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 베일리 래의 반짝이는 순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환희와 고통의 징검다리를 건너, 코린 베일리 래의 음악은 자연스레 지금에 이르렀다. 그녀의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반짝이는 시간의 한 토막. | Musician,Corinne Bailey Rae,코린 배일리 래

‘The Skies Will Break’의 뮤직비디오에서 코린 베일리 래는 광활한 대지 한복판에서 금빛 헤드 드레스를 머리에 얹은 채 기도하듯 노래한다. ‘Been to The Moon’에서 그녀는 사막 한복판을 기어 다니고, 연신 점프하다가, 커다란 깃발을 흔들어댄다. 신화 속 여신 혹은 고독한 여전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아직도 데뷔 앨범의 커버 속 수줍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소녀가 남아 있는데 말이다. 적어도 국내에서 ‘코린 베일리 래’라는 이름은 당시의 타이틀곡 ‘Like A Star’와 함께 10년째 기억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일부 아티스트는 그들에게 명성을 안겨준, 그래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다준 히트곡들을 얄궂게도 공연에서 잘 연주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단 하나의 히트곡, 단 한 장의 밀리언셀러 앨범을 평생의 공연 동안 우려먹는 아티스트도 있다. 그에 비해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코린 베일리 래의 내한 공연 세트 리스트는 균형적이었다. 신보 의 수록곡 위주로 밀어붙이거나, 팬들에게 익숙한 10년 전 앨범을 통째로 서비스하거나, 혹은 힘든 시기를 버티고 어렵게 작업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두 번째 앨범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Like A Star’가 수록된 를 비롯해 정규 앨범 세 장의 수록곡이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동시에, 곡과 곡이 매끄럽게 연결되도록 순서와 구성에 세심하게 신경 쓴 것이 역력히 드러났다. “굉장히 클래식한 공연이었어요. 관객들은 앉아서 조용히 무대를 바라보고, 규모에 비해 친밀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장소였죠. 클럽이 아니기 때문에 일렉트로닉한 요소를 넣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밴드 멤버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신경 썼어요. 전반적으로 드라마틱하고 소울풀하다는 인상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일부러 시간을 내 저를 보러 와준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할까?’였죠. 첫 앨범의 비중이 생각보다 높다고 느꼈다면, 그래서일 거예요. 어떤 한국 팬은 오직 제 첫 앨범만 알고 있을 테니까요.”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2001년 어린 나이에 동갑내기 동료 뮤지션이었던 제이슨 래와 결혼한 코린 베일리 래는 2008년 남편의 죽음을 겪어야만 했다. 2006년 잭 존슨을 차트에서 끌어내리고 1위로 데뷔한 뒤 ‘소울풀한 노라 존스’로 불리며 한창 주목 받고 있을 때였다. 힙하면서도 편안한 음악과 더불어 ‘옆집 소녀’ 같은 순수한 이미지를 가진 코린 베일리라는 뮤지션에게 많은 이들이 매료됐고, 한국 음악 팬도 상당수였다. 사랑하는 사람, 특히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반려자를 잃는 슬픔은 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그녀는 2년여간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내 삶도 끝나는 줄 알았어요. 살면서 다시는 행복이나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만 같았어요. 하루하루가 버티는 날들의 연속이었죠. 너무 힘들어서 탈출하고 싶은데, 고통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겠는 거예요. 마치 중력이 날 짓누르는 것처럼.” 그녀의 말이 맞다. 실제로 ‘슬픔(Grief)’과 ‘중력(Gravity)’은 라틴어에서 ‘무거운’ ‘심각한’을 뜻하는 ‘Gravis’를 어원으로 공유한다. 그렇게 심연과도 같은 깊은 슬픔을 기반으로 작업한 앨범이 2010년 발매된 다.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삶에 대해 애써 거리를 유지하며 고통을 관조하는 그녀의 진심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2011년 그녀는 자신이 존경하는 뮤지션들의 명곡 다섯 곡을 재해석한 커버 앨범 를 발매했고, 밥 말리의 ‘Is This Love’ 커버로 2012년 그래미 베스트 R&B 퍼포먼스 상을 받는다.는 ‘변화’에 관한 앨범이에요. 어둠에서 빛으로,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느리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어요. 내게는 그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렸죠. 우리 모두는 각자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해요.