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프라다와 만나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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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프라다와 만나면

프라다는 2023 S/S 여성 컬렉션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을 초대했다.

BAZAAR BY BAZAAR 2022.12.08
프라다는 2023 S/S 여성 컬렉션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원초적인 욕망과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현대사회의 스펙터클을 잉태하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을 초대했다.
 
프라다 2023 S/S 컬렉션의 배경이 된 찢어진 블랙 페이퍼 속 영상.

프라다 2023 S/S 컬렉션의 배경이 된 찢어진 블랙 페이퍼 속 영상.

입에 성냥개비를 지그시 물고 어둠의 도시를 질주하는 드라이버, 등에 전갈을 수놓은 재킷을 고집하는 고독한 영혼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반항아 스티브 매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남자의 이야기 〈드라이브〉로 2011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201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2016년 칸영화제에 세 번째 초청받은 작품 〈네온 데몬〉은 모델 애비 리가 출연한 영화로 패션 모델의 세계를 황홀하면서도 섬뜩하게 다루었다. “아름다움은 전부가 아니다. 그게 유일한 것”이라고 강렬하게 설파하는 세계다. 프랑스 영화 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2016년 베스트 10(3위)에 선정될 정도로 논쟁적인 영화였다. 칸에서 〈네온 데몬〉을 상영하는 날, 레픈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반항아와는 달리 프라다를 입고 있었다. 구찌, 이브 생 로랑, 헤네시 X.O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과 광고 작업을 선보였던 그가 당시 “프라다가 나에게 패션을 소개했다”고 언급한 것은 겉치레 인사가 아니었다. 〈네온 데몬〉으로 얻은 소중한 만남은 계속 이어졌다.
 
그 성과물이 바로 지난 10월,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의 2023 S/S 여성 컬렉션 ‘터치 오브 크루드(Touch of Crude)’였다. 반영, 굴절, 관찰 같은 일련의 현실을 추구하는 컬렉션은 레픈의 영화적 상상력과 조우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폭력(〈드라이브〉)과 아름다움(〈네온 데몬〉)이란 화두를 스크린에서 탐구했던 레픈은 프라다를 위해 기꺼이 자신이 평생 천착한 테마를 꺼내 놓는다. 다소 도발적인 단어, 관음증(Voyeurism). 물론 앨프리드 히치콕의 〈이창〉으로 대표되는 영화의 관음증적인 성향(열쇠 구멍을 통한 엿보기는 흔히 카메라와 연결)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레픈에게 훔쳐보는 일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무엇인가를 사유하고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되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관음증은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정체성을 진솔하게 대변한다. 친숙한 (우리의) 집을 바라본다는 상상이 이번 런웨이쇼의 토대가 되었다. 거대한 블랙 박스, 즉 그의 관점으로 구성된 세트 디자인은 엿보기의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몰입형 무대와 런웨이쇼를 위한 두 개의 창의적인 테마, 관찰과 교차가 펼쳐진다. 블랙 페이퍼로 제작된 패션쇼 인테리어는 관객에게 가정(집)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준다. 찢어진 창이나 문을 통해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만들어진다. 이런 공간은 페이퍼 기반 섬유를 찢어진 드레스에 사용한 여성 컬렉션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공간을 나누는 문(입구)과 직각으로 교차된 런웨이는 의도적인 균열과 주름을 지닌 의상이 우리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듯 도전적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담은 추상적인 필름이 배경에 더해진다. “인스톨레이션이 패션쇼가 되고 영화가 되고, 계속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 레픈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이다.
 
프라다 2023 S/S 컬렉션 피날레.

프라다 2023 S/S 컬렉션 피날레.

