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팔레로 향하는 길엔 두 가지 설렘이 공존한다. 진한 연둣빛 철제 기둥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유독 높은 샤넬의 고객들은 오늘 어떤 차림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장하고 쇼장을 찾을까. 이 두 요소는 마치 프리퀄처럼 과거의 쇼를 복기하고 새로운 쇼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킨다. 프렌치식 정원(2019 S/S)이나 거대한 라이브러리(2019 F/W)처럼 샤넬에 의해 창조된 압도적인 장면을 기대했던 나에게 펼쳐진 것은 앤티크 리넨 베딩이 걸린 다소 초라한(?) 광경이었다. 펄럭이는 몇 개의 리넨 레이어를 지나자 거친 풀과 무성하게 자란 꽃으로 채운 정원이 맞이했다. “샤넬이 자랐던 오바진(Aubazine) 수도원이 이번 쇼의 배경이에요.” 이 어리둥절한 광경(그건 쿠튀르와는 영 매치가 되지 않았던 리넨 베딩 탓이리라)을 앞에 두고 샤넬 관계자는 말했다. 가브리엘 샤넬의 삶에서 수도원에서의 시간은 빼놓을 수 없다. 11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프랑스 외딴 지역의 수도원에서 10대를 보낸 그는 이곳 수녀들에게 바느질을 배웠고, 자신의 미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마치 수도원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처럼 단순하며 깨끗한 요소들, 수녀복을 완성하는 블랙과 화이트 같은 것들로 말이다. 이 단순하지만 묵직한 아름다움은 도빌 해안가에서 모자 매장을 열고 커리어를 시작했던 때부터 현재까지 샤넬 하우스 고유의 코드로 남아 있다. 버지니 비아르는 지난 9월 오바진 수녀원을 방문하며 이번 쿠튀르 컬렉션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블랙과 화이트 실로 직조된 트위트 수트를 시작으로 소녀들의 유니폼에서 착안한 앙상블은 곧 유연하게 흐르는 드레스로 이어지다 크레이프 조젯 소재의 웨딩드레스로 마무리되었다. 드라마틱하게 과장된 실루엣, 바닥을 끄는 드레스 자락으로 쿠튀르적인 위용을 뽐내는 대신 단정한 실루엣에 조금 더 들여다봤을 때 보이는 섬세한 디테일로 감탄을 자아냈다. 스커트단 아래로 흩어지는 꽃과 깃털로 만든 나비 같은 장식들 말이다. 하이와 로, 남성성과 여성성,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와 역설로 채워진 이번 쿠튀르 컬렉션은 장 콕토가 말한 가브리엘 샤넬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1, 4, 5 샤넬 쿠튀르의 피날레는 웨딩드레스가 장식한다. 그 어느 때보다 담백하게 완성된 드레스! 2 글로벌 앰버서더 자격으로 쇼장을 찾은 지드래곤과 퍼렐. 3 화이트 삭스를 매치한 로퍼 위로 흐드러진 꽃잎 디테일.
샤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힘을 썼다. 그녀는 소란스러운 상류사회에 고요함의 품격을 안겨주었다.
1 튤과 레이스 소재로 드라마를 더한 드레스. 2 에바 그린. 3, 5 피날레 신.4 수녀복을 연상시키는 지지 하디드의 드레스.6 소녀스럽게 풀어낸 쿠튀르 드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