그 즈음, 드디어 그녀는 자신의 생활을 짓누르고 있는 중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새로운 사랑을 찾았고, 그 사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늘 코린의 곁을 지키며 앨범 작업을 함께 해온 프로듀서 스티브 브라운이었다. 2013년 스티브와 결혼한 그녀는 지금 고향인 리즈에서 안온한 일상을 만끽하고 있다. 나무와 꽃, 길을 가다 만난 아이 등 소소한 것을 보며 미소 짓는 나날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다음 스케줄을 생각하기에 급급하던 이전과 달리 충실하게 현재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 시간을 “두 번째 삶을 사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새롭게 시작된 인생의 매 순간을 사람들과 촘촘하게 나누고 싶은 것도 이 때부터다.음악은 저항이나 과장 없이, 뮤지션이 겪는 삶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반영한다. “는 ‘변화’에 관한 앨범이에요. 어둠에서 빛으로,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느리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어요. 내게는 그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렸죠. 조각조각 작업한 곡들이 공통적으로 내 몸과 자연, 꿈과 무의식, 인간의 직관 등을 말하고 있었다는 데서 앨범 타이틀을 착안했어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해요.” 내면의 소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 당연한 것을 해나가기엔 우리 모두는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고 늘 지쳐 있으며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치 구루처럼, 그녀는 온화하게 답한다.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자연 속에서라면 더욱 좋고요. 내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길을 찾는 거죠. 내가 살고 있는 리즈는 대도시이면서도 교외에 위치해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휴대폰과 컴퓨터 모니터에서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거든요. 나는 즉흥적으로 기타를 연주하면서 입에서 무언가가 나오는지 기다리곤 해요. 어떤 단어가 어떤 멜로디를 타고 입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나도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몰라요. 하지만 일단 입 밖으로 내면,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뭔지 알 수 있죠. 사랑, 혹은 고통. 기도나 주문을 외우는 것과도 비슷해요.”그녀의 집에는 작은 스튜디오가 있다. 익숙한 모든 악기가 손 닿는 곳에 놓여 있는 이곳은 그녀에게 최적화된 공간이다. 집 밖에서 자유롭게 곡을 쓰다가 스튜디오로 들어가면 곧장 반려자이자 음악적 동지인 스티브와 함께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해체와 분리, 재조합을 반복하다 멜로디, 가사, 코드, 이 모든 요소가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질 때 그녀의 곡 작업은 마무리된다.이번 사진 촬영은 코린이 먼저 제안한 콘셉트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Made of Stars’라는 주제 아래 ‘빛의 반사, 우주적인 뉘앙스, 시퀸, 시스루’ 등의 단서를 보내왔다. 10년 이상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그래미 수상자가 촬영 컨셉트를 메일에 적어 보내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핑크나 크림색처럼 달콤한 컬러에 그저 ‘예쁜' 옷에만 집착하던 10년 전의 소녀는 미우 미우를 입고 프라다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패션 위크에 참석하면서 스스로를 비주얼적으로 보여주는 데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이번 앨범의 비주얼 컨셉트는 ‘화려하고 볼드하고 역동적인’ 코린 베일리 래다. 앨범에 담긴 음악이 자연스레 비주얼 작업의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대자연 속에서 앨범 커버와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동안 ‘Made of Stars’라는 컨셉트를 얻었다고 한다.대우주, 그중에서도 거대한 자연 속에서 한 명의 인간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고대 이집트에서는 꽃병처럼 생긴 그릇 모양의 심장에 성격, 추억 등 개인을 이루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믿었다”는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얼굴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설레어하던 10년 전의 소녀, 가족을 생각하며 슬픔을 이겨내려 애쓰는 5년 전의 여인이 겹쳐 보였다. 그녀 말대로 우리는 저마다 작지만 열심히 빛을 내는 별과 같은 존재다. 혼란과 고통, 성장과 변화의 시기를 거쳐 자기 존재를 덤덤하게 가늠해보는 코린 베일리 래가 얼마나 빛나 보이는지, 아마 본인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