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시절, 내 피부 상태는 엉망이었다. 민감성 피부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피부염과 안면홍조가 심했는데 피부가 너무 약해져 고깃집 불판 앞에만 가도 약한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피부과에서는 피부 장벽이 거의 무너진 상태라 진단했다. 당시 나는 불규칙한 식습관을 비롯해 스트레스, 잦은 야근까지 모든 생활습관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지친 피부에는 온갖 화장품을 발라 간신히 피부 수명을 유지하려 애썼다. 수면부족으로 칙칙해진 피부를 밝히고자 단계별로 여러 개의 화이트닝 제품을 발랐고, 강박적인 다중 세안을 비롯해 각종 필링제를 섭렵하며 각질제거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하면 피부가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시간과 비용, 정성을 쏟아부었건만 피부는 정작 감당 못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결국 피부에 아무것도 바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질주를 멈추었다. 그렇게 화장대 위를 가득 채웠던 화장품을 모두 정리했다. 저자극 스킨과 크림 하나씩만 덩그러니 놓고 지낸 지 어언 일 년. 문제였던 생활습관도 바로잡으면서 그제서야 피부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신기했던 건 스킨케어 단계를 단순하게 바꾸었는데도 오히려 피부가 전보다 나아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아무 화장품이나 문제 없이 바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지만 여전히 계절과 상황에 맞춰 딱 필요한 만큼의 화장품만 바르려고 노력한다.
내 경우는 극단적인 예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많은 여성들이 현재 이런 일을 경험하고 있다. 많은 피부과 전문의들은 마스크, 미세먼지, 외부 자극 등으로 피부가 민감해진 사람이 늘었고 이로 인해 병원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특히 과도한 스킨케어로 인한 화학적, 물리적 자극은 민감성 피부를 유발하는 주된 요인이다. 보통 한국 여성이 사용하는 화장품은 클렌징, 스킨케어부터 메이크업까지 합치면 10개가 훌쩍 넘는다. 피부가 흡수할 수 있는 화장품 양은 정해져 있기에 과도한 영양은 피부 표면에 말라붙거나 땀, 노폐물과 함께 모공에 쌓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엔 화장품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커지면서 화장품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무작정 굶는 것이 좋은 다이어트가 아니듯 쓰던 화장품을 몽땅 치우는게 능사는 아니다. 어떤 걸 빼고 더할지 고민이 된다면 꼭 필요한 스킨케어의 뼈대만 놓고서 본인의 피부 상태에 맞춰 어떤 제품을 넣고 뺄지 고민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바르고 있는 화장품에 대해 물음표를 하나씩 붙여 답을 찾다 보면 자신만의 ‘스킵케어’ 공식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STEP 1.
이제 세안은 단순한 노폐물 제거를 넘어서 보습의 첫 단계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피부 고유의 촉촉함을 유지해주는 천연 보습 인자를 남기기 위해 세안 후 촉촉한 느낌이 드는 ‘약산성 세정제’를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과도한 세안 후 건조해진 피부에 보습 제품을 바르는 것은 피부가 갖고 있는 ‘천연 다이아몬드’를 빼고 그 자리에 ‘인조 큐빅’을 박아 넣는 것과 같다. 때문에 아침에는 되도록 클렌징 제품을 사용하지 말고 물로만 세안하는 걸 권장한다. 민감성 피부라면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지 않은 클렌징 워터만을 사용해 세안하는 것이 좋다. 각질제거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각질이 피부를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건성 피부라면 각질제거를 굳이 하지 않는 게 좋고, 지성 피부라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세안을 했다면 다음 단계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토너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토너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피부의 pH 농도를 4.5~6.5의 약산성으로 맞춰주는 것이다. 세안제가 약산성이라면 굳이 pH농도를 맞추기 위해 토너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이를 생략하고 묽은 세럼부터 발라도 무방하다. 토너의 부차적인 기능으로는 노폐물 제거와 피붓결 정돈이 있는데, 만약 각질이나 피지가 쌓여있어 다음 단계의 기능성 제품이 잘 흡수되지 않는 경우라면화장솜에 토너를 적셔 피붓결을 정리하는 건 충분히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각질이나 피지 관리를 하고 있다면 굳이 매일 습관적으로 ‘닥토’를 사용할 이유는 없다. 피부가 악건성이라 첫 단계부터 수분을 채우길 원하면 보습 토너를 사용할 것. 대신 성분표를 꼼꼼히 따져 피부를 더 건좧게 만들 수 있는 에탄올 성분이 없는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STEP 2.
자신의 피부 고민에 맞춘 효과적인 제형과 성분을 골라 추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문가들은 세럼, 에센스, 앰풀 등 다양한 이름으로 출시된 제품들이 사실상 기능의 차이는 크지 않으며 농도나 점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건성 피부라면 무거운 제형을, 지성 피부라면 가볍고 묽은 제형의 제품을 선택하는 게 좋다. 요즘에는 저마다 가진 피부 고민에
다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성분을 단순화한 고민별 맞춤형 세럼이 많이 출시돼 있다. 수분,진정,보습,항산화,모공,탄력,미백 등 단일 기능을 가진 세럼을 하나 혹은 두 가지를 골라 자신만의 스킨케어 조합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약 피부 고민이 복합적이라 더 많은 스킨케어 기능을 원한다면 이러한 단일 기능 세럼으로 제품의 가짓수를 늘리기보다 올인원 제품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 지성 피부이거나 자신이 사용하는 세럼 조합에 유분기가 충붆하다면 굳이 로션이나 크림을 더하지 않고 스킨케어를 마무리해도 된다. 건성 피부이거나 탄탄한 보습막이 필요하다면 다음 단계의 스킨케어를 고려한다.

STEP 3.
로션과 크림의 경우 피부 타입과 상황에 맞춰 적절히 조절해주는 게 필요하다. 로션은 크림보다 유분 함량이 적고 수분 함량이 많기 때문에 밀폐력이 떨어진다. 크림은 피부 표면에 보습막을 형성해 수분이 외부로 뺏기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흡수의 의미라기보다는 머물며 수분을 지키는 용도다. 건성 피부의 경우 이전 단계에서 수분 함량이 많은 스킨과 세럼을 사용했다면 로션을 건너뛰고 크림을 사용해도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반대로 피지 분비가 왕성한 지성 피부라면 마지막 단계에 로션을 사용하고 크림은 스킵해도 충분하다. 지성 피부에게 지나친 유분 공급은 모공을 막아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 쉬운 환경을 만드므로 되려 해로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킨케어의 마무리는 자외선차단제임을 기억하자. 자외선 차단은 건너뛰어선 안 되는 필수 스킨케어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