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리암 길릭의 말풍선
리암 길릭의 전시장 벽에 붙은 알루미늄 육면체. 이 유머러스한 상황은 훗날의 간접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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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첫 선을 보인 새로운 방식의 작업물. <변화의 주역들> 전시 전경.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변화의 주역들»에서 처음으로 라이팅을 이용한 부조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서울에서 펼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서울은 낮도 멋진 곳이지만 밤도 정말 멋집니다. 저는 항상 빛에 영향받아왔습니다. 기하학과 빛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한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전시를 만들 수 있는 순간에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싶진 않았습니다. «변화의 주역들»은 특히 서울이 제 아이디어와 현대 도시생활의 미학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는 완전히 새로운 작업의 시작점입니다. 내년에 브뤼셀, 베를린, 뉴욕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삼각이나 사각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도형과 구조물에 형형한 색을 입히고 옆에 글귀를 조합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육각형의 백색 알루미늄(T슬롯)에 백색광을 넣었어요. 색이 많이 사라졌죠. 마치 옛날 컴퓨터 화면이나 기계의 부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항상 사물이 무엇인지, 어떻게 조합되는지, 왜 존재하는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매료됩니다. 이번 작업에서 색은 빛으로 대체했고 갤러리 벽에 종종 넣던 텍스트는 추상적인 상징으로 바꿨습니다. 우리는 시스템 간의 원활한 연결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소통하는 숨겨진 제어 프로세스가 존재합니다. 후기산업사회(The post-industrial)는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이는 세계화의 부상 그리고 생산지가 전통적인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첨단 생산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산업을 실제로 언급하고자 했습니다. 신작의 형태는 이러한 단절감을 표현해야 했고, 알루미늄 형태 뒷면으로는 LED 빛을 결합시켜 마치 추상적인 형태가 갤러리 벽에서 부유하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T슬롯에 LED 라이트를 결합하여 정교한 구조체를 만드는 과정은 꽤나 섬세한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중요시하지만 최종 계획에서는 작품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기 마련이죠. 제가 만든 최종 도면은 실제 물질과 가장 가깝습니다. 종이에 세밀하게 작업한 다음 이를 컴퓨터로 옮겨 다양한 형태의 조합을 시도합니다. 형태를 먼저 생각한 다음 만들 방법을 찾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과는 매우 다른 과정인데요.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어떤 형태를 생각합니다. 또한 전시를 할 때는 개별 작품보다는 전체를 고민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작업 방향의 첫 단계에서, 제가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순열(permutations)’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전시될 여러 오브제 간의 균형이 맞아야 했습니다. 또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실시간으로 빛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작품의 최종 제작과 기술 구현을 위해 독일에 있는 제 스튜디오에 상세한 도면을 보냈죠. 20년 동안 함께 일해 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완벽하게 아는 조력자의 존재가 컸습니다.
텍스트를 추상적인 상징으로 바꾸었다고 했는데요. 라이팅 부조 작업과 이웃한 기호는 1백 년 전의 그림문자라구요.
정보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시대의 오리지널 픽토그램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작업의 기본 과정에 대해 말하자면, 기획 단계에서는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이후 제가 발명한 무언가로 대체합니다. 올해 초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진행한 대규모 개인전을 위한 조사 과정에서 아이소타이프(Isotypes)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시 주제는 박물관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컬렉션과 색채의 직접적인 연관성이었습니다. 이상적인 19세기 유럽 건물처럼 보이는 페르가몬 박물관은 1920년대 바이마르 시대에 지어졌어요. 복잡하고 모순이 많은 역사의 한 시기였고 또한 새로운 시스템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제 작업에 사용하는 컬러 시스템은 그 시기에 개발되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복잡한 아이디어를 더욱 단순하고 보편적으로 만들 수 있는 진보적인 방법의 사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게르트 아른츠가 그린 오토 노이라트의 아이소타이프 픽토그램 시스템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픽토그램은 복잡한 통계 정보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형태로 전달하기 위해 개발되었는데요. 그렇다면 복잡한 생산을 상징할 만한 픽토그램의 현대적 형태가 무엇일지 궁금해졌습니다. 표현이 어려운 것들로는 인공지능, 가상현실, 산업용 바이오기술, 나노전자공학, 로봇공학 등이 있겠지요. 바톤 전시 작품들은 일련의 추상적 형태의 작업 중 첫 번째 공개된 결과물로, 각각의 형상은 첨단 생산의 한 형태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기호는 말풍선으로 존재함으로써 마치 부조작품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관람객은 이 기호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정보를 얻는다고 믿게 될 것 같아요. 이 점이 전시 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동감입니다. 의도한 바였어요. 익숙한 만화적인 모양에 새로운 추상적 형태를 배치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기술과 장소의 관계에 대해 저술한 철학자 육 후이(Yuk Hui)에 대한 저의 관심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긴 얘기를 좀 해볼게요. 그는 기술 철학자입니다. 기술에 대한 서양적인 정의와 이해가 어떻게 보편적이지 않으며 지역에 따라 특수한지 설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육 후이에게 기술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철학적 질문이며, 기술이 어떻게 표현되고 생각되는지에 대한 여러 가정은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에게 일관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의 글을 이해하는 것은 꽤 복잡하지만, 저는 사물이 세상에서 자신의 의미와 위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로웠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작품과 관람객의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관람객은 더 이상 예술작품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대신 대상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궁금해하며 대상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됩니다. 애드 라인하트의 오래된 만화 중에서 한 남자가 추상화를 가리키며 무엇을 상징하는지 묻자 그 그림이 질문을 뒤집어서 보는 사람에게 당신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물었던 게 떠오르기도 하네요.

