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카우보이가 되자

서부개척시대의 모래바람을 헤치고 패션계로 모여든 카우보이들.

프로필 by 윤혜영 2024.04.02
2024 F/W 루이 비통 남성 쇼 피날레에 등장한 모던 카우보이 퍼렐 윌리엄스.

2024 F/W 루이 비통 남성 쇼 피날레에 등장한 모던 카우보이 퍼렐 윌리엄스.

2024 F/W 루이 비통 맨 쇼장. 우뚝 쏟은 석산과 무성한 풀숲, 그 아래 펼쳐진 황무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북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인디언의 허밍이 더해진다. 그리고 프린지를 흩날리며 등장한 화이트 코트를 본 순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카우보이 코어의 새로운 서막이 열렸음을. 퍼렐 윌리엄스의 세 번째 여정이 향한 곳은? 바로 퍼렐의 고향이자 카우보이 문화의 발상지인 미국 버지니아다. 쇼는 그야말로 카우보이의 옷장 그 자체! 웨스턴 셔츠부터 태슬 레더 재킷, 부츠컷 데님, 바지 위에 덧대 입는 태슬 팬츠 등이 줄지어 나왔다. 적재적소로 쓰인 액세서리 군단(카우보이 모자, 빅 버클 벨트, 볼로 타이, 웨스턴 부츠), 아메리카 원주민 다코타·라코타 부족의 예술가와 장인들이 함께한 수공예적 디테일(진주와 시퀸, 패치워크, 꽃과 선인장 자수, 단추와 주얼리로 활용된 터키석 등),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팀버랜드와 협업한 부츠까지 생전 웨스턴 룩에 관심조차 없던 에디터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조만간 웨스턴 셔츠를 하나 장만하겠단 굳은 다짐을 하기도. 아니나 다를까. 쇼 다음 날, 주변 에디터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 일색. 하지만 이번 루이 비통 쇼가 더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홀연히 말을 타고 나타나 총을 쏘아대는 마초적인 남성, 일명 ‘말보로 맨’으로 불리던 백인 카우보이 문화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 “카우보이는 늘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원래 카우보이들이 어떤 모습인지 진실을 볼 수 없죠. 흑인과 북미 원주민 카우보이 역시 여럿 존재했습니다.” 어린 시절 본 서부영화엔 늘 폼 나는 총잡이와 악당이 등장했다. <수색자>(1956),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 <와일드 번치>(1969)를 떠올려보라. 영화 속 카우보이는 항상 백인 아니던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리라 다짐한 듯 퍼렐은 웨스턴 스타일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퍼렐의 카우보이는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더 나아가 개척시대 이전의 원주민 문화에 대해 존중을 표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장인뿐만 아니라 북미 전역의 원주민 출신 가수들로 구성된 파우와우(powwow) 그룹인 네이티브 보이스 오브 리지스턴스(Native Voices of Resistance)의 공연도 선보였다. 퍼렐의 뒤를 이어 디스퀘어드, 이자벨 마랑, 발리, 르메르, 몰리 고다드 역시 웨스턴 스타일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웨스턴 룩 입문자라면 아메리칸 빈티지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랄프 로렌(특히 RRL 라인을 추천한다)이나 보디(Bode)를 추천한다.
카우보이 코어의 또 다른 주역은 ‘진짜’ 카우보이와 사랑에 빠진 벨라 하디드다. 승마계의 톱스타 아단 바누엘로스와 공개 연애를 시작한 그녀는 지난 1월, 텍사스에서 열린 로데오 경기에서 아마추어 부문에 출전해 3위를 기록하며 진정한 카우 걸로 거듭났다. 심지어 최근 인스타그램 피드 13개 중 6개가 말과 함께한 사진이다. 물론 트렌드세터답게 벨라표 웨스턴 룩도 연일 화제다. 승마장 안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갖춰 입은 자유분방한 로데오 걸로 변신하지만, 승마장 밖에서는 ‘요즘’ 웨스턴 룩의 참고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츠 컷 데님에 빈티지 티셔츠를 넣어 입고, 카우보이 모자나 버클 벨트, 웨스턴 부츠로 포인트를 더하면 끝.(퍼렐 윌리엄스의 피날레 룩도 똑같은 방식!) 더군다나 아이템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큰 만큼 어떤 아이템이든 단 하나만 걸쳐주면 바로 쿨한 웨스턴 룩이 완성된다.
한편 음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지난 2월 11일, 비욘세가 컨트리 장르인 ‘Texas Hold ′EM’과 ‘16 Carriages’를 기습 발표했다. 결과는 대성공. 빌보드 컨트리 차트 1위에 오른 최초의 흑인 여성 아티스트로 백인 남성 아티스트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강한 컨트리 음악사에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비욘세를 신호탄으로 2024년은 ‘컨트리 대전’이 열릴 거란 관측도 나온다. 컨트리 음악에 출사표를 던진 팝스타들의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기 때문. 래퍼이자 싱어송라이터 포스트 말론은 컨트리 가수 하디, 모건 월렌과 함께 리메이크 곡 ‘Pick-up Man’을 발매한다. 라나 델 레이도 9월 발매할 10집 <Lasso>의 키워드가 컨트리 장르라고 밝혔다. 패션부터 음악까지, 미국 서부에서 불어온 바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Credit

  • 사진/ Imaxtree, Getty Images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