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2023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관한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과 해석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샤넬 2023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관한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과 해석들

패션은 자신은 물론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세상을 탐색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BAZAAR BY BAZAAR 2023.07.25
 
샤넬 2023 F/W 오트 쿠튀르는 다양한 인종의 모델이 격식 없이, 때로는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며 무대를 꾸몄다.
  
샤넬 오트 쿠튀르에는 세 가지 축이 있는데, 버지니 비아르의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각 디자인을 생산하는 아틀리에, 깃털・자수・깃털・금세공 등 장식과 액세서리를 제작하는 공방이다.
 
샤넬 2023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진행되기 전, 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다. 여느 다른 나라들처럼 이민자와 내국인의 갈등이 불거지며 폭력 시위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20세기 그토록 거세게 불던 세계화의 바람이 지금 폭풍이 되어 세계 곳곳을 뒤흔들고 있다. 이 와중에 샤넬이 새로운 오트 쿠튀르의 장소로 파리를 선택한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모든 분야의 창작자들은 발견자여야 한다. 지금 이 시대의 상황을 보는 자들이어야 한다. 사회에 가득한 모순을 찾아내고 거기에 집중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창작자에게 주어진 양심적 의무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는 누구보다 세상의 맥락을 읽어 패션에 녹일 줄 아는 창작자다. 패션이란 더 나은 삶과 관련된 것이다. 더 나은 삶이란 맥락이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외양을 돌보고 나만의 스타일을 모색하는 것은 내면과 외면의 총체인 ‘나’라는 존재의 맥락을 찾아가는 길이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사는 사람과 자신의 맥락을 찾아가며 말이 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삶의 질이 다르다. 그 중요한 패션의 포인트를 버지니 비아르는 매번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이 때문에 우리는 샤넬을 여성의 역사라고 부른다.“파리지엔의 비밀은 무심한 듯한 매력에 있어요. 파리 스타일 돌바닥과 센강을 배경으로 한 이번 패션쇼가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줬죠.” 프렌치 시크를 대표하는 여배우 아나 무글라리스의 말처럼 이번 쇼는 파리지엔의 모든 것을 담은 듯 보였다. 쇼를 위해 파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센강을 런웨이로 탈바꿈시켰고, 무대에는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V.I.P’가 흘러나왔다. 센강은 단순히 낭만적이고 제멋대로인 강 이상이다. 예술사를 관통하는 산책로이자 걷다 멈춰 바라볼 수 있는 상징과 이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길이다. 버지니 비아르 또한 센강을 그렇게 인식했다. 그 강변을 따라 블랙 트위드 롱 코트를 입은 캐롤린 드 메그레가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무심한 헤어스타일과 감정의 흔들림 없는 눈빛, 그녀는 누가 뭐래도 파리지엔 그 자체였다. 이 쇼의 신호탄에서부터 이미 쇼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려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쇼는 오트 쿠튀르의 명성에 걸맞게 누군가의 말처럼 ‘보석을 세공한 듯’ 섬세하게 만든 디테일들로 채워져 있었다. 파리는 오트 쿠튀르의 발상지다. 패션의 최전선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으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창조와 장인정신, 꿈과 감성의 정수인 오트 쿠튀르의 시작이 바로 이곳 파리였다. 그리고 샤넬은 지금까지도 오트 쿠튀르를 선보이는 가장 오래된 하우스로 기록되고 있다. 
 
파리지엔의 비밀은 무심한 듯한 매력에 있어요. 파리 스타일 돌바닥과 센강을 배경으로 한 이번 패션쇼가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줬죠. 
 
