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지의 티 없는 마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Celebrity

정은지의 티 없는 마음

고민하고 걱정하고 그런 자신을 인정하며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정은지의 티 없는 세계.

BAZAAR BY BAZAAR 2022.05.31
 
슬리브리스, 데님 팬츠는 Agolde by Mue. 스니커즈는 N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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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느낀 건데, 의외로 칭찬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네요?
속으로는 ‘더해줘, 더해줘!’ 하고 있지만 쑥스러워요. 제 반응 때문인지 팬 사인회를 하면 팬들이 일부러 저를 칭찬 감옥에 가두기도 해요. 제 리액션이 재미있대요.
누구한테 어떤 칭찬을 듣는 게 본인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이 질문이 그 사람의 가치관을 파악하는 꽤 중요한 단서 같더라고요.
저는 저와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다는 말이 좋아요. 예를 들면 “은지야 너랑 같이 작품을 해서 좋았어.” 혹은 “은지야 네 공연을 보는 동안 참 행복했어.” 이런 표현들요.
본인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이타적인 타입인가 봐요?
MBTI 검사에 ‘가끔 실존의 이유에 고민을 해본다’는 항목이 있잖아요. 저는 ‘매우 그렇다’고 답변하거든요. 나는 뭐가 좋지? 뭐가 싫지? 나는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이지? 자주 생각하는데 제가 그런 데서 행복을 느끼더라고요.
 
그래서 성격유형 테스트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저를 나누나 봐요. 일할 때는 INTP, 친구들과 있을 때는 ISFP. 한번은 한 시간 안에 검사를 세 번 했거든요? ISFP, INTP, INFP로 다르게 나왔어요.
뭐가 됐든 외향적인 타입은 아니네요?
저 엄청 소심해요. 매사에 상처받는다는 게 아니라 신경 쓰는 게 많달까요. 오늘 같은 경우에도 메이크업 받으면서 속으로는 엄청 두근두근거렸어요.
19살에 데뷔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잖아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자본주의의 결과물이죠.(웃음) 제가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 갭이 진짜 크거든요. 신인 때는 “방송에서는 잘 웃으면서 여기선 안 웃냐”, “무표정일 때 무섭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 말 들으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저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싶으면서도 속으론 상처받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의식적으로 웃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죠. 어쩌면 성격 유형이 여러 가지로 나오는 것도 저라는 사람이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발성과 딕션이 좋네요. 눈 감고 있으면 마치 라디오를 듣는 것 같달까요? 아무래도 3년간 진행했던 라디오 덕분이겠죠?
라디오를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가끔 지적을 받으면 따로 시간 내서 고치려고 했거든요. ‘빚을 지다’, ‘빛을 잃다’ ‘읽다’ 이런 발음 같은 것도 구분해서 연습했어요.
 
원피스는 Jacquemus by Net-A-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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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가수이고 배우잖아요. 아나운서 급의 노력인데요?
사실은 자기 만족인 것 같아요. 그냥 제 스스로의 목표치가 높은 것 같기도 하고요.
남들 눈에는 무엇이든 능숙한 걸로 보이겠네요.
실은 잘하는 척인 거죠. 백조를 보면 평온해 보이는데 수면 아래에선 아등바등 헤엄치잖아요. 그게 딱 저예요.
드라마 〈블라인드〉를 찍고 있죠? 보통 촬영 중에 만나는 배우들은 가치판단을 떠나서 얼굴에 붙어 있는 피로가 숨겨지지 않거든요. 어제도 밤늦게까지 촬영했다고 알고 있는데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어서 신기했어요.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아요. 그리고 저는 제가 짓는 표정에 따라서 그날의 컨디션이 달라진다고 믿어요. 어두운 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정말로 그날 하루가 우울하거든요. 정신줄을 다잡으면 실제로 기분이 좋아지는 거죠.
〈블라인드〉는 전작 〈술꾼도시여자들〉(이하 〈술도녀〉)과는 달리 어둡고 무거운 사건물인데요.
사건 위주의 흐름이라서 사실은 아직도 적응하는 중이에요. 저는 어떤 사건에 휘말리는 사회복지사 역할이에요. 복잡한 캐릭터라서 뭔가를 말하는 순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되네요. 힌트를 드리자면 이 작품의 로그라인에 주목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당신은 정말 보지 못했나?”.
하반기엔 〈술도녀〉 시즌 2 촬영에 들어간다죠. 배우로서 인생 작품을 한 편 만나는 게 행운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본인은 〈응답하라 1997〉과 <술도녀> 두 편이 있네요.
그것도 딱 스무 살과 서른 살의 시작에서 말이죠. 운이 좋았어요.
〈술도녀〉의 ‘강지구’는 본인과 닮았나요?
제 친구들은 드라마를 보고 “야, 이건 그냥 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친구들 대하는 태도는 비슷한데 지구만큼 대담하지는 못하죠.
 
