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성 아티스트와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삶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예술은 박물관과 전시장 밖에도 있다. 위대한 여성 아티스트와 작가들이 삶 속에 녹아 있는 물, 불, 대지와 공기의 영원한 위엄을 노래한다. | 배스록,에비 와일드,멜리사 해리슨,보리밭 가운데,어두운 하늘: 야생의 밤을 향한 여정

‘압도적 미(L’ecrasante Beaute)’(2018), 에텔 아드낭. Courtesy Etel Adan and Cristea Roberts Gallery, London  ━  WATER   ‘물결 속의 수수께끼’, 로라 커밍 물은 나의 첫 번째 기억이다. 나는 두 살이고, 북해를 향해 막바로 달려간다. 그 빛나는 물결이 얼음처럼 차가우리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상관도 없다. 부서지는 거품이 만드는 응어리에 머리부터 고꾸라지면 파도는 변함없이 앞뒤로 밀려오고 빠져나가며 내 머리칼을 흩뜨리고, 옷을 적시고, 짜릿한 짠물로 내 얼굴을 씻어낸다. 나는 나의 요소 안에 있다. 이곳은 내가 태어난 스코틀랜드의 바다다. 한여름에 푸르게 빛나지만 언제나 차다. 후에 엄마는 자기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영국의 바다에 나를 데려간다. 그곳의 바다는 언제나 너무 따뜻해서 영원히 헤엄칠 수 있을 것 같다. 해안은 황갈색 금빛으로 빛났고 물 또한 같은 색이었는데, 모래밭을 씻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요한 날, 모래와 바다는 하나의 확장된 영역으로 이어지는 듯하고, 이 환영은 코발트 빛의 하늘이 물 위에 빛날 때에야 부서진다. 이것이 같은 북해라고는 믿기 어렵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이 해변은 거대한 놀이터였다. 채플 세인트 레오나즈의 링컨셔 빌리지에 있던 엄마의 집에서 한 발짝만 가면 이 해안이었다. 엄마는 1930년대 내내 이곳에 나와 얕은 물에서 노를 젓고 바위틈의 웅덩이 사이를 기어오르고 해 질 녘 물결 위를 떠다녔다. 나는 엄마가 구릿빛으로 그을린 어부의 어깨에 앉아 마치 축제에서 흥청이는 사람처럼 두 팔을 들고 있는 사진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썰물의 조개처럼 기뻐하다”라는 속담처럼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사진이란 바다만큼이나 기만적일 수 있다. 이 사진이 찍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어부는 고무 매트 위에서 깜빡 잠이 들고, 천천히 조류에 떠내려가 익사했다. 엄마가 세 살이던 1929년의 어느 아늑한 날 눈앞에서 유괴되어 사라진 곳도 매혹적인 물결이 찰랑이는 이 긴 해변이었다. 누구도 못 봤고, 적어도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닷새가 지나고 엄마는 새 옷을 입은 채 근처 마을에서 발견됐다. 엄마는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예순이 될 때까지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조차 듣지 못했다. 그 시점에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엄마의, 그리고 나의 삶을 바꿔놓았고 나는 엄마가 노년기에 멈추어버린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느꼈다. 조사를 계속해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엄마에게 보내는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담은, 유목으로 만든 조각된 상자와 매년 여름 부모님의 집에 머물며 수영을 하던 사람들, 스케그네스 근처의 빌리 버틀린 캠핑장을 홍보하기 위해 물결을 헤치며 느릿느릿 돌아다니던 코끼리. 엄마가 결국 채플에서 채 10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멀쩡하게 발견되었을 때,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고 마을 전체는 엄마가 왜, 누구에게 잡혀갔던 것인지를 비밀로 지켰다. 엄마는 왜 이제 보호자 없이는 바닷가에 나갈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이유를 찾아냈다. 모든 해변은 반쯤 밝아진 새벽에 새로운 아침이 밀려오는 무대다. 채플에서, 마을은 매일의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이며 바다는 시시각각 바뀌는 배경이다. 색슨족이 물결 속에서 먹을 수 있는 해초를 찾으러 왔을 때보다도, 로마인들이 이곳까지 고도로 발달한 물길을 틀 때보다도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이곳에서 커다란 범선들은 낮은 물가에 좌초했고 밤이면 밀수꾼들이 화물을 털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는 이곳에서 봉화를 밝혔다. 