여기에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영화가 프라다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화룡점정으로 완성한다. 동명의 단편영화 〈터치 오브 크루드〉는 현대 여성의 삶, 유동적인 여성성을 조명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온 여성이 발견한 미스터리한 블랙 박스를 통해 세 여성의 관점으로 세계를 담고 있다. 2023년 초, 전 세계에 공개될 예정이며 ‘레픈의 드림팀’이라 부를 수 있는 스태프들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레픈의 최신 넷플릭스 드라마 〈코펜하겐 카우보이〉에서 호흡을 맞춘 촬영감독 마구누스 왼크와 〈네온 데몬〉의 음악감독 클리프 마티네즈가 참여했다. 미가공된 조야함의 개념을 추구한 런웨이쇼는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레픈의 소원대로 영화를 경유해 자가증식하는 변화의 연쇄를 일으킬 수 있다. 프라다와의 작업에서 레픈의 영향력과 그가 받은 영감이 축적됨으로써 파동과 추진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
 
내러티브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찾기 위해 추상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라프 시몬스(왼쪽)와 함께한 니콜라스 윈딩 레픈.프라다 2023 S/S 런웨이.영화 〈터치 오브 크루드〉.영화 〈터치 오브 크루드〉.프라다 2023 S/S 런웨이.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과의 인터뷰
지금 시대를 ‘미디어 르네상스’라고 진단하는 레픈은 극장 외의 다른 영역으로 외연을 확장 중이다. 프라다와 협업한 단편영화 〈터치 오브 크루드〉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코펜하겐 카우보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패션은 삶의 일부이자 개개인이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언제부터 패션에 관심을 가졌나요?
난 항상 표현하는 행위에 흥미를 느껴왔고, 당신이 지적했듯 패션은 그 직접적인 연장선입니다. 1980년대 초반 매우 운이 좋게도 뉴욕 맨해튼에서 자랐습니다. 음악과 패션 모두가 아주 강하게 표현되던 시기였고, 이것들이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수단이었죠. 뉴욕에서 클럽을 다니면서 청춘을 보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패션은 하나의 정체성이었고 그것이 내 매력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닌 영화와 함께 칸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세련된 의상을 입은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수년 동안 프라다와 함께 일할 수 있던 건 매우 행운입니다. “당신이 입는 것이 당신입니다(You are what you wear)”라는 말은 매우 사실입니다. 난 칸영화제 같은 이벤트의 현란함과 화려함을 좋아합니다. 이곳에서는 여기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내가 무척 기대하고 즐기는 그런 종류의 이벤트입니다. 우리 영화산업의 환상과 크리에이터로서의 행위를 강조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죠.
2016년 연출한 영화 〈네온 데몬〉은 매혹적이면서 기이한 영화였습니다. 모델들의 화려함과 욕망, 그 이면의 어둠을 충격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하기 위해 패션계를 어떻게 탐구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패션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동화를 많이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나를 매료시킨 것은 아름다움의 순환에 대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젊어지려는 욕망, 남에게 보여지고 싶은 갈증에서 나오는 절박함. 패션 산업의 기계적인 세계를 묘사하기보다는 내부의 갈망을 투영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되는 변신에는 완전히 미혹되어 아름다움과 매력을 조작하는 거의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있죠.
〈네온 데몬〉을 연출한 경험이 프라다와 컬래버레이션한 〈터치 오브 크루드〉에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영감을 준 부분이 있을까요?
〈네온 데몬〉의 칸영화제 시사회에서 프라다는 우리를 멋지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내가 미우치아 프라다를 만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죠. 라프 시몬스와도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난 우리의 세계가 그렇게 중요한 방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의 2023 S/S 여성 컬렉션을 위한 컬래버레이션 초청을 받았을 때,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세 명은 매우 독특한 크리에이터이고 난 우리의 협업을 매우 즐겼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터치 오브 크루드〉에 대한 영감을 함께 구성했습니다.
