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다섯 자립준비청년들의 꿈

‘자립준비청년’으로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마음속에 품은 꿈을 물었다. 고이 접은 종이 조각이, 다음을 위한 희망의 단서가 되길 바라며.

프로필 by 안서경 2024.01.30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기 어려운 것처럼, 자립준비청년의 문제도 복잡하고 어렵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간단하고 빠르게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를 반복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 <안녕, 열여덟 어른>(김성식 저) 中
데님 재킷은 Instantfunk. 셔츠는 Kilo. 머플러, 반지는 Cos.

모두를 환대하는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얼마 전부터 ‘마음둘꽃’이라는 여성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활동을 하며 토크 콘서트와 강연을 시작했어요. 자립을 앞둔 친구들에게 집에 도둑이 들거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여성으로서 겪은 경험을 전하고 있죠. 언젠가 저만의 공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사람들이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여행지를 떠올릴 수 있는 물건들로 채울 거예요. 올해의 버킷리스트는 꼭 가보고 싶었던 도시인 파리에 가는 것. 그곳에선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요?” ‐ 김슬기, 자립 13년 차

아우터, 셔츠, 쇼츠, 목걸이는 모두 Kenzo. 슈즈는 Zegna. 반지,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랩스타가 되고 싶어
“2년 전 쓴 제 벌스 보실래요? ‘우린 다른 가족임을 알게 해준 너에게/ 마음 안에 있는 아픔을 내가 다 들어낼게’. 랩으로 제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음악에 더 진지해졌어요. 지난해 11월 정규 앨범을 발표했거든요. 중1, 시설에 처음 왔을 때부터 퇴소할 때까지의 과정을 담았어요. 군대와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뮤직비디오부터 프로듀싱까지 제 손을 거쳐 만들었어요. 어렸을 땐 리얼한 게 짱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제 상처 이야기만 하는 래퍼가 되고 싶지 않아요. 인식을 바꾸려면 분명한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배워가고 있어요. 퍼렐 윌리엄스처럼 커버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전방위적으로 디렉팅하는 아티스트를 좋아해요. 꼭 그런 예술가가 될 거예요.” ‐ 이진명, 자립 5년 차

니트는 Polo Ralph Lauren. 셔츠,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사랑을 전하며,
“하루빨리 스무 살 어른이 되기를 정말 기다렸는데, 처음 어른이 되고 느낀 감정은 부담감이었어요. 더 이상 내 상처와 응석을 받아줄 사람이 없구나. 곧장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월급의 반을 저축하고 좀 더 의젓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어른은 누군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거예요.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순수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들의 맑음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지금 제일 큰 목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내 아이에게 뭐든 다 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기도 해요. 넉넉한 몸과 마음, 두둑한 지갑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 이유진, 자립 5년 차

셔츠는 H&M. 원피스, 하트 이어커프는 Moschino. 장갑, 반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눈물 닦고, 스탠드업
“제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유머와 이야기예요. 보육원에서 19년을 살고,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제 이야기가 가끔은 주변을 무겁게 하거나 종종 동정의 시선도 느껴진답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분명 즐거움과 행복함도 있었어요. 보육원 친구들과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할 때면 배꼽을 잡고 웃는 경우도 많거든요. 머지 않아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예요. 한 팟캐스트에서 듣고 줄곧 좋아해온, ‘눈물 닦으면 다 에피소드다’라는 말에 공감해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이건 또 어떤 에피소드가 되어 자산으로 남게 될까 하고 넘기죠.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저 옆에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공유하고 싶어요.” ‐ 손자영, 자립 10년 차

톱, 셔츠, 팬츠, 타이는 모두 Bottega Veneta.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수의 디자인은 편견이 없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 옷을 골라주는 걸 좋아했어요. 중3때였나, 블레이저에 베스트를 레이어드해 입고 지나는데 누군가 스트리트 사진을 찍어 갔어요. 그때부터 줄곧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2년 전 펀딩을 통해 가방을 디자인하고, 학교에서 지원금을 받아 실제 의상을 만들면서 꿈에 더 다가선 것 같았죠. 마르지엘라, 콤 데 가르송처럼 실험적이고 해체주의적인 디자인을 좋아해요. 올해 목표는 늘 그려오던 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 브랜드 이름도 미리 정해뒀어요. HAU. Hansoo’s Art is Unbiased. 편견과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서울패션위크에서 쇼를 여는 게 꿈이에요.” ‐ 박한수, 자립 10년 차

Credit

  • 사진/ 민현우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김지혜
  • 스타일링/ 이명선(티키타카)
  • 어시스턴트/ 허지수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