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멸종 위기에 놓인 꿀벌? 사라져가는 꿀벌이 남긴 다잉 메시지
이대로라면 15년 안에 지구상 모든 꿀벌의 멸종이 우려되며, 꿀벌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등골 서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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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이곳이어야 했는지는 예르네이 뮐러(Jernej Muller) 주한 슬로베니아 대사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슬로베니아는 유럽에서도 인구의 절반가량이 벌을 키운다는 양봉 강국으로 꼽힌다. 5월 20일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 지정을 처음 발의한 나라다. 예르네이 뮐러가 취임 직후 어반비즈서울과 손잡고 만들었다는 건물 옥상 위 양봉장에는 벌통 6개가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다소 초라한 행색이라며 멋쩍게 웃었지만, 이어지는 말들에는 단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옥상 양봉장을 만든 지 이제 1년 반 정도가 됐어요. 조만간 잔디도 심고 식물도 들일 겁니다. 사라져가는 벌들의 서식지를 만들 뿐 아니라 생물다양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시 양봉은 중요해요. 이제 한국인들도 벌의 위기를 인지하고, 벌이 생태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려 하는 것 같아요. 더 나아가 기후위기의 시대에 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인간은 어떤 것을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죠. 그래서 <바자>의 취재 요청이 더없이 기뻤습니다.”
주한 슬로베니아 대사관은 작년 10월부터 한국농어촌공사와 함께 생태계 복원을 위해 강원도 홍천에서 밀원식물을 심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올해 역시 벌의 개체수를 회복하기 위해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다양한 이벤트를 벌일 예정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하나다. 벌의 위기론이 끊임없이 거론되는 지금, 지역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벌이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이 일이 가능하려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사관의 생각이다. 이건 어반비즈서울이 도심에 작게라도 양봉장을 만들고 강연, 인터뷰, 기업 및 국가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자꾸만 벌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꿀벌의 집단 실종은 환경계의 주요 이슈다. 지금 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벌의 집단 폐사는 20여 년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벌집을 나선 일벌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들이 모조리 죽어버리는 ‘군집붕괴현상’이 대표적이다. CCD(Colony Collapse Disorder)라고도 하는데 2006년 무렵 주로 미국과 유럽 일대에서 발견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유충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질병인 ‘낭충봉아부패병’이 확산되면서 토종벌 75% 이상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벌의 개체수 감소와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들어 벌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2022년에는 전국에서 77억 마리의 꿀벌이 실종됐다는 뉴스 헤드라인이 유행처럼 돌아다녔다. 비율로 따지면 우리나라 꿀벌의 18% 정도에 해당한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바이러스, 먹이, 농약 등 집단 실종이 발생한 각 지역에서 추측하는 원인이 제각각이다. CCD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때도 지금도 뾰족한 원인을 꼽기엔 데이터가 많이 부족한 상태다. 한정된 장소에서 너무 많은 벌을 키우는 것도, 양봉지의 잦은 이동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건 지금처럼 꿀벌이 점점 더 가파른 속도로 사라지는 원인의 상당 부분은 기후변화가 차지한다는 것이다.

작년 그린피스와 안동대학교 산업협력단이 함께 발표한 보고서 <벌의 위기와 보호 정책 제안>에 따르면 생태를 고려하지 않고 미관상 예쁜 식물 위주로 심는 것도 문제가 된다더라. 그 보고서에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벌의 수를 고려했을 때 밀원식물을 50% 정도 더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꿀벌이나 수분 매개 곤충들에게 먹이가 될 수 있는 종을 섞어야 한다는 건데, 그런 식물들은 대체로 비싸다. 혼합림을 조성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대체로 편의를 위해 한 가지 종으로 통일해서 심곤 하는데 그렇게 되면 꽃이 피는 시기도 일정해진다. 그 시기를 지나면 아무리 나무가 많은 곳일지라도 벌들에겐 사막이나 다름없다.
한국이 벌의 멸종을 논하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서는 벌의 집단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2020년 여름, 40℃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진 프랑스에서 말벌이 떼로 몰려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처럼 말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그런 일은 정말 많다. 코로나19가 발발했을 무렵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장수말벌이 한때 미국을 덮쳤던 적이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아열대기후에서 주로 서식하는 등검은말벌이 산다. 2000년대 초반 부산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점점 북상하고 있으니 아마 지금은 북한에서도 발견되고 있을 것이다. 해가 갈수록 기후변화가 극심해지면서 생태계 교란도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손쓸 수 없이 거대한 차원의 문이 열려버린 것 같달까.

그렇다면 양봉장이 도시에도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기쁘게 봄을 맞이하는 동안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너무 현실감이 없지 않나? 농촌의 문제도 똑같은 것 같다. 지방 어느 곳의 양봉산업이 심각한 문제라고는 하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벌의 문제는 이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걸 얘기하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벌이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벌이 있는 곳에 꽃이 더 잘 피니 곤충과 새를 도심으로 유입시켜 생태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벌의 입장에서 도시는 너무 척박한 곳 아닌가? 따뜻하고 건조한 환경을 좋아하는 벌들에게 열섬 현상이 일어나는 도시는 어쩌면 농촌보다 살기 좋은 곳이다. 의외로 먹거리도 많다. 이곳만 봐도 2km도 안 되는 거리에 남산 야외식물원이 있다. 도시는 농촌에 비해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심는 꽃과 나무가 많다. 상대적으로 농약도 덜 치고.
벌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외에 실질적으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벌에게 농약이 꽤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의식적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작물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꽃을 심는 것도 방법이다. 벌들에게 먹이를 만들어주는 거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1인당 꽃을 한 송이씩만 심어도 5천만 송이다. 베란다나 아파트 단지 내 작은 화단이라도 좋다. 때마침 봄이 왔으니 일단 한 송이라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Credit
- 사진/ 신동훈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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