남녀들은 수 세기에 걸쳐 길고 어두운 옷을 입고, 에드워드 시대의 수영복을 입고, 티셔츠를 입고, 비키니를 입고 서로에게 구애했다. 유리병 속의 편지들, 무너진 모래성들, 비참하게 잃어버린 열쇠들. 이 모든 것이 해안에서 매일 열린 연극이었다. 포효하는 20년대에는 초기 레이싱카들이 채플 모래밭을 질주했다. 1963년, 힌덴부르크호가 믿을 수 없이 느린 속도로 머리 위를 날았다. 1차대전 때는 스파이들이 이곳에서 비밀리에 바다 건너로 신호를 보냈다. 2차대전 때는 수차례 격전이 벌어졌고 두 명의 독일 공군이 붙잡히기 전에 비행기에서 이 바다로 뛰어내렸다. 엄마가 유괴된 이후로 90년간의 소풍과 여름휴가가 오고 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매일의 사건은 밀물과 썰물에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하지만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세대가 지날 동안 여전히 똑같다. 우리는 그들이 보던 바다를 그대로 보고 있다. 나는 해변에 서서 물을 마주 보고 엄마의 유괴를 상상해봤다. 엄마도 나처럼 언제나 바다를 좋아했던 것 같다. 바다에는 어떤 공포도 없다. 엄마를 데려갔던 건 분명히 친구거나, 혹은 심지어 더 가까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바닷가에서 같이 노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알고 보니 유괴 전, 엄마에게는 또 다른 첫 번째 가족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영영 떠나버렸다. 미스터리의 마지막 단서는 21세기가 되어서야 이 모든 바다를 건너 오래된 사진의 형태로 내게 돌아왔다. 사랑의 메시지가 적힌, 바닷가에서의 한때를 담은 그 사진이 엄마와 유괴범의 진짜 관계를 보여준 것이다. ‐ <채플의 모래 위에: 나의 엄마와 또 다른 행방불명자> 중에서.    ━  FIRE   ‘한밤에 뜬 해의 불길’, 티파니 프랜시스 헬싱키 군도는 세찬 바람이 부는 33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 주변으로 흩어진 섬들은 ‘발트해의 딸들’로 불린다. 이 섬들의 해안에는 표류하는 나무 조각과 소금물의 썰물이 들이치고, 여름이면 이곳의 하늘은 한밤에 뜬 해의 영원한 집이 된다. 이 자연 현상 때문에 이곳에는 여름 내내 어둠이 내리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소설가 크누트 함순은 ‘마치 목을 축이러 가는 것처럼’ 태양이 잠시 물에 잠겨 생기를 찾고 다시 떠오른다고 표현했다. 헬싱키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해는 잠시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지만, 그 시간이 너무 짧아 새벽 1시면 다시 동이 트고 새들이 잠에서 깬다. 나는 헬싱키가 한밤에 뜨는 해의 불길 아래 살아난 한여름에 도착했다. 한날 나는 시외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눅시오 국립공원의 숲을 찾았다. 에스포, 키르코눔미, 비흐티 지방에 걸친 52km2의 대지에 숲과 호수들이 펼쳐져 있다. 핀란드에는 ‘요카미에헤노이케우스(jokamiehenoikeus, 모든 사람의 권리)’라는, 하이커들 사이에 내려오는 오래된 법칙이 있다. 모든 사람이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사유지를 자유롭게 지날 수 있다는 이 전통에 영감을 받아, 나는 길을 밝혀줄 영원한 빛을 따라 스칸디나비아 동부를 탐험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나는 자작나무 아래, 햇빛이 숲의 바닥으로 드리우고 먹이를 찾는 개똥지빠귀가 월귤나무 덩굴을 부스럭거리는 곳에서 출발했다. 개똥지빠귀는 머리가 회색이고 가슴에 반점이 박힌 찌르레기 크기의 새들인데, 나는 여지껏 이 새들이 추위를 피해 영국으로 날아오는 겨울에밖엔 본 적이 없었다. 새들 또한 부드러운 여름 날씨의 마법을 기념하는 것 같았고, 나는 영원한 그날의 더위에 경사를 오르느라 흘린 땀을 식히며 앉아 쉬는 동안 새들을 지켜보았다. 오후는 저녁이 되었고, 나는 높이 솟은 자작나무 기둥과 썩어가는 그루터기들, 숨은 웅덩이들, 화강암 덩어리들을 지나쳤다. 천천히 저무는 태양의 부드러운 복숭앗빛이 모든 것을 비추는 가운데 나는 딱따구리들의 북소리를 따라 더 깊은 숲속으로 올랐다. 모든 나뭇잎과 새들이 태양의 에너지로 살아났고, 내 아픈 발은 나뭇가지마다, 꽃송이마다 삶이 약동하며 만들어내는 나무들의 움직임에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숲속에 펼쳐진 들판에서는 끝이 검은 귀와 부드러운 발을 가진 산토끼 한 무리가 천천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봤다. 나는 풀 속에 묻혀 토끼들이 창백한 빛 아래 춤을 추고 야생화들 사이를 부스럭거리며 돌아다니고 기다란 뒷다리를 게으르게 끌며 들판을 느긋하게 뛰어 가로지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음 날 저녁에 나는 버스를 타고 파도 거품이 찰랑이는 해변이 있는 시 외곽으로 나갔다. 