프라다 런웨이쇼 ‘터치 오브 크루드’는 독특한 무대와 찢어진 창 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감독님의 호기심과 패션쇼의 매력으로 충만합니다. 감독님과 함께 패션쇼라는 거대한 세계를 관찰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초대를 위한 제안을 생각해냈습니다. 엿보기 구멍이 있는 블랙 박스였죠. 이것은 인스톨레이션, 패션쇼 및 내가 만든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의 토대가 되었으며, 또한 미래에 많은 진화를 가져오기를 희망합니다. 프라다는 이미 건축사사무소 OMA와 협업해 공간을 디자인한 환상적인 남성 쇼를 선보였습니다. 일단 우리가 함께 일하기 시작하자 모두 남성 쇼의 원래 디자인을 뒤엎기를 원했고, 종이 구조를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경하고 질감과 형태에 있어 모든 것을 미가공된(crude) 상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거기서부터 내가 흥미롭게 작업할 수 있는 주제를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가정적인 관음증(domestic voyeurism)’이었습니다. 패션은 그 자체로 관음증적인 행위입니다. 반면 가정 환경에는 매우 관능적인 무언가가 있고 독특한 렌즈(엿보는 느낌을 주는 추상적인 영상)로 이 개념을 활용했습니다. 이 접근 방식이 남성 쇼로부터 아주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블랙 박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쇼 공간이 블랙 박스 그 자체였는지가 중요합니다. 쇼 공간의 엿보기 이미지들은 마치 관객들이 블랙 박스 안에 들어와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죠. 창문은 이 미가공된 개념을 대표하고 이것을 필름에도 활용했습니다.
영화감독으로서 패션쇼 참여는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프라다와 함께 일하기 위해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자신감 있고 편안해서 즐겁게 놀랐습니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가 창작에 있어 나와 매우 유사하게 작업한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영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에서 연결되어 쇼, 인스톨레이션 및 영화의 모든 측면이 의미와 실체를 갖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경험한 TV와 영화의 세계에서 광고 내러티브가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프라다와 협력해 새로운 캔버스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작업은 내 본능을 젊어지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고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창조하고 싶은 내 욕망을 자극합니다.
프라다와의 협업은 영화로 이어졌는데, 단편영화는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에 대해 쓴 건 우리가 패션쇼 공간을 위한 필름을 준비하면서였어요. 〈터치 오브 크루드〉라는 제목으로 수수께끼 같은 비밀을 밝혀내는 세 명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기다렸다가 열어보는 것이 좋을 거 같은데요.
미우치아 프라다, 라프 시몬스와 함께한 대화 영상을 보면,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것 같습니다. 그들과 작업하면서 발견한 것이 있을까요?
확실히 우리의 컬래버레이션은 매우 즐거웠죠. 상업적인 면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롭게 내러티브의 새로운 형식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크리에이터로서 이런 작업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고, 앞으로의 작업에도 반영하고 싶습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다른 예술계와의 협력, 미래지향적인 접근방식에 대해 논합니다. 감독님이 얘기하는 미래지향은 예술의 가능성을 토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혹은 예술이 젊은 세대에게 인생의 중요한 나침반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예술이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세상이 점점 더 기업화되고 통제될 때 그것은 우리의 산소입니다. 예술은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일깨워주는 유일한 요소지만, 예술이 항상 그렇게 좋은 취향을 지녀야만 감상하고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업적인 내러티브보다는 추상적이거나 원초적인 내러티브에 관심이 간다고 하셨는데, 이런 변화가 앞으로의 작업에 영향을 미칠까요?
내가 이전에 했던 것과 비교해서 추상적인 것에 관심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상업적인 내러티브가 진부해졌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내러티브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찾기 위해 추상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금은 디지털 진화가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난 단지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기 위해 백 년을 더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끝으로 인터뷰를 통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얘기해주세요.
한국을 사랑합니다. 많은 한국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에게 영감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넷플릭스, 한국 회사와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공동 작업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한국을 첫 방문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일상생활에 관해서 말하자면, 특히 문화적으로 미디어의 르네상스에 매우 매료되어 있습니다. 난 아이들과 모든 쇼를 보는데 케이팝도 즐깁니다. 국제적인 대중문화를 위한 매우 흥미로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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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글/ 전종혁(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프라다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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