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함의 시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천박함의 시대

VULGARITY: THE BASIC INSTINCT 노골적인 것은 결코 유행에 뒤처지는 법이 없다.

BAZAAR BY BAZAAR 2016.11.10

2016 F/W MOSCHINO

라인 스톤이 박힌 콘돔 드레스, 보일듯 말 듯한 여성의 성기, 시멘트 블록처럼 두꺼운 뮬, 젖꼭지, 측면으로 노출된 가슴, 노팬티 차림, 오렌지색 헤어. 리얼리티 쇼 를 연상시킨다. 요즘은 천박함의 시대다. 다음 달 런던의 바비칸에서 정신분석가 애덤 필립스와 큐레이터 주디스 클라크가 구상한 <천박함: 패션이 새롭게 쓰다(The Vulgar: Fashion Redefined)>라는 제목의 전시회에서는 지나치다거나 성적 매력을 부각시켰다거나 혹은 저속하거나 과장되었다고 보여졌던 지난 5백 년 동안의 옷들을 탐험할 수 있다. 포효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패션은 항상 단순한 옷과 구분 짓기 위해 과도함을 이용해왔고 천박함은 오랫동안 혁명, 저항, 그리고 자기 주장의 도구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 후 메르베이유즈(Merveilleuses, 멋쟁이들)로 알려진 여성들이 자신들의 알몸을 자세히 드러내기 위해 흠뻑 젖은, 비치는 소재의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팔레 루아얄의 정원을 지나 행진했다. 19세기로 접어들어 디자이너들은 과도함으로 충격을 주거나 급격한 규제로 이름을 떨치길 원했다. 찰스 프레데릭 워스의 크리놀린은 너무 넓었고 푸아레의 스커트는 아래부분이 너무 좁았다. 스키아 파렐리의 색감은 너무 밝았고 생 로랑의 수트는 너무 남성적이었으며 뮈글러와 몬타나의 어깨는 너무 거대했다. 갈리아노와 맥퀸의 화려한 드레스는 너무 풍성했고 알라이아의 스웨터는 너무 블랙이었으며 질 샌더의 유니폼은 너무 음침했다. 그리고 베르사체의 드레스는 너무 섹시했다. 패션은 어르신들과 부르주아들이 천박함에 대해 비명을 지르고 자존심을 들먹이게 만드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면서 점점 더 난폭하게 앞으로 전진했다.

‘천박하다(Vulgar)’라는 단어의 어원은 ‘Vulgus’. 라틴어로 ‘서민’을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 로마의 황제들이 자신들이 통치하던 사람들보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더 천박했으며 욕망에 되는 대로 굴복했다. 자세한 내용은 <수에토니우스, 카이사르들의 인생(Suetonius, Lives of the Caesars)>를 읽어보길 바라며 특히 네로, 티베리우스 그리고 칼리굴라를 찾아보라. 로마 황제의 천박함은 미친 듯이 날뛰는 쾌락주의이다.

천박함의 핵심은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삶의 원천으로 중국어로는 기(氣),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호르몬, 사회복지사들은 테스토스테론, 그리고 프로이트는 이드라 부른다. 천박함은 천박함의 형제애를 형성하는데, 인류는 원초적이라는 지식으로 하나가 되며 유혹, 탐욕, 그리고 공격성을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나약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식이다. 천박함은 세련됨의 반대에 서서 그 자체로 적나라하고 날것이며, 실질적인 무언가로서 자리를 잡았다. 문명의 겉모습에 의해 위축되었을 때 천박함은 영화 <월 스트리트>에 등장하는 고든 게코의 유명한 대사 “탐욕은 좋은 것이다(Greed is good).”와 일치한다. 천박함은 뱅커들이 다운타운의 비싼 레스토랑에서 동네 선술집인 양 소리 지르는 것이다. 이러한 레스토랑을 감당할 수 없는 낮은 영장류들의 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다른 영장류들 사이에서도 최고 영장류로서 자신들이 지닌 우월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환상적인 비율로 재탄생하길 원하는 부인들과 욕실에 놓인 금으로 만든 수도꼭지들, 방마다 설치된 바도 마찬가지다. 타악기로 적군을 거의 죽이다시피 겁을 주려는 전략을 세운 오스만 제국의 병사들이 행진할 때 사용하는 음악에 상응하는 화려함과 빛남, 그리고 데시벨도 그렇다.

과감한 옷에 대한 욕망은 사회적인 소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핑크색의 반짝이는 실로 ‘Slut(음탕한 여자)’라는 수가 놓인, 팔꿈치 길이의 레오퍼드 프린트 장갑으로 손을 감싸는 행위엔 좋은 취향과 적절함의 경계를 무너 뜨리는 진정한 즐거움이 있다. 데시벨이 그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공기를 만드는 시시한 재미에도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내지른다. 로큰롤은 데시벨 그 자체다. 할리 데이비슨은 바퀴 달린 데시벨이다. 축구 훌리건들은 줄무늬 스카프를 두른 데시벨이다. 데시벨은 시각적일 수 있다. 몇몇 색상은 왜 더 자극적일까? 과감한 옷에 대한 욕망은 사회적인 소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될 수 있다. 나는 메탈릭한 가죽 재킷 시리즈를 갖고 있는데 매번 구입할 때마다 그 재킷이 나를 위해 격한 욕을 해주고 다가오는 모든 이들에게 내가 거칠다는 신호를 해주길 바랐지만 이 전략은 결코 효과적이지 않았디.

천박함의 아이디어는 거칠다는 개념의 약칭으로 매혹적이다. 영화 <졸업>에서 로빈슨 부인이 입은 레오퍼드 프린트의 속옷은 그녀가 성적 포식자라는 것을 의미했고 여전히 레오퍼드 프린트는 음란한 란제리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1970년 가죽 청바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는 비싸고도 불결한 것의 최고봉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20년도 지나지 않아 스위프트의 일요일 밤 유니폼이 되었다. 인공적인 천박함의 리스트 일부에는 깃털 장식의 뮬, 화이트 페이턴트 스틸레토, 발찌, 3인치 길이의 손톱, 반짝이는 글로스, 그리고 터쿠아즈 컬러의 아이섀도가 포함된다. 이 모든 것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아이비 리그에서 해체를 가르치던 방식에서 비롯된 개념적인 순환 속에서 천박함에 대한 아이러니한 코멘트로 실제 패션에 재사용되고 있다. 제레미 스콧의 모스키노 가을 컬렉션은 가죽 재킷, 가죽 뷔스티에, 오버사이즈 리본 장식,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반은 타버린 파티 드레스 등으로 넘쳐난다. 아이러니를 입고 싶다면 그의 컬렉션이 정답이다.

천박함은 레드 카펫과 런웨이, 레스토랑 그리고 모든 파티에 등장한다. 텔레비전을 장악하고 인터넷을 조종한다. 천박함의 시대가 우리 인생의 모든 면모에 만연해 있을 때 이건 거의 수명이 다했다는 확실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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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이 미림,사진|Pietro D’Aprano(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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