해변을 따라 걸어, 바다로 바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나무 산책로까지 다다랐다. 바다 너머로는 나무들과 조그만 통나무집만이 자리한 조그만 섬이 보였다. 진홍색 집은 창문만 크림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여름 동안 이런 섬들에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여 한밤에 뜨는 해의 계절을 기념하는 파티를 열고, 모닥불을 피워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건강한 작물이 자라기를 기원한다. 나는 오래도록 바다에서 수영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이 내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를 지나고, 핑크빛 햇볕이 수면을 실크처럼 빛냈다. 멀리서 백조가 두 섬 사이를 미끄러졌고, 검은머리물떼새가 웃으며 내 머리 위로 날아갔다. 하늘에서는 내내 칼새가 소리를 질렀고, 여름의, 성장의, 새로운 삶의 영광스러운 조짐이 들려왔다. 시간을 잊은 것 같은 이 새들이 자신 있게 알고 있는 건 이 햇빛이 여름을,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살아 있을 시간을 뜻한다는 것뿐이었다. ‐ <어두운 하늘: 야생의 밤을 향한 여정> 중에서.    ━  EARTH   ‘매혹적인 땅속’, 멜리사 해리슨 나는 먼저 대지를 만들고, 깊은 지하를 상상해 숨을 불어넣는다. 내게는 바로 그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플롯도, 인물도 아닌 공간에서. 그 아래 숨겨진 것에 대해 알지 않고서는 장소를 이해할 수 없다. 거기서부터 나머지가 흘러간다. 토탄에서 나오는 풍성한 작물, 뿌리채소들과 모래에서부터 쌓아 올린 벽돌 주택들, 맑은 시냇물과 백악층에 자란 훌륭한 풀밭, 헤더꽃과 화강암 위의 양 떼. 지질학적 역사는 흙을 창조하고, 흙은 야생화와 농작물부터 건물의 양식과 땅의 윤곽까지 모든 환경을 좌우한다. 땅은 상상과 같다. 이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런던에서 서포크로 이사하면서 나는 2차대전 공습으로 생겨난 잔해가 섞인 탄탄한 표토를 뒤로했다. 런던의 역사와 압력 덕에 만들어진 토양이었다. 나의 새로운 앞마당은 충적토로 이루어졌고, 밭고랑의 끝부분은 여러 빙하기의 잔재들이 섞인 역질층이었다. 이곳의 토끼굴들은 고운 해빈사 더미지만 몇 마일만 더 가면 있는 밭은 점토로 되어 있다. 무겁고 ‘다정한’ 점토는 신발에 들러붙어 꼼짝도 않는다. 겨울에 이 너른 땅을 가로지르면 반대편에 다다를 무렵에는 다리를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다. 서포크의 가벼운 토양은 파내기에는 아주 좋지만 금방 물이 빠진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홍수가 잦다. 빗물이 밭의 모래를 쓸어내려 배수로를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마을 전체가 물속이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 밭을 걷다가 돌에 박제된 이노케라미드 어패류의 유령을 발견하기도 했고, 교회 묘지 입구에서 곱게 화석화된 오징어과의 바다 두족류 벨렘나이트를 줍기도 했다. 우리 선조들은 벨렘나이트를 ‘요정의 화살’ 또는 ‘벼락’이라고 불렀다. 지금에 와서도 이들이 이곳 서포크 땅에서 헤엄치고 죽었다는 사실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만큼이나 믿기 힘들다. 먼 과거의 일을 이해한다는 건 기후 변화로 이 땅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다는 걸 믿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둘 다 사실이다. 조용히, 확고부동하게, 토양은 우리를 탄소로부터 보호해준다. 하지만 우리가 알게 된 모든 지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마당의 토탄을 파내 꿩 사냥터를 만들고, 석탄과 가스를 만들기 위해 채굴하며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난 뒤로 살고 죽었던 모든 것들이 남긴 풍요한 결과물인 토양은 생명이 이곳에서 생존할 수 있는 한 창조 그 이상의 열쇠로 남을 것이다. 토양은 곧 종점이자 원천이다. 하지만 어쩌면 영원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지쳐버린 이 땅에서 이제 60번 남짓의 수확만이 가능하리라는 사실은 우리를 깊은 불안에 빠뜨릴 것이다. 특정한 종류의 토양과 접촉하면 뇌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놀랄 이유가 뭔가? 우리의 신경망은 자연 속에서 진화했다. 우리는 무균처리된 상태로 자연과 떨어져 살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많은 연구가 새소리, 맑은 공기, 아롱거리는 숲속의 빛과 같이 ‘흙 한 줌’이 주는 이로움을 증명하며 우리가 이미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우리는 동물이고,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우리 스스로와 자연을 해치고 있다. 