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뉴 디렉터가 빚은 신선함이 궁금하다면

지난 9월 열린 세계 4대 도시 패션위크에는 거센 변화의 물길이 일었다.

프로필 by BAZAAR 2023.11.03
 
Tom Ford 2024 S/S

Tom Ford 2024 S/S

 

TOM FORD

 
밀라노에서 만나는 톰 포드라니! 톰 포드 하우스를 이끌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지난 25년간 톰 포드와 함께 일해온 피터 호킹스(Peter Hawkings). 톰 포드의 구찌 시절 남성복 디자인 어시스트로 시작해 톰 포드에서 수석 남성복 디자이너로 활약해왔다. 톰 포드의 뿌리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존경과 관점을 지닌 그는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1970년대로부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앤디 워홀과 리처드 애버던의 뮤즈이자 초자연적인 외모로 유명했던 슈퍼모델 도니알 루나에게 영감을 받은 것. 남성복에서 기인한 관능적이고 날렵한 제스처는 무결점의 테일러링 수트, 쇼츠와 매치된 정교한 블레이저, 스포티한 레더, 호화로운 태슬과 깃털 디테일 등에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Helmut Lang 2024 S/S

Helmut Lang 2024 S/S

 

Helmut Lang

 
이번 시즌 뉴욕에서 가장 뜨거운 기대와 관심을 불러일으킨 쇼는? 바로 피터 도(Peter Do)의 헬무트 랭 데뷔 컬렉션일 것이다. 이를 의식한 것일까. 과거 4대 도시 중 가장 마지막으로 열렸던 뉴욕 패션위크를 헬무트 랭이 뉴욕의 디자이너들(캘빈 클라인, 도나 카란 등)과 함께 처음으로 옮긴 것처럼, 2024 S/S 뉴욕 패션위크의 오프닝으로 데뷔 쇼를 선보였다. 시인이자 피터의 친구인 오션 브엉(Ocean Vuong)의 시 구절로 가득한 공간에서 열린 쇼는 그의 장기인 테일러드 수트로 시작되었다. 어릴 적 자동차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에서 영감을 받아 블랙 수트 위에 마젠타 핑크와 옐로 컬러로 염색된 안전벨트를 포인트로 더했다. 또한 오션의 시 구절에서 얻은 영감을 티셔츠와 셔츠 위에 드러냈다. 보통 브랜드의 수장이 바뀌게 되면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지만 피터는 그렇지 않았다. 대신 강렬한 컬러 포인트와 화이트 셔츠, 데님과 같은 하우스의 아이코닉 피스에 날카로운 테일러링과 아름다운 드레이핑으로 자신만의 예리함을 더했다. “새로운 헬무트 랭에 뉴욕을 입히고 싶어요.” 그의 포부를 담은 말처럼 뉴요커의 옷장에 있을 법한 실용적인 피스들이 등장했고 이는 곧 다음 컬렉션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Bally 2024 S/S

Bally 2024 S/S

 

Bally

 
지난 9월 밀라노 산 심플리차노 수도원의 아름다운 안뜰 정원에서 공개된 발리의 2024 S/S 컬렉션. 구찌에서 16년 경력을 쌓고 보테가 베네타, 지안프랑코 페레 등을 거쳐 발리에 합류한 시모네 벨로티(Simone Bellotti)가 새로운 수장으로 데뷔했다. 스위스 유산의 개척정신과 끊임없는 도전에 기반한 헤리티지에 몰입한 그는 실용적인 럭셔리와 장인정신에 발리 특유의 라이프스타일 감각을 더해 컬렉션을 시적이고 로맨틱하게 풀어냈다. 남성적인 디자인에 바탕을 둔 도회적인 실루엣은 유지한 채 고산식물의 부드러운 뉘앙스가 더해진 뉴트럴 워싱 컬러 팔레트에서 여성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플랫 버클, 옥스퍼드 레이스업, 스터드 디테일의 플랫 슈즈 등 모던하게 재탄생한 발리의 아카이브 슈즈들도 눈여겨보시길.
 
 
Gucci 2024 S/S

Gucci 2024 S/S

 

GUCCI

 
구찌의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바로 프라다, 돌체앤가바나, 발렌티노를 거친 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Sabato De Sarno)에 의해서. ‘구찌를 통해 다시 패션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로 이름 붙인 구찌 ‘앙코라’ 컬렉션. 2024 S/S 쇼가 열리는 밀라노 곳곳에서 버건디 레드 빛의 구찌 앙코라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쇼 당일 쏟아지는 비로 인해 야외에서 실내로 장소가 바뀌는 해프닝 탓이었을까. 구찌의 새 시대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부활했다. 날렵한 미니스커트, 간결한 재킷과 코트, 홀스빗 플랫폼 로퍼, 화려한 재키 백 등 동시대적인 확신에 찬 우아함과 함께!
 
 
Ann Demeulemeester 2024 S/SAnn Demeulemeester 2024 S/SAnn Demeulemeester 2024 S/S
 

ANN DEMEULEMEESTER

 
블랙 수트에 견고한 하네스를 덧입은 퀭한 눈의 모델이 걸어 나오고, 블랙 시스루 셔츠에 스커트를 매치한 룩이 이어지자 앤 드뮐미스터가 본래의 색을 되찾았음을 직감했다. ‘한 시즌 만의 교체’라는 오명을 안고 퇴장한 루도빅 생 제르넹의 후임으로 지목된 스테파노 갈리치(Stefano Gallici). 2020년부터 하우스에 몸담은 그가 선보인 슬림한 시스 드레스와 로열 블루 컬러는 상징적인 1998 S/S 시즌을 떠올리게 했고, 그 시절을 함께한 모델이자 뮤즈였던 커스틴 오웬이 등장해 의미를 더했다. “경외심과 정통성보다는 인식과 존중. 남은 것은 미래다.” 쇼에 앞서 그가 개인 SNS에 남긴 메모처럼, 컬렉션 전반에 브랜드의 정체성과 창작의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디자이너의 고뇌가 담겨있었다.
 
 
Carven 2024 S/SCarven 2024 S/SCarven 2024 S/S
 

Carven

 
2009년 탄생 이래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맞이한 까르뱅! 주인공은 바로 루이즈 트로터(Louise Trotter)다. 라코스테와 조셉에서 경력을 쌓은 그녀는 창의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인물로 평가받으며 당당히 까르뱅 하우스에 입성했다. “제가 추구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아울러 실루엣과 새로운 여성의 모습을 창조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1950년대의 낭만과 90년대의 미니멀리즘이 적절하게 뒤섞인 루이즈의 데뷔 컬렉션은 다양한 체형의 여성들을 위한 옷이라는 점에서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살결이 비치는 스커트, 오버사이즈 블레이저, 가죽 발레 슈즈가 눈길을 끌었고 탄성을 자아낼 만한 새로움은 없었지만 한동안 주춤했던 까르뱅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Credit

  • 에디터/ 황인애, 이진선, 김경후
  • 사진/ Imaxtree, Getty Images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