴 했던 것 같다. 결국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것도. 그 프로그램들이 결국 작가 일을 할 때 사람 대하는 법을 터득하는 기준이 되었다.
하퍼스 바자 일상의 위대한 평범함. 결국 <유퀴즈>와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일상의 의미란 무엇인가?
이언주 사실 우리 인생에 큰 이벤트는 몇 번 없다. 대단히 기쁠 일도, 슬플 일도 몇 번 없고. 그렇기에 별다를 것 없는 그 하루를 내가 먼저 별달리 생각하고, 단단히 채워야만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이전에는 짜여진 프로그램 안에서 연예인들과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 대단한 업적만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한 명 한 명의 삶이 다 다르다는 걸 <유퀴즈>를 통해 배웠다. 모든 사람은 한 편의 드라마를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 어떤 한 줄이 있을지, 여전히 기다려진다.
Credit
- 사진/ 박규태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 스타일리스트/ 이명선
- 어시스턴트/ 조혜원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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