쿠튀르를 선보이는 가장 오래된 하우스로 기록되고 있다.샤넬의 스토리텔링은 언제나 여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트위드, 실크 시폰, 오간자, 인레이 레이스, 플로럴 모티프와 그래픽 모티프의 조합이 다채롭고 여성적인 창조의 세계가 지닌 활기를 잘 보여준다. 남성미 넘치는 롱 오버코트에서부터 플랫 플리츠 골드 트위드 스커트 위에 벨트와 함께 착용한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핀스트라이프 팬츠와 베스트, 무한한 가벼움이 느껴지는 블랙 시폰 소재의 롱 드레스, 페인팅 효과를 준 아이웨어, 투톤 메리제인에 이르기까지, 이번 컬렉션은 엄격함과 비대칭, 절제된 컬러와 강렬한 컬러, 확신과 신중함 등 샤넬의 코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회화에서 사랑받는 모티프인 과일 바구니, 섬세한 꽃과 야생화, 딸기, 블랙베리가 손에 잡힐 듯 입체적인 자수로 표현됐다.(실제로 꽃바구니를 든 모델이 등장하기도 했다!) 알고리즘이라는 굴레와 SNS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그야말로 감각 박탈의 시대에 샤넬은 더 섬세하게, 더 치밀하게 우리의 감각을 깨워냈다. 그건 이 쇼를 오트 쿠튀르라 명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의 패션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오트 쿠튀르의 규정 덕분에 패션은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점점 사라져가는 오트 쿠튀르를 지키기 위한 샤넬의 노력은 단순한 패션 브랜드 그 이상이다. 튈르리정원과 방돔광장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샤넬 오트 쿠튀르의 중심지 역할을 해오고 있는 캉봉가 31번지가 있다. 가브리엘 샤넬은 모자 디자이너로 시작했다. 1910년 캉봉가 21번지에 자신의 첫 부티크인 ‘샤넬-모드’를 열어 제품을 판매했고, 이어 1912년에는 도빌에 두 번째 부티크를 열었다. 샤넬에게 유명세를 가져다준 모자 이외에도 편안함과 우아함을 결합한 다른 의류, 예컨대 세일러 블라우스, 블라우스, 저지 소재 재킷을 선보이며 빠르게 여성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1915년에는 비아리츠의 빌라 라랄드에 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해 상류층과 세계 각지에서 온 고객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패션을 20세기로 힘차게 이끌었다. 인기에 힘입어 1918년 샤넬의 상징적인 주소가 된 파리 캉봉가 31번지에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했다. 그 후 10년에 걸쳐 캉봉가 22, 25, 27, 29번지로 사업을 넓혔다. 1918년부터 1971년 사망할 때까지 가브리엘 샤넬은 오트 쿠튀르만 제작했다. 오트 쿠튀르와 함께 샤넬이 탄생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샤넬의 DNA를 구성하며 하우스의 모든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1983년에서부터 2019년까지 칼 라거펠트의 지휘 아래, 오트 쿠튀르는 모든 창의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수작업이 이루어지는 기술연구소로 정의되었다. 자수, 깃털, 꽃장식 장인 등 다양한 분야의 거장들이 모여있었다. 그들 손에서 만들어진 중국풍의 자수가 수놓인 코트와 골드사로 된 시스 드레스 같은 명작을 비롯해 3D 수트, 네오프렌으로 만든 드레스, 실리콘 코팅 레이스 등 수공예와 현대 기술이 결합된 혁신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곳은 과거와 현대를 지나 미래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패션 실험실이었다. 30년 넘게 칼 라거펠트 곁에서 일한 버지니 비아르 역시 오트 쿠튀르를 샤넬의 영혼이라 여긴다. 가브리엘 샤넬과 마찬가지로 디자인의 중심은 여성이다. 여성을 돋보이게 하고, 개성을 반영하며, 니즈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옷을 선사하고자 한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오트 쿠튀르는 궁극의 창작 분야다. 영원히 모던함을 잃지 않으며 모든 우아함을 지원하는 오트 쿠튀르는 럭셔리의 표현이자 정수로서 그 가치를 보여주는, 낮과 밤 언제나 착용할 수 있는 삶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관심을 지속하는 삶은 자각하는 삶이다. 그리고 곧 자각은 책임의 씨앗이 된다. 오트 쿠튀르에 대한 샤넬의 끊임없는 관심은 이제 그들에게 또 다른 책임감을 부여한 것이다.샤넬 2023 F/W 오트 쿠튀르의 무대 위로는 다양한 인종의 모델들이 격식 없이, 때로는 서로 마주 보고 웃기도 하고 농담도 나누며 걸어 나왔다.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파리의 소요에 대해 이들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듯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연대를 이루어 걸었다. 쇼의 키노트에 적힌 “정반대와 대조, 무심함과 우아함을 활용해 건강함과 섬세함의 경계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이걸 샤넬에서는 매력이라고 부른다”라는 버지니 비아르의 말이 극명하게 드러난 건 피날레의 무대였다. 모델 신현지가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런웨이를 걸은 것. 처음 블랙 트위드를 입은 캐롤린 드 메그레는 반대로 나비 날개처럼 얇은 화이트 오간자 드레스를 입고 무대를 채웠다. 순간, 우린 버지니 비아르라는 창작자가 어떤 고민을 했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 수 있었다. 파리에 갇힌 파리지엔이 아니라, ‘정반대와 대조’를 매력으로 꼽던 진짜 파리지엔의 귀환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얀 드레스를 휘날리며 무대를 돌아서 걸어가는 신현지의 워킹은 무심한 듯 시크한, 그 프렌치 여성들과 마주했다. 모두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눈빛으로 서로에게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샤넬이 말하는 매력이 무엇인지 이 한순간에 느낄 수 있다. 패션이 발언의 힘을 갖는, 그런 순간이었다.패션은 말 그대로 변화에 관한 것이다. 패션은 명사로는 옷, 머리, 장식, 행동의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최신 스타일로 정의되지만, 동사로는 무언가를 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혼란한 시절, 우리가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샤넬은 패션이란 동사를 통해 알려준다. 마주하라, 지지하라, 그리고 진짜 자신이 되어라. 그것 외에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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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Karim Sadli,ⓒ Chanel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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