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마메가 '작은 콩'?" 마메 쿠로구치 디자이너가 <바자>에 털어놓은 이야기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영감받은 디테일이 독특하면서도 정교하다.

프로필 by BAZAAR 2023.10.11
<바자>와는 첫 만남이다. 독자에게 자기 소개 부탁한다.
마이코 쿠로구치다. 2011년부터 브랜드 마메 쿠로구치를 운영하고 있다.
<바자>를 초대한 이곳은 어디인가?
2018년부터 마메 쿠로구치 아이템을 서울에 소개하고 있는 편집숍 아데쿠베다. 좋은 기회가 생겨 2023 F/W 프레젠테이션 이벤트를 열게 됐다.
한국 기자와 스타일리스트 등 업계 관계자 외에도 마니아 고객을 대면하는 자리였겠다. 이들의 반응은 어땠나?
아데쿠베와 5년 넘게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데, 이렇게 한국 고객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특히 최신 시즌인 2023 F/W 컬렉션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쁨을 감출 수 없다.
 
2023 F/W 컬렉션 룩의 디테일.

2023 F/W 컬렉션 룩의 디테일.

오늘 프레젠테이션한 2023 F/W 컬렉션을 소개해달라.
지난해 여름 남프랑스에서 이번 컬렉션 대부분을 기획한 만큼 여행 추억을 많이 녹였다. 돌을 쌓아 만든 벽이 바로 그 예다. 유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퀼팅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했다.
돌로 만든 벽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또 1930년대 신문을 읽으며 알게 된 일본 기독교 묵주를 모티프로 대나무 구슬 백과 드레스를 디자인했다고 들었다. 당신은 접시 위에 교차해 놓여 있던 커트러리에서 영감받아 플립플롭을 만들기도 했다. 일상이 디자인적 영감으로 작용하는 순간, 어떤 기분인가.
어떤 기분을 느낄 새도 없다.(웃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들과 다르긴 한 것 같다. 팀원들이 자주 놀란다. 떨어진 이파리라든가, 쓰레기 같은 데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있으니까. 어느 날 “이거 예쁘다!”라고 외치면 주변에선 “어?” 하는 반응이다.
이번 시즌 가장 애정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지금 입고 있는 드레스의 원단. 이번 컬렉션 셔츠에도 이 소재를 활용했다. 실제론 실크지만 스웨이드처럼 건조한 느낌이 들어 독특하다. 이 원단을 구현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아늑한 느낌이 들지만, 시원해서 여름에도 입기 좋다.
한땀 한땀 완성하는 컬렉션 피스가 인상 깊다. 일본 전통공예 기법을 패션에 접목한다는 모토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다. 패션을 공부하며 이 같은 의도를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나는 나가노라는 일본 시골지역 출신이다. 자연친화적 영감에 둘러싸여 있던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전통공예품을 접하며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방대한 리서치를 통해 디자인을 구상하는 과정.

방대한 리서치를 통해 디자인을 구상하는 과정.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통공예에 대한 방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구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컬렉션을 예로 들자면 대나무 공예에서 영감받은 피스가 많다. 일본 여러 성지를 돌아다니며 대나무 공예품이 어떤 방식과 형태로 만들어지는지 꼼꼼히 연구했다. 대가 어떻게 교차해 작품으로 완성됐는지 살펴보고 이를 옷에 반영, 니트 짜임 방식을 개발했다. 대나무 공예 바구니에 햇살이 비쳐 틈새에 그림자가 진 모습을 본뜬 그래픽 패턴을 제작하기도 했다. 영감은 단순히 ‘대나무를 엮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추상적이면서도 정밀하게 탐구했다.
전통 친화적 디자인이 고루하다고 느끼는 젊은 소비자도 존재할 것 같은데.
사실 패션이 위대한 것은 아름다워서이지 않은가. 소비자는 이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 전, 예쁘다는 이유로 구매하곤 한다. 이후 맛있는 요리의 레시피를 찾듯, 그 옷을 좋아하게 될수록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본다. 아마 마메 쿠로구치 팬들도 처음엔 그저 마음에 들어 구입했을 것이다. 알고 보니 이런 스토리들이 담겨있어 더 재미있었을 거고.
 
디자인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곡선. 내 브랜드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다. 신체에는 직선이 없다. 여성의 몸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표현된다. 마메 쿠로구치의 실루엣과 커팅은 신체를 찬양하도록 디자인됐다. 타이트한 옷을 입었을 때 보여지는 그런 곡선 말고, 보디 실루엣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펑퍼짐한 옷을 입었을 때 살짝 보여지는 얇은 손목과 같은. 다소 과장한 어깨와 팔 부분은 형태감 있는 소매로 이어지며, 볼륨은 커프 끝으로 갈수록 확장한다. 이렇게 연출되는 감각적 장면은 신체를 더욱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들어준다. 기모노에서 영감받은 실루엣이다.
유니클로와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대형 브랜드와의 작업은 어떤가.
유니클로 팀은 유능하고 성실하다. 이들과 함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패션계에서 더 나은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동일 제품을 끝없이 발전시키며 개발한다. 이로써 우리는 궁극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컬렉션을 완성해낸다. 내게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쿠로구치’라는 당신의 성 앞에 이름 ‘마이코’가 아닌 ‘마메’를 붙여 브랜드명을 만들었다. 어떤 뜻을 갖고 있나?
‘마메’는 어린 시절부터 불린 내 별명으로, ‘작은 콩’을 의미한다.
의상학과를 졸업한 후 이세이 미야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곳에서의 경력이 어떤 도움이 됐는가?
물건을 만드는 자세와 직원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누구인가?
한국인 현대미술가 서도호는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패션스쿨 재학 당시 단순한 단춧구멍을 꿰며 디자인 작업에 좌절감을 느끼던 중 도쿄 내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봤다. 그가 문손잡이와 열쇠 구멍을 봉제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됐다. 국적과 아이덴티티를 초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을 보여주다니. 그의 표현 방식에 매료됐다.
 
디자인적 영감을 받은 이이즈카 로칸사이의 공예품.

디자인적 영감을 받은 이이즈카 로칸사이의 공예품.

요즘 주목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가 있는가?
일본 수공예 문화를 어떻게 부흥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다. 수많은 전통 기술과 장인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볼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음 세대에게 전수해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패션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량으로 생산해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을 담아 전통 기술과 최신 과학을 접목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이 같은 맥락으로 당분간 새로운 소재와 원단, 상품 개발에 힘쓸 것이다.
최근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끼친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
일본 이마리(Imari) 지역 옛 도자기 역사를 연구하며 지역 예술가와 학자를 만나보고 있다. 오래된 가마를 방문해 작가들이 노력한 흔적을 더듬어보고 배우려 한다. 앞으로 디자인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닫게 해준다.
마메 쿠로구치의 뮤즈는 누구인가?
없다. 다만 마메 쿠로구치의 옷이 각기 다른 무대에서 살고 있는 모든 여성의 삶에 힘이 되길 바란다.

Credit

  • 에디터/ 윤혜연
  • 번역/ 채원식
  • 사진/ ⓒ Mame Kurogouchi,Imaxtree(런웨이)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