브라 톱, 브리프, 와이드팬츠는 모두 MaxMara.

브라 톱, 브리프, 와이드팬츠는 모두 MaxMara.

이를테면 한지연(한선화)과의 욕 배틀 장면처럼요? 그런 장면은 연기하는 배우들도 해방감을 느낄 것 같아요.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는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남 눈치 안 보는 인물이잖아요. 욕하는 장면도 그래요. 살면서 제가 언제 광장에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열여덟, 열아홉을 찾겠어요.(웃음)
그 장면이 클립으로 커뮤니티와 SNS에 퍼지면서 유입으로 이어지기도 했고요. 저 역시 그 장면을 보고 나서 정주행을 결심했거든요.
다들 그 장면을 참 좋아하더라고요. 일종의 대리만족인 걸까요? 그때가 코로나 때문에 답답한 상황이었잖아요. 그런 영향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가족보다 더 깊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셋이나 있다는 설정은 판타지로 느껴져요.
저도 〈술도녀〉를 보면서 그 관계성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만큼 의존도가 높은 거잖아요. 평생 내 곁을 지켜줄 것만 같은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그 정도로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있나요?
소수의 사람들과 오래 관계를 맺는 편이에요. 떠오르는 친구가 서너 명 있는데 동갑 친구는 한 명, 나머지는 다 언니들이에요. 저는 이상하게 동생들이 어렵고 언니들이 편하더라고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편이죠?
일할 때는 정리된 모습만 보여지니까요. 그런데 저도 어느 때는 되게 철딱서니 없어요. 계속 무거운 걸 들고 있다 보면 힘에 부치잖아요. 요즘은 그래요.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내려놓는 느낌? 때로 저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쉬고 싶은데 다들 저는 괜찮을 거라고, 잘해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새는 일부러 엄살도 피워보고 그러는 것 같아요.
 
니트 톱, 팬츠는 Salvatore Ferragamo. 스니커즈는 Nike.

니트 톱, 팬츠는 Salvatore Ferragamo. 스니커즈는 Nike.

‘K-장녀’인가요? 지금껏 맡았던 역할들이 그랬듯요.
완전히 K장녀죠. 그런데 K장녀만큼 매력적인 사람도 없지 않나요? 얼마나 든든해요.
하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무거운 짐을 잔뜩 이고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에게 애착이 강했어요. 부모님이 맞벌이하셨고 대리 육아를 도맡아 했죠. 여덟 살 차이 나는 동생을 돌보기 위해 다니던 학원까지 그만둔 적 있어요. 데뷔하고 돈을 벌면서 가족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게 저의 가장 큰 기쁨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애착이 아니라 집착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이를테면 동생의 졸업식에 못 간 걸로 하루 종일 우울해했거든요. ‘내가 왜 그 자리에 없지?’ ‘나 뭐 때문에 일하지?’ 지금은 바로 옆에 있는 것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라고 타협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때론 저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웃음)
어찌 보면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가봐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 말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거든요. 그게 저를 항상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어렸던 동생이 너무 잘 자라주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책임감이 조금은 덜어지더라고요.
 
슬리브리스, 데님 팬츠는 Agolde by M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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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는 이런 고민 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바빴죠?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요. 엄청 치열하게 살긴 했는데 그래요. 그냥 눈뜨면 현장에 가 있었죠. 인터뷰할 때 종종 어느 때가 가장 인상 깊었는지 물어보시는데 드릴 말씀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일기를 써요. 잊지 않으려고요.
최근엔 일기에 어떤 문장을 썼나요?
음, 이게 일주일 전쯤인 것 같아요. “나는 인내와 불쑥 튀어나온 짜증의 반복이다.”
‘인내와 불쑥 튀어나오는 짜증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건 무엇 때문인가요?
창피함요. 나한테 창피하지 말아야지. 적어도 나 스스로에겐 쪽팔리지 않은 사람이 돼야지.
 
슬리브리스는 Loewe. 데님 팬츠는 Sport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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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창피하지 않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나요?
조금 창피하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요. 약간의 창피함과 적당한 칭찬이 저를 잘 서 있게 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팬들이 제 20대 활동을 다 정리해주셨어요. 영상을 쭉 보는데 ‘이야, 내가 언제 이런 걸 했지?’ ‘어떻게 다 했지?’ 싶더라고요. 열심히 살긴 살았나 봐요.
어떤 30대를 꿈꾸나요?
고민 많은 20대 마지막을 보내고 30대의 시작을 바쁘게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이제는 에이핑크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비어 있는 시간을 알차게 쓸 방법을 찾고 싶어요. 앞으로는 유연한 30대가 되고 싶어요. 그동안 참 요령이 없었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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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김선혜
    헤어/ 강현진
    메이크업/ 이지영
    스타일링/ 윤지빈
    어시스턴트/ 백세리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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