지난여름의 긴 가뭄은 땅에 쩍쩍 갈라진 자국을 그렸고, 공중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진 기관차 차고들과 둑길의 유령 같은 모습이 보여 영국이 잠시나마 그 과거를 기억하게 했다. 우리의 무의식의 깊이만큼, 대지는 우리가 잊었거나 잊고 싶어 하는 것들을 담고 있다. 폐허, 화석, 시체, 플라스틱, 껴묻거리, 매립물, 쓰레기. 어떤 것들은 잊혀졌고, 어떤 것들은 변화했다. 어떤 것들은 충분히 처리되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아 생명을 왜곡하고 미래 세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는 대지가 우리를, 우리의 모든 실수들을 잊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마치 작가가 창작을 위해 과거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보내주어야 하는 것처럼. 그레이엄 그린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훌륭한 소설가는 나쁜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신이 잊는 것들이 곧 상상의 퇴비가 된다.” 여기서 그린의 퇴비는 지구가 잊고 있는 것, 창조적인 변화와 풍요다. 우리 토양에 있어야 할 수십억 종의 미생물, 죽음과 삶 사이를 중재하는 부생물들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썩어 무너진, 살다가 오래도록 사라진 경험들이 켜켜이 쌓인 층이다. ‐ <보리밭 가운데> 중에서.    ━  AIR   ‘삶의 숨결’, 에비 와일드 캠핑의 새벽, 아기가 깨어나는 이른 아침의 공기. 강아지조차도 꼼짝 않고, 그 콧구멍에서 나오는 하얀 김. 이슬이 내렸지만 아직도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닥불은 들쑤셔져 다시 살아나고, 옷을 여러 겹 껴입은 아기의 쭉 뻗은 팔다리. 주전자가 끓기까지는 꼬박 반 시간, 해는 숲을 가로지르기 시작해 너를 향해 다가온다. 너는 공기가 노란빛에 천천히 달구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기는 허공을 향해 시험 삼아 울고, 그 소리는 퍼져나가고, 그를 막는 것은 없다. 아기는 입에서 나가는 입김을 알아차리고 불고, 또 불어낸다. 너는 따뜻하게 아이를 업어 메고 해가 뜨는 방향으로 산책을 나서고, 젖은 풀이 금세 운동화를 적신다. 아기가 네 등을 따뜻하게 덥히는 동안 발을 버둥거리고, 너의 그림자와 겹쳐 모양을 만든다. 네가 어린 시절 추위를 타면 엄마는 ‘자연의 뜨거운 감자’를 해주곤 했다. 손 틈으로 네 등허리에 바람을 불어, 위쪽으로 어깨까지 문지르는 것이다. 작은 벌레들과 꽃가루가 데워진 풀과 가시덤불에서 올라온다. 목덜미에 뭔가 축축한 것이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뻐꾸기가 침을 뱉았나? 닦아보니 그냥 물방울이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데, 바람이 실어준 작은 선물이다. 공기가 목소리들로 떨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깨어나고, 베이컨 냄새가 커피와 섞여 묵직하게 퍼진다. 이제 태양은 캠핑장을 강렬히 비추고, 아기의 울음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볕은 피해야 할 만큼 강해지고, 의자를 나무 그늘로 옮기고 말벌 떼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나무 아래 최고의 공기는 어두운 초록으로 가만하고, 깊고 차갑고, 조그만 거미들과 믿을 수 없이 기다란 하루살이가 떠돌아다닌다. 너는 돌로 만든 원을 의식을 행하는 곳으로 삼아 친구가 만들어준 나무 상자에 아버지의 재를 옮겨 담았다. 바람이 얼마간 아버지를 데려갈 것을 알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걸 알지만, 고려하기는 했다. 눈에 보이는 가루는 와인으로 씻어냈다. 오후가 되자, 뜨거운 공기의 흐름과 칼새들과 피부를 무는 곤충들. 바람은 먼 곳에서 오고 너는 도착하기도 한참 전에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은 너도밤나무 잎을 헝클어뜨리고 엘더플라워의 얼룩과 너도밤나무 열매를 떨어트린다. 개를 앞세우고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는 산책,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고요한 어린 애. 황혼, 물에서 오는 차가운 숨. 햇볕과 바람에 타고 일찍 일어나느라 당기는 얼굴. 너는 아기의 따뜻한 몸과 개의 따뜻한 몸 사이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여름 끝자락 나무들 새로 불어오는 바람 사이에 누워. 그리고 이 바람은 어떻게 그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불어가는지. ‐ <배스록> 중에서, 2020년 2월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