지금보다 컬러풀한 지난 작업 앞에 선 리암 길릭.
새롭게 창조된 기호는 흐릿합니다. 마치 김 서린 유리창에 의미 없이 손을 흘려본 자국 같아요. ‘리암 갈릭 아이소타이프’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저의 이 첫 번째 새로운 아이소타이프는 태블릿 위에 손가락을 움직여 기록한 것입니다. 새로운 생산 공정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수백 가지의 다른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추상적인 도형 하나하나가 무언가와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느껴질 때까지 계속 그렸습니다. 마침내 제가 선택한 모양은 명확한 무엇이 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를 암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각각의 도형은 제스처입니다. 각각의 형태는 수월하게 떠오른 단순한 형태입니다. 평면회화 속 형태 외에 삭제된 수백 개의 형태가 더 있습니다. 결국 여러분이 보는 것은 제 두뇌와 화면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입니다. 매끄러운 표면을 가로지르는 손가락이지요.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잠재적으로 배울 수 있고 사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가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과 전시를 통해 아이디어를 다루면서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역할인 것이죠.
미술, 출판, 디자인, 전시 기획, 미술 비평 등을 병행합니다.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미학적 접근을 통해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일련의 활동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모든 활동은 제 예술작업의 일부입니다. 삶의 다양한 양상은 확실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각 분야별로 두뇌의 다른 부분을 쓴다는 게 중요합니다. 다른 예술가에 대해 글을 쓸 때면 제가 아닌 다른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쓰곤 합니다. 글을 쓸 때와 작업물을 만들 때 각기 다른 분석 과정을 거치죠.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직관과 지성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 둘은 항상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예술을 창작한다는 것은 세상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언가를 보고 생각하고 만드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책임감 있는 자리입니다. 또한 권력과 구조, 위계질서를 보고 그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글을 쓰거나 디자인을 하거나 전시를 기획할 때 예술가의 관점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질문을 많이 합니다. 예술가가 항상 다른 예술가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대부분의 예술가는 예술이 아닌 것에 관심이 있을 겁니다. 미술사학자나 큐레이터는 때때로 거품 속이나 거울의 방 안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예술의 관점에서만 예술을 논하는데, 예술가들은 밖과 안을 동시에 바라봅니다. 저는 매일 빈 테이블에서 하루를 시작하면서 모든 활동을 동등하게 떠올립니다.
«변화의 주역들»이라는 전시 제목은 작품이 주는 경험에서 나아가 작가 자신의 변화도 엿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가에게 ‘변화’는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예술은 어려워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도자기나 음식을 만드는 데 놀라운 기술이 필요하죠. 저에게 변화란 새로운 소재나 새로운 형태를 철학적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밀어붙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다른 모든 것과 전혀 다르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초현실적이거나 키치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죠. 저는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예술을 합니다. 새로운 예술작품을 구상하는 순간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그것을 외면하고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순간입니다. 내가 어떤 아이디어나 형태에 만족하면 그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을 위한 무언가로 변형된 상태입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이죠.
yBa 초기 작가로 오랫동안 예술계의 선두와 테두리를 경험했습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질문에 답하기에 예술가들이 가장 적합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네요. 예술가들은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며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다른 창의적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미덕은 명확하게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명확하게 본다는 것은 유령과 환상을 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본다는 것을 의미하죠. 시간을 초월하는 예술적 덕목은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도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제가 다른 예술가에게서 가장 존경하는 덕목은 주변 세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입니다. 새로운 작품, 새로운 아티스트, 새로운 아이디어를 열린 마음으로 계속 바라보고자 하는 열망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감명을 받습니다. 예술가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능력에도 감명을 받곤 합니다. 예전에는 이게 이상한 생각 같았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된 사람은 예술가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예술가란 시각예술가뿐만 아니라 작가, 시인, 음악가 등을 말하는 겁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마치 이상한 마술사와 같아서 처음부터 결과를 보여주지만 점차 그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드러나는 역발상의 마술을 펼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작품 앞을 서성이다 끝내 새로운 언어를 겪었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 